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선제기습은 승리의 확실한 보증수표
  • 공희준 편집위원
  • 등록 2020-04-22 18:03:32

기사수정
  • 애국과 우정의 리더십 : 펠로피다스와 에파미논다스 (4)

펠로피다스의 민중파는 왕위 찬탈에 나선 수양대군 일당을 연상시키는 전격적 기습작전으로 테베의 참주파를 일거에 분쇄했다. 이미지는 조선 초의 계유정난을 배경으로 제작된 한국영화 「관상」의 한 장면펠로피다스 등의 젊은 애국자들은 성안으로 무사히 진입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춥고 우중충한 날씨가 침투에 적잖이 도움이 되었다. 테베 안에서 내응하기로 약속한 다른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통틀어 48명의 반외세-반독재 혁명가들이 이윽고 카론의 집에 모였다.

 

스파르타가 세운 꼭두각시 참주정권을 타도하려는 작전에는 테베 시의 서기로 일하는 필리다스도 가담한 터였다. 필리다스는 아르키아스를 비롯한 유수한 참주파 인사들을 연회에 대거 초대했다. 민중파는 여인들까지 참여할 예정인 흥청망청한 술자리에서 방심한 참주파의 수뇌부를 일거에 끝장낼 계획이었다.


그런데 아테네로 망명했던 민중파 인사들이 테베로 귀환했다는 소문은 벌써 시내에 파다하게 퍼진 상황이었다. 아르키아스는 민중파에게 동조적 입장을 취해온 것으로 알려진 카론에게 자초지종을 묻기 위해 카론의 집으로 자신의 시종을 급파했다.

 

시간은 이미 밤에 접어들었다. 카론의 집에서는 펠로피다스와 그의 동지들이 술에 취한 참주파들을 급습할 요량으로 중무장을 하고서 대기하는 중이었다. 그들은 필리다스가 공격 신호를 보내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아르키다스의 시종이 도착해 카론을 술자리로 소환한 건 음모가 들켰을 수도 있음을 뜻했다. 카론은 펠로피다스 일행에게 그의 어린 아들을 맡겼다. 만약 자신이 아르키다스의 추궁에 굴복해 음모의 전모를 자백하면 그 보복으로 아이의 생명을 거두라는 의미였다. 카론은 그의 단독범행으로 사태를 마무리할 심산이었다.

 

음모자들은 카론의 혈육을 인질로 잡는 짓은 오랜 후원자에 대한 배은망덕한 행위일 뿐이라며 아이를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킬 것을 카론에게 간곡히 호소했다. 카론은 아이의 운명을 펠로피다스 일행에게 고집스럽게 일임하고는 연회가 열리는 필리다스의 집을 향해 짐짓 태연한 표정으로 떠났다.

 

죽음마저 각오한 카론의 불안한 속내와는 다르게 아르키아스는 반란을 모의한 민중파의 주동자들이 카론의 집에 은신해 있다는 구체적 사실까지는 여전히 눈치 재지 못했다. 필리다스 집의 대문 앞에서 카론을 만난 아르키아스는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는 자들이 발견되면 지체 없이 당국에 신고하라는 짤막한 당부만 남기고는 연회장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는 아리따운 여인들이 연회에 곧 합류할 참이라는 얘기에 광란의 축제 다음 곧바로 이어질 환락의 밤을 기대하며 한껏 몸이 달아오른 상태였다.

 

아르키아스가 음모자들을 제압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는, 즉 펠로피다스가 요단강을 건널 수도 있었던 위기일발의 순간은 한 번 더 찾아왔다. 아르키아스와 동명이인인 아테네의 한 사제가 민중파의 반역 음모를 소상히 고변하는 문서를 서둘러 보내왔기 때문이다. 이때 아르키아스가 작게는 그의 목숨이, 크게는 테베의 권력이 걸린 문건을 손에 받아들고서 보인 허세 섞인 느긋한 반응은 나중에 두고두고 인구에 우스개처럼 회자되었다.

 

“중요한 일은 내일로!”

 

아르키아스는 중대사를 처리하는 수고를 이튿날 굳이 기울일 필요가 없었다. 그에게는 더는 내일이 없었던 탓이다.

 

마지막 고비를 무사히 넘긴 펠로피다스 일행은 즉시 행동에 나섰다. 무력에 의지한 테베의 피비린내 진동하는 권력변동은 대규모 병력의 동원이 아닌 소규모 인원의 행동만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수양대군이 김종서와 황보인 같은 중신들을 신속하게 참살하고서 정권을 찬탈한 조선왕조 초기의 계유정난을 연상시킨다. 그렇지만 왕족끼리의 골육상쟁 성격을 띤 계유정난과는 달리, 테베의 정변이 체제변혁으로 연결됐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펠로피다스 일행이 감행한 전광석화와 같은 기습작전의 결과물은 본질적으로 혁명에 가가웠다.

 

음모자들은 두 무리로 나뉘었다. 주인공인 펠로피다스는 카론의 저택 근처에 살고 있는 레온티다스와 휘파테스를 처치하는 과업을 담당했다. 참주파의 수괴인 아르키아스를 제거할 책임은 여장한 다른 동지들이 떠안았다.

