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수스는 한겨울의 추위와 거센 폭풍우를 무릅쓰고 출전을 감행했다. 그는 이탈리아 반도에서 소아시아로 항해하는 동안 여러 척의 수송선을 잃었다. 침몰한 배들에는 강적 파르티아와 싸울 귀중한 병력이 승선하고 있었다.
갈라티아는 성경에서 말하는 갈라디아로서 현재의 터키 중부 지방을 가리킨다. 갈라티아에 다다른 크라수스는 고령의 데이오타루스 왕이 신도시를 건설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크라수스가 다 늙은 나이에 굳이 새로 도시를 지어 어디 써먹겠느냐고 가볍게 면박을 주자 노인왕은 그 연세에 무슨 파르티아 정복이냐며 살짝 반격을 가했다. 이때 크라수스의 나이는 이미 환갑이 지난 터였다. 그즈음 로마인의 평균 수명은 아무리 후하게 잡아도 30세가 되지 않았다.
공병대가 자랑인 로마군답게 크라수스의 군대는 유프라테스에 부교를 설치하고는 가뿐하게 강을 건넜다. 로마군이 나타났다는 소식에 여러 도시들이 자발적으로 복속 의사를 표시해왔다.
단 제노도티아만은 예외였다. 이곳을 다스리는 독재자 아폴로니우스가 로마군 100명을 살해하며 끝까지 저항했기 때문이다. 제노도티아를 고전 끝에 점령한 크라수스는 부하들로부터 ‘임페라토르’라는 호칭을 얻었다. 동방의 이름 없는 소도시 하나를 어렵게 차지하고는 위대한 정복자의 칭호를 달게 된 일은 크라수스를 로마인들 사이에서 오히려 조롱거리로 만들었을 뿐이었다.
견물생심이라고, 부유한 동방의 도시들이 자발적으로 복종해오자 크라수스는 애초의 목적이 뭔지를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는 군사적 관점이 아닌 사업적 시각에서 일처리에 나섰다. 7천 명의 보병과 1천 명의 보병을 점령지의 수비대로 배치한 후에 크라수스가 시리아로 향한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갈리아의 카이사르 휘하에서 복무하다가 아버지를 돕고자 천여 명의 기병대를 이끌고 전장으로 달려오는 아들과 함께 그곳에서 겨울을 나려는 데 있었다.
실제 목적은 시쳇말로 슈킹, 즉 수금이었다. 크라수스가 파르티아를 상대로 효과적으로 전투를 펼치길 바랐다면 그는 바빌론이나 셀레우키아 같이 파르티아와의 관계가 나쁜 나라들로 군사를 이끌고 가서 연합군을 조직해야만 옳았다. 그렇다고 크라수스가 시리아에서 기존 장병들을 훈련시키거나 신병을 모집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사방팔방 기웃거리며 세금을 더 거둘 궁리에만 골몰했다. 최악의 가관은 징집 대상자들로부터 돈을 받고서 군대를 면제해준 일이었다.
하루는 그가 히에라폴리스 시에 자리한 신전을 찾았다. 신전에 많은 보물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여기에서 수금할 수 있는 재물의 규모를 계산하기 위해서였다. 견적을 마친 크라수스 부자는 여신을 모신 신전으로부터 줄지어 나오다가 먼저 아들이 발을 헛디뎌 문지방에서 앞으로 고꾸라졌고, 몸의 중심을 잃은 아버지가 곧장 아들의 몸 위를 덮치고 말았다. 상서롭지 않은 조짐이었다.
크리수스가 수금 반, 전쟁 반의 일정을 여유롭게 보내고 있는 동안 파르티아는 로마의 침략을 물리칠 제반 준비작업들을 신속하게 진행해나갔다. 파르티아 국왕 아르사케스, 즉 피로데스가 파견한 사절단이 도착한 건 이 무렵이었다. 파르티아 사절단은 이번 전쟁이 로마와 파르티아 간의 국운을 건 총력전일 경우에는 최후까지 싸우겠다고 단호히 선언하였다. 그러나 작금의 사태가 크라수스의 독단적 군사행동에 지나지 않는다면 관대한 아량을 베풀겠다고 짐짓 너스레를 떨었다. 파르티아 측은 크라수스가 본국으로 조용히 돌아가는 대가로 자국에 수감된 친로마파 인사들의 신병을 로마로 인도하겠다는 통 큰 제안을 덧붙였다.
크라수스는 답변은 셀레우키아에서 해주겠다고 말하며 파르티아 국왕의 모든 제안을 일언지하에 완곡히 거절했다. 그러자 사절단 가운데 최연장자인 바기세스가 박장대소하며 이렇게 크라수스를 비웃었다.
“집정관 각하께서 셀레우키아 땅을 밟기 전에 제 손바닥에 수북하게 털이 자랄 것이외다.”
본국으로 귀환한 파르티아 사절단은 개전이 불기피하다고 왕에게 진언하였다.
파르티아와의 교섭이 실패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메소포타미아 각지에 주둔해 있던 크라수스의 부하들이 얼굴이 사색이 되어 시리아로 허겁지겁 도망쳐왔다. 그들은 파르티아의 기병들은 바람보다 빠르고, 파르티아의 궁수들은 쏘았다 하면 백발백중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전황을 보고했다.
파르티아군에게 혼쭐난 동료 병사들의 이야기가 진중에 퍼지면서 로마군 사이에 심각한 동요가 일어났다. 이제껏 그들이 알고 있는 동양의 군대는 루쿨루스에게 박살난 아르메니아군의 약골들이나 카파도키아군의 오합지졸들이 전부였다. 로마군이 받았을 놀라움과 당혹감은 미군만 보면 당장에 도망갈 것이라고 믿고 있던 북한 인민군과 한국전쟁 당시에 오산 전투에서 직접 부딪쳐본 스미스 부대 병사들이 느꼈던 충격과 공포에 버금가는 것이었다.
재무관 카시우스를 비롯한 일부 신중한 장교들은 즉각 전쟁계획을 중단할 것을 크라수스에게 강력하게 건의했다. 불길한 점괘만 잇달아 나온 데 불안해진 예언가들이 이들 장교들의 의견에 힘을 보탰다. 그렇지만 크라수스의 태도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는 “전진하라!”는 명령 한마디로 모든 반대와 이견을 일소에 부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