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기자수첩] 대한민국 출산지도, 그리고 낙태죄
  • 서진솔 기자
  • 등록 2020-10-19 18:00:26

기사수정

국토교통부가 지난 6월 발표한 '2019년 주거실태조사 결과'에서 신혼부부가구의 기준을 '여성배우자 연령 만49세 이하'로 설정하며 논란이 일었다. 가임기 여성만을 신혼부부로 분류하면서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취급한다는 비판이 이어진 것이다. 국토부는 해명자료를 통해 “성평등 가치에 부합하지 않고, 성차별로 이루어진다는 오해를 살 수 있는 만큼 향후 연령제한 기준을 폐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낯선 광경이 아니다. 2016년 12월 당시 행정자치부는 시·군·구 별로 20~44살 가임기 여성 인원수를 지도 형태로 제작한 ‘대한민국 출산지도’를 발표한 바 있다. 그 안에서 양육, 경력 단절 등 여성들이 호소하는 각종 차별과 불평등 문제에 대한 고민은 찾아볼 수 없다. 4년이 지나고 정권은 바뀌었지만, 인식은 그대로다. 

 

여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는 최근 정부의 입법예고안으로 논쟁이 되고 있는 낙태죄 폐지 문제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종교 단체 등이 폐지를 반대하는 주된 이유는 '생명권'이다. 맞다. 모두가 알고 있다. 태아의 생명은 소중하다. 

 

그러나 태아의 생명권에 대해 가장 많이 고민하고 이해하는 사람은 단언컨대 임신한 당사자다. 중절을 결심하기까지, 혹은 하지 않기로 판단하기까지의 고뇌가 생명에 대한 죄책감이 되어 평생을 따라다닐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생명권을 들이미는 행위 자체가 고통이 될 수 있다. 출산의 도구로 취급하며, 당사자의 심정은 조금도 헤아려보지 않는 비인간적 폭력 말이다.

 

그렇기에 낙태죄 전면 폐지를 뒷받침하기 위한 논거로 '선택권'이 아닌 '자기결정권'을 내세워야 한다. 당사자는 몸과 정신의 후유증을 감당할 각오로 중절을 결심한다. 출산 후 산모와 아이에게 닥칠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 책임의 무게를 선택이라는 말로는 오롯이 담을 수 없다. '산모의 생명도 중요하다'는 반박도 지양해야 한다. 태아의 생명과 산모를 저울에 올리는 순간 '생명권' 프레임에 휘말리는 셈이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권인숙 의원은 14일 <한겨레>와의 ‘낙태죄 폐지’ 관련 인터뷰에서 “21대 국회 여성의원 비율도 19%에 그쳐 여성들의 목소리가 국회에 잘 전달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지난해 중앙부처 여성 고위공무원(1, 2급) 비율은 7.9%에 불과하다. 여성 고위공무원이 없는 부처도 8개에 달한다. 반면 작년 우리나라 전체 여성 공무원 비율은 47.3%다.

 

이와 같은 구조적인 불균형은 정부 정책의 편향성으로 이어진다. 여성만을 처벌하는 현 낙태죄도 결국 남성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정부와 국회에 여성들의 목소리가 들리게 하기 위해선, 낙태죄 바깥의 뿌리 깊은 문제들부터 하나둘씩 뽑아내 풀어나가야 한다.


관련기사
TAG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서초구
국민신문고
HOT ISSUE더보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한국전력, 삼성전자와 전력설비 운영기술 협력 MOU 체결 한국전력(대표이사 사장 김동철)은 삼성전자와 5월 23일(목)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에서 ‘전력설비 운영분야 기술교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로써 한전과 삼성전자는 변압기, 차단기 등 △전력설비 상태평가 및 진단기술 △고장 예방사례 △예방진단 신기술 적용 및 운영 경험 등을 긴밀히 공유하고 안정적 전력 인프라 운영을 위해 ...
  2. 광명시, 도서관에서 전업 작가의 꿈을 펼치다 광명시는 글쓰기와 출판에 관심이 많은 시민의 문예 창작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관내 도서관에서 `시민 작가 지원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하고 있다고 24일 밝혔다.이 프로젝트는 최근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남기고 일상과 삶의 경험을 책으로 출판하는 활동이 주목받는 가운데, 글쓰기에 관심은 많으나 체계적인 방법을 몰라 망설이는 시민들...
  3. 제네시스, `블룸타니카: 자연과 혁신이 만나는 곳` 전시 개최 제네시스 브랜드가 세계적 플로럴 아티스트 제프 리섬(Jeff Leatham)과 함께 차별화된 브랜드 경험을 선사한다.제네시스는 오는 6월 9일(일)까지(현지시간 기준) 미국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제네시스 하우스 뉴욕’에서 ‘블룸타니카: 자연과 혁신이 만나는 곳(Bloomtanica: Where Nature Meets Innovation)’ 전시회를 개최한다..
  4. 연수구, 장애인체육회 설립 위한 실무 절차 돌입 연수구는 지난 21일 연수구장애인체육회 설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 위촉장 수여식을 개최하며 장애인체육회 설립을 위한 실무 절차에 돌입했다.이날 위촉된 설립추진위원회 위원들은 장애인 관련 기관 및 단체 대표, 장애인 등록 기업 대표, 체육관계자 등 10명으로 구성됐다.오는 6월부터 3개월 동안 연수구장애인체육회의 공식 출..
  5. 산업부, 미국 무역법 301조 발표에 따른 우리 업계 영향 논의 산업통상자원부는 미국의 대중(對中) 관세 인상 조치 발표와 관련하여 양병내 통상차관보 주재로 24일 반도체·태양광·철강 업계의 영향을 논의하기 위한 민관합동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번 간담회는 지난 16일 개최된 전기차·배터리 업계 간담회에 이어 반도체·철강 등 대중(對中) 관세 인상 대상 품목과 해당 품목의 수..
  6. 정부, 26조 원 규모 `반도체 산업 종합지원 프로그램` 추진 윤석열 대통령은 23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반도체 산업을 주제로 ‘제2차 경제이슈점검회의’를 주재했다. 이날 회의는 지난 5월 9일 거시경제·금융시장 현안을 주제로 열린 ‘제1차 경제이슈점검회의’에 이어서 반도체 산업 종합지원 프로그램,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관련 현안, 시스템 반도체 산업 육성 방안 등을 논...
  7. 정부, 국익 극대화 위한 통상정책 로드맵 논의 정부는 보호무역주의가 고착화되고,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있는 글로벌 통상환경이 지속되는 가운데, 우리나라의 경제안보를 굳건히 하고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대응하기 위해 향후 3년간의 통상정책 청사진이 담긴 `통상정책 로드맵`을 논의했다.산업통상자원부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은 5월 24일(금) 오전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관계부...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