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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도 회군이 되지 못한 알프스 회군
검투사들은 로마군과의 최초의 전투에서 손쉽게 승리했다. 카푸아 지방에서 서둘러 소집해 동원한 예비군 부대가 무자비한 살인병기로 양성된 노련한 검투사들의 상대가 될 턱이 없었다. 로마 시대의 검투사들은 전사인 동시에 연예인이기도 했다. 그들은 로마군 병사들이 도망가면서 내버린 병장기들로 장비를 교체했다. 검투사용 무기는...
2020-06-26 공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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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쿠스 등장하다
크라수스가 어떤 사람을 귀감(Role Model)으로 삼으며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 기록이 없다. 그가 자신이 닮고 싶은 인물에 관해 특별한 언급을 남기지 않았던 탓이다. 그러나 크라수스는 본인이 후세에 하필이면 노예 출신의 검투사인 스파르타쿠스의 연관검색어가 될 줄은 꿈에서조차 상상하지 못했으리라. 그런데 스파르타쿠스가 없었...
2020-06-22 공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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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수스, 상인의 현실감각을 과시하다
돈 잘 버는 사람들로부터 흔히 발견되는 공통분모가 있다. 시기심이 매우 강하다는 점이다. 폼페이우스는 크라수스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화려한 개선행진을 로마 시내에서 벌였다. 게다가 ‘마그누스’라는 명예로운 이름까지 얻었다. 우리말로 옮기면 ‘위대하다’는 의미였다. “지가 위대하면 얼마나 위대하다고&helli...
2020-06-15 공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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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로남불’은 로마인 유전자에도 있었다
크라수스가 소년기에서 청년기로 넘어갈 즈음에 마리우스가 주도하는 민중파 세력이 반란을 일으켜 정권을 탈취했다.우리가 고대 그리스나 로마의 역사를 살펴볼 때 각별히 유의해야만 할 부분이 있다. 민중파를 진짜로 헐벗고 가난한 기층의 인민대중으로 생각하지 말아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로마 시대 민중파의 실제적 지위는 현대의 ...
2020-06-12 공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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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기자처럼 사서 현대건설 사장처럼 짓다
크라수스의 비즈니스 모델은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되었다. 첫째는 전기의 적산불하였고, 둘째는 후기의 도시 재개발이었다. 술라는 마리우스 진영에 가담한 반대파를 대규모로 숙청하면서 제거한 정적들의 재산을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헐값에 매각했다. 위도 38도선 남쪽의 한반도를 점령한 미 군정청으로부터 일제가 남긴 재산, 즉 적산을 ...
2020-06-05 공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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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산 황금만능의 리더십 : 크라수스 (1)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Marcus Licinius Crassus)는 서력으로 기원전 115년경에 태어나 역시나 기원전인 53년에 죽었으니 그는 로마가 제정에서 공화정으로 넘어갈 무렵의 시대를 살았던 셈이다. 이때는 로마의 국경을 전면적으로 침범할 만한 외부의 위협적 강적은 카르타고를 끝으로 벌써 다 소멸한 상태였다. 외적이 사라지면 그 대타로 ...
2020-06-04 공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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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파미논다스의 사전에 ‘유훈정치’는 없었다
“펠로피다스가 목숨을 잃을 동안 에파미논다스는 어디서 무엇을 했단 말인가?” 독자들로서는 응당 이와 같은 의문을 품을 법하다. 펠로피다스와 에파미논다스는 평생의 동지였다. 그런데 플루타르코스는 펠로피다스를 주연 역할로 내세우면서도 에파미논다스는 주인공을 빛내주는 비중 있는 조연 정도로 처리했다. 필자는 그 까닭...
2020-06-02 공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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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의 중국에게서 펠로피다스의 테베를 보다
펠로피다스는 현재는 그리스 중부 지방에 해당하는 키노스케팔라이에서 알렉산드로스의 군대와 마주쳤다. 고대 희랍의 북쪽 경계선은 지금의 그리스 공화국 국경과 견주어 훨씬 남쪽에 그어져 있었다. 키노스케팔라이는 서력으로 기원전 197년에 로마와 마케도니아 사이에 치러진 대회전으로 더 유명하다. 두 강국의 전면적 무력충돌에서 ...
2020-06-01 공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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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이 꼰대가 될 때 비극은 시작된다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각축전은 해외무대에서도 치열하게 펼쳐졌다.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페르시아에 사절단을 보내자 테베 정부는 펠로피다스를 아케메네스 왕조의 수도인 수사로 급히 파견했다. 페르시아는 테르모필레 계곡을 막아선 레오니다스 왕 휘하의 300명 결사대의 일당백의 분투가 생생하게 증명하듯이, 스파르타로 말미암아 늘 ...
2020-05-31 공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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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이 양아치를 만날 때
페라이의 알렉산드로스가 다시금 준동하기 시작하자 펠로피다스는 이스메니아스 한 사람만을 수행원으로 데리고 테살리아 지방으로 떠났다. 테베의 인적 자원만으로는 스파르타와 페라이를 동시에 상대하는 양면전쟁을 치를 여력이 없었던 탓으로 그는 전투에 필요한 병력을 테살리아 현지에서 충원해야 했다. 북방에서 테베의 골치를 썩...
2020-05-27 공희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