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돈으로 산 황금만능의 리더십 : 크라수스 (1)
  • 공희준 편집위원
  • 등록 2020-06-04 16:35:09

기사수정
  • 금권정치의 원조는 이렇게 태어났다

고대 로마의 대중민주주의와 현대 한국의 선거민주주의는 부패하고 탐욕스러우며 약삭빠른 금권정치인들에게 정치권력을 이용해 엄청난 노다지를 거둘 기회를 안겨줬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사진은 부패한 황금만능 세태를 풍자하며 2019년에 개봉된 한국영화인 「돈」의 홍보 포스터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Marcus Licinius Crassus)는 서력으로 기원전 115년경에 태어나 역시나 기원전인 53년에 죽었으니 그는 로마가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이행할 무렵의 시대를 살았던 셈이다. 이때는 로마의 국경을 전면적으로 침범할 만한 외부의 위협적 강적은 카르타고를 끝으로 벌써 다 소멸한 상태였다. 외적이 사라지면 그 대타로 내부에서 적을 찾아야만 하는 법이다. 크라수스가 활동했던 시기의 로마는 안에서 자기들끼리 서로 잔혹하게 죽고 죽이는 반란과 내전의 소용돌이 속으로 차츰차츰 빨려들어가게 된다.

 

크라수스의 아버지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는 감찰관직을 지내고 개선행진까지 벌였던 인물로 로마인의 미덕인 검소함과 질박함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었다. 청렴한 푸블리우스는 아들들에게 별다른 재산을 물러주지 못했고, 이로 말미암아 그의 자식들은 장가를 간 후에도 선친의 거의 유일한 유산일 작은 집에서 처자식들을 데리고 함께 살아야만 했다.

 

3형제 가운데 막내인 크라수스는 이러한 궁핍한 생활에 겉으로는 큰 불만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두 형들 중에서 한 명이 죽자 로마의 전통적 관습에 따라 남편을 잃은 형수와 결혼해 슬하에 자식까지 두며 단란한 가정을 이뤘다. 그러다가 마침내 대형사건이 터졌다. 크라수스가 베스타 여신을 모시는 신전의 여자 사제와 통정했던 것이다.

 

로마사회에서 여성 성직자는 남성과의 육체적 접촉이 당연히 불허되었고, 여사제와 부도덕한 금지된 장난을 저지른 사내는 당연히 중벌을 면하지 못했다. 플루타르코스는 착하고 성실했던 청년 크라수스가 왜 이러한 파렴치한 범죄에 연루되었는지 그 이유를 소상하게 설명하지 않고 있다. 필자는 크라수스가 가정에서의 모습과 집밖에서의 면모가 완전히 다른 두 얼굴의 사나이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조심스럽게 추측하고 있다. 이를테면 밖에서 거친 주먹질을 일삼는 건달들이 집에만 돌아오면 온화한 가장으로 급변하곤 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엄청난 반전이 숨어 있었다. 크라수스는 사랑하는 가족의 행복을 위해 여사제와의 염문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크라수스와 부적절한 불륜관계를 맺은 신녀의 이름은 리키니아였는데, 그녀는 로마 교외에 넓고 쾌적한 고급 저택을 소유하고 있었다. 크라수스는 이 저택을 탐내고 의도적으로 리키니아에게 연애를 걸었던 터였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신녀와의 몰래 데이트가 들통 났다는 점이었다.

 

여기서 또다시 운명의 반전이 일어난다. 크라수스가 사랑이 아닌 돈을 목적으로 리키니아에 접근했다는 사실이 되레 정상참작의 사유로 작용하면서 그가 무죄판결을 받았던 것이다. 결과보다는 동기를 중시하는 로마의 독특한 법체계가 그를 살렸다고 하겠다. 이런 요란하고 수치스러운 소동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크라수스는 리키니아와의 내연관계를 당장에는 정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목표했던 부동산을 마침내 손에 넣고 난 다음에야 신녀와의 위험천만하고 아슬아슬한 정분을 끝냈다. 돈만 된다면 무슨 짓이든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인간이 바로 크라수스였다.

 

그와 같은 무지막지하고 후안무치한 탐욕 덕분에 크라수스는 미국의 유명한 경제잡지인 포브스에 의해 5천년이 넘는 인류사를 통틀어 역대 8번째 부자로 선정될 수가 있었다. 그의 재산은 2016년 기준으로 계산하면 1,698억 달러에 이르렀던 것으로 평가된다. 작년인 2019년에 대한민국 최고의 부자로 발표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재산은 크라수스가 보유했던 전체 자산의 10분의1 크기에 불과한 총액 168억 달러로 집계되었다. 현재의 우리나라 원화 가치로 환산하면 20조 원에 약간(?) 모자란 수준이다.

