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장인을 폭행해 아내와 결혼한 나쁜 남자
  • 공희준 편집위원
  • 등록 2020-09-11 16:33:50

기사수정
  • 변신과 적응의 리더십 : 알키비아데스 (3)

소년기를 벗어나 청년기에 갓 들어선 알키비아데스는 옳은 소리도 싸가지 없이 한다는 부분에서 참여정부의 황태자로 군림했던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연상시켰다. 그는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새롭게 편집할 능력이 있다고 자랑하는 한 교사에게 다음과 같은 독설을 날렸다.

 

“호메로스의 작품을 업그레이드시킬 재주가 있는 분께서 왜 겨우 애들 상대로 훈장질이나 하고 계십니까?”

 

알키비아데스는 본인의 아내와 관련된 일에선 변명의 여지조차 없는 나쁜 남자였다. 이미지는 미투 폭로에 휩싸인 김기덕 감독의 대표작들 가운데 하나인 한국영화 「나쁜 남자」의 공식 홍보포스터알키비아데스의 무자비한 말폭탄은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터지기 일쑤였다. 알키비아데스가 어느 날 페리클레스를 만나러 갔는데, 그의 유명한 친척이 아테네 시민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해명할 방법을 고민하느라 방문객과 면담할 시간이 없다는 실망스러운 대답이 하인을 통해 돌아왔다. 그러자 알키비아데스는 페리클레스가 너무나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끌끌 차며 이렇게 빈정거렸다.

 

“나 같으면 시민들에게 내 입장을 해명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연구했을 거라고 삼촌께 전해주시게.”

 

고대 그리스 세계는 크고 작은 전쟁의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신체건강한 자유인 남성들은 아주 어리거나 완전히 늙어버린 경우를 제외하면 수시로 전장으로 출동해야만 했다.

 

소년병 시절의 알키비아데스가 포티다이아 원정에 참전했다가 부상을 입고 땅바닥에 쓰러지자 그의 목숨을 지켜준 사람은 중장보병대의 일원으로 종군한 소크라테스였다. 소크라테스는 새내기 병사인 알키비아데스가 적의 대군에 맞서서 얼마나 용맹하게 분투했는지를 직접 증언해줌으로써 그의 애제자가 무공훈장까지 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나중에 기병으로 복무하게 된 알키비아데스는 델리온 전투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소크라테스를 적군의 칼날로부터 보호해줌으로써 생명의 은인의 은혜에 보답하였다.

 

알키비아데스가 히파레테와 결혼에 이르는 과정은 선데이서울에나 나왔을 법한 엽기 그 자체였다. 히포레테의 아버지 히포니코스는 아테네의 저명 인사였다. 그는 재력에서도, 권세에서도 남들에게 전연 꿀릴 게 없었다. 알키비아데스는 그런 히포니코스의 얼굴을 순전히 재미로 때렸고, 황당한 폭행사건의 소식이 곧바로 도시 전체로 퍼진 탓에 이 당돌하고 발칙한 젊은이는 사회적으로 매장당할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

 

무례함에서는 남부럽지 않게 살아온 알키비아데스조차 이번 사건의 파장이 적잖이 걱정이 되었는지 이튿날 아침 일찍 피해자의 집을 방문해 입고 있던 갑옷을 벗은 다음 히포니코스에게 분이 풀릴 때까지 자기 등을 채찍으로 실컷 때려달라고 애걸복걸하다시피 간청했다.

 

