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은 실사구시 정신에 기반한 서민친화형 정치인
이준민 : 정동영 하면 ‘부동산’입니다. 분양원가 공개, 분양가 상한제, 후분양 제도는 아파트 가격, 즉 땅값을 안정시키는 일에 절대적으로 긴요한 세 가지 기본 전제들입니다. 정동영 전 의원은 이 3대 정책을 끊임없이 주장하고 일관되게 추진해왔습니다.
정동영이 부동산 정책을 필두로 서민대중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기 위한 대안과 해법을 마련하려고 고민할 적에 대부분의 다른 유력 정치인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했습니까? 유명 인사들 모이는 리셉션 장소에 들러 사진 찍는 데 열중했습니다. 그럼에도 정동영의 유통기한이 끝났다고요? 저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에서 그러한 시각과 논리에 전연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첫째로 정동영은 제대로 쓰임을 당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자신의 능력과 비전에 상응하는 자리에 올라간 적이 여태껏 없는 그를 유통기한이 끝났다고 비판하는 건 순전히 개인적 악감정의 산물에 불과합니다. 공익에 기초한 보편적 사고의 산물로 인정해주기 어렵습니다.
정동영 전 의원은 참여정부 당시에 집권당인 열린우리당의 총수격인 당의장을 지냈다. 더군다나 그는 통일부 장관으로 내각에 입각까지 했다. 그러므로 정동영이 이제껏 충분한 기회를 잡아본 적이 없다는 이준민 시인의 대답은 논란과 시비의 여지가 수반될 견해일 수 있다.
둘째로, 정동영이 발신해온 정치적 메시지는 너무나 오랫동안 부정확하게 해석돼왔습니다. 혹자들은 정동영을 진보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합니다. 그러나 정동영이 진정으로 추구해온 가치는 진보적 가치가 아닙니다.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가치였습니다. 한마디로, 그는 중도적인 실사구시의 정치를 시도해왔습니다.
그렇다면 정동영이 진보 정치인으로 분류되는 착시현상이 왜 자꾸만 발생하는 걸까요? 현재의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지나치게 보수화돼 있기 때문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 사회 빈민들의 고통을 가라앉히고, 약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정치인이 거의 전부 사라졌습니다. 정동영은 더불어민주당이 방기한 약자들과 빈민들을 보살피는 과제를 본인의 정치적 소명으로 여겨왔습니다. 어렵고 소외된 이웃을 챙기고 돌보는 일은 진보적 행동이 아닙니다. 정치인이라면 응당 해야만 하는 보편적이고 상식적 행위일 뿐입니다.
셋째는 왜곡된 선거지형입니다. 올해 4‧15 총선이 정상적 선거였습니까? 지금 전 세계가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전대미문의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런 미증유의 환경에서는 사람들이 “그래도 믿을 건 정부밖에 없다”는 안정희구 성향에 굴복하기 쉽습니다.
필자는 정동영 개인에 관한 평가에서는 이준민 시인과 의견을 달리하는 부분이 많다. 그러나 제21대 총선이 지극히 비정상적인 선거였다는 의견에는 완벽히 공명하고 있다. 역병이 기승을 부리는 특수하고 예외적인 조건에서는 정권의 이념과 성격에 관계없이 방역을 책임진 정부당국에 일단은 의존하고 싶은 게 인간의 본능적 심리인 탓이다. 고로 20대 총선 결과를 ‘문재인’ 정부의 승리가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승리로 판독하는 것이 올바르고 정확한 정세분석이리라. 따라서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투표일 이후에 급격하게 동반하락하는 추세는 김재박 전 프로야구 LG 트윈스 감독의 명언처럼 “내려갈 팀이 내려가는 일”일 뿐이라고 쿨 하게 정의돼야 마땅하다. 야구에서나 정치에서나 DTD(Down Team Down) 현상은 일종의 필연적인 자연법칙인 셈이다.
예산권을 장악한 정부여당에 일단은 기대고 보자는 안정희구 성향이 강력하게 발동되는 심리에는 진보와 보수의 구분이 없었습니다. 유권자들 사이에 “지금 이대로”를 바라는 안정희구 성향이 극도로 만연한 상태에서 총선이 실시됐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지고 싶어도 질 수 없는 구도였습니다. 이 와중에서는 정동영이 아니라 부처님이, 공자님이, 예수님이 출마해도 민주당 후보를 상대로 승리할 수가 없었습니다. 전주 같은 경우에는 막대기를 꽂아놔도 민주당 후보면 무조건 당선되는 분위기였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조차 민주당이 아닌 민생당 후보로 출사표를 던졌다면 당선을 장담하기 힘든 지경이었습니다.
우리는 2020년의 한국정치를 전반적이고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정동영의 전주에서의 낙선을 조감할 필요가 있습니다. 거시적 인식과 포괄적 시야 없이 단지 선거에서 졌다는 한 가지 사실만 단편적으로 부각시키며 유통기한이 끝났다고 수군거려서야 되겠습니까?
이 구절에서 이주민 시인은 몹시 흥분한 듯 고함에 가까운 소리로 답변했다.
