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는 실적 부풀리기에 집착하지 말아야
조은희(이하 조) : 서초구에 임대주택이 새로 지어질 때마다 서초구민들과 서울시 사이에 거의 예외 없이 마찰음이 빚어졌습니다. 서울시가 무리한 실적 내기에만 집착해온 때문입니다.
공희준(이하 공) : 서울시가 외부로 드러나는 숫자에만 애면글면한다는 말씀인가요?
조 : 예. 실적을 부풀리려면 집을 잘게 쪼개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전용면적 5평인 임대주택이 수많이 출현했습니다.
공 : 서울시 입장에서는 그래야 가구 수가 많아 보이겠네요. 구청장님 말씀을 들으니 예전에 악덕 유통업자들이 물 먹인 소고기 팔다가 당국에 적발된 사건이 갑자기 생각납니다. 물이든, 진짜 고기이든 일단 저울 위에만 올라가면 장땡이라는 악덕 상혼의 발로였습니다.
조 : 서울시가 추진한 야심찬 사업이 청년임대주택 8만호 공급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구체적으로 건설 계획이 잡힌 가구 수는 겨우 8천 1백 가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입주도 아닌 계획이 그래요.
공 : 완공된 게 10프로가 아니라 계획된 게 10프로네요.
조 : 예, 그렇죠. 실적 늘리기에만 급급한 나머지 집을 작은 평수로 계속 쪼개왔습니다. 저는 반문하고 싶어요. 한두 명이 거주하는 1~2인 가구라고 해서 왜 꼭 5~6평의 비좁은 공간에서만 살아야 합니까? 제가 터무니없이 커다란 대형 평수를 바라거나 요구하는 게 아니에요. 15평 정도로 임대주택의 평수를 늘려 공급하자는 게 제 주장의 요지입니다.
공 : 전용면적 기준으로요?
조 : 예. 주택당국은 국민들이 양질의 주택에서 살게 해줘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저는 국민들을 집을 가진 사람과 가지지 않은 사람들로 편을 가르는 일도 편협하고 정치적이지만, 국민들을 좁은 임대주택에 끊임없이 밀어 넣으면서까지 주택정책의 실적을 불리려는 시도도 그에 못잖게 지극히 당파적이고 정략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청년임대주택을 지을 때는 기본적으로 충족되어야 할 전제조건이 한 가지 있습니다. 청년들에게 선택권을 부여해야만 한다는 거예요. 임대주택에 살고 싶어 하는 청년들은 임대주택에 살게 해주고, 임대주택이 아닌 자기 집에서 살고 싶은 청년들에게는 집을 마련할 수 있는 수단과 기회를 제공해야만 합니다. 일례를 들자면 상환기간이 30년인 모기지론(Mortgage Loan : 부동산 담보대출)을 통해 자신의 명의로 등기를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임대주택의 경우에는 입주한 지 만으로 8년이 경과하면 집에서 퇴거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집값 상황이 어떤가요? 8년 동안 부동산 가격이 제자리에 있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무섭게 폭등해 있을 확률이 현실적으로 아주 높아요. 그 때문에 임대주택에서 나오면 그 즉시 주거 유랑자가 될 위험성이 굉장히 큽니다. 왜냐면 수중에 가진 돈만으로는 이사를 들어갈 만한 마땅한 집을 찾기가 무척 어려울 테니까요.
집값이 다행히 잡힐 수도 있겠죠. 그러니 이왕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자기 소유의 집으로 들어간다면 8년 후에는 집값이 설령 떨어져도 오롯이 자신이 그러한 결정에 책임을 져야만 합니다. 자기 책임을 지는 일이 물론 힘든 일이기는 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청년들에게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줘야 옳다고 봐요. 그리고 재개발과 재건축이 활성화되면 전체 건축 물량에서 양질의 임대주택 20퍼센트를 득템할 수가 있습니다.
공 : 득템요?
조 : 예, 득템요. 법률적으로 그렇게 하도록 의무화가 돼 있어요.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재개발과 재건축을 한사코 가로막는 바람에 어렵지 않게 확보될 수 있었을 임대주택 물량을 헛되이 놓쳐버리고 있습니다.
제가 특히 강조하고 싶은 일은 재건축입니다. 재건축에는 공공기여를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사업적 특성이 있습니다. 지금은 정부가 임대주택 형태로만 공공기여를 하도록 분위기를 인위적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재건축을 바라는 사람들로부터 반발이 막심하게 분출돼왔어요. 저는 다른 해법을 고려해보자는 입장입니다.
