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영웅이 꼰대가 될 때 비극은 시작된다
  • 공희준 편집위원
  • 등록 2020-05-31 17:36:53

기사수정
  • 애국과 우정의 리더십 : 펠로피다스와 에파미논다스 (11)

꼰대력의 극강을 시전한 바 있는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의 페이스북 글을 갈무리한 이미지. 홍준표 전 대표는 테베의 영웅인 펠로피다스와는 달리 영웅의 단계를 거치지 못하고 꼰대로 직행하는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각축전은 해외무대에서도 치열하게 펼쳐졌다.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페르시아에 사절단을 보내자 테베 정부는 펠로피다스를 아케메네스 왕조의 수도인 수사로 급히 파견했다.

 

페르시아는 테르모필레 계곡을 막아선 레오니다스 왕 휘하의 300명 결사대의 일당백의 분투가 생생하게 증명하듯이, 스파르타로 말미암아 늘 골머리를 앓아온 터였다. 페르시아 제국의 수십만 대군을 쩔쩔매게 만들었던 극강의 스파르타 군대를 레욱트라 전투에서 일격에 박살낸 펠로피다스의 명성을 페르시아 사람들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가 페르시아 영내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제국의 고관대작들이 이 유명한 테베의 장군을 한번 만나보려고 도처에서 장사진을 이뤘다.

 

페르시아의 국왕 아르타크세르크세스는 펠로피다스가 궁전에 도착했다는 소식에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동시대를 대표하는 핫(Hot)한 인물인 펠로피다스가 염치 무릅쓰고서 아쉬운 소리를 하려고 직접 찾아온 점은 페르시아의 국력이 여전히 강성하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펠로피다스는 당당하면서도 예의바른 태도로 대왕과의 접견 자리에 임했다. 테베의 제안은 아테네와 스파르타 측의 그것과 비교해 내용에서는 탄탄했고, 형식에서는 명쾌했다. 펠로피다스를 실제로 대면해본 아르타크세르크세스는 명불허전이라는 찬탄 섞인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테베가 페르시아에게 내건 조건은 정확히 세 개였다.


① 그리스의 독립 보장

② 메세네 주민들의 거주권 인정

③ 테베와의 지속적인 우호관계 증진

 

살라미스 해전에서 단단히 쓴맛을 본 이후로 페르시아는 희랍 전역을 무력으로 정복하려는 야욕을 완전히 포기했다. 더욱이 테베는 과거에 페르시아가 그리스를 침략했을 적에 지원군을 파병해줬을 정도로 테베와는 전통적으로 사이가 좋았다. 따라서 ①번과 ③번은 하나마나한 덕담일 뿐이었고, 관건은 ②번이었다. 메세네에 대한 테베의 실효적 영유권을 인정해달라는 의미였다.

 

메세네는 테베가 스파르타의 군사적 동향을 감시‧제어하는 요새 용도로 요긴하게 활용하는 도시였다. 테베는 메세네에 대한 자국의 기득권을 페르시아가 존중해주는 대가로 제국의 숙적인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견제하는 역할을 지금처럼 계속 충실히 유지해가겠다는 원교근공의 외교원칙을 스파르타에 통보했고, “적의 적은 친구”라는 국제관계의 불변의 대명제에 의거해 페르시아 입장에서는 테베 측이 내민, 결코 나쁘지 않은 거래조건을 굳이 마다할 까닭이 없었다. 전쟁터에서의 펠로피다스는 누구보다 용맹했지만, 외교현장에서의 펠로피다스는 그 누구보다도 교활했다. 펠로피다스의 용기와 노회함은 자신의 출세와 성공을 위한 게 아니었다, 조국인 테베의 국익을 위한 것이었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는 귀국길에 오르는 펠로피다스에게 듬뿍 선물을 안기며 페르시아와 테베 양국 간의 영원한 우의와 친선을 기원했다. 펠로피다스는 대왕의 풍성한 하사품 가운데 나라에 도움이 될 만한 일부 물산만 받고서 나머지 전부는 정중히 사양했다. 모난 놈 옆에 있다가 정 맞는다고, 펠로피다스의 청렴함과 강직함은 엉뚱한 부수적 희생자들을 낳았다. 아테네에서 온 사절인 티마고라스가 페르시아로부터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사형에 처해진 것이다.

