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 몇 년 전 발생한 대한항공의 땅콩회항 사건으로부터 최근 불거진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의원의 후원금 횡령 의혹 사태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기득권 계층은 보수와 진보, 전통 재벌 일가와 신흥 운동권 귀족을 막론하고 국민들로부터 신뢰와 애정이 아닌 분노와 조롱만을 받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이들의 잘못된 평판관리도 단단히 한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이승훈 대표님께서는 평판관리의 잣대에 비출 때 현재 여당과 야당의 내로라하는 대권후보들의 평판관리 수준과 현황을 어떻게 평가하고 싶으신지요?
이낙연은 기교파, 이재명은 정통파
이승훈 : 평판관리의 초점은 부정적 위기상황을 긍정적이고 희망적 국면으로 반전시키는 일에 맞춰져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를 역임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재명 경기도지사 두 사람은 평판관리의 프리즘에 비춰본다면 대단히 뛰어난 역량을 과시해왔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평판을 관리해온 방식에는 뚜렷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이낙연 의원은 논란을 빠르게 종식시키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그는 문제가 생겼을 경우 적절한 범위 내에서 자신의 책임을 즉시 인정해왔습니다. 신속한 책임 인정과 즉각적 사과 위주로 원활한 이슈 전환에 성공했습니다.
평판관리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싸워서 이김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길입니다. 두 번째는 다른 현안으로 재빨리 쟁점을 이동시키는 것입니다. 이낙연 의원은 두 번째 방법을 효과적으로 사용해왔습니다. 이재명 지사는 이낙연 의원과는 달리 첫 번째 방법인 싸워서 이기는 길을 애용해오며 자기의 평판을 성공적으로 관리해왔습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가족과의 갈등을 포함한 여러 구설수에 시달려왔습니다. 현재는 선거법 위반 혐의로 대법원의 상고심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 지사는 이렇게 연속되는 악재들과의 정면대결을 불사하는 방도를 선택했습니다. 그를 겨냥한 다양한 공격과 비난에 맞서가며 우호적 지지 세력을 구축했습니다. 이게 이재명이 위기를 헤쳐 나온 방식이었습니다. 평판관리의 관점에서는 아주 고전적이고 표준적 전략을 구사했는데, 그것이 이제까지는 거의 완벽히 주효했다고 하겠습니다.
이낙연 의원과 이재명 지사의 우수 사례와 대조해 다른 대선주자들의 평관관리 실적을 보자면 긍정적으로 평가해주기가 어렵습니다. 불미스러운 쪽으로 세간의 평판이 흘러가면 정면으로 싸우든지, 아니면 다른 이슈를 만들어내 덮어버리든지 해야만 하는데, 다들 그러지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실패한 평판관리의 대명사라고 칭할 수 있습니다. 안 대표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가장 바람직하지 않은 이미지는 “간을 본다‘는 인상입니다. 안철수에게는 분명한 입장이 없다는 세평입니다.
안철수 대표는 과거의 낡은 정치의 틀을 탈피해 새로운 정치를 추구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렇지만 안철수에게 낡은 정치와의 결별 이전에 다급하게 요청되는 것은 간을 본다는 나쁜 평판의 굴레를 먼저 벗어나는 일입니다. 그러려면 이낙연처럼 다른 이슈로 국면전환을 시도하거나, 또는 이재명 같이 정면으로 맞서 싸워서 부정적 이미지를 떨쳐내야만 합니다. 하지만 안철수에게서는 평판을 개선하려는 특별한 움직임이 여전히 발견되지가 않습니다. 그러니 “간본다”는 나쁜 평판이 나아지려야 도저히 나아질 수가 없습니다. 그는 좋지 않은 평판에 고질적으로 발목이 잡혀 있었습니다. 선거에서 바라는 결과를 거둘 수가 없었습니다. 성공적 평판관리에 필요한 노력이 충분히 경주되지 않아온 탓입니다.
