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사벽 영어유치원
필자의 딸아이는 어느 공립초등학교의 병설유치원에 다니는 중이다. 일반 사립유치원 몇 군데에 원서를 넣었다가 모두 안 되는 바람에 마지막 대안으로 집 근처 어린이집에 보낼 요량이었는데, 역시나 정원이 꽉 찬 줄 알았던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서 아이를 입학시키라고 갑자기 연락이 온 덕분이었다. 내 짐작으로는 기존 원아들 중 결원이 발생한 듯하다.
딸아이는 자기가 자주 어울리는 친구들의 이름을 재잘거리며 거명하곤 한다. 아이에 따르면 며칠 전부터 어떤 아이 한 명이 유치원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선생님 설명에 의하면 어떤 때는 아프기 때문에 등원하지 못하고, 또 어떤 때는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간 까닭에 유치원에 오지 못한다고 한다. 순전히 내 짐작으로는 아마도 유치원을 옮긴 듯하다. 해당 아동의 보호자가 영어유치원에 관한 언급을 수시로 했다고 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는 국공립유치원과 사립유치원 이외에도 제3의 유치원이 있다. 바로 영어유치원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영어유치원은 유치원이 아니라고 한다. 학원으로 분류돼 있단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박용진 의원이 유치원 3법이 아니라 유치원 300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켜도 영어유치원에는 전혀 영향이 미치지 않는 맹점이 생겨나는 구조적 배경이다.
이게 무슨 뜻이냐? 철부지 유아들을 볼모로 잡고서 돈을 무진장 벌고 싶으면 지난 유치원 대란을 거치며 거의 공공의 적처럼 자리매김이 된 한유총 계열의 사립유치원이 아닌 영어유치원을 설립해 운영하면 된다는 의미이다.
딸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면서 나는 생전 처음으로 국공립유치원과 사립유치원의 본질적 차이점을 알게 되었다. 국공립유치원은 돈을 받지 않는다. 대신에 노란색으로 색칠된 유치원 통학차량이 없다. 사립유치원과 영어유치원의 결정적 차별성도 파악하게 됐다. 사립유치원은 한 달에 50만 원 정도를 내야만 한다. 이와 달리 영어유치원은 1개월 당 최소 150만 원가량의 거액이 소요된다.
내가 이번 유치원 파동을 지켜보며 박용진 의원이 쇼를 한다고 판단한 정황적 근거는 그가 정작 돈 많은 아이들이 주로 다니는 영어유치원은 손도 대지 못한 채, 서민층 가정의 원아들을 감당해온 사립유치원들만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의 한 놈만 팬다는 정신으로 집요하게 공격한 연유에서였다. 박 의원은 거악은 모르쇠하고서 잡범들만 잡으러 다닌 모양새였다.
자사고보다 조기유학이 백배는 나쁘다
문재인 정권 시대에 단연 왕성한 활동력을 과시하는 인적 집단이 이른바 진보 성향의 교육감들이다. 교육감을 주민 직선으로 선출하는 제도가 도입되면서 교육감은 교육자인 동시에 정치인으로 그 위상과 몸값이 한 단계 더 높아졌다.
이들 진보 교육감들이 현재 심혈을 기울여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핵심 과제가 바로 자율형사립고 폐지 정책이다. 사실, 나도 자율형사립고라고 하는 교육기관이 굳이 왜 있는지 모르겠다. 원칙적으로 전부 다 없앴으면 좋겠다. 그러나 원칙적으로는 폐지에 찬성하면서도 자사고의 문을 닫게 하려는 소위 진보교육감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픈 심리적 욕구가 좀처럼 발동하지를 않는다.
왜일까? 자사고 폐지 소동 또한 사립유치원 파동의 영락없는 판박이라 그렇다. 거악은 놔둔 채 또다시 잡범들만 열심히 때려잡는 형국인 셈이다.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는 분명 귀족 학교가 맞다. 허나 우리 모두 명심하자. 귀족 위에는 왕족이 항상 존재하기 마련임을. 자사고가 아무리 돈이 많이 든다고 한들 미국의 아이비리그나 영국의 옥스브리지(옥스퍼드+케임브리지)에 진학하기 위해 아이를 외국에 보내는 경우보다는 훨씬 덜 들 게 뻔하다.
사립유치원 때려잡는 선봉에 박용진 의원이 있듯이, 자사고 박멸의 선두에는 전주의 상산고를 완전히 묵사발로 만든 김승환 전라북도 교육감이 자리해 있다. 박용진 의원은 자기 아이 영어유치원 보내놓고서 사립유치원 때려잡는 위선의 극치는 보여주지 않았다. 박용진은 나름 깔끔하고 일관성이 있었다.
반면에 김승환 교육감은 본인의 자제는 외국 명문대로 유학을 보내놓고, 아이를 유학을 시킬만한 형편이 안 되는 다른 수많은 평범한 학부모들이 대체재로 선택했을 자사고 과정을 만악의 근원으로 몰아붙이는 내로남불에 가까운 모습을 결과적으로 연출했다. 아무리 닳고 닳은 직업정치인도 아무리 참신해 보이는 지식인과 비교해 실제로 먼지떨이 하듯이 털어보면 확실히 더 깨끗하다는 필자의 오랜 소신이 다시금 올바름과 정당성을 입증‧확보하는 순간이었다.
교육개혁은 그야말로 교육적으로 이뤄져야만 하고, 참다운 교육 즉 참교육의 백미는 무엇보다도 솔선수범에 있다. 문재인 정권은 도덕에 살고 윤리에 죽는 일종의 신진 사대부 정권이기도 하다. 사대부들이 어째서 도덕에 죽고, 윤리에 사느냐? 도덕에 살고 윤리에 죽는 모습이 후세들의 교육상 제일 중요하고 바람직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전두환의 길이냐, 모택동의 길이냐
그래서 긴급히 제안하는 바이다. 문재인 정부의 고관대작이나 여당과 야당의 내로라하는 국회의원들 가운데 자기 자식을 비싼 돈 들여 미국이나 영국 같은 부유한 선진국으로 조기유학을 보낸 인사들은 이참에 자식들 학력을 전부 무학으로 세탁(?)시킨 다음, 아이들이 초등학교 졸업 검정고시부터 우리나라에서 다시 치게끔 했으면 좋겠다. 남의 아이들이 멀쩡히 다니는 한국의 고등학교를 없애려면 우선 내 아이가 취득한 외국학교 졸업장부터 쓰레기통에 내버리는 게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모범일 터이다.
남을 개혁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한국현대사 최고의 악당인 전두환마저 뻔뻔스럽게 스스럼없이 “정의사회 구현!”을 외칠 수가 있었다.
그와 대조적으로, 나를 개혁하는 건 아무나 결코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모택동은 사회주의적 토지개혁의 첫발을 중소지주였던 자기 아버지를 들이받는 담대한 실천으로 내디뎠다. 그가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의 과오에도 불구하고 15억 중국 인민대중의 존경과 사랑을 여전히 받는 이유다.
남한사회의 진보 엘리트들은 세상을 급진적으로 변혁시키겠다는 원대한 목표 아래 야심차게 출사표를 던진 사람들이다. 그런 인물들이 나는 놔두고 남만 개혁하는 전두환스러운 짓거리를 자꾸 되풀이해서야 되겠는가? 이제는 우리 국민들도 모택동처럼 먼저 나를 개혁한 후에야 비로소 남을 개혁하는, 사랑받고 존경받는 위대한 국가지도자를 맞이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