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진 사태는 야당판 조국 사태
차명진 후보(이하 차명진)의 막말 파문은 두 가지 이유에서 야당의 수도권 선거 완패의 결정적 도화선으로 작용했다. 차명진은 듣기 민망한 막말을 공적인 자리에서 무절제하게 뱉어냈다. 이뿐만이 아니다. 당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상관없이 본인이 선거만 완주하면 장땡이라는 식의 무책임한 이기주의를 서슴없이 드러냈다. 보수의 가치는 품격과 헌신에 있다. 차명진은 품격을 짓밟고, 헌신을 망각했다.
더 중요하고 치명적 타격은 차명진의 막말 사태에 대처하는 미통당 지도부의 소심하고 미숙하며, 위선적이고 구태의연한 온정주의적 반응에서 비롯되었다.
화난 자영업자를 포함한 수도권 중도층 유권자들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막무가내로 계속 싸고도는 문재인 대통령을 지켜보며 현 정권에 커다란 회의와 불만의 감정을 품게 되었다. 이들은 차명진을 단호히 내치지 못하는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의 우유부단하고 무원칙한 행태에서 조국 사태의 기시감을 느꼈다. 차명진에게 솜방방이 징계를 내린 미래통합당 윤리위원회는 조국 전 장관의 장관 자격 검증 작업을 하는 둥 마는 둥했던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영락없는 판박이였다.
황교안은 심각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며 국민들의 공분을 산 자당(自黨)의 후보자 하나 제대로 깔끔하게 정리하지 못하고, 차명진에게 시종일관 쩔쩔매기만 했다. 유권자들은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지금과 같은 총체적인 국가적 비상시국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과감하고 책임감 있는, 바람직한 정치지도자의 인상을 황교안으로부터 도무지 발견할 수가 없었다.
선거는 합법적인 화풀이의 장
선거는 힘없고 가난한 평범한 인민대중이 유권자의 신분으로 갈아타고 세상에 합법적으로 화풀이를 해댈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그러므로 선거에서 이기려면 유권자들의 분노를 효과적으로 자극해야만 한다. 황교안 체제의 미래통합당은 유권자들의 분노를 일단 자극은 했다. 문제는 유권자의 화를 돋우긴 돋웠는데, 어리석게도 스스로가 국민들의 화풀이 대상이 됐다는 점이다.
지도자는 딱 두 가지 유형 가운데 하나여야만 국민들의 폭넓은 지지와 신뢰를 성공적으로 받을 수 있다. 한없이 자애로워 보이거나, 또는 한없이 잔인하게 보이거나. 차명진 하나 신속히 처리하지 못해 갈팡질팡, 오락가락, 우왕좌왕, 좌고우면을 거듭하는 황교안을 바라보며 수도권 지역에 거주하는 중도 성향의 부동층 유권자들은 “그나마 문재인이 낫다”는 심정으로 집권여당의 국회의원 입후보자들 이름 옆에 기표소에서 도장을 마지못해 찍을 수밖에 없었다.
강남과 영남은 호남과 달리 고립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영남은 고립되기에는 너무나 숫자가 많다. 강남은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를 아우르는 21세기 한국사회의 당당한 주류 집단이다. 따라서 강남과 영남이 자기네 동네가 미래통합당이 당색인 핑크빛으로 지도에서 일제히 칠해졌다고 해서 왕따가 되면 안 된다는 걱정스런 마음에 파란색으로 편을 바꿀 가능성은 거의 없다.
강남과 경상도를 지지기반으로 수복한 야당에게 승패의 관건은 화난 자영업자들을 이제 지지층으로 끌어들일 수 있느냐에 달렸다. 그러자면 미래통합당은 화난 자영업자들이 화이트칼라 못잖게 품격 있는 정치인을 선호함을 깨달아야 했다. 동시에 자신의 책임 아래 문제를 명쾌히 해결하는 결단의 리더십 없이는 선거 막판까지 결정을 망설이는 부동층의 마음을 붙잡을 수 없다는 점을 당 수뇌부가 알아야만 했다.
도로 박근혜냐, 도로 문재인이냐
공포가 만연하고 불안감이 팽배한 시대와 세태일수록 일반 대중은 카리스마적 리더의 등장을 본능적으로 갈망한다. 차명진 사태에서 황교안을 위시한 미래통합당 지도부가 노정한 모습은 매너 없는 진상손님 앞에서 “어떡해?”만 연신 읊조리며 무기력하게 발만 동동 구르는 초짜 알바생의 그것이었다.
차명진이 미래통합당에 강요한 출혈은 개표까지 완료된 이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그가 내놓은 해명성 사과의 요지는 부천에서는 더 이상 출마하지 않겠다는 게 전부였다. 소속 정당의 참패에 책임을 지고 정치권을 떠나겠다는 최소한의 기본적인 선당후사의 자세조차 차명진은 끝내 거부하는 모양새였다.
차명진이 보여준 극도의 고집불통과 경악스러울 정도의 이기심은 박근헤의 아집과 최순실의 탐욕을 국민들의 뇌리에서 소환시키기에 충분했다. 차명진은 수도권의 화난 자영업자들로 하여금 박근혜 정권의 악몽을 떠올리게 했고, 차명진 막말 파문에 미온적으로 대응하는 황교안의 태도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오만과 도선이 하늘을 찌르던 시절, 입 꾹 닫고서 청와대 눈치만 살피며 스스로의 안위와 보신에만 급급해하던 국무총리 황교안의 재림이었다.
필자는 태어나기만 충청도에서 태어났을 따름이지, 실질적인 정치사회적 정체성을 기준으로 재단하자면 전형적인 서울 사람이다. 삼남지방으로 불려온 영남과 호남과 충청의 민심의 동향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왈가왈부할 입장이 못 된다. 반면에,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여론의 흐름에 관해선 약간의 식견이 있다고 자부해왔다.
차명진의 막말은 일종의 기폭제였다. 그의 막말은 황교안을 미래통합당 대표에서 박근혜 정부의 2인자로 완전히 돌려놓는 시발점이 되었다. 그 결과 수도권 중도층 유권자들 앞에는 “도로 박근혜냐? 아니면 도로 문재인이냐?”는 아주 고약하고 거북스러운 선택지만이 남았다.
화난 자영업자로 대표되는 수도권 부동층은 도로 박근혜로 가느니 차라라 도로 문재인을 택했다. 차명진의 막말은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너무도 창대했으니, 그 종착점은 미래통합당의 수도권 출마자들을 덮쳐버린 거대한 산사태였다. 이 산사태는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압승(Landslide)을 낳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