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행정사의 99프로가 무시험 합격한 전직 공무원
김정욱(이하 김) : 제가 민생 3법으로 명명한 집단소송 제도, 증거개시 제도,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국민들이 재벌기업들 같은 거대 조직을 상대로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를 관철시킬 수 있도록 지원하는 법률적 장치들입니다. 민생 3법이 도입되면 변호사들에게도 큰 도움이 됩니다. 변호사들의 활동영역이 대폭 확장되기 때문입니다. 저희 한국법조인협회에서는 국민들의 권익도 지켜주면서 변호사들의 안정된 생활도 보호해주는 제도인 민생 3법의 입법화를 강력하게 추진해왔습니다.
이와 함께 해결이 절실한 과제가 또 있습니다. 법조 유사직역을 통폐합하는 일입니다. 법조 유사직역 또한 나름의 직업적 생태계가 조성돼 있기 때문에 그 역할과 위상을 존중해줘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문제는 법조 유사직역들 가운데 상당 부분이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존재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한국과는 달리 외국에서는 법조 유사직역이 비정상적으로 과잉성장한 사례를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공희준(이하 공) : 거기에는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김 : 과거에는 1년 동안 배출되는 변호사 숫자가 몇 백 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연간 1천명 선에 도달한 게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변호사 숫자가 적으니 국민들이 법률적 구제를 받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 공백을 메우겠다며 법조 유사직역이 하나둘씩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법에 대한 전문성이 상대적으로 부족할 수도 있는 국민들의 권리를 챙겨주겠다는 취지였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일차적으로 변호사의 숫자가 예전과 견주어 엄청나게 증가했습니다. 일본의 인구는 우리나라, 즉 남한 인구보다 2.5배가 많습니다. 이런 일본이 1천 5백 명의 변호사를 매년 새롭게 배출합니다. 우리나라는 그 숫자가 1천 8백 명입니다. 인구 기준으로 우리나라가 적은 숫자의 변호사를 배출하고 있지 않음을 구체적 수치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법조 유사직역의 주축을 형성하느냐? 다름 아닌 전직 공무원들입니다. 공무원의 은퇴 후 생계수단 노릇을 법조 유사직역이 맡아오고 있습니다.
공 : 고위 관료는 정치권에서 인생 2모작을 도모하고, 중하위 공직자들은 법조계에서 인생 2모작에 나서는 절묘한 역할분담 구도네요.
김 : 법원 공무원들에게는 법무사가 되는 길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국세청 공무원들은 손쉽게 세무사가 될 수 있습니다. 특허청 공무원들은 퇴직하면 즉시 변리사로 변신합니다. 특정한 공직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일반 국민들은 의무적으로 치러야만 하는 시험을 면제받은 덕분입니다. 그러나 공직에 아무리 오래 있었다고 한들 변호사 자격증을 사실상 자동으로 취득할 수는 없습니다.
최근에는 행정사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습니다. 현재 행정사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전국적으로 30만 명이 넘습니다. 그런데 행정사 중에서 무려 99퍼센트 이상이 무시험으로 행정사 자격증을 땄습니다. 국민들께서는 잘 모르고 계신 사실입니다.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어떻게 빚어질 수가 있었느냐? 공무원 생활을 10년만 하면 해당 인물이 법률을 체계적으로 공부했든 공부하지 않았든 간에 관계없이 행정사 자격을 부여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1차 시험도, 2차 시험도 전부 무사통과입니다. 법을 다루는 아주 중요한 자격증 가운데 한 가지를 공무원들 손에 마치 퇴직금처럼 쥐여 주는 셈입니다.
공 : 일종의 자격증 퍼주기네요.