 

티마고라스가 아테네의 법정에서 극형을 선고받은 진정한 이유는 과도하고 참람하게 외세의 뇌물을 챙겼기 때문이 아니었다. 테베와의 외교전에서 참패한 데 따른 가차 없는 문책 성격이 강했다. 다른 폴리스들의 외교사절들도 본국으로 귀환한 다음 비록 처형만은 면했을지언정 이런저런 구설수와 책임추궁에 휘말려 곤욕을 치렀다. 원인은 역시나 테베와의 외교전에서 완패한 데 있었다.

 

테베는 문무를 겸비한 펠로피다스의 국내외를 종횡무진으로 누비는 맹활약 덕택에 세계 최강 페르시아와의 확고한 동맹관계를 재확인하고, 숙명의 경쟁자들인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놨다. 그럼에도 한 가지 숙제만은 아직도 영구미제로 남아 있었다. 주기적으로 북방의 정세를 귀찮게 어지럽히는 페라이의 참주 알렉산드로스의 존재였다.

 

알렉산드로스는 촉나라의 제갈공명에게 칠종칠금의 신화를 선물해줬을 만큼 단순하고 우직했던 삼국지의 맹획과 달리 기름장어처럼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데에는 도가 튼 인간이었다. 그는 기회 포착에도 일가견을 갖춘지라 테베가 다른 현안들에 정신이 팔린 틈을 골라 테살리아의 도시들을 번번이 손에 넣었다. 테살리아인들은 펠로피다스에게 다시금 구조신호를 타전했고, 테베의 충신 겸 맹장은 이참에 알렉산드로스를 제대로 요절을 내주겠다는 결심을 단단히 굳히고서 병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펠로피다스가 알렉산드로스 부부의 불화를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은 그의 자신감을 한층 더 북돋웠다.

 

고대의 역사 서술은 자연현상에 기대어 사회적 사건들을 은유적으로 설명하곤 한다. 플루타르코스는 펠로피다스가 알렉산드로스 토벌 작전에 착수할 즈음 갑자기 일식이 닥치는 불길한 징조가 나타났다고 한다. 펠로피다스도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는지 애초 계획한 7천 명의 대규모 원정대 대신에 3백 명에 지나지 않는 적은 숫자의 병사만 데리고 출전을 감행했다. 문제는 이 3백 명이 테베의 자랑인 최정예 신성대가 아니라 여기저시서 돈 주고 긁어모은 외국인들로 편성된 근본 없는 용병 기병대였다는 것이다.

 

이는 테베인들이 이즈음 오랜 전쟁에 염증을 느꼈다는 증거였다. 특히 젊은 청년들 사이에 염전사상이 만연했다. 그들은 조국의 영광을 주야장천으로 외치는 펠로피다스를 더 이상은 인기 없는 지루하고 케케묵은 꼰대 아저씨로 여기기 시작했을 가능성이 높다.

 

펠로피다스는 청년들과의 진솔한 소통과 대화에 나서지 않았다. 그가 여태껏 성공해온 방식인 전쟁으로 직진하는 길을 선택했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당대 최고의 영웅에게마저 쉽지 않은 일이었던 셈이다. 그는 북방의 오랑캐인 알렉산드로스를 산 채로든, 또는 죽은 상태로든 잡아오면 개인주의에 점점 깊이 탐닉해가는 테베의 청년들이 공동체의 필요성과 국가의 소중함에 이제라도 눈을 뜨게 될 것이라고 계산했던 듯하다. 이것이 비극의 단초였다.


