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 금천구는 수도 서울에서도 낙후되고 침체된 지역으로 대표적으로 손꼽히고 있는 곳입니다. 이와 같은 금천구의 고질적인 사회경제적 낙후와 침체는 경기도에 속하는 이웃한 광명시가 금천보다도 더 잘사는 동네로 평가받는 데에서 뼈아프고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금천의 낙후와 침체는 특정 정당이 금천구의 국회의석과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를 오랫동안 독점해온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특정 정당이 금천구의 국회의석과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를 독점하게 된 일이 금천의 낙후와 침체를 더욱더 가속화시키는 원인으로 다시금 작용하고 있습니다. 금천을 서울을 대표하는 저발전 지역의 오명으로부터 탈출시키려면 금천구에 어떠한 근본적 변화가 있어야 할까요? 그리고 금천에 그러한 변화의 바람이 불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 조건은 어떤 것일까요? 정두환 위원장님의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경제를 모르는 정치인들이 금천을 망가뜨려
정두환 : 금천이 낙후된 지역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으니 금천구민의 한 사람으로서 솔직히 자존심이 엄청 상합니다. 그래도 현실은 현실이니 일단은 인정해야겠죠. 금천구는 서울 지역 25개 자치구들 가운데 위에서 23번째 정도의 위치에 있습니다. 낙후되지 않았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먼저 경제적으로 금천을 잠시 개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금천구는 예전 표현으로 구로공단이 소재했던 지역입니다. 지금은 가산디지털단지로 알려진 곳입니다. 금천구에는 이른바 ‘마찌꼬바’로 불리는 작은 봉제공장들이 여기저기 밀집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얘기를 나누는 건물의 명칭이 「금형회관」입니다. 금속을 가공하는 소규모 공장들이 금천에 많은 까닭에 여기에 금형회관이 들어선 것이지요.
금천은 고도성장시대의 노동자들의 한과 애환이 짙게 서린 가슴 아픈 동네이기도 합니다. 공돌이라고, 공순이라고 부당한 멸시를 당했던 수많은 저임금 노동자들이 금천에서 많이 생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공단이 있던 부지가 현재는 디지털단지로 변신해 첨단산업의 메카로 군림하며 4차 산업혁명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금천을 정치적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이곳은 민주당 계열의 정당들이 장기집권을 해온 지역입니다. 국회의원도, 구청장도, 시의원과 구의원도 민주당이 줄곧 독식해왔습니다. 2002년과 2006년 두 차례의 지자제 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소속 후보자가 구청장에 당선된 사례를 빼면 금천 지역의 민선구청장은 현재의 더불어민주당에 속한 인물들이 변함없이 차지해왔습니다. 당연히 현재도 금천은 국회의원부터 구의원까지 정치적으로 더불어민주당 일색입니다.
저는 지난 30년 동안 금천구에서 계속 거주해왔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살아온 30년 동안 금천에서 뭐가 바뀌었을까요? 시흥대로에 씨티렉스 쇼핑몰이 들어섰습니다. 시흥 네거리에 홈플러스가 개장됐습니다. 최근에 롯데 캐슬과 힐스테이트가 이곳에 분양되었습니다. 이 정도가 지난 30년 동안 금천구 주민들이 자신들의 실질적 삶에서 체감한 변화의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금천은 변화가 너무나 적은 지역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주목해야만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건 이 지역을 발전시킬 수 있는 무궁무진한 자원이 금천구 안에 있다는 점입니다. 그 무궁무진한 자원은 바로 가산디지털단지입니다. 가산디지털단지는 수도 서울 안에 있는 유일한 공업단지입니다. 이 가산디지털단지의 2단지와 3단지가 금천에 자리해 있습니다. 1단지는 구로에 위치해 있고요. 그럼에도 금천은 여전히 서울의 대표적인 낙후지역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일이 정말 불가사의하게 느껴집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금천에서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금천의 불가사의한 침체에는 여러 가지 이유들의 얽혀서 복합적으로 작용해왔습니다. 저는 그 이유들 가운데 중요한 한 가지가 경제가 뭔지를 모르는 인물들이 금천의 정치를 이끌어온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밖에 나가서 고생하지 말라고 옷 속에 금덩어리를 넣어줬는데 몇 년 후에 거지 모습을 하고서 집으로 돌아온 어리석은 사람들이 금천의 정치를 주도해온 셈입니다. 자기가 금덩어리를 몸에 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 지경으로 이들은 현실에 둔감하고 실물에 무감각한 것입니다. 이런 인사들이 금천을 쥐락펴락하니 금천이 낙후 지역의 오명을 벗어나지 못해온 것입니다.
