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이의 알렉산드로스가 다시금 준동하기 시작하자 펠로피다스는 이스메니아스 한 사람만을 수행원으로 데리고 테살리아 지방으로 떠났다. 테베의 인적 자원만으로는 스파르타와 페라이를 동시에 상대하는 양면전쟁을 치를 여력이 없었던 탓으로 그는 전투에 필요한 병력을 테살리아 현지에서 충원해야만 했다.
북방에서 테베의 골치를 썩인 말썽꾼은 알렉산드로스 하나만이 아니었다. 마케도니아 왕국의 프톨레마이오스가 국왕을 시해하고 왕위를 찬탈한 것이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알렉산드로스와는 달리 아직 국내를 확고하게 휘어잡지 못했다. 싸움 대신에 화친을 선택하기로 결정한 그는 일단 섭정 자리로 물러난 다음 자신의 아들인 필록세노스를 비롯한 50명의 마케도니아 사람들을 펠로피다스에게 인질로 내주었다. 펠로피다스는 볼모 전원을 테베로 보냈다.
펠로피다스가 테살리아에서 급히 긁어모은 군사들은 돈으로 고용한 용병들이었다. 월급쟁이 용병들에게 충성심이 있을 리 만무했다. 펠로피다스는 용병들의 도주와 반란을 미리 예방하려는 의도에서 그들의 가족과 재산이 있는 파로살로스를 접수하기로 마음먹었다. 펠로피다스는 인질을 이용하는 막후흥정에 어느새 익숙해진 터였다.
문제는 말썽꾸러기 알렉산드로스 또한 파르살로스를 노렸다는 점이었다. 펠로피다스는 예전에 알렉산드로스를 호통을 쳐서 쫓아낸 적이 있었다. 그는 당시의 기억과 경험을 되살려 이스메니아스와 나란히 알렉산드로스의 진영으로 향했다. 그렇지만 알렉산드로스는 그때의 만만했던 겁쟁이가 더는 아니었다. 펠로피다스가 경호원 없이 도착한 사실을 알게 된 알렉산드로스는 즉시 두 테베인을 포박해 페라이로 압송해갔다. 펠로피다스의 지나친 자신감에서 비롯된 순간적 방심이 부른 화였다.
독립의 영웅이자 구국의 간성인 펠로피다스가 봉변을 당했다는 소식은 이내 본국에 알려졌고 테베는 그를 구원할 군대를 편성하는 데 지체 없이 착수했다. 펠로피다스의 절친인 에파미논다스에는 어찌된 영문인지 구원대에서 배제되었다.
페라이의 감옥에 수감된 펠로피다스에게는 면회가 자유롭게 허락되었다. 알렉산드로스가 우리에 갇힌 호랑이는 더 이상은 무서운 적수가 아니라고 판단하고서 통 크게 선심을 썼기 때문이다. 허나 우리에 갇힌 호랑이도 호랑이는 호랑이였다. 펠로피다스는 그를 면회하는 페라이 시민들을 되레 위로하며 알렉산드로스의 독재정치가 머잖아 끝장을 맞을 것이라고 자신만만하게 예언했고, 죄수를 감시하는 옥리들로부터 이런 소식을 전해 듣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참주는 극소수의 인원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펠로피다스 접견을 금지시켰다.
알렉산드로스의 아내 테베는 펠로피다스의 오랜 벗이었던 이아손의 딸이었다. 삼촌과 다름없는 존재인 펠로피다스가 사슬에 묶인 비참한 몰골을 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자마자 왕비의 두 볼을 타고서 닭똥 같은 굵은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역시나 위로의 주체는 펠로피다스였다. 그는 지금은 고인이 된 옛 동료의 여식이 악독한 폭군에게 정신적으로 감금돼 있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한 이불을 덮고 자는 남편과는 불가능했던 진정한 소통과 공감의 위안을 아버지의 친구로부터 얻은 왕비는 흉금 없이 속내를 펠로피다스에게 털어놓았다. 그중에는 그녀의 남동생이 남편과 동성애를 즐기고 있다는 믿기 어려운 사실도 끼어 있었다.
한편 테살리아로 출동한 테베군은 펠로피다스를 구출하는 데 실패하고 별다른 소득 없이 본토로 귀환했다. 에파미논다스 구출은 표면적 명분이었고, 이참에 테살리아를 테베의 세력판도 안에 완전히 편입시키자는 게 출병의 진짜 목적이었다. 테베 정부는 패장과 다름없는 장군들에게 각각 1만 드라크메의 무거운 벌금을 매기고는 마지막 희망인 에파미논다스를 구원투수로 등판시켰다.
에파미논다스가 대병을 이끌고 출현하자 전세가 확 일변했다. 알렉산드로스의 부하들은 공포에 떨었고, 페라이의 주민들은 대놓고 역심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에파미논다스는 상승장군이라는 평소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신중한 자세를 유지했다. 알렉산드로스가 자포자기의 극단적 심정에서 감옥에 갇힌 펠로피다스를 해칠지도 모르는 이유에서었다. 에파미논다스는 위협적인 무력시위를 계속 이어가면서 알렉산드로스가 제 풀에 꺾이기를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에파미논다스조차 공격에 나서길 망설일 만큼 알렉산드로스는 잔인무도함으로 악명 높은 연쇄살인마였다. 사람 죽이는 일을 재미로 즐기는 수준이 상나라(은나라) 마지막 임금인 주왕에 필적할 지경이었다. 인간을 산 채로 생매장해 살해하는 건 예사였다. 사람들에게 동물의 가죽을 강제로 입힌 후 사냥개로 하여금 물어죽이기도 했으며, 적국도 아닌 동맹국인 멜리보이아와 스코투사에서는 민회에 참석중인 시민들을 습격해 대량으로 학살하기도 했다.
그는 삼촌인 플리프론을 죽인 창을 꽃으로 화려하게 장식해 신들에게 봉헌하는 악행마저 마침내 서슴지 않았다. 주왕이 충신인 비간을 끔찍하게 처형한 후에 그의 심장을 꺼내 관찰한 만행에 못잖은 사이코패스 셀프 인증이었던 셈이다. 알렉산드로스의 엽기성과 가증스러움은 그가 극작가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인 「테베의 탄원하는 여인들」이라는 제목의 연극을 관람하다가 악어의 눈물을 흘린 데에서 절정에 달했다. 하필이면 이 연극은 테베를 무대로 펼쳐지는 처절한 골육상쟁을 주된 내용으로 다루는 당대의 걸작 비극이었다.
약자에게 강한 자일수록 강자에게는 비굴할 정도로 약한 법이다. 알렉산드로스는 이와 같은 비루한 양아치 근성의 전형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그는 진정한 강자인 에파미논다스에게 사절을 파견해 비굴하게 꼬리를 내리고는 화해를 요청했다. 에파미논다스는 펠로피다스와 이스메니아스의 신병을 안전하게 인도받자 30일간의 시한부 휴전에 동의하고는 군대의 말머리를 돌렸다. 그러나 에파미논다스는 조국인 테베가 외국의 잔인한 독재자와 불명예스럽게 타협했다는 오명을 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알렉산드로스와 그 어떤 공식적 종전협정과 평화조약도 체결하기를 단호히 거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