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이 양국의 사활을 건 총성 없는 전면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합중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모두 “밀리면 끝장”이라는 식으로 치킨게임을 불사할 기세이기 때문입니다. 두 나라의 갈등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상대방 국가가 일부러 만들어 퍼뜨린 바이러스 때문에 발생했다는 가짜 뉴스를 정부 차원에서 주장할 정도로 그야말로 막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국은 수출입국 정책을 통해 고도성장과 경제발전을 이룬 나라입니다. 따라서 세계 경제의 양대 견인차로 군림해온 중국과 미국의 대결과 불화는 수출전선을 비롯한 우리나라 경제 전반에 짙은 암운을 드리우고 있습니다. G2의 무역전쟁은 실제 전쟁까지 동반하는 파국으로 치달을까요? 아니면 어느 지점에서 극적인 타협과 합의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가 있을까요? 그리고 우리나라가 미국과 중국 틈새에서 등 터진 새우 신세가 되지 않으려면 정부와 기업들은 어떤 전략과 대책을 마련해야만 할까요?
몰락한 일본은 굴기(倔起)하는 중국의 반면교사
임채완 : 미국과 중국의 무역협상은 속전속결의 단기전이 아닌 지루한 장기전 양상을 띠어왔습니다. 일례로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관세인상 조치는 1년 6개월에 걸쳐 점진적이면서도 전방위적으로 이뤄져왔습니다.
미국과 중국 양국은 금년 1월 15일에 무역협정을 체결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최종적 타결이 아닙니다. 양국 사이의 무역분쟁에서 겨우 첫 고비를 넘긴 1단계에 불과할 뿐입니다. 미국 측에서 조속한 해결을 희망하는 대부분의 난제들은 뒤로 미뤄졌기 때문입니다. 지적 재산권, 중국 국영기업들이 누려온 정부 보조금처럼 풀기 어려운 문제들은 2단계 협상으로 이월된 형편입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2단계 협상은 1단계 협상과 비교해 수월할 거라고 장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트럼프 혼자만의 생각일 뿐입니다.
중국은 2008년 베이징 여름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일본을 제치고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의 위치를 차지하게 됩니다. 공교롭게도 일본 또한 1964년에 치러진 도쿄 올림픽을 분수령으로 삼아 전 세계에서 두 번째 가는 경제대국의 지위에 올라섰습니다. 2008년은 글로벌 금융 위기가 터진 해이기도 했습니다. 중국은 이 위기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습니다.
미중 무역분쟁의 진로를 정확히 예측하려면 지나간 역사에 대한 연구가 필수입니다. 분쟁의 한 축인 중국만큼 역사적 맥락과 교훈에 중요한 가치를 부여하는 나라가 드문 이유에서입니다. 따라서 세계사를 살펴보면 중국이 무엇을 추구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선명하게 파악할 수가 있습니다.
1980년대에 “일본이 최고다(Japan is Number 1)!”라는 소리가 지구촌 곳곳에서 울려 퍼졌습니다. 일본 경제가 당장이라도 미국 경제를 추월하고 능가할 기세였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결국에는 불어난 스스로의 몸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서 제풀에 쓰려지고 말았습니다. 일본 경제가 쇠락한 결정적 원인은 당시 미국에서 태동하던 정보통신(IT) 기술에 기반한 신경제의 폭발적인 성장 가능성을 제때 포착하지 못한 데 있었습니다.
중국은 일본이 1990년대에 들어서 갑자기 무기력하게 주저앉은 이유를, IT 중심의 신경제에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적응하지 못한 까닭을 면밀하게 천착해왔습니다. 그들은 일본을 철저하게 반면교사로 삼았습니다.
중국이 토크빌에 열광하는 까닭은
우리가 주목해야만 할 부분은 현재 중국의 국가부주석으로 재임 중인 왕치산(王岐山)의 역할과 행보입니다. 왕치산은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인물입니다. 실제로 전공을 살려 나중에는 박물관에서 관리자로 근무하기도 했습니다. 왕치산이 2013년에 중국 공산당의 기율검사위원회 서기로 임명되면서 당원들에게 필독서처럼 소개한 서적이 있습니다. 프랑스의 정치사상가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 1856에 펴낸 「앙시앵 레짐과 프랑스 혁명」이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토크빌의 저서가 집중적으로 조명한 시기는 18세기였습니다. 이때는 프랑스와 영국이 제2차 백년전쟁으로 불릴 만큼 두 나라의 사활을 걸고서 치열하게 경쟁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이 경쟁에서 프랑스는 완패했습니다. 토크빌은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엽에 걸쳐 벌어진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의 정복전쟁이 제2차 백년전쟁의 승자였던 영국을 뛰어넘기 위해 프랑스가 겪어야만 했던 진통이자 산고였다는 시각을 드러냈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토크빌의 관점이 현대에 이르러 이마뉴엘 월러스틴 같은 학자들에 의해 계승되었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왕치산이 토크빌이 지은 고전을 꺼내든 속내와 목적이 어디 있겠습니까? 패권경쟁에서 패배하면 혁명과 전쟁으로 점철되는 고통스러운 격변에 휩싸이게 된다는 사실을 중국의 지배층은 물론이고 일반 국민들에게 명징하게 주지시키려는 데에 있습니다. “밀리면 끝장”이란 위기의식 가득한 메시지를 왕치산은 중국의 14억 인구를 향해 요란하게 날린 것입니다.
중국 지도부는 왕치산의 사례가 증명하는 것처럼 미국과의 패권다툼을 국가의 존망과 성패를 판가름하는 양보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싸움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취임 이래 대내외적으로 ‘중국몽(中國夢)’을 연일 제창해왔습니다. 그런데 만약 중국몽의 장밋빛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어떤 참담한 사태가 빚어질지는 시진핑을 비롯한 중국의 국가지도자들이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미국은 중국과는 달리 거시적이고 통시적으로 미중 갈등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 분위기입니다. 미국의 내로라하는 국제관계 전문가들과 유수의 싱크탱크들이 중국과 관련된 연구를 수행하고 있기는 하지만 중국처럼 범국가적 차원에서 미중 갈등의 분석과 전망에 매달리지는 않는 모습입니다.
미국이 중국과의 무역분쟁에 깊숙이 휘말리게 된 직접적 단초는 트럼프의 대선공약에서 찾아질 수 있습니다. 미국은 중국과는 달리 민주주의 체제를 채택해온 나라입니다. 선거에서 표출된 유권자들의 민심이 국가정책의 향방을 좌우합니다.
한국에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설치돼 있습니다. 이웃한 일본에는 경제산업성이 존재합니다. 그렇지만 미국 정부에는 ‘산업(Industry)’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부처가 있지 않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앞서가는 선진국을 추격하는 정부구조를 갖고 있었습니다. ‘산업’이 들어간 부서들은 그와 같은 추격의 의지와 열망이 반영돼 만들어진 정부기관입니다.
반면에 미국은 경제적으로는 후발국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한국과 일본에서 목격되는 유형의 산업정책 전담 부서들이 굳이 필요하지가 않았습니다. 선도형(First Mover) 국가들 입장에서는 구태여 부지런하게 모방하고 참고할 선례가 없었기에 이들 나라의 경우에는 정책당국자들의 역사에 대한 관심과 열의가 상대적으로 떨어지기 마련이었습니다. (②편에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