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 유성엽 전 의원은 호남 출신 정치인으로는 드물게 ‘경제통’으로 각광받아왔습니다. 유성엽 전 의원의 희소가치는 그가 성장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민간기업의 활력 제고를 강조해왔다는 점에서 더욱더 두드러집니다. 그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초해 유 전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얼마 전 발표한 ‘그린 뉴딜’을 근본처방이 아닌 대증요법에 불과할 뿐이라며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유성엽 전 의원은 그가 쌓아온 경제정책에 관한 경륜과 전문성에도 불구하고 21대 총선에서 고배를 마셔야만 했습니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호남의 지역구 의석을 싹쓸이에 가깝게 석권한 이유에서입니다. 호남에서의 집권당의 압승에는 두 번째 호남 출신 대통령을 만들기를 염원하는 지역 민심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그런데 지역 유권자들의 바람과는 달리 호남에서의 압도적 지지에도 불구하고 ‘이낙연 대세론’이 최근 들어 흔들리고 있습니다. 호남에서의 압도적 지지가 더불어민주당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기본(Default) 값처럼 인식되면서 굳이 호남 출신 정치인을 대선주자로 내세울 필요가 없다는 공감대가 여권 내에서 이심전심으로 형성됐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정권을 밀어주고서도 오히려 중앙무대에서 냉대와 괄시를 당하는 ‘호남정치’의 악순환이 반복될지도 모르는 상황인 것입니다. 유성엽 전 의원은 ‘호남정치 복원’을 표방했던 국민의당을 대표하는 정치인들 가운데 한 명이었습니다. ‘이낙연 대망론’이 허망한 신기루로 끝날 수도 있는 지금, 유성엽 전 의원을 비롯한 호남 정치인들에게 요구되는 역할과 과제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유 전 의원과 오랫동안 함께 정치를 해오신 입장에서 허심탄회한 답변 부탁드립니다.
유성엽의 헌신과 분투는 멈추지 않는다
고상진 : “임금은 백성을 하늘로 여기고,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여긴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유성엽 전 의원은 나라를 책임진 지도자들은 국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의무와 사명이 우선적으로 있다는 신념을 일관되게 견지해왔습니다. 유성엽은 대학에서 외교학을 공부했습니다. 경제학 전공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전문적 경제학자들 못잖은 시간과 노력을 경제이론을 연구하고 경제정책을 개발하는 데 바쳐왔습니다. 그 결과 한국경제가 직면한 중대한 문제점들의 원인을 파악하고, 이를 풀어낼 근본적 처방과 해법을 마침내 만들어냈습니다.
아쉽게도 정치인 유성엽은 더 이상은 현역 국회의원이 아닙니다. 자신이 그동안 경제에 관련해 갈고 닦은 실력과 전문성을 구체적 정책수단을 통해서 발현시킬 수 있는 기회가 지금으로서는 막혀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유성엽 전 의원이 원외라는 열악한 조건에 굴하지 않고서 우리 경제를 발전시키는 데 필요할 일들을 계속해서 꾸준히 해나갈 것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호남은 전통적으로 진보적 가치의 견인차이고 담지자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경제 분야에서의 진보적 가치는 공정과 분배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등식화돼 있습니다. 그런데 군사정권이 과거에 경제개발을 강력히 추진할 무렵 호남 지역은 고도성장의 혜택과 결실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되고 배제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호남에는 지속가능한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물질적 토대와 기반이 거의 구축되지 못했습니다. 유성엽 전 의원이 성장과 발전을 중시하는 관점에서 호남을 바라보게 된 배경과 동기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호남은 경제적으로 늘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호남정치에 대한 자부심만은 항상 간직해왔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호남인들의 정치적 자부심의 상징이자 옹호자였습니다. 호남의 정치적 자부심의 원천은 정의로운 사회를 향한 열망과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한 투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와 같은 자부심이 요즘 들어서 크게 퇴색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낙연, 인지도는 높지만 열광적 지지는 없다
고상진 평론가는 이 대목에서 잠깐 멈칫하는 기색을 보였다. 본인의 발언이 가져올지도 모를 파장과 후폭풍을 직감적으로 헤아려본다는 데에서 그는 아직도 ‘대변인물’을 완전히 빼지 못한 듯했다.
광주광역시에는 통틀어 8개의 선거구가 있습니다. 지난 4월 15일 선거를 계기로 지역구 전체가 새 인물들로 일제히 물갈이가 됐습니다. 때마침 제가 며칠 전에 광주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택시를 타고 이동하게 되어서 운전대를 잡으신 기사님과 이런저런 말씀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한참 대화를 나누다가 제가 “요즘 광주를 대표하는 정치인이 누구인가요?”라고 여쭙자 기사님께서 갑자기 말문이 막히셨는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민주화의 성지로 불려온 광주에서 새로 금배지를 달게 된 인물들 가운데 단 한 명도 유권자들에게 특별한 효능감을 주지 못하고 있다. 양향자 의원이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가 대중의 구설수에 잠시 올랐을 뿐이다. 인물은 따지지 않고 정당 기호만 보고서 표를 찍는 ‘묻지 마 투표’가 불러온 씁쓸한 후과인 셈이다.