히포니코스도 보통 사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는 이 순간이야말로 아테네 최고의 전도유망한 청년을 사위로 삼을 수 있는 천재일우의 호기라고 판단하고는 가해자를 일단은 무조건 용서했다. 그리고 딸인 히포레테를 알키비아데스에 몇 년 후 시집 보냈던 것이다. 코가 꿰인 알키비아데스로서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일설에는 히파레테의 오빠이자 히포니코스의 아들인 칼리아스가 여동생과 알키비아데스의 여동생의 혼인을 중매했다고도 하는데, 칼리아스가 매제에게 전 재산을 뺏길 게 두려워 그가 만약 자식 없이 죽으면 유산 전체를 사회에 환원하도록 유언을 남긴 사실을 고려하면 알키비아스와 히파레테의 결혼이 성사되는 데에는 아무래도 장인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히파레테는 완벽한 아내였다. 문제는 알키비아데스가 남자들끼리의 사회생활에 필요하다는 구실로 화류계 여성들과의 끈끈하고 부적절한 관계를 유부남이 된 이후에도 고집스럽게 유지해갔다는 점이었다. 히파레테는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라 친정으로 돌아갔다. 그럼에도 남편의 방탕한 사생활은 계속되었다. 그녀는 더 이상의 결혼생활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는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아테네의 가족법에는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한 여성이 법정에 직접 출두해 결혼에 종지부를 찍기로 결심한 사유를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진술하도록 명문화돼 있었다. 알키비아데스는 재판이 열리는 날, 법정에 때맞춰 나타나 아내를 어깨 위에 들쳐 메고는 유유히 집으로 향했다. 이혼을 원하는 아내를 법정에서 당당하게 보쌈을 하는 행동은 아테네에서는 일종의 관습법이었다. 히파레테는 이후로는 이혼을 요구하지 않았지만 마음고생은 여전했는지 남편이 에페소스로 여행을 간 사이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무슨 핑계와 변명을 둘러대건 아내에 관한 일에서라면 알키비아데스는 아무리 욕을 먹어도 싼 그야말로 나쁜 남자였다.

 

나쁜 남자로서의 알키비아데스의 면모는 말 못하는 동물을 대할 때에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그는 적잖은 돈을 주고서 시장에서 사온 개의 꼬리를 뎅강 잘라냈다. 사람들이 그를 무슨 짓이든 저지를 수 있는 위험한 인간이라며 두려워하도록 만들려는 목적에서였다. 멀쩡한 개꼬리를 자른 일은 한마디로 쓸데없는 짓이었다. 장인 될 사람을 폭행해 아내를 얻게 된 희대의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한 것을 계기로 알키비아데스가 무슨 짓이든 저지를 인간이라는 인식은 아테네 사회에서 이미 불문율 비슷하게 확고히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온갖 기행과 악행의 주인공인 알키비아데스였지만 그는 엄숙한 분위기에서 공적인 자리에 서기를 바랐다. 때마침 기부금을 모으는 민회가 열렸다. 그는 바로 지금이 시민들에게 선량하고 인정 많은 본인의 진면목을 과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계산하고서 기부금을 내기 위해 연단으로 나아갔다. 기부를 마치고 단상에서 내려오려는 찰나, 그가 옷 속에 품고 있던 메추라기가 갑자기 날아올랐다. 아마도 알키비아데스의 저녁밥상에 올라갈 용도의 날짐승이었던 듯싶다.

 

신성한 민회 현장에 메추라기가 느닷없이 출현하는 기이한 광경이 빚어지자 어떤 사람들은 “메추라기가 왜 거기서 나와?”라며 손뼉을 치면서 박장대소했고, 어떤 사람들은 도망가려는 메추라기를 잡으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이때 메추라기를 잽싸게 잡아서 미래의 주군의 체면을 약간이나마 살려준 안티오코스를 알키비아데스는 측근으로 각별히 중용하게 된다.

 

데뷔 무대에서 스타일이 구겨질 대로 구겨지기는 했으나 알키비아데스의 공직경력이 앞으로 탄탄대로를 달리리라는 데에는 그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신분, 재력, 그리고 결정적으로 개인 역량의 모든 측면에서 알키비아데스는 아테네 발군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서양의 고대 민주주의는 인간의 피와 더불어 사람의 말(言)을 먹고 자랐다. 그러므로 위대한 정치가의 반열에 등극하려면 빼어난 연설 솜씨를 갖춰야만 했다. 아테네의 역사를 통틀어 단연 최고의 연설가는 데모스테네스(BC 385~322)였다. 데모스테네스는 알키비아데스의 입이 그 머리를 따라가지 못했다고 평가하였다. 상황파악은 재빨랐으나, 상황에 적합한 어휘와 표현을 찾아내는 데는 비교적 긴 시간이 걸렸던 알키비아데스의 특성을 고려한 촌평이었다. 이로 말미암아 정치인 알키비아데스는 행동은 적극적이되, 말은 신중한 인물로 분류되었다.

 

흥미롭고 역설적인 대목은 테모스테네스는 실력이 언변을 뒷받침하지 못한 경우였다는 것이다. 그의 영도를 받은 아테네가 신흥 강국 마케도니아와의 싸움에서 말로 이뤄진 메시지 전쟁에서는 이겼지만, 실제 무기로 치러진 진짜 전쟁에서는 완패하고 만 까닭이었다.