SKY 합격자를 금천에서는 구 단위로 계산
제가 상징적이면서도 뼈아픈 실례를 하나 제시해보겠습니다. 금천에는 서울대 교수가 단 한 명도 살고 있지 않습니다. 사실입니다.
서울대 누리집에 접속해 확인한 서울대학교 교수의 숫자는 2018년 4월 1일 기준으로 총 1,535명이다. 서울대 교수가 살지 않는다는 것은 금천 지역에는 내로라하는 방송사의 PD들과 유력한 중앙일간지 기자 같은 오피니언 리더들이 전연 살지 않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더 참담한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 동네, 곧 금천구에서는 서울대, 연대, 고대 즉 SKY 대학교에 진학하는 학생의 인원수를 관내의 개별 고등학교 차원에서 계산하지 않습니다. 구 단위로 집계합니다. (푹 한숨을 내쉬며) 금년에는 10명이나 넘었는지 모르겠어요. 서울대 10명이 아니고 연고대까지 포함해 10명이요. 이런 자조적 질문을 지역에서 수시로 듣기 일쑤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금천은 아이들을 교육하기에 굉장히 두려운 곳입니다. 강남에서는 부의 대물림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반대로 금천에서는 가난의 대물림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첫 번째로 조선족으로 보통 불리는 재중동포들과 동남아와 중앙아시아 출신 외국인 노동자들이 금천으로 지속적으로 유입돼오고 있습니다. 영등포구 대림동에는 과거의 집성촌 비슷하게 중국인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구역이 형성돼 있습니다. 금천구도 대림동과 비슷한 현상을 경험하는 중입니다. 그 때문에 금천구에는 다문화 가정이 다른 지역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많습니다.
정두환 위원장은 구체적인 동들의 지명까지 언급했으나 필자는 선수보호 차원에서 이 대목은 그의 말을 옮기지 않기로 결정했다.
두 번째로 노인 인구의 비중이 높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들과 다문화 가정만 많은 게 아닙니다.
세 번째 인구학적 특징은 1인 가구가 점유하는 비율이 크다는 점입니다. 가산디지털단지를 중심으로 해서 금천을 그야말로 잠만 자는 곳으로 활용하는 청년들의 숫자가 꽤 됩니다. 금천구가 서울특별시 속의 작은 베드타운처럼 돼버린 형국입니다.
금천구도 서울시의 어엿한 일부분입니다. 그렇지만 발전경로가 서울을 기준으로 볼 때 정상적 궤도를 밟아왔다고 평가하기는 힘듭니다. 저는 앞으로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이러한 추세와 경향성이 더욱더 강화될 것으로 전망되기에 정말로 걱정이 큽니다.