(격앙된 감정을 어느 정도 추스른 다음) 정동영 장관은 한반도 평화와 관련해, 남북한의 교류협력과 연관해서 고도의 경험과 전문성을 축적해왔습니다. 폭넓고 방대한 인적 네트워크를 국내외에 걸쳐 구축했습니다. 정동영의 지인들은 북한에도 있고, 미국에도 있습니다. 최근에 한반도의 긴장이 크게 고조됐습니다. 남북한의 관계가 빠르게 악화됐습니다. 정동영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도리어 정동영의 유통기한이 만료됐다고 일각에서는 떠들고 있느니 저로서는 전혀 찬성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습니다.
정동영의 좌절과 실패는 한국정치 전체의 문제
정동영 문제는 정동영 개인만의 지엽적이고 국지적 사안이 아닙니다. 근본적으로는 대한민국 정치문화 전체의 화두입니다. 우리나라 정치는 정치인의 본질적 측면에 주목하지를 않습니다. 본원적 가치에 집중하지를 않습니다. 그저 말초적 인상에 집착하고, 표피적 이미지에만 맹목적으로 매달립니다. 결국 그 최종적 손실은 누가 떠안겠습니까? 고스란히 국민들의 손해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저는 정동영 개인을 옹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인의 본질과 진면목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한국의 잘못된 정치문화를 바꾸자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저를 정동영빠라고 힐난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정빠입니다. 하지만 저는 연출된 이미지에 기만당하고, 사전에 기획된 ‘쇼통’에 농락당하는 문빠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수준 높은 빠입니다.
정동영 의원은 이제 60대입니다. 저는 그가 조국의 미래와 운명을 이끌어갈 역량 있는 정치인으로 남아 있기에 아직까지는 충분한 나이라고 확신합니다. 정치의 근본적 역할과 목표는 국민들의 삶을 나아지게 하는 데 있습니다. 이제는 정치의 근본적 역할과 목표를 기준으로 정동영의 공과를 평가하고 그의 장래를 예측할 것이 요구됩니다.
이준민 시인의 말대로 21세기 한국정치는 정치의 근본적 역할 대신에 계파, 출신지, 친소관계 같은 부수적 요소들에 압도적으로 휘둘려오고 있다. 이명박과 박근혜와 문재인이 차례로 집권한 21세기 한국정치가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이 주도하던 20세기 한국정치와 견주어 과연 발전한 게 맞는지 의문과 회의감이 진하게 들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정동영이 정치를 잘하고 못하고는 정동영과 노무현의 관계가 아니라 국민과 정동영의 관계를 준거로 냉정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또는 정동영 전 민주평화당 대표 정도 되는 인물이라면 국민들께서 여한 없이, 아쉬움 없이 한번쯤 마음껏 그를 써먹을 필요성이 있습니다.
호남은 더 좋은 선택을 할 준비가 돼있어
이준민 시인은 뭔가를 더 말하고 싶은 눈치였다. 필자는 여한 없이, 아쉬움 없이 이준민을 써먹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예정에 없던 질문을 던져봤다.
공희준 : 문재인 정부를 향해 호남 지역 유권자들이 벌써 몇 년째 열렬한 지지를 보내온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이준민 : 첫 번째 원인은 호남이 대의와 명분을 중시해왔다는 데서 찾아질 수 있습니다. 갑오년의 농민전쟁도, 일제 강점기의 광주 학생운동도, 1980년 5월의 광주 민중항쟁도 이익보다는 대의를 우선시하는 호남인들의 전통과 정서에서 비롯됐습니다. 호남은 문재인 정부가 야당과 비교해 정의롭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원인은 미래통합당의 존재에서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의 강력한 대항마가 미래통합당이라는 사실이 호남인들의 선택을 늘 제약해왔습니다.
필자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아닌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2019년 초봄에 진행된 미래통합당 전당대회에서 당대표에 선출돼 야당의 총선 전략을 진두지휘했다면 선거 결과가 조금은 달라졌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탄핵돼 쫓겨난 박근혜 정권의 2인자를 당대표로 내세운 치명적 자충수에서 목격되듯이 미래통합당의 고질병인 만성적인 ‘시대착오증’은 좀처럼 차도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그 후과는 전적으로 미통당의 몫일 터이다.
세 번째 원인은 이낙연 대망론에서 구해져야만 합니다. 한데 이낙연 의원은 과도하게 몸을 사리고 있습니다. 대국민 메시지도 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오죽하면 양향자 의원 같은 초짜 정치인이 이낙연 의원을 “스토리가 없다”며 정치적으로 저격했겠습니까? 이낙연 캠프는 ‘이낙연 대망론’을 창출하고 유지시켜온 호남인들의 열망과 참뜻을 생각해서라도 더 늦기 전에 과감하게 혁신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줘야만 합니다.
호남은 적절한 계기와 자극이 주어진다면 2016년의 20대 총선 정국에서처럼 더불어민주당 이외의 보다 지혜롭고 진취적인 전략적 선택으로 언제든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저는 모든 정당과 정치인들이 이 점을 항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희준 : 재미있는 말씀 직설적 화법으로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준민 : 멀리 파주까지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준민 시인은 1966년 함평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공부하고, 시사평론가와 교육평론가로 꾸준히 활동해왔다. 대표 시집으로 「눈물에도 계급이 있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