유승민 전 의원의 평판이 나날이 악화돼가는 현상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연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유승민은 정치적 노선이나 이념적 지향점이 일치하는 까닭에 바른미래당을 국민의당과 합당시키기로 결심한 게 아니었습니다. 명확히 정리된 입장이 부재한 상태에서 강행된 양당의 합당이 기대했던 성과물을 산출하기란 애당초 불가능한 노릇이었습니다.
결국에 유 전 의원은 원래 몸담았던 새누리당의 후신인 자유한국당으로 원대복귀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탈당과 창당과 합당, 그리고 재탈당과 복당을 차례로 감행하며 나쁜 평판을 얻었는데 유승민 전 의원은 이러한 일련의 매끄럽지 않은 행보들에 대한 비판을 흔쾌히 수긍하지도, 단호히 반박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그냥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려고 했을 따름입니다. 제대로 된 평판관리라고 점수를 주기 힘든 이유입니다.
박원순, 홍보는 있어도 평판관리는 없다
홍준표 의원을 비롯한 대다수 야당 정치인들의 형편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래통합당은 최순실 일당의 국정농단과, 그에 이어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로 말미암아 치명적 악평을 얻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미래통합당이 박근혜 정권과 얽히는 바람에 생겨난 오점과 오욕을 깔끔하게 정리하려는 시도를 좀처럼 과감하게 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이 부분이 깨끗하게 정리가 되지 않으니 정당 차원의 평판관리가 도무지 잘될 수가 없습니다.
미래통합당은 박근혜 정권의 2인자였던 황교안 전 국무총리를 당대표로 내세운 체제로 지난 4‧15 총선을 치렀다. 황교안이 공천파동을 무릅쓰고 무리하게 살려낸 민경욱 전 의원은 박근혜 정권의 청와대 대변인을 지냈다. 미래통합당은 평판관리를 사실상 포기하고서 치열한 선거전에 해이하게 임한 꼴이었다.
미래통합당은 지금이라도 박근혜 정권과의 관계를 명쾌히 설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최소한의 평판관리 작업이나마 진행시킬 수가 있습니다. 계승인지, 단절인지 박근혜 정권과의 명확한 관계설정을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까 보수진영이 점점 시들다가 급기야는 완전히 궤멸되는 단계에까지 이른 것입니다.
대화의 주제는 야당을 찍고 다시 여권으로 돌아갔다.
공희준 : 박원순 서울시장의 평판관리 성적은 어떻게 채점하시렵니까? 박 시장처럼 자기 홍보 열심히 하는 현역 정치인도 무척 드물거든요.
이승훈 : 말씀하신 것처럼 박원순 서울시장은 홍보작업 하나만은 정말 남부럽지 않게 부지런히 해왔습니다. 그렇지만 박 시장의 정치이력에는 원초적인 주홍글씨가 굵게 새겨져 있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서울시장이 된 게 아니라는 평판입니다. 안철수가 없었다면 박원순도 없었다는 것이 세간의 여론의 중론입니다.
박원순 시장은 민선 3선 서울시장이라는 유례없는 대기록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만의 고유한 색깔을 만들어내지도, 자신의 독특한 의제를 발굴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안철수의 새정치가 실체가 없는 것만큼이나, 박원순의 정치도 그 정체가 오리무중입니다. 평범한 유권자들 입장에서는 박원순은 자기 힘으로 정권을 잡을 수 없는 정치인이라는 인식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필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를 교통방송 TBS의 라디오 진행자로 꿋꿋하게 밀어주는 것도 또 다른 정치적 대박협찬을 기대한 얄팍한 요행심리의 발로 때문일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경로의존성’이 이래서 무섭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안철수 덕분에 시장이 됐다는 시민들의 평가를 인정하지도, 극복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겸손한 절제력도, 화끈한 돌파력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박원순 세력’이 존재하지도 않고, 생겨나지도 않는 게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박 시장은 큰 틀에서의 근본적인 평판관리의 실패를 시정과 관련된 소소하고 지엽적인 홍보로 메우려고 애쓰는 모양새인데 그의 바람대로 일이 풀릴지는 솔직히 미지수입니다. (③에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