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해적과 검투사가 만나면 결과는 먹튀
  • 공희준 편집위원
  • 등록 2020-06-29 17:11:00

기사수정
  • 돈으로 산 황금만능의 리더십 : 크라수스 (7)

다급한 스파르타쿠스는 해적들에게 먹튀까지 당한다. 이미지는 먹튀 논란에 휘말린 라임자산운용의 로고로마 원로원은 렌툴루스의 패전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두 명의 집정관으로부터 군대 지휘권을 박탈하여 이를 크라수스에게 맡겼다. 새로 총사령관에 부임한 크라수스는 부지휘관으로 임명된 뭄미우스에게 2개 군단을 내어주어 스파르타쿠스를 저지하도록 했다.

 

뭄미우스는 신중하게 대응하라는 크라수스의 명령을 어기고 스파르타쿠스의 군대와 성급하게 교전을 벌였다가 대패하고 말았다. 대노한 크라수스는 뭄미우스를 엄중 문책한 다음 전장에서 비겁하게 도망친 500명의 병사들을 로마 군법에서 최고의 극형인 ‘10분의 형’에 처했다. 이는 10명 가운데 무작위로 1명을 뽑아 사형에 처하는 형벌이었다. 사람 좋은 줄로만 알았던 크라수스가 뜻밖에 단호한 면모를 보이자 그동안 군기가 느슨해질 대로 느슨해졌던 로마군 진영은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결사항전의 분위기로 순식간에 돌변했다.

 

스파르타쿠스는 독이 오른 진압군과의 정면대결을 피해 남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메시나 해협은 이탈리아 본토와 시칠리아 섬을 나누는 물길로 가장 폭이 좁은 곳이 1.9km에 불과하다. 허나 아무리 좁은 해협일지라도 부녀자와 노인, 그리고 아이들까지 포함됐을 수만 명의 무리가 헤엄을 쳐 건널 수는 없는 노릇이다.

 

플루타르코스는 해협에 다다른 스파르타쿠스가 킬리키아에 근거지를 둔 해적들과 우연히 조우한 것처럼 묘사하였다. 킬리키아는 현재의 터키 남해안 지방을 일컫는다. 그렇지만 봉기한 노예들과 무법자 해적들의 만남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었을 개연성이 짙다.

 

로마 시대에 지중해는 통상로에 더해 통신망 구실을 겸했다. 금붙이를 비롯해 노예주들로부터 빼앗은 각종 귀중품을 잔뜩 소지한 노예들이 시칠리아를 향해 무리를 이뤄 느릿느릿 이동 중이라는 따끈따끈한 뉴스는 지중해 곳곳에서 활개를 치고 있는 해적들의 귀에도 당연히 들어갔을 테고, 해적들로서는 큰 장이 섰는데 굳이 오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해적들은 반란을 일으킨 노예들이 힘이 없으면 약탈을 시작하고, 힘이 있으면 거래를 시도할 요량으로 메시나 해협에 미리 닻을 내리고 있었으리라. 스파르타쿠스의 비범하고 강인한 카리스마적 면모를 발견한 해적들은 내심 바라던 노략질 대신 흥정에 나섰으리라. 해적들은 일종의 사은행사 차원에서 반란군 2천 명을 시칠리아 섬으로 염가에 운송해줬다. 해적선에 탑승해 시칠리아로 건너간 반군 병사들은 때마침 그곳에서 활활 타오르던 노예들의 반란, 또는 해방투쟁에 기름을 끼얹었다.

 

밀당의 연속이었을 검투사와 해적의 기괴한 협상은 초대형 사기사건으로 막을 내렸다. 해적들이 돈만 챙기고서 먹튀를 해버린 탓이었다. 노예들로부터 사취한 대량의 금은보화를 배에 가득 싣고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파렴치한 해적들을 바라보며 스파르타쿠스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의 뒤통수에다 대고 종주먹을 움켜쥐고서 욕설을 퍼붓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보면 스파르타쿠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알프스 산맥 방면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에서 그는 울며 겨자 먹기로 해적들과 비즈니스를 해야만 했고, 근육질 검투사와 노회한 해적 간의 상거래가 전자는 쪽박을 차고 후자는 대박을 터트리는 희대의 먹튀극으로 귀결되는 건 명백한 시간문제였다.

 

설령 거래가 실제로 성사되어 스파르타쿠스기 인솔한 집단이 운 좋게 배를 탔다면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됐을까? 이 또한 미지수이다. 비록 혼란에 빠졌을지언정 로마의 해군력은 여전히 막강했다. 게다가 해적들이 노예들을 계약서에 명시된 대로 최선을 다해 목적지에 도착시켜준다는 보장도 없었다. 따라서 나중에 “고대의 보트 피플(Boat People)”로 불렸을지도 모를 스파르타쿠스의 무리는, 21세기에 들어와 지중해 반대편의 부유하고 풍요로운 유럽 대륙으로 가려던 무수한 아프리카와 중동 출신 난민들이 바다에서 맞이한 비극적 운명을 피해가지 못했을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크다.