 

크라수스는 무늬만 금수저일 뿐이었다. 물려받은 재산이 없다시피 한, 내용상으로는 흙수저였다. 그렇다면 크라수스는 도대체 어떤 방법을 썼기에 당내의 로마인들은 물론이고 후대의 전 세계인들까지 놀라움과 부러움으로 입을 쩍 벌리게 만드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부를 일궈낸 것일까? 그 비밀은 잇따른 전쟁과 끊이지 않는 국가적 재난에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큰 부자는 난세를 틈타서 출현하기 마련이다. 나라가 혼란에 휩싸일 적마다 크라수스는 보통의 인민대중은 상상하기조차 힘든 천문학적 액수의 소득을 벌어들였다.


관련기사
TAG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서초구
국민신문고
HOT ISSUE더보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이재명 "지역화폐로 골목경제 살려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1일 수원 영동시장에서 열린 전통시장·소상공인 간담회에서 지역사랑상품권 국고 지원 재개를 촉구하며 골목경제 활성화와 소상공인 지원 대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이재명 대표는 간담회 모두발언에서 현 정부의 지역화폐 예산 삭감을 비판하며 "지역화폐를 통해 돈이 지역에서 순환하고 골목경제...
  2. 한국도로교통공단 경기도지부, `교통사고 줄이기 한마음대회` 개최 한국도로교통공단 경기도지부(본부장 권기환)는 교통안전 의식 제고와 선진교통문화 정착을 위한 `2024 교통사고 줄이기 한마음대회`를 21일 경기섬유종합지원센터 대강당에서 개최했다.경기남·북부경찰청이 주관하고, 경기도와 경기도교육청이 후원한 이번 행사에는 김호승 경기북부경찰청장, 이상로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등 ..
  3. 안산시 로컬푸드 직매장, 24일까지 김장철 할인 행사 연다 안산시(시장 이민근)는 오는 24일까지 `안산시 로컬푸드 직매장` 위탁 운영 1주년과 김장철을 맞이해 할인 행사를 개최한다고 21일 밝혔다.오는 24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행사는 관내에서 직접 기른 ▲배추 ▲채소 ▲과일류 등에 대한 20% 할인이 진행된다.아울러, 액젓, 고춧가루 등의 김장 재료와 쌀·정육·수산·건어물 등의 상품...
  4. 관악구, 민관협치로 대학동 녹두거리 상권과 지역공동체 활성화 디딤돌 놓다 관악구(구청장 박준희)가 지난 18일 협치과제 `주민up 녹두거리up 네트워크 구성 운영` 사업을 마무리하고 지역 주민과 함께 성과공유회를 개최했다.협치과제 `주민up 녹두거리up 네트워크 구성 운영`은 지난해 4월 `협치 주민공론장`에서 제안되고 숙의 과정을 거쳐 발굴된 2024년 4개 협치과제 중 하나로, 사법고시 폐지와 코로나 팬데믹 이후 ..
  5. "재정준칙 법제화, 복지국가 가는 길"...與 긴급 정책간담회 국민의힘이 21일 재정준칙 법제화를 위한 긴급 정책간담회를 열고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재정건전성 확보가 복지국가로 가는 필수 조건이라는 점을 역설했다.한동훈 대표는 이날 간담회에서 "재정준칙은 돈을 아끼거나 인색하게 쓰겠다는 취지가 전혀 아니다"라며 "오히려 복지국가로 가기 위해 돈을 누수 없이 잘 쓰기 ...
  6. 환경교육도시 시흥 `ESG를 말하다` 28일 강의 개최 환경교육도시 시흥시(시장 임병택)는 오는 11월 28일 시흥에코센터에서 `환경교육도시 시흥, ESG를 말하다` 강의를 개최한다.시는 환경부로부터 `환경교육도시`로 지정돼 2024년부터 2026년까지 3년간, 환경교육 전문 인력 양성, 지역환경 학교 교육과정 편성, 시흥스마트허브 맞춤형 환경교육 프로그램 운영 등 5대 특화사업을 중심으로 실효성 .
  7. ‘대학교육체계 우수’ 기관평가인증 김포대, 수시 학생부·실기로만 선발 김포대학교가 2025학년도 신입생 수시2차모집에서 전체 모집인원의 22.2%인 183명(정원내)을 선발한다고 21일 밝혔다.김포대는 2025학년도에 자유전공학과를 비롯해 실용음악과 등 K-Culture계열 8개학과, 사회복지과 등 교육·복지계열 4개학과, 철도경영과 등 경영계열 3개학과, 경찰행정과 등 경찰·경호계열 2개학과, 게임콘텐츠과 등 콘...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