김 : 행정사라는 직함이 동반되는 순간 국민들은 그 사람을 법률 전문가로 간주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법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아도 행정사가 될 수 있는 통로를 정부가 퇴직 공무원들을 위해 만들어놨습니다. 제가 살펴본 자료에 의하면 2019년에 2만 2천 명 가량이 행정사 자격증을 신규로 발급받았습니다. 2만 2천 명 중에서 정상적으로 시험을 치르고 행정사가 된 사람은 2백 명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2천 명도 아닌 단 2백 명이었습니다. 나머지는 무시험 취득이었습니다.
신규 행정사 중 99프로의 사람들이 단지 공무원으로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무시험으로 자격증이 주어졌다는 건 정말 문제가 커도 이만저만 큰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법률을 취급하는 자격증을 이렇게 남발하는 관행에 지금이라도 단호하게 제동이 걸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국민들이 진짜로 자격이 있고, 실력이 있는 전문가들로부터 수준 높은 고도의 법률적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자면 현재 매우 혼란하고 무질서한 상태로 방치돼 있는 법조 유사직역 관련법들이 일제히 정비되어야 합니다. 저는 이러한 정비작업이 신속하게 완료돼야만 국민들의 법률적 권익도 실질적으로 신장되고, 한국의 법조문화도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법조계가 안정된 기반 위에서 국민들에게 충실한 법률 서비스를 알차게 제공하려면 더 많은 변호사들이 공공부문에서 활약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회가 입법부로 불리는 까닭은 그곳이 법이 만들어지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국회에서는 법안의 발의와 심의, 그리고 의결 절차가 전부 이뤄집니다.
그렇지만 보좌진 가운데 단 한 명의 변호사도 없는 의원실이 아직까지도 많습니다. 국회가 법률 전문가도 없이 법을 만들고 다루는 게 작금의 현실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상당수 법안들이 충분한 법률적 검증을 거치지 못한 채 중구난방으로 발의돼왔습니다. 그러니 발의된 법안의 99퍼센트가 허무하게 폐기되고 맙니다. 이와 같은 낭비와 비효율을 제거하고 방지하려면 모든 의원실에 최소한 한 명 이상의 변호사가 보좌진으로 상근하면서 법률이 정상적으로 발의되고 있는지를 검토하고 점검하도록 유도해야만 합니다.
변호사들의 전문적 조력이 필요한 국가기관은 국회뿐만이 아닙니다. 중앙의 여러 행정부처들에 더해 지방자치단체들도 법률 전문가의 참여와 도움이 필수적입니다. 지자체에서는 수많은 조례와 규칙을 만들어냅니다. 지자체에서 생산되는 조례와 규칙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통과되어 정식으로 발효된 법률에 버금가게 국민들의 일상적인 실생활을 규율하고 제어해왔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법률보다도 더욱 직접적으로 국민들의 삶을 밀접하게 좌지우지해온 게 각급 지방자치단체가 만드는 조례들과 규칙들입니다.
그럼에도 이 중요한 규칙과 조례를 법률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이 전담하다시피 무분별하고 부주의하게 함부로 만져온 일은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지방자치단체에서 더 많은 변호사들이 근무하게 되면 주민친화적인 규칙과 조례가 제정될 수가 있습니다. 올바른 법치주의가 풀뿌리 수준과 차원에서 활발하게 확립되고 확산될 수 있습니다.
국민과 변호사가 윈윈하는 서울변호사회를 만들 터
공 : 대한변협은 비교적 국민들에게 익숙한 단체입니다. 반면에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일반 대중에게는 매우 생소한 조직입니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구체적으로 어떤 기능과 임무를 수행하는 조직인지요? 그리고 김정욱 변호사님께서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에 당선된 이후에 서울 지역에서 개업 중인 변호사들과 1천만 서울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긍정적인 혁신과 변화로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요?
김 : 대한변호사협회는 전국의 모든 변호사들을 대표하는 법정단체입니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서울에서 활동하는 변호사들이라면 반드시 가입해야만 하는 법정단체입니다.
