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피다스와 에파미논다스가 일궈낸 놀라운 성공과 빛나는 업적은 동포인 그리스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의 마음을 불러일으켰다. 단, 두 도시만은 예외였다. 전자는 당연히 적국인 스파르타였다. 후자는 모국인 테베였다. 테베인들은 두 영웅이 법률에 규정된 기한 안에 관직을 내놓지 않았다는 사유를 들어 펠로피다스와 에파미논다스를 재판에 회부했다.
플루타르코스는 그가 서술한 「영웅전」에서 펠로피다스와 에파미논다스가 법정에 선 일을 나날이 강대해지는 양자의 권력과 영향력을 견제하려는 일부 테베 시민들의 심술과 질투심의 소산으로 치부했다. 필자는 고대 희랍 세계의 패권국가로 부상한 테베의 엘리트 계층이 조선왕조의 선조임금 유형의 비루한 소인배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순신을 시샘해 그를 죽이려 작정할 만큼 용렬했던 선조와 다르게, 테베인들은 법치의 근간이 훼손되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심지어 구국의 영웅들에게조차 국법의 추상같은 지엄함을 보여주려고 꾀했을 가능성이 크다.
재판의 목적과 주안점 자체가 법질서의 상징적 확립에 있었던지라 두 사람 모두 최종적으로는 무죄판결을 받았다. 사고무친의 모태 솔로였던 에파미논다스는 그를 고발한 사람들을 국민통합이 우선이라는 식으로 관대하게 묵과하고 넘어갔다. 반대로 펠로피다스는 뒤끝이 작렬했다. 본인의 소중한 평판은 물론이고 애꿎은 가문의 명성까지 부당하게 실추됐다고 판단한 탓이었다. 그는 고발자 가운데 메네클레이다스를 콕 집어 응징에 착수했다. “한 놈만 팬다”는 원칙을 펠로피다스는 나라 사이의 전투현장에서뿐만이 아니라, 사적인 분쟁에서도 일관되게 밀어붙였던 모양이다.
메네클레이다스는 테베의 친(親)스파르타 참주정을 무너뜨리는 거사에 가담한 인물인 터였다. 그는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고 펠로피다스와 에파미논다스를 음해하는 데 전력해왔다. 메네클레이다스는 두 사람 중 자신의 관점에서 비교적 만만해 보이는 펠로피다스를 주로 흠집내왔는데, 펠로피다스는 다름 아닌 메네클레이다스야말로 테베의 국법을 유린한 주범이라고 지목하며 되치기를 시도했다. 메네클레이다스가 전쟁에서 승리한 공로를 참전용사들 전부에게 돌려온 테베의 전통을 어기고, 카론 한 사람만이 마치 주도적으로 승리를 쟁취한 것인 양 묘사된 그림의 제작을 키지코스 출신의 화가인 안드로키데스에게 의뢰했다는 게 고소의 이유였다.
그림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키론마저 펠로피다스의 편을 듦으로써 메네클레이다스는 법정에서 거액의 벌금을 선고받고 말았다. 똑같이 한 놈만 때리는 종목에서는 펠로피다스를 감히 대적할 자가 없었던 셈이다.
테베의 두 영웅에게는 오랜 휴식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에파미논다스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소요를 가라앉히려 다시금 출동해야 했고, 펠로피다스는 테살리아 사람들의 요청을 받고서 페라이의 폭군 알렉산드로스를 토벌하는 데 나서야만 했다. 알렉산드로스의 군대가 테살리아의 주요 도시들을 침략해온 탓이었다.
알렉산드로스는 무력에서도, 지략에서도 펠로피다스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그는 이내 머리를 푹 숙이고 기어들어와 관용과 자비를 구했다. 알렉산드로스는 난폭한 데다가 신의마저 결여된 저열한 자였다. 그는 펠로피다스의 용서를 받자마자 테살리아 지역을 또 집적대기 시작했고, 격분한 펠로피다스는 알렉산드로스를 이번에는 가차 없이 혼쭐냈다. 알렉산드로스는 살아남은 소수의 호위병들만 대동하고서 눈썹이 휘날리도록 황급히 꽁무니를 뺐다.
패권국의 중요한 임무는 국가들 사이의 분쟁을 종식시키고 역내에 안정과 평온을 가져오는 역할이다. 펠로피다스는 마케도니아 왕국으로 가서 한창 내전 중이던 프톨레마이오스와 일전에 도망친 악당 알렉산드로스와는 동명이인인 알렉산드로스 왕을 화해에 이르도록 종용하였다. 그는 평화를 보장하는 증표로 30명가량의 마케도니아 명문가 자제들을 테베에 인질로 데려왔는데, 그들 중의 한 명이 왕의 아우인 필립포스였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생부가 될 바로 그 필립포스다.
테베에서 볼모 신분으로 지낼 당시의 필립포스는 조나라에서 사실상의 인질로 살던 무렵의 진나라 시황제 영정처럼 아직은 나이 어린 아이었다. 테베에 인질 자격으로 입국한 필립포스 왕자는 팜메네스와 함께 생활하며 테베의 발달된 정치체제와 군사제도를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했다. 소년 필립포스가 다른 새의 둥지에서 알을 깨고 나온 뻐꾸기 새끼처럼 탐욕스럽게 섭취해 소화시킨 이국의 선진적 문물은 나중에 테베에게 무시무시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에파미논다스의 의도하지 않은 탁란(托卵)은 마케도니아를 세 개의 대륙에 걸쳐 광대한 영토를 정복한 대제국으로 성장시키는 출발점이 되었다.
어린 필립포스는 에파미논다스의 열렬한 추종자이기도 했다. 플루타르코스는 필립포스가 에파미논다스의 정신적 고결함은 등한시한 채 오로지 싸움의 기술만을 편향되게 학습해갔다는 혹독한 인물평을 남겼다. 그러나 필립포스가 그토록 무도하고 편벽한 인격의 사내였다면 미래에 그리스 세계의 지배자로 떠오르기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했을 게다. 필리포스에 관한 플루타르코스의 혹평은 그가 테베와 더불어 아테네를 일격에 무너뜨린 과거의 역사적 사건에 대한 소심한 복수로 해석하는 게 아무래도 타당할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