 

연회의 참석자들은 여자옷을 입고 불쑥 나타난 사람들이 진짜 여자인지 아닌지를 구분하지 못할 지경으로 만취해 있었다. 제 한 몸 건사하기조차 버거웠던 참주파들은 맑은 정신에 더해 제대로 무장까지 갖춘 민중파에게 변변한 저항도 못한 채 차례차례 목이 달아났다.

 

펠로피다스의 희생자들은 형편이 조금은 나았다. 요란한 발걸음 소리와 문 두드리는 소음에 잠을 깼기 때문이다. 레온티다스는 단검을 빼들고 음모자들과 용감히 맞섰다. 그는 첫 번째 상대인 케피소도로스를 쓰러뜨리는 데는 성공했다. 불운한 케피소도로스는 레온티다스가 그렇게 단단히 채비하고서 음모자들을 맞이하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으니 기습한 쪽이 되레 기습당한 형국이었다. 허나 레온티다스의 운발은 딱 거기까지였다. 혼자서 단검 하나로 여러 명을 상대하기란 애당초 역부족이었다.

 

레온티다스를 주살한 펠로피다스는 휘파테스의 집으로 재빨리 발길을 돌렸다. 휘파테스는 진즉에 항거를 포기하고 집 밖으로 허겁지겁 달아났다. 그렇지만 얼마 가지 못해 펠로피다스에게 뒷덜미를 잡힌 휘파테스는 레온티다스처럼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관련기사
TAG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서초구
국민신문고
HOT ISSUE더보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양천구, 내달 3일 정시합격 설명회 개최…일대일 상담도 지원 양천구(구청장 이기재)는 다음달 3일 오후 7시 양천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대입 수험생과 학부모 등 구민 600여 명을 대상으로 `2025 대입 정시 합격 전략설명회`를 개최하고, 10일에는 개인별 맞춤형 전략을 제공하는 `일대일 집중 상담`을 지원한다고 밝혔다.이번 설명회와 개인별 상담은 14일 치러진 수능 가채점 결과와 대학 모집군별 예상 합..
  2. 10월 전국 주택가격, 상승세 둔화… 서울·수도권은 상승 지속 10월 전국 주택 매매가격 상승폭이 전월 대비 둔화된 가운데, 서울과 수도권은 상승세를 이어갔다.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2024년 10월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에 따르면, 매매가격지수는 전국적으로 0.07% 상승했으며, 수도권(0.22%)과 서울(0.33%)이 상승세를 보였다. 하지만 지방(-0.06%)은 하락세를 지속하며 대조적인 양상을 나타냈다.서울에서는 .
  3. LG유플러스, 네트워크 우수 협력사와 동반성장한다 LG유플러스는 고객 체감품질과 네트워크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함께 노력한 협력사를 초청해 `2024 네트워크 우수 협력사 시상식`을 개최했다.LG유플러스는 네트워크 서비스 품질 개선을 위해 노력한 협력사의 성과를 공유하고, 동반성장으로 나아가기 위한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매년 시상식을 개최하고 있다.이번 행사는 14일 오후 서울 마곡 L...
  4. 윤 대통령 지지율, 긍정 20%·부정 71%…국민의힘 27% 최저치 윤석열 대통령 직무 수행 긍정률이 20%에 머무르며 부정률 71%를 기록, 대부분 계층에서 부정 평가가 높게 나타났다.한국갤럽이 11월 둘째 주(12~14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 수행 긍정 평가는 20%, 부정 평가는 71%로 집계됐다. 긍정 평가 이유로는 외교(28%)가 가장 많이 꼽혔으며, 부정 평.
  5. 삼성전자 노사, 2023·2024년 임금협약 잠정 합의…전 직원에 200만 포인트 지급 삼성전자와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하 전삼노)은 14일 2023년·2024년 임금협약의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삼성전자와 전삼노는 2024년 1월 16일부터 약 10개월간 진행된 교섭 끝에 2023년과 2024년 임금협약에 대한 잠정 합의안을 마련했다. 이번 합의안에는 조합원이 조합 총회(교육)에 참여하는 시간을 유급으로 보장하고, 전 직원에게 자사 ...
  6. `대한민국 청년수도 관악` 서울시 자치구 최초 청년친화도시 도전 관악구(구청장 박준희)가 청년친화도시로 선정받기 위한 서울시의 첫 관문을 통과하고 대한민국 최초 청년친화도시 지정에 도전하고 있다.청년친화도시란 `청년이 살기 좋은 환경과 성장 동력을 갖춘 지방자치단체`로, 전국 광역자치단체에서 2개 기초자치단체를 국무조정실에 추천하면 평가를 거쳐 최종 3개의 지자체를 선정하게 된다.앞.
  7. 마포구, 횡단보도 턱은 낮추고 구민 만족도는 높이고 마포구(구청장 박강수)의 횡단보도 134곳이 보행 친화적으로 개선돼 주민의 호평을 받고 있다.2024년 5월 마포구는 휠체어와 유모차 등 보행보조기뿐만 아니라 일반 주민도 안전하게 보행할 수 있도록 마포구 전 지역의 횡단보도 410곳을 전수조사하고 턱 낮춤이 시급한 구간 134곳을 선별했다.선별한 구간을 대상으로 6월부터 본격적인 개선 공...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