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 전라북도는 한때 한국정치의 거목들을 여럿 배출한 이른바 정치의 명문 고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수도권에 밀리고, 영남에 차이고, 광주전남에 치이는 형국이 되어 그 목소리도 존재감도 미미합니다. 전북 정치의 퇴조가 단지 지역 내에 거주하는 유권자의 숫자만 줄어서일까요? 이를테면 서울 강남권은 전북과 비슷한 인구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강남좌파’가 문재인 정권의 핵심적 내부자들(Inner Circle)을 독점하다시피 했을 정도로 정치권 안팎에서 강력한 사회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이를 보면 인구 감소만이 전북의 정치적 황혼을 부른 원인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전북 정치가 자신의 목소리와 존재감을 회복해 우리나라 정치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다시금 수행하려면 어떠한 변화와 혁신이 절실히 필요할까요?
전북 정치, 지표상으론 괜찮은데…
정진숙 : 전북 정치가 과거와 비교해 많이 쇠락했다는 생각은 전라북도 도민들께서는 물론이고 다른 지역에 계신 분들께서도 공유하고 있는 인식입니다. 전라북도는 야당의 당수와 야당의 대통령 후보자 같은 거물 정치인들을 여럿 배출했습니다. 더욱이 국가적으로 중대한 쟁점들이 제기될 때마다 전북 정치인들이 그러한 논의의 중심에 서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현재도 전북의 정치적 위상은 지표만 고려해보자면 여전히 꺾이지 않았습니다. 전라북도 출신 현역 국회의원들의 숫자가 여야를 통틀어 무려 35명에 달하기 때문입니다. 전체 국회의석의 10퍼센트가 훨씬 넘는 비율을 전북이 고향인 국회의원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잠시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보기로 하겠습니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직전 원내대표인 홍영표 의원은 전라북도 고창 출신입니다. 제3당인 바른미래당의 전임 원내대표인 김관영 의원도 전라북도 군산에서 태어났습니다. 원내에서 네 번째로 의석이 많은 정당인 민주평화당의 경우에는 당대표와 원내대표와 사무총장이 모두 전북이 고향입니다.
정동영 대표는 순창에서, 유성엽 원내대표는 정읍에서, 김광수 사무총장은 전주에서 각각 태어났다.
전북에서 출생한 인물들이 여의도 중앙정치권에 진출하게 되면 의정활동 등의 실무적인 측면에서 남들과 견주어 나으면 나았지 결코 못하지는 않았습니다. 지난 박근혜 탄핵정국에서 태풍의 눈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였습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관건 중의 관건은 최순실 씨의 딸인 정유라의 승마 경기 지원을 둘러싼 박근혜 정권과 삼성그룹의 유착관계였습니다.
정권과 삼성의 유착관계가 본격적으로 폭로되는 봇물이 터진 곳이 다름 아닌 유성엽 의원이 위원장으로 있던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였습니다. 만약에 해당 상임의원회의 위원장이 전북 출신이 아니라 박근혜 정권에 대한 지지도가 높은 지역에서 당선된 정치인이었다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진상이 국회에서 과연 확실하게 규명될 수가 있었을까요? 이렇듯 우리나라 정치 요소요소에서 전북 출신의 정치인들이 국회 입법 활동을 비롯한 다양한 영역들에서 자신들에게 주어진 역할과 책무를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이행해왔습니다.
그럼에도 여러 정당들이 공존하고 경쟁하는 다당제의 긍정적 기능과 효용성이 좀처럼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언론에서는 여야의 양자대결 구도만 오히려 집요하게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내로남불’의 진영논리를 부추기는 극단적인 논리들만 득세하도록 자꾸만 몰아가는 것입니다. 민주평화당 같은 대안정당들이 국민들의 합리적인 정치적 판단에 커다란 도움을 줄 수 있는 근거와 정보들을 계속 제공해왔는데도 여론은 이러한 정당들에 별다른 관심과 주목을 기울여주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그와 같은 불합리한 현상의 배경에는 현재의 다당제를 시대착오적 양당제로 되돌리려는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두 거대 정당 간의 무언의 암묵적 공조와 연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민주평화당의 당직자로 일했습니다. 당직자이기 이전에 한 명의 당원이기도 합니다. 국민들이 총선에서 만들어준 다당제를 정치권이 자기들 마음대로 양당제로 역주행시키는 일을 가만히 앉아서 무기력하게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민주평화당 안에는 저와 비슷한 견해를 갖고 계신 분들이 꽤 많습니다. 옛 국민의당처럼 3당으로서의 확실한 성과와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정당을 제3지대에서 만들자는 이야기가 전북 지역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오가는 이유입니다.
정권 만들어주니 공장과 조선소가 사라져
저는 전라북도 정치인들이 우리나라 정치의 중요한 고비들마다 중차대한 획을, 의미 있는 획을, 긍정적인 획을 그어왔다고 확신합니다. 그 바탕에는 당연히 전라북도 유권자들의 지지와 믿음이 굳건하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전북이 대한민국의 변화와 발전에 지속적으로 기여해온 데에 걸맞은 전라북도 도민들을 위한 정부 차원의 국가정책상의 노력이 거의 없었다는 데 있습니다.
군산은 전라북도에서 전주와 익산 다음가는 대도시입니다. 그런데 이 군산을 대표하는 대기업 2개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로 크게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께서 대선 공약으로 군산의 현대조선소와 GM대우 공장을 반드시 살려내겠다고 후보 시절에 분명히 약속하셨는데도 말입니다.
문재인 대통령뿐만이 아닙니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또한 군산의 GM대우 자동차 공장과 현대중공업 조선소를 정상화시키기 위한 실질적 노력을 거의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2017년의 조기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에게 표를 주었던 군산 시민들의 요구와 여망을 지금의 정부여당이 대통령 선거 공약을 어기면서까지 철저히 외면해온 셈입니다.
2016년의 제20대 총선 직후에는 분위기가 굉장히 달랐습니다. 당시 국민의당이 전북 지역에 있는 10개의 지역구 국회의석 가운데 7곳에서 승리하는 파란과 이변을 연출했습니다. 그 결과 누구도 전북의 민심과 전라북도 도민들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는 정치적 환경이 마련되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이기고, 나중에 국민의당마저 깨지면서 전북을 대하는 정부당국의 얼굴 표정이 싸늘하게 바뀌었습니다. 후보 시절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던 전북 지역에의 제3금융도시 지정이 지지부진한 일에서 뚜렷이 드러나듯이, 정부여당의 태도가 차갑게 돌변했습니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미명 아래 전북을 소외시키면서 부산을 더 밀어주는 방향으로 문재인 정부의 정책기조가 슬금슬금 변해왔기 때문입니다.
제3금융허브 지정 지연은 아직 본격적인 사업 추진이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시적 지연이라고 어쩌면 통 크게 이해해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군산의 현대중공업 조선소와 GM대우 자동차 공장은 사정이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이미 가동하는 중이었던 대기업 2개가 하루아침에 문을 닫는 지역경제의 대참사가 빚어진 까닭에서입니다.
경제를 살리지 못하는 정치를 좋은 정치라고, 유능한 정치라고, 훌륭한 정치라고 평가해주기 어렵습니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전북에서 경제를 살리는 정치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제가 살지 못하면 정치도 궁극적으로 힘없이 시들어버리기 마련입니다. (②편에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