공 : 수도 서울에서 변호사로 개업하려면 대한변협과 서울지방변호사회에 전부 빠짐없이 가입해야겠네요?
김 : 예, 맞습니다. 두 곳 모두 가입이 강제되어 있는 법정단체입니다. 대한변협 회원은 현재 3만 명이 약간 넘습니다. 서울지방변호사회의 회원 수는 2만 5천 명을 전후합니다.
공 : 서울지방변호사회가 곧 대한변협이네요.
김 : 예, 그렇습니다. 전체 변호사의 4분의3 가까이가 서울지방변호사회에 속해 있는지라 두 조직이 규모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고 말씀드려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단체의 성격에 조금은 다른 점이 있습니다. 대한변협은 정책과 제도에 관련된 활동에 주로 집중해왔습니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회원들의 권익을 대변하고 복리를 증진하는 일에 중점을 두어왔습니다. 그러나 서울지방변호사회가 단순한 이익단체는 아닙니다. “정의의 붓으로 인권을 쓴다”는 모토가 웅변하는 것처럼 저희는 국민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보장하기 위한 인권 지킴이로서의 본분과 노력을 잠시도 게을리 한 적이 없습니다.
공 : “정의의 붓으로 인권을 쓴다”고 하니 왠지 말 타고 만주벌판을 달리는 느낌이 납니다. (웃음)
김 : 처음 접하시는 분들께는 멋있으면서도 뭔가 부담스럽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웃음) 저는 정의를 실현하고 인권을 보호하는 데 앞장서는 일이야말로 변호사 단체의 원초적 임무이자 기본적 사명이라고 믿습니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그와 같은 대전제에 입각해 인권보호 기구로서의 본연의 태생적 소명을 항상 상기하며 다양한 공익적 활동을 전개해왔습니다.
현재 많은 변호사들이 무료법률상담 등의 형태로 법률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한 가지 명확히 짚고 넘어가고 싶은 지점이 있습니다. 공익적 활동과 공익과 무관한 일들을 확실하게 구별하자는 것입니다. 공익적 활동은 변호사로서는 마땅히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공익과는 거리가 동떨어진 사익 추구 행위에 대해서라면 이야기가 전연 달라집니다. 더욱이 그와 같은 사익 추구 행위를 경제적 여력이 넉넉한 사람들이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변호사들이 이러한 일들에까지 무상으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이는 사회정의의 원칙과 대의에도 근본적으로 부합하지 않습니다.
공 : 예를 들자면 국가보안법을 위반해 기소된 피고인들을 무료로 변론해줄 수는 있어도, 사기죄로 구속된 범죄자들을 공짜로 변호해줘서는 안 된다는 말씀인가요?
김 : 공익과 사익의 옥석 구분을 보다 단호하고 명징하게 해줘야만 진정으로 보편적인 사회적 의미와 가치가 있는 일들에 변호사들이 선택과 집중의 원리 아래 더욱더 열정과 에너지를 쏟아 부을 수 있습니다. 지금의 서울지방변호사회는 공익과 사익을 변별하는 잣대가 모호하고 흐릿합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사회에서 혜택 받은 계층의 범주에 속하는 이들의 법률적 뒤치다꺼리까지 변호사들이 거저 해주는 상황이 종종 벌어지곤 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서울변호사회 역시 직업인들이 모인 조직인 터라 구성원들, 곧 회원들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는 데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회원들의 급박한 이해와 현실적 요구와 연관된 일들이라고 해도 국민들의 눈높이를 채워줄 수 있는 최소한의 명분은 충족되어야만 합니다. 그 명분은 국민에게도 도움이 되고, 회원들에게도 이익이 돌아가야만 한다는 점입니다. 저는 제가 서울지방변호사회를 대표하는 중책을 영광스럽게 맡게 된다면 국민들과 법조계가 함께 만족하고 행복해할 수 있는 정책들을 최선을 다해 추진해나갈 계획입니다. (⑤회에서 계속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