광주만이 아닙니다. 전남에서도, 전북에서도 호남을 뛰어넘어 향후에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할 만한 잠재력을 지닌 기대주나 유망주가 좀체 눈에 띄지를 않습니다. 호남의 대표주자들이 21대 총선을 거치며 전부 사라지고 만 탓입니다. (우울한 말투로) 저는 이 부분이 호남인들에게 나중에 크나큰 상실감으로 돌아올까 봐 몹시 두렵습니다.
호남 일각에서는 ‘이낙연 대망론’으로 그러한 상실감을 메우려는 정서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낙연 대망론’이 아직 깊게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저의 삶의 터전에 자리한 전라북도 지역에 국한해 민심을 전해드리자면 이낙연 의원을 “내 사람이다”라고 여기는 끈끈한 동지적 유대감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단지,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대권주자 중 한 명 정도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역력합니다. 이낙연 의원이 문재인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로서 언론의 조명과 각광을 집중적으로 받은 일이 높은 인지도로 이어졌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전북 분들이 이낙연 의원에게 상대적으로 친근감을 품은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가 꼭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한 수준에까지는 아직 이르지 않았습니다.
고상진 평론가의 견해를 종합적으로 해석하자면 한마디로 ‘인지도=지지도’는 아니라는 뜻이었다.
이재명은 상승세, 이낙연은 하락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대법원 판결에 힘입어 극적으로 기사회생을 했습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전형적인 싸움닭(Fighter)입니다. 이낙연 의원이 대권주자로서 보여준 모습이 뭔가 답답한 고구마였다면, 이재명 지사는 시원한 청량감을 제공하는 사이다 같은 인상을 국민들에게 주어왔습니다. 이재명은 ‘엘리트 대 흙수저’ 구도를 꺼내듯 데서 증명됐듯 본인에게 유리한 전선과 프레임을 형성해가는 능력이 있습니다. 정치적 감각이 본능적으로 매우 탁월하게 발달했습니다. 이재명 지사는 더불어민주당의 본선 경쟁력을 높여주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 지지자들 입장에서는 대단히 고무적이고 긍정적인 순기능적 현상입니다.
고상진 평론가의 극찬이 무색하게 이재명 지사는 더불어민주당의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 무공천과 관련해 이리저리 간을 보는 와중에 국민들의 눈살이 찌푸려질 지경으로 심각하게 갈팡질팡하고 오락가락했다. 그는 사이다는 사이다이되 찐 고구마를 꾸역꾸역 가득 말아 넣은 김빠진 사이다가 갑자기 되고 만 것이다. 공천 여부를 둘러싸고 이재명이 드러낸 무원칙한 우왕좌왕은 파죽지세의 기세로 거침없이 불던 노풍을 한방에 잠재운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정치공학적인 ‘YS 시계 소동’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대선후보 시절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나 작금의 이재명 경기기도지의 사례가 예시하는 바처럼 변방에서 출세하고 성공한 아웃사이더, 곧 비주류가 맞이하는 진정으로 심각한 위기는 그들이 갑옷 입고 싸움터에 나설 때에 오지 않는다. 비단옷을 입고서 밤길을 걷는 건 티가 나지 않는다며 백주대낮에 어설프게 주류로 으스댈 때, 체질에 맞지 않는 인사이더로 행세할 때 닥친다.
이낙연 의원은 혹독한 검증을 받을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철학과 소신에 관해서 이제는 뚜렷하고 분명한, 정확하고 자세한 의견 표명을 해야만 하는 처지입니다. 저는 이 검증 단계에서 이낙연 의원이 이재명 지사와 비교해 조금은 불리한 국면에 놓일 것으로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습니다.
호남의 표심은 반드시 이낙연 카드로 대선을 치러야만 한다는 생각은 아닙니다. 호남은 가능성이 보이는 인물에게는 언제라도 흔쾌히 기회를 부여하고 가능성을 허락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난맥상을 연거푸 드러내자 호남인들은 안철수 대표가 이끄는 국민의당에 제3의 길을 개척해보라며 전폭적인 지지와 성원을 보내줬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국민의당 실험은 안철수 대표의 잘못된 선택으로 말미암아 참담한 실패로 귀결되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해 호남은 더불어민주당 이외에는 달리 선택할 여지가 없어졌습니다.
그러므로 누가 후보로 선출되든 간에 다음번 대통령 선거에서는 호남은 민주당 후보를 밀어줄 수밖에 없는 형편입니다. 저는 이러한 정치지형이 이낙연 후보의 하락세를 오히려 재촉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영남에서 최소한 20~30퍼센트 정도의 득표율을 거둘 수 있는 후보자만이 필승 카드라는 전략적 계산이 여권 내부에서 확산될 개연성 역시 배제할 수 없습니다. 왜냐면 호남 출신인 정동영 후보를 내세워 임한 대선에서 현재의 여당이 톡톡히 쓴맛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낙연 의원은 이러한 ‘정동영 학습효과’를 경계하고 극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이낙연은 최근의 하락세에 조속히 마침표를 찍어야 합니다. 지지율을 다시 상승시킬 수 있는 확실한 반등의 계기를 더 늦기 전에 마련해야만 합니다. (②편에서 계속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