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내 성폭력(강간미수) 사건을 폭로한 피해자 A씨는 사춘기 딸 아이를 둔 엄마이자 워킹맘이다. A씨는 지난 2008년 회식 자리에서 직장 상사로부터 한 차례 성희롱을 경험했고, 2017년에는 다른 직속 상사로부터 강간미수 사건이 발생했다.
A씨는 이 사건들로 인해 회사에선 알 수 없는 소문들에 시달렸고,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 강간미수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바로 그는 신고하지 못했다. 회사에 이를 알려도 사건이 제대로 해결될 거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인사이동과 업무배제 등 부당한 처우가 연일 이어져 A씨는 결국 변호사를 선임해 회사 측에 강간미수 사건과 주변 동료들의 성희롱, 괴롭힘, 부당한 인사이동에 대해 알리며 엄중히 조치해 달라고 요청했다.
A씨는 대한항공에 3차례에 걸쳐 진정을 제기했으나 회사는 묵묵부답이었고, A씨가 조원태 회장에게 의견서를 제출한 후 ‘정황은 공감하나 문제점이 없다’는 조사결과를 통보받았다.
아울러 대한항공은 강간미수 사건에 대해서는 가해자를 징계 조치 없이 사직 처리하며 사건을 종료했다. 이에 A씨는 현재 회사와 가해자와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저는 평범한 사람이고, 평범해지길 원하고 있습니다. 제 자리, 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꿈입니다.”
대한항공 내 성폭력 사건을 폭로한 피해자 A씨는 <서남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심정을 이야기했다. A씨는 “사건 이후 잦은 인사이동과 업무배제, 괴롭힘 등 부당한 처우가 연일 이어지고 확인되지 않은 이상한 소문들로 인해 너무 괴로웠어요.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나의 피해 사실을 알리고 더이상 나와 같은 피해자가 생겨나지 않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A씨는 현재 회사와 가해자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A씨는 회사 측에 ‘대한항공 내 성폭력, 성희롱 전수 실태조사를 약속한다면 소송을 취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대한항공 측 변호인은 ‘우리에게 결정권한이 없다’, ‘실태조사는 조정으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는 입장을 밝히며 소송을 진행하겠다는 의견을 내비쳤다고 한다.
막대한 소송비용과 끝날 듯 끝나지 않는 거대 기업을 상대로 진행하는 소송이 피해자인 A씨를 더 두렵고 막막하게 만든다. 사직한 가해자는 사라졌지만, A씨가 받은 상처와 피해는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끝까지 나서고 싶지 않았다···죽을 때까지 묻고 싶었어”
A씨는 대한항공 내에서 성희롱이나 성폭력 등을 겪게 되면 피해자들과 목격자들이 반발하며 쉽게 나설 수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A씨의 사건도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확실한 증거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가해자는 징계 없이 사직 처리가 됐습니다. 게다가 피해자인 저는 오히려 2차 피해를 입고 있는데 누가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려고 할까요. 그 누구도 얼굴을 밝히고 (자신이 성범죄를 당했다고) 나서려고 할 수 없습니다. 저 또한 죽을 때까지 묻고 가고 싶었습니다”
그는 사건이 발생하고 몇 년 뒤 외부 절차가 아닌 사내진정 절차를 선택했다. 회사 측에 알아서 사건을 해결해 줄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건 실망감과 배신감 뿐이였다.
“회사에서는 문제에 대해 인식을 하고 고민하는 태도가 없었습니다, 잘못을 바로 잡으려는 의지가 없는 것으로 밖엔 보이지 않습니다.”
아울러 A씨는 직원들이 부당함을 겪더라고 문제점 제기를 할 수 없는 대한항공 내 인사 시스템에 대해서도 문제를 지적했다.
“서비스 사무직은 약 70%가 여성 직원으로 구성돼있어요. 서비스 직종은 사원에서 대리까지 승진하기 위해서 평균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리게 됩니다. 10년이란 기간도 회사 내 사건 사고가 없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대부분 회사 내 종합직 남성 보직자가 서비스 직종 직원들의 근무를 평가하는데, 직원들은 승진의 기회를 얻기 위해 보직자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외에도 A씨는 회사 내 괴롭힘이나 성희롱, 성폭력에 대한 전수 실태조사가 이뤄져 그에 대한 대응책과 해결책이 생겨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는 회사 내 성희롱 및 성폭력 등의 전담팀이나 부서를 꾸리는 거까지는 바라지 않습니다. 회사 측에서는 피해자가 원치 않을 수 있어 실태조사를 하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피해 사실을 밝히는 것은 본인의 판단으로 결정되는 일입니다. 밝히고 싶으면 밝힐 것이고, 아니면 밝히지 않을 것입니다. 피해자 보호를 위한 것이라며 실태조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은 핑계로 밖엔 들리지 않습니다.”
이와 관련해 대한항공 측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피해자 측이 요청한 사항을 적극 수용해 진행했다”라며 “회사는 피해자 보호를 원칙으로 처리방식에 대해 피해자와 협의해 진행했다”고 말했다.
이어 “(대한항공 내 성희롱 및 성폭행 등) 전수 실태조사에 관한 부분은 현재 피해자 측 변호인에게 수정조정안을 전달한 상황이다”라고 덧붙였다.
피해자를 괴롭히는 또 다른 2차 가해 ‘댓글폭력’···“글이 가지고 있는 칼날, 견디기 힘들어”
A씨는 사건이 언론에 알려진 이후 또 다른 고통으로 인해 상처받고 있다. 바로 자신을 향한 악플(악성 댓글)이 너무 힘겹고 고통스럽다며 2차 가해를 중단해 달라고 간곡히 호소했다. 현재 A씨는 회사에 진정서를 제출한 후 정신과 심리치료를 받고 있으며, "적응장애'로 진단받아 약물 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언론에 대한항공 내 성폭력 사건을 폭로한 이후 저를 응원해 주는 댓글도 많았지만, 현재까지도 저를 향한 악플을 볼 때마다 견디기가 힘듭니다. ‘왜 너한테 그런 일이 있었겠냐’, ‘행실을 똑바로 하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니냐’ 등 이런 댓글을 볼 때마다 정말 억장이 무너집니다. 제발 성폭력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를 멈춰주길 바랍니다. 저는 그저 제 자리, 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입니다.”
그는 결국 이 말을 끝으로 눈물을 보였다. 계속해서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2차 가해로 인해 벼랑 끝에 내몰린 심정이라고 말했다.
“저는 조직이 무서워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런 제가 선동을 하다니요. 제 피해가 사실관계에 위배 된 사항이 있나요? 억측과 비방이 난무하는 악플들을 보면 정말 제가 죽어야 끝이 날까 싶습니다. ”
그리고 그는 연신 살아보겠다고 말했다. 이는 자신을 살려달라는 간절한 외침으로 들렸다.
“살아야죠. 살아보겠습니다. 제 딸아이를 두고 죽을 순 없습니다. 저를 죽지 못하게 만들었던 큰 고통이 또다시 저를 살게 만드네요. 오늘도 살아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