공 : 구청장님께서 구상하신 회심의 해법이 있나요?
조 : 임대주택으로 의무화된 분량의 일반분양을 허용한 다음 그로부터 파생되는 분양수익금을 공공기여 형태로 국가가 환수하는 방법입니다.
조은희 구청장은 이 대목에서 좀 더 상세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느꼈는지 갑자기 메모지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서 간단한 도표를 그려가며 답변을 이어나갔다.
현재는 재건축을 하게 되면 250프로 용적률 적용 기준으로 신축 물량의 17퍼센트를 임대주택으로 공급하도록 법으로 명문화돼 있습니다. 전국적으로는 300프로인데, 서울시에서만 250프로입니다. 그런데 전국 기준으로 증가한 50프로의 절반인 25프로를 임대주택으로 할당할 경우 서울에서도 용적률을 300프로로 올려주고 있습니다.
정부에서 새로운 주택공급 방안으로 제시한 대책이 용적률을 500프로까지 상향조정해주겠다는 정책이에요. 용적률이 500프로로 상향되면 재건축되는 아파트의 층수가 35층에서 50층으로 높아질 수가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도 단서가 수반됩니다. 증가한 용적률 250퍼센트의 절반인 125프로를 임대주택으로 지으라는 조건입니다.
재건축을 추진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임대주택을 지을 바에는 차라리 그냥 버티는 게 낫다는 심정으로 사업에서 손을 놓고 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 여파로 전체적인 주택공급 흐름에 적잖은 차질이 발생하고 있어요. 저는 임대주택 건설만을 계속 의무화해 게도 놓치고 구럭도 놓치는 것보다는, 임대주택 대신에 분양용 주택을 짓게 한 다음 거기에서 생겨나는 수익금을 정부에서 현금으로 거두자는 입장입니다. 주택의 절반을 임대주택으로 지으라고 하지 말고, 분양 수익금의 50퍼센트를 나라에 세금이나 공공기여의 형태로 납부하도록 유도하자는 취지죠. 그러면 정부가 손에 쥘 수 있는 공공기여금의 규모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막대해질 수 있습니다.
공 : 현물만 고집하지 말고 현금으로도 받자는 말씀이네요.
조 : 예. 저는 이와 같은 대담하고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선행되어야만 총체적 난맥상에 빠져 있는 주택문제 해결의 가닥이 비로소 잡힐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더욱이 두세 배로 늘어난 공공기여금을 어디에 쓰겠습니까?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용도로 당연히 지출해야만 합니다. 어디 그뿐이겠어요? 서울의 강남권 이외 지역들의 사회간접자본(Infrastructure)을 확충하는 작업에도 활용할 수가 있습니다.
생각만 살짝 바꾸면, 고집만 부리지 않으면 쉽게 풀릴 일들을 지금 정부가 외골수로, 이념적으로 밀어붙이다 어떤 결과가 초래됐나요? 정부가 그렇게 열심히 지어놓은 임대주택이 입주자가 없어서 공실투성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서울시가 건축한 임대주택에 빈집이 얼마나 많은지는 당장 발품만 팔아도 쉽사리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공 : 사람들이 아직까지는 임대주택을 선호하지 않는 경향이네요.
조 : 기왕 지으려면 좋게 잘 지어줘야죠. 저는 집을 구하려는 사람들에게 ‘주택증서(Housing Voucher)’를 주면 된다고 봅니다. 주택증서를 발급해줄 재원은 임대 물량을 분양 물량으로 전환하도록 허용해 조성된 공공기여금을 활용해 조달하면 됩니다. 그러면 시민들이 이 증서를 이용해 본인이 살기 바라는 보다 좋은 집으로 갈 수 있습니다. 주택문제는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답을 찾으면 안 됩니다. 미리 정답을 파악한 상태에서 문제를 풀어가야만 합니다.
공 : 한마디로 실력 없는 사람은 절대로 이 문제를 다뤄서는 안 된다는 뜻이네요.
