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DMZ국제다큐영화제를 통해 공개되며 폭발적인 호평을 이끌어낸 화제작 <시인 할매>가 스크린을 통해 다시 한번 그 감동을 전한다.
<시인 할매>는 인생의 사계절을 지나며 삶의 모진 풍파를 견뎌낸 시인 할매들이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운율을 완성시켜나가는 과정을 담은 시(詩)확행 무공해 힐링 무비다.
평균연령 80세, 세월의 풍파에 밀려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도 못한 채 평생을 까막눈으로 살아야 했던 할머니들은 전라남도 곡성의 작은 마을 도서관에 모여 한글을 배우면서, 서툴지만 아름다운 시를 써 내려 간다.
시 속에 담긴 할머니들의 주름진 인생과 순수한 마음은 아등바등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천천히 흘러가도 괜찮다고 위로를 건넨다. 여기에 더해진 그리운 시골 풍경은 아름답게 채색되는 할머니들의 소소한 일상과 어우러져 힐링을 선사한다.
윤금순 할머니의 시 『눈』 속, 수록된 “잘 살았다, 잘 견뎠다, 사박사박”이라는 구절은 오랜 세월을 견뎌낸 할머니들뿐 아니라 인생의 종착지가 어딘지 모른 채 바쁘게 달려가고 있는 현대인들의 가슴을 울린다.
푸릇푸릇한 나무 뒤에 자리 잡은 담벼락, 그리고 그 위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할머니들의 사랑스럽고 순수한 모습들은 보는 즉시 미소를 자아낸다.
이와 같이 편안한 마음으로 귀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마음 깊이 자리 잡는 영화 <시인 할매>는 <워낭소리><리틀 포레스트>의 뒤를 잇는 무공해 힐링 영화의 탄생을 알리며, 스크린을 통해 모든 이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어루만질 것이다.
영화를 제작한 이종은 감독은 할머니들의 시(詩)를 보고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를 떠올렸다. 노년에 시를 만나 세상을 새롭게 보는 극중 주인공의 모습과 ‘시’를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한 할머니들의 모습은 그에게 있어 큰 영감으로 자리 잡았다.
2016년 ‘시집살이 詩집살이’의 출간 기사가 뜨자마자 시집을 집어 든 그는 124편의 시로 거듭난 할머니들의 삶의 애환을 통해 짠한 감동을 느꼈다. 할머니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게 된 날부터 그 과정들이 시로 거듭나게 된 이야기까지, 그간의 과정을 술회한 김선자 관장의 글을 통해 할머니들에 대한 궁금증이 밀려왔다.
‘어떻게 이런 시를 쓸 수 있었을까?’라는 궁금증은 곧 이분들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어머니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했다. 삶의 애환을 그대로 가슴에 묻고 버티며 살아가는 할머니들의 모습은 우리 시대의 어머니들, 그 자체였다. 할머니들의 서툰 시는 기교 가득한 다른 시들보다 더 숱한 감정들을 불러일으켰다.
그렇게 이종은 감독은 우리 시대의 어머니들에게 헌사가 되는 시(詩)확행 무공해 힐링 무비 <시인 할매>를 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3년이란 제작 기간을 통해 완성된 <시인 할매>는 제10회 DMZ국제다큐영화제를 통해 공개되며 폭발적인 호평을 얻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주말에 부모님 댁에 다녀와야겠다” “전화라도 드려야겠다”라고 말하며, 현실을 살아가기에만 바빴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고, 제작진은 그런 관객들의 모습에서 깊은 뿌듯함을 느꼈다.
오랜 제작 기간 동안 담아낸 할머니들이 시를 짓는 모습뿐만 아니라, 그 속에 담긴 곡성 서봉 마을의 사계절은 따스한 힐링을 선사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나 다시 봄을 맞이하기까지. 더욱 애절하고, 더욱 담담해지는 할머니들의 시와 위로의 메시지는 보는 즉시 모두의 마음을 울린다.
‘시집살이 詩집살이’ 속에 담긴 할머니들의 일생과 회환이 스크린을 통해 관객들을 찾아온다. 우리 시대의 어머니들에게 보내는 헌사와도 같은 이번 작품은, 시집에서는 볼 수 없었던 따스한 시골 풍경과 할머니들의 소소한 일상까지 확인할 수 있어 그 감동을 배가시킨다.
큰 아들을 사고로 잃고 여전히 슬픔을 간직하고 살아온 어머니의 얼굴을 보듬는 딸의 모습부터 먼저 가신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우리가 잊고 있던 할머니의 모습들까지. <시인 할매> 속 어머니를 향한 자식들의 뭉클한 시선과 할머니들의 지나간 세월을 향한 그리움은 서로 맞물리며 보는 즉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게 만든다.
슬픔과 고난에 저항하지 않고, 순응하고 내려놓으며 살아야 했던 할머니들이 선사하는 순수한 문장들은 어머니 세대의 무한한 헌신과 사랑을 떠올리게 한다. 모진 세대를 살아온 할머니들의 모습이 가슴을 일렁이게 하는 깊은 울림을 선사하는 것이다.
시 속에 담긴 농사일, 시집살이 등을 경험해보지 못한 이들에게도 할머니들의 위로는 뭉클하게 다가온다. 봉숭아 물들이며 소녀처럼 웃는 할머니들의 모습과 스크린에 펼쳐진 그립고 따사로운 시골의 풍경은 바쁘다는 핑계로 외면했던 우리 자신을 돌이켜보게 한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가 지나쳤던 어머니들의 순고의 세월은, 노년층에게는 깊은 공감을 선사한다. 할머니들이 지나온 고단했던 세월들이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나이 불문 관객들의 심금을 울린다. <시인 할매> 속 할머니들의 모습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마주해야 할 얼굴들이다.
<시인 할매> 촬영을 어렵게 했던 요소들은 다른 영화와는 차원이 다른 ‘훈훈함’을 자랑한다. 촬영 내내 할머니들은 여느 어머니들이 자식 손자를 생각하는 마음처럼, “그만 찍고 이거 먹어”라고 말하며 음식을 건넸다. 어쩔 땐 촬영이 불가능할 정도로 제작진을 챙기는 할머니들의 모습에 제작진은 결국 카메라를 내려놓아야 했다.
뿐만 아니라, 할머니들의 거부로 촬영하지 못했던 장면들은 제작진들까지도 숨죽여 눈물 흘리게 만들었다. 양양금 할머니를 제외한 모든 할머니들이 독거노인이었고, 제작진은 혼자 살아가는 할머니들의 외로움을 표현하기 위해 혼자 식사하는 모습을 찍고 싶었다.
그러나 할머니들의 반대는 생각보다 완강했다. 혹시나 혼자 김치 반찬 하나로 식사를 때우는 모습을 자식들이 보고 가슴 아파할까 걱정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할머니들은 촬영하는 내내 자식들이 먼저였다. 다른 촬영은 아픈 몸을 이끌고도 협조하였지만, 그 장면만큼은 보이고 싶지 않았던 할머니들의 모습을 헤아려 영화에는 장면을 삽입하지 않았고, 그런 할머니들의 모습은 제작진들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