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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기자처럼 사서 현대건설 사장처럼 짓다
  • 공희준 편집위원
  • 등록 2020-06-05 17:2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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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돈으로 산 황금만능의 리더십 : 크라수스 (2)

크라수스는 정태수 전 한보그룹 총회장과 마찬가지로 목수가 자기 집을 지으면 망한다고 생각했다. 이미지는 지금은 고인이 된 정태수 회장이 경영한 한보건설의 작품인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로고 (이미지 출처 : 나무위키) 크라수스의 비즈니스 모델은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되었다. 첫째는 전기의 적산불하였고, 둘째는 후기의 도심 재개발이었다.

 

술라는 마리우스 진영에 가담한 반대파를 대규모로 숙청하면서 제거한 정적들의 재산을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헐값에 매각했다. 위도 38도선 남쪽의 한반도를 점령한 미군 군정청으로부터 일제가 남긴 재산, 즉 적산을 불하받은 상공인들이 나중에 한국을 대표하는 유수의 재벌들로 변신해간 고도성장의 역사를 상기시키는 경우였다. 적산을 불하받아 떼부자가 된 졸부들 대열에 크라수스도 한 자리 차지하고 있었음은 물어보나마나였다.

 

크라수스는 횡재한 알짜배기 적산을 자본금 삼아 거대하고 전도유망한 재개발과 재건축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당시의 로마는 마리우스가 영도한 민중파와 술라가 통솔하는 귀족파 사이에 장기간 벌어진 끔찍한 내전을 겪으며 곳곳이 폐허가 되었다. 게다가 로마 시가지가 급팽창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무허가 건물이 다닥다닥 밀집해 들어서면서 걸핏하면 초대형 화재사고가 일어나곤 했다. 내전이 술라파의 승리로 종식되면서 사회가 어느 정도 안정된 분위기에 접어들자 엄청난 재개발과 재건축 수요가 발생한 건 필연적 사태에 가까웠다.

 

큼지막한 먹잇감을 포착한 크라수스는 기민하게 움직였다. 그는 재건축이 예정된 건물들이나 재개발이 예상되는 토지를 부지런히 매입한 다음, 건설공사에 동원될 인력인 노예들을 무려 500명이나 노예시장에서 사들였다. 이들은 단순한 잡부형 노예가 아니었다. 건축일로 잔뼈가 굵은, 최소한 십장급의 숙련된 기술자 노예들이었다.

 

그는 로마 시내에서 노른자위 땅이 될 만한 부지가 매물로 나오면 곧바로 알박기에 나섰고, 살아 있는 중장비라고 칭할 수 있는 건설 분야의 전문직 노예들은 밭떼기로 싹쓸이를 해버렸다. 입주 즉시 몇 배의 프리미엄이 붙을 신축된 건물들을 분양하는 사업권은 당연히 크라수스의 몫이었다. 땅을 보러 다닐 때의 크라수스는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대변인을 역임한 어느 전직 한겨레신문 정치부 기자 같이 주도면밀했고, 매입한 부지에 건축물을 올릴 때의 크라수스는 건설업으로 승승장구하던 무렵의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처럼 신속과감했다.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서울 강남 재건축시장의 여왕벌로 통용되어온 아파트 단지이다. 은마아파트는 재작년인 2018년에 남미의 에콰도르에서 숨을 거둔 것으로 알려진 정태수 전 한보그룹 총회장의 대표작이었다. 한보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한보건설이 바로 이 은마아파트를 시공한 까닭에서이다.

 

정태수 회장은 “목수가 자기 집을 지으면 망한다”는 속설을 믿으며 한보그룹의 사옥을 짓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크라수스는 시대와 지역을 달리해 정태수 회장과 이러한 신념을 공유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는 수백~수천 채의 건물을 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위해서 건축한 건물은 본인이 실제로 거주하는 집 한 채가 전부였다고 한다. 크라수스는 사람들이 이유를 궁금해 하자 아래와 같은 의미심장한 대답을 들려줬다.