관련기사
TAG
1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서초구
국민신문고
HOT ISSUE더보기
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경기도는 취득신고된 과세자료 기준으로 분석한 2022년 연간 부동산 거래동향 및 현실화율 분석 결과를 1일 공개했다. 현실화율은 공시가격이 실거래..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다음(Daum), 제21대 대통령 선거 특집페이지 개편…유권자 맞춤 정보 강화 포털 다음(Daum)이 제21대 대통령 선거 특집페이지를 업데이트하며, 유권자 중심의 정보 제공과 실시간 선거 대응을 강화했다고 14일 밝혔다.카카오의 콘텐츠CIC가 운영하는 포털 다음(Daum)은 오는 6월 3일 실시되는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특집페이지에 유권자 참여 기능과 후보자 정보를 대폭 강화했다고 밝혔다. 이번 개편은 `다음을 만...
  2. 도심 광장에서 즐기는 생활체육…‘운동하는 서울광장’ 15일부터 시작 서울시는 오는 5월 15일부터 6월 26일까지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서울광장에서 생활체육 프로그램 ‘운동하는 서울광장’을 운영한다고 13일 밝혔다. 올해로 3년 차를 맞은 이 행사는 시민 누구나 도심 속에서 운동을 즐기고 활력을 되찾을 수 있는 대표적인 시민참여형 체육축제로 자리잡고 있다.올해 프로그램은 총 10회에 걸쳐 진행되...
  3. 서울시, 상암 자율주행 시범지구에 3D 정밀도로지도 구축 시동 서울시는 오는 7월 말까지 마포구 상암동 자율주행 시범운행지구 20km 구간에 3차원 디지털 기반의 ‘서울형 자율주행 정밀도로지도’를 시범 구축하고, 이를 민간에 개방하겠다고 13일 밝혔다.정밀도로지도는 서울시가 자체 개발한 디지털트윈 플랫폼 ‘S-Map’을 기반으로 제작되며, 자율주행차의 안전하고 정밀한 운행을 위한 .
  4. 산업부, 국내 업계와 국내 설비투자 및 대미국 통상 대응 동향 점검 이승렬 산업통상자원부 산업정책실장은 5월 16일(금) 「제3차 산업정책 민관협의회」를 개최하여, 반도체, 자동차 등 11개 주요 업종협회와 함께 올해 국내 설비투자 진척 현황 및 대미국 통상 대응 동향을 점검했다.이날 협의회에서 국내 투자현황을 점검한 결과, 지난 「제5차 산업투자전략회의(2.12)」에서 집계된 올해 119조원의 투자계획은...
  5. 양천구, 거미줄 전선 걷고 안전 더한다…공중케이블 42㎞ 정비 양천구(구청장 이기재)는 전신주, 건물 등에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 도시 미관을 저해하고 보행자 안전을 위협하는 공중케이블을 본격 정비한다고 16일 밝혔다.이번 정비 구간은 지난해 말 정비구역 수요조사를 통해 선정된 목1동, 신정2동, 신정4동 일대 6개 구간으로, 해당 지역은 골목길 사이에 난립한 공중케이블 정비 요구가 꾸준히 ..
  6. 국토부 "안심전세 꼼꼼이, 또래 청년들 전세계약의 든든한 길잡이 되어야" 진현환 국토교통부 제1차관이 5월 16일 오후 `안심전세 꼼꼼이` 발대식에 참석해 청년 서포터즈들에게 위촉장을 수여하고 활동을 격려했다.`안심전세 꼼꼼이`는 전세사기 예방 홍보 활동을 목적으로 한 청년 서포터즈로, 이날 발대식에는 선발된 전국 대학(원)생 33명과 `안심전세 꼼꼼이` 홍보대사인 인플루언서 허성범이 함께 참석했다. 이..
  7. 박상우 장관, "해외건설 2조 달러 시대로 도약하기 위한 변화와 혁신" 강조 국토교통부(장관 박상우)와 한국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사장 김복환), 해외건설협회(협회장 한만희)는 5월 16일(금) 오전 서울에서 「해외건설 2조 달러 조기 달성을 위한 대토론회」를 개최하고, 업계 및 학계 전문가, 관계기관 등과 함께 해외건설산업이 나아갈 방향을 논의했다.우리나라는 올해로 해외건설 60주년을 맞이했으며, 2024.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