관련기사
TAG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서초구
국민신문고
HOT ISSUE더보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이재명 "지역화폐로 골목경제 살려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1일 수원 영동시장에서 열린 전통시장·소상공인 간담회에서 지역사랑상품권 국고 지원 재개를 촉구하며 골목경제 활성화와 소상공인 지원 대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이재명 대표는 간담회 모두발언에서 현 정부의 지역화폐 예산 삭감을 비판하며 "지역화폐를 통해 돈이 지역에서 순환하고 골목경제...
  2. 한국도로교통공단 경기도지부, `교통사고 줄이기 한마음대회` 개최 한국도로교통공단 경기도지부(본부장 권기환)는 교통안전 의식 제고와 선진교통문화 정착을 위한 `2024 교통사고 줄이기 한마음대회`를 21일 경기섬유종합지원센터 대강당에서 개최했다.경기남·북부경찰청이 주관하고, 경기도와 경기도교육청이 후원한 이번 행사에는 김호승 경기북부경찰청장, 이상로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등 ..
  3. 안산시 로컬푸드 직매장, 24일까지 김장철 할인 행사 연다 안산시(시장 이민근)는 오는 24일까지 `안산시 로컬푸드 직매장` 위탁 운영 1주년과 김장철을 맞이해 할인 행사를 개최한다고 21일 밝혔다.오는 24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행사는 관내에서 직접 기른 ▲배추 ▲채소 ▲과일류 등에 대한 20% 할인이 진행된다.아울러, 액젓, 고춧가루 등의 김장 재료와 쌀·정육·수산·건어물 등의 상품...
  4. 관악구, 민관협치로 대학동 녹두거리 상권과 지역공동체 활성화 디딤돌 놓다 관악구(구청장 박준희)가 지난 18일 협치과제 `주민up 녹두거리up 네트워크 구성 운영` 사업을 마무리하고 지역 주민과 함께 성과공유회를 개최했다.협치과제 `주민up 녹두거리up 네트워크 구성 운영`은 지난해 4월 `협치 주민공론장`에서 제안되고 숙의 과정을 거쳐 발굴된 2024년 4개 협치과제 중 하나로, 사법고시 폐지와 코로나 팬데믹 이후 ..
  5. "재정준칙 법제화, 복지국가 가는 길"...與 긴급 정책간담회 국민의힘이 21일 재정준칙 법제화를 위한 긴급 정책간담회를 열고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재정건전성 확보가 복지국가로 가는 필수 조건이라는 점을 역설했다.한동훈 대표는 이날 간담회에서 "재정준칙은 돈을 아끼거나 인색하게 쓰겠다는 취지가 전혀 아니다"라며 "오히려 복지국가로 가기 위해 돈을 누수 없이 잘 쓰기 ...
  6. 환경교육도시 시흥 `ESG를 말하다` 28일 강의 개최 환경교육도시 시흥시(시장 임병택)는 오는 11월 28일 시흥에코센터에서 `환경교육도시 시흥, ESG를 말하다` 강의를 개최한다.시는 환경부로부터 `환경교육도시`로 지정돼 2024년부터 2026년까지 3년간, 환경교육 전문 인력 양성, 지역환경 학교 교육과정 편성, 시흥스마트허브 맞춤형 환경교육 프로그램 운영 등 5대 특화사업을 중심으로 실효성 .
  7. ‘대학교육체계 우수’ 기관평가인증 김포대, 수시 학생부·실기로만 선발 김포대학교가 2025학년도 신입생 수시2차모집에서 전체 모집인원의 22.2%인 183명(정원내)을 선발한다고 21일 밝혔다.김포대는 2025학년도에 자유전공학과를 비롯해 실용음악과 등 K-Culture계열 8개학과, 사회복지과 등 교육·복지계열 4개학과, 철도경영과 등 경영계열 3개학과, 경찰행정과 등 경찰·경호계열 2개학과, 게임콘텐츠과 등 콘...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