 

돈만 떼인 셈이 돼버린 스파르타쿠스는 장화처럼 생긴 이탈리아 반도의 뾰족한 구두코 부분에 해당하는 레기온 반도에 일단은 둥지를 틀었다. 그러자 크라수스는 로마 최고의 건설업자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레기온 반도와 나머지 지역 사이를 가로지르는 길이 54km의 도랑을 판 것이다. 그는 폭과 깊이 모두가 4.5m에 달하는 이 기나긴 웅덩이 위에 높다란 장벽을 쌓았다.

 

스파르타쿠스는 이 방벽을 당장은 ‘크라수스 산성’이라고 조롱했다. 그러나 겨울이 되어 날씨가 추워지고, 수중의 식량이 바닥나면서 그는 크라수스의 기상천외한 토목공사를 마냥 비웃을 처지가 더 이상 되지 못했다. 이대로 있다간 무리 전체가 추위와 굶주림으로 몰살당할 터였다. 스파르타쿠스는 도랑의 일부를 흙과 나무로 기습적으로 메우고선 병력의 3분의 1을 방벽 너머에 위치한 로마군 장악 지역으로 전격적으로 돌격시켰다.


관련기사
TAG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서초구
국민신문고
HOT ISSUE더보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행안부 차관 주재, `전산사고 재발방지 대책 전문가 토론회` 개최 행정안전부는 28일, 고기동 행정안전부 차관 주재로 전산사고 재발방지 대책에 대한 민간전문가 토론회를 개최했다.이번 토론회는 전산사고 재발 방지를 위해 응용프로그램의 안정적 운영·유지관리 방안을 전문가들과 논의하고 우수한 민간의 시스템 관리사례를 공유하기 위해 마련되었다.토론회에는 송상효 숭실대학교 교수를 비롯.
  2. 마포구, 실뿌리복지로 레벨 업(UP)…복지·동행센터·기금 3단 체계 구축 마포구가 올해 마포형 복지전달체계인 `실뿌리복지`의 기반 구축과 운영에 박차를 가한다.`실뿌리복지`는 `아이부터 어른까지, 사회적 약자부터 일반 주민까지 모든 구민의 삶에 스며드는 촘촘한 복지`를 지향하는 마포구 복지 비전으로 `실뿌리복지센터`, `실뿌리복지동행센터`, `실뿌리복지기금`으로 구성된다.실뿌리복지센터는 아동·...
  3. 인천시, 사회복지시설 등에 방연마스크 800개 비치 인천광역시는 화재 발생 시 연기 및 유독가스에 의한 질식사 등 인명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공립사회복지시설 등에 화재 대피용 방연마스크를 비치한다.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19년 ∼ `23년) 화재 발생 시 연기 및 유독가스에 의한 사망자는 전체 사망자의 약 66%에 달해, 사망원인 1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노인·장애...
  4. 수원시-경기대, `지구로운 캠퍼스` 조성에 앞장선다 수원시가 경기대학교와 `지구로운 캠퍼스` 조성을 위해 지난 27일 대학 관계자와 간담회를 가졌다.경기대학교 제2공학관에서 열린 간담회에는 황인국 수원시 제2부시장, 청년청소년과장, 환경정책과장 등 관계 공무원과 최병정 경기대학교 교학부총장, 사회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진, `지구로운캠퍼스추진단`으로 활동하는 경기대학교 학.
  5. 정부 "전세사기 피해주택 경매차익으로 피해자 임대료 지원" 정부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매입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세사기 피해주택의 경매 차익을 피해자에게 돌려주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전세사기 피해자는 LH가 경매에서 사들인 기존 거주 주택에 최대 10년간 무상으로 거주하거나, 바로 경매 차익을 받고 이사할 수 있도록 했다.정부는 27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전세사기 피해자 주거안정 지원...
  6. 산업부-KOTRA, 유럽 최대 반려동물용품 전시회서 한국 펫기업 알려 산업통상자원부(장관 안덕근)와 KOTRA(사장 유정열)는 5월 7일부터 10일까지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반려동물용품전시회(INTERZOO 2024)’에서 우리 반려동물용품 기업을 알리기 위해 한국관을 운영했다. 이번 전시회에는 전 세계 68개국에서 2100개가 넘는 기업이 참여했고, 약 4만명의 참관객이 방문해 양적인 면에서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
  7. 아기 상괭이의 놀이터, 한려해상 초양도…생태 해설로 관찰 지원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공단은 한려해상국립공원 내 초양도(경남 사천시 소재) 인근에서 국제적 멸종위기종인 상괭이가 새끼를 낳아 키우는 생육활동을 확인했다고 밝혔다.상괭이는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거래에 대한 협약(CITES)에서 보호종으로 등재되어 있으며, 해양보호생물(해양수산부 지정)로 법정보호를 받고 있는 종이다...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