조 : 되풀이해 말씀드리지만 문재인 정부의 주택정책은 첫 단추 단계부터 근본적으로 잘못 끼워졌습니다. 따라서 애당초 방향 자체가 잘못 설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사회주의 국가가 아닙니다. 정부가 모든 일을 독점하려고 해서는 안 되는 나라입니다. 정부가 전부 통제하고 관리해서 잘됐다면 제가 정부 정책에 굳이 토를 달지 않았겠지요. 하지만 주택 문제는 정부가 다 하려다가 완전히 망쳐버린 대표적 분야입니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자기들의 그릇된 정책 기조를 포기하지 않으려고 해요. 실패가 명확히 예정된 노선을 고집스럽게 붙들고 있습니다. 저는 변창흠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이 앞으로 어떻게 이 문제의 해결에 나설지 예의주시할 참입니다.
공 : 변창흠 장관을 일컬어 일각에서는 정치적 순장조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변 장관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분인데, 집 없는 국민들을 위해 심기일전하고 잘해주셨으면 하는 게 제 솔직한 바람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국무회의를 긴장시키는 메기가 되겠다
대화의 주제는 정책적 영역으로부터 정무적 영역으로 다시 이동해갔다.
더불어민주당은 야당 시장 뽑으면 서울시 행정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주장하며 여당을 미워도 다시 한번 더 찍어달라고 유권자에게 호소할 공산이 큽니다. 지금의 서울시는 지역구 국회의원 대부분은 물론이고 구청장들과 지방의회 의원들의 거의 전부마저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이거든요. 수도 서울이 더불어민주당 일당체제인 정세에서 국민의힘에 당적을 둔 구청장님께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승리한다면 서울 지역 여당 정치인들과의 성공적인 협치와 상생의 모델을 어떻게 구현해나가실 작정인지요?
조 : (마치 기다렸다는 듯 대뜸 언성을 높이며) 민주당 시장 10년 동안 서울에서 잘된 일이 뭐가 있나요? 서울시민의 삶이 좋아진 부분이 과연 단 한 개라도 있나요? 많은 서울시민들께서는 자신들의 삶의 질이 되레 악화됐다고 생각하십니다. 서울이 지난 10년간 완전히 뒷걸음질을 쳤다고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계십니다.
나날이 나빠지는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려면, 뒷걸음질만 거듭해온 서울이 다시금 미래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게 하려면 현재의 기울어진 운동장 구조를 평평하게 바꿔낼 강력한 동력이 필요합니다. 신선한 자극제가 요구됩니다.
공 : 그 강력한 동력과 신선한 자극제 역할을 조은희 구청장님께서 해내시겠다는 거네요. 쉬워 보이는 과제는 아닌데….
조 : 서울시장은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에 참석할 자격과 권한이 있습니다. 국무회의에 들어온 야당 서울시장은 정부여당의 독주와 오만을 견제할 가장 확실한 대항마입니다.
공 : 굼뜨고 게으른 미꾸라지들이 정신을 차리게 만드는 사나운 메기가 되시겠다는 포부네요.
조 : 그렇죠. 제가 국무회의에 참석하면 메기 효과가 제대로 발현될 겁니다. 더불어민주당과 열린민주당을 합친 범여권의 국회 의석이 180석에 달하고 있습니다. 이 180석의 압도적 숫자의 의석을 갖고서 국정을 잘 운영하고 있나요? 누가 봐도 아닙니다. 특정 정당의 독주, 아니 폭주는 국정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나라의 건강을 해칩니다. 무엇보다도 정권 담당자들이 국민들의 시선을 의식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게 됩니다. 서울시의 균형을 되찾고 나라의 건강을 회복하려면 야당 서울시장이 이번에 반드시 등장해 민심의 매서움과 무서움을 정부여당에 단단히 가르쳐줘야만 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야당에서 어떤 사람이 서울시장에 당선되어야 하느냐에 있습니다. 만에 하나 천만 서울시민의 삶과 미래를 책임지기에는 역량이 다소 모자란 인사가 야당 소속 서울시장이 된다면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에 이보다 더 환상적인 시나리오는 있을 수 없습니다. 야당 서울시장이 이끄는 서울시가 여당 서울시장이 재임하던 시절의 서울시와 별다른 차별성이 없다면 이는 내년에 치러질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는 야당에게 오히려 치명적 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행정능력과 정치감각을 겸비한 유능한 인물이 야당의 대표선수로서 임박한 서울시장 선거전에 나서야 한다고 봅니다. 실력과 경험을 두루 갖춘 야당 소속 서울시장이 서울을 확 바꾸는 일이야말로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정권교체를 기필코 실현시킬 최고의 필승 카드이기 때문입니다. (⑧에서 계속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