금천구 체육대회는 광명에서 한다
금천에는 없는 게 너무나 많습니다. 우선은 대학병원이 없습니다. 소방서도 없습니다. 이제야 새로 짓고 있는 중입니다. 게다가 경찰서마저 관내에 오랫동안 없었다가 작년인 2018년 12월에야 뒤늦게 문을 열었습니다. 대학은 당연히 없고요. 금천은 번연이 서울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경기도에 속하는 이웃한 광명이 경제력에서도, 주민들을 위한 삶의 인프라 역할을 해주는 생활기반 시설들들에서도 월등하게 잘 발달돼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웃지 못한 촌극이 빚어지는 줄 아세요?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등의 기념할 만한 특별한 날에는 서울시민인 금천구민들이 광명시에 있는 음식점들을 찾아가 밥을 사먹곤 합니다. 더 황당한 일화도 있습니다. 엊그제 금천상공회의 우의와 단합을 증진하려는 취지의 체육대회가 개최됐습니다. 그런데 금천상공회가 주최하는 이 체육대회를 광명으로 넘어가서 진행했습니다. 금천에 행사를 치르기에 마땅한 공간이 없는 탓이었습니다. 반면에 광명은 이와 같은 행사에 필요한 시설들을 비교적 잘 조성하고 정비해놨습니다. 금천 사람들 체육대회를 광명에 있는 운동장을 빌려 할 수밖에요. 상황이 이러니 금천이 서울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에 생겨난 경기도 신도시들과 견주에 집값이 오히려 낮습니다.
호남 출신 주민들과 충청 출신 주민들을 합하면 금천구 전체 인구의 60퍼센트 가량에 달합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우스갯소리가 하나 있습니다.
호남 출신들은 부지런히 서울에 올라와서 4대문 안에까지 진입했다가 여건이 안 된 나머지 밀리고, 밀리고, 또 밀리다가 금천에 결국 정착했다는 겁니다. 충청도 출신들은 서울로 느릿느릿 상경하다가 해가 지는 바람에 더는 안쪽으로 가지 못하고 금천에 눌러앉게 되었다고 합니다. 금천 주민들끼리 모이면 하는 은근히 뼈있는 농담입니다. 금천이 서울의 맨 끄트머리라는 사실을 해학적으로 풀어놓은 얘기들이겠지요.
왜 성공하면 금천을 떠날까
금천은 주거환경도, 교육환경도 모두 열악한 지역입니다. 따라서 인구수가 자연히 줄기 마련입니다. 지난 10년간 금천구 인구가 해마다 5천 명씩 감소해왔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어떤 동기로 금천을 떠나는지 살펴보니까 으스스하게 느껴지는 결과가 드러났습니다.
첫 번째는 돈 버니까 금천을 떠나는 사람들입니다. 보다 쾌적한 주거환경을 찾아 금천을 떠나는 것이죠.
두 번째는 아이들이 공부 잘하니까 금천을 떠나는 사람들입니다. 이를테면 중학교 2학년 무렵에 다다른 자녀가 성적이 괜찮으면 길 건너 양천구에 있는 목동으로 아이를 유학을 보내든지, 아니면 가족 전체가 이사해 나갑니다. 금천에 있는 집을 팔고 목동에서 전세를 얻는 식입니다. 한마디로, 성공하면 금천을 떠나는 겁니다. 그중에는 아주 크게 성공해 강남에 입성한 경우도 드문드문 있습니다.
이명박 정권 시절에 뉴타운 사업이 추진됐었습니다. 금천에는 통틀어 4군데가 뉴타운 재개발 사업 대상 지역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최종적으로는 네 곳 모두 사업권을 반납했습니다. 사업성 부족이 핵심적 사유였습니다.
당시 뉴타운 사업으로 인해 금천구에서 싸움이 시끄럽게 벌어졌습니다.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쪽의 세력이 비슷했거든요. 그런데 금천만의 독특한 특성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자그마한 다세대 주택을 소유한 건물주들이 특히나 반대가 심했다는 점입니다. 건물주들이 앞장서 찬성하는 다른 동네와는 분위기가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이런 건물주 분들의 대부분이 연세가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자신들이 살아봤자 얼마나 더 살겠냐면서 뉴타운 사업에 부정적 반응을 보였습니다. 임대소득이 생활비의 주된 원천인 탓이었습니다.
세입자들이야 당연히 반대하는 데다 건물 가진 주민들까지 반대진영에 가세한 까닭에 사업 추진에 탄력이 붙을 리가 없었습니다. 결국 사업을 포기하는 데 이르고 말았습니다. 뉴타운 사업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이전에 뉴타운 사업조차도 원활히 안 되는 동네가 금천입니다. (②편에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