 

“건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적이 없어도 자멸한다.”

 

단군 이래로 최고로 선명하고 청렴한 진보정권을 자처하는 문재인 정부의 고관대작들이 부도덕한 땅투기와 다름없는 과도하고 편법적인 부동산 투자 때문에 무주택 서민들의 분노와 빈축을 사고 있는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크라수스가 발설한 가슴 서늘한 이야기는 충분히 곱씹어볼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크라수스가 부동산 사업만큼이나 관심을 기울인 일은 노예를 조련하는 작업이었다. 노예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주요하고 핵심적인 생산수단이었다. 그는 대다수 노예주들과 견주어 노예들을 혹독히 다루지 않았다. 그가 특별히 ‘착한 노예주’였던 때문은 아니었던 듯하다. 순전히 경제적 생산성과 효율성의 측면에서 따져봤을 때 노예들을 잔인하게 학대하면 오히려 손해라는 냉철한 계산에 기반한 나름의 실사구시적 판단이었다. 금전의 출납과 재무관리 등의 나머지 모든 업무들은 노예들에게 대행시킬 수가 있어도 노예를 교육하고 훈련시키는 일만은 결코 노예에게 맡길 수 없다는 게 크라수스의 소신이었다. 그는 사람에게 투자할 줄 아는 세계 최초의 최고경영자(CEO)였다.

 

크라수스는 동료 시민들을 온화하고 친절하게 대하는 것으로 인망이 높았다. 또한 이자 없이 돈을 빌려주는 행동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그러나 채무자가 제때 빚을 갚지 못하면 시쳇말로 얄짤이 없었다. 곧바로 압류에 들어갔다는 뜻이다. 크라수스가 제공하는 무이자 신용대출은 영락없는 독 묻은 사과였다.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크라수스를 찾아왔다. 그의 소탈하고 서민적인 스타일이 주효했던 덕분이다. 크라수스는 본인이 귀족파의 적산불하에 힘입어 축재에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마련한 식사 자리에 민중파 인사들을 서슴없이 초대했다. 크라수스가 내놓은 밥상은 의외로 소박했다. 산해진미 가득한 진수성찬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신에 그는 유쾌한 화술로 손님들을 흡족하게 만들었다.

 

전통적으로 동양의 정치가 글로 하는 정치라면, 서양의 정치는 역대로 말로 하는 정치였다. 일반대중을 상대로 하는 웅변실력과 연설솜씨가 정치인으로 대성하기를 꿈꾸는 인물들이라면 반드시 갖춰야만 할 필수적 자질과 덕목으로 자리매김한 건 동양에서는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즉 고대 로마에서는 정치인이 되려면 말솜씨가 빼어나야 했다는 의미다.

 

크라수스는 물욕과 더불어 권력욕도 강한 인간이었다. 그는 열심히 웅변술을 학습해나갔고, 이렇게 터득한 유려한 언변을 발판 삼아 변호사 업계에 발을 들이밀었다. 크라수스의 달변이 그로 하여금 각계각층의 손님들을 불러 모은 식사자리에서 지출되는 반찬값을 아끼게 해주었음은 필자가 앞에서 언급한 바가 있다.

 

돈이라면 진즉에 남부럽지 않은 크라수스였다. 그가 이제 갈망하기 시작한 목표는 인기였다. 그는 돈 없는 원고와 무일푼의 피고를 위해 수없이 무료변론을 해주었다. 심지어 나중에 그와는 운명적 경쟁관계에 놓일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 그리고 당대 최고의 문필가 겸 독설가인 키케로조차 변론을 마다한 까다롭고 지저분한 사건들마저 가리지 않고 수임했다. 인민들로부터 인심을 얻으려는 동기에서였다. 크라수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일가견을 갖게 된 것 역시 부자인데도 추상적인 순수학문에 조예가 깊다는 고상하고 세련된 인상을 세간에 심으려는 고도의 평판관리 목적에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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