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잘 버는 사람들로부터 흔히 발견되는 공통분모가 있다. 시기심이 매우 강하다는 점이다. 폼페이우스는 크라수스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화려한 개선행진을 로마 시내에서 벌였다. 게다가 ‘마그누스’라는 명예로운 이름까지 얻었다. 우리말로 옮기면 ‘위대하다’는 의미였다.
“지가 위대하면 얼마나 위대하다고….”
폼페이우스의 나날이 치솟는 성가에 대한 크라수스의 냉소적 반응이었다. 폼페이우스와 관련된 얘기만 나오면 크라수스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입을 삐죽거리며 수시로 말꼬리를 붙잡는 투덜이 스머프가 되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크라수스는 뒤에서 불평불만만 늘어놓는 소심하고 수동적인 성격은 아니었다. 그는 진취적 자세로 자신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살려나갔다. 폼페이우스의 강점이 용감무쌍한 대담함에 있다면, 크라수스의 특장은 살가운 붙임성에 존재했다. 그는 특유의 넉살과 친화력을 십분 발휘해 법조계와 비즈니스 분야를 양대 무대로 삼아 인맥을 넓히고 대중적 인기를 키워나갔다.
반면에 폼페이우스는 전장에서는 거침없이 포효하는 사자와 같았지만, 전쟁이 끝나고 민간인 신분으로 복귀하면 그 즉시 수줍고 새침한 소녀가 되곤 했다. 그의 고질적인 낯가림 버릇과 구제불능의 은둔 성향은 싸움터에서 어렵게 쌓아올린 명성을 정계에서 야금야금 잠식해나갔다.
카이사르는 크라수스와 폼페이우스의 장점을 골고루 갖춘 인물이었다. 따라서 그가 나중에 두 명의 경쟁자 전부를 제치고 로마의 최고존엄으로 등극한 일은 필연적 귀결일지도 몰랐다. 삼두정치 체제의 최종 승리자로 기록된 카이사르는 크라수스 뺨치는 마당발이면서도, 필요할 경우에는 폼페이우스 못잖게 신비주의 마케팅을 구사할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크라수스는 타고난 장사꾼이었다. 장사꾼은 시샘과 질투는 할지언정 무익한 원한과 증오에 사로잡히지는 않는다. 크라수스, 폼페이우스, 카이사르 3인이 로마판 삼김시대 구도를 완성해갈 즈음 치열한 경쟁심에 불탄 쪽은 오히려 카이사르였다. 이를테면 해적들에게 붙잡힌 신세가 되자 카이사르는 자신이 도적떼에게 운 없이 납치당했다는 사실 자체보다는 이 소식이 크라수스를 어부지리로 기쁘게 만들까 봐 더욱 불안하고 초조해했다.
상인적 현실감각은 조정과 중재, 조율과 균형 잡기에서 빛나기 마련이다.
카이사르는 이베리아 지역을 다스리는 총독으로 임명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임지로 출발할 수가 없었다. 빚쟁이들이 몰려와 빨리 부채를 갚으라고 독촉하며 그의 앞길을 가로막은 탓이었다. 이때 크라수스가 키다리 아저씨로 등장해 채무보증을 서준 덕분에 카이사르는 더 이상의 망신살을 다행히 면할 수가 있었다.
크라수스가 단지 돈이 남아도는 이유에서 카이사르를 궁지에서 탈출시켰을까? 크라수스는 민중파의 수장 역할을 맡은 카이사르가 불미스러운 사태로 낙마하면 로마가 보수적 귀족파의 손아귀에 다시금 완전히 놓이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로마 사회가 마리우스의 후예인 카이사르가 이끄는 민중파 세력과, 술라의 후계자 폼페이우스가 영도하는 귀족파 진영으로 갈려 양파가 극단적으로 대치하는 망국적인 정치적 양극화로 치닫지 않은 데에는 중도파를 자임해온 크라수스의 활약과 공로가 컸다. 그는 한쪽으로 지나치게 힘이 쏠린 적마다 약자의 위치로 내몰린 집단을 편드는 평형추 구실을 자청했다.
물론, 크라수스의 행동의 근본적 밑바탕을 이루는 심리적 동기는 이타적 애국심이 아닌 타산적 이기심이었다. 그의 셈법은 나라가 또다시 두 쪽으로 나뉘어 유혈 낭자한 내전에 휩싸이면 그 누구에게도 실익이 없을 것이라는 상인의 현실감각에 기반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크라수스는 술에 물 탄 듯한, 물에 술 탄 것 같은 흐리멍덩한 무골호인(無骨好人)으로만 한없이 지내지는 않았다. 그도 알고 보면 성질을 부려야만 할 때는 부릴 줄 아는 뒤끝 있는 남자였다.
시킨니우스는 악의적 선동과 근거 없는 음해를 수시로 일삼으며 다수의 선량하고 양심적인 로마인들을 곤경에 몰아넣어온 비열한 음모론의 대가였다. 이런 시킨니우스조차 크라수스를 쇠뿔에 지푸라기가 묶인 황소에 비유하며 함부로 건들지 못했다.
당시 로마에서는 사람을 무차별적으로 들이받는 난폭한 황소의 뿔에다 지푸라기를 묶어둠으로써 다른 순한 소들과 편리하게 식별하도록 하는 풍습이 있었다. 크라수스가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주특기로 통하는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의 ‘미치광이 전략’의 달인이었음을 교활한 시킨니우스는 눈치 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