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방문해 52년 만에 북악산 북측로 일부 구간을 개방한 데 대한 관심은 뜨거웠다. 4일 오전 북악산 탐방로는 청소년부터 어르신까지 찾아온 시민들로 북적였다. 산책로 중간에서 통제하는 군 관계자들에게 개방한 구간에 대해 물어보는 탐방객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지난 1일 정부가 시민들에게 개방한 구간은 청운대와 곡장 사이 통행로다. 성곽 안쪽 목재로 만든 출입문의 자물쇠는 열고, 바깥쪽 철조망은 거둬냈다.
북악산 북측 탐방로에선 남북 간 교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1968년 1월 21일 북한 124부대 소속 김신조 등 31명은 청와대 습격을 목적으로 서울에 침투했다. 경찰과 교전 후 북악산과 인왕산으로 도주했고, 그 당시 우리 군경과 교전했던 총탄 자국이 일부 소나무와 성벽에 남았다.
14일간 이어진 전투 끝에 31명 중 28명은 사살됐으며, 2명은 도주했다. 1명은 생포했는데 그가 바로 김신조 씨다. 김 씨는 이후 한국으로 귀순해서 개신교 목사로 생활하고 있다. 그는 지난 1일 JTBC와의 인터뷰에서 “서울에서 제일 경치가 좋은 곳이 북악산인데 나로 인해 (폐쇄된 것에) 늘 미안한 마음을 가졌었다. 빨리 풀렸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지금도 군사적 긴장감은 여전하다. 시민들은 탐방객을 구분하기 위한 출입증을 목에 걸고 다녀야 한다. 군사시설은 해당 방향으로 촬영을 금지한다는 경고문과 함께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군 관계자는 직접 “CCTV 쪽을 촬영하면 안 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탐방로를 걷다 보면 시민들이 정치를 주제로 나누는 대화도 종종 들을 수 있다. 이승만, 전두환 등 역대 대통령 평가부터 미국 대선 결과 예측까지 다양하다. 북악산에 남아있는 역사의 숨결은 그들의 대화에서 정치를 이끌어 내고 있었다.
1968년은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1968년은 세계, 그리고 한국 현대사의 시대적 흐름을 결정짓는 상징적인 해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미국의 베트남 침공' 반대 운동이 68혁명의 목소리가 되어 전 세계에서 울려 퍼졌다. 반전의 메시지는 권위주의, 성차별 등 '모든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으로 확장되어 이후 유럽과 북미, 일본 등의 사회 문화를 변혁시켰다. 정치 권력의 전복이 없었음에도 혁명으로 불리는 이유다. 청년들은 거리에 나와 "금지를 금지하라"고 외쳤다.
그러나 68혁명도 대한해협 만은 건너지 못했다. 반공이라는 국시가 견고하게 방어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베트남전쟁에 지상군을 파병한 유일한 나라다. 이를 견제하기 위해 북한은 끊임없이 공작원을 남파했고 1968년에만 남북 간 무려 308회의 크고 작은 무력충돌이 발생했다. 그해 4월 예비군이 창설됐고 다음 해 교련 훈련이 고등학교 필수과목으로 지정됐다. 반공 웅변대회, 주민등록증 등도 생겨났다. 완전한 병영 사회로 들어서면서, 세계 흐름과는 정반대로 금지와 억압이 강화된 것이다. 이에 68혁명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사라졌다.
5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1968년은 여전히 유효하다. 교련은 사라졌지만, 예비군이 존재한다.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군 용어도 자연스럽다. 위계와 서열화가 바탕이 된 기업, 학교 등의 조직 문화가 군대와 크게 다르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이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개방된 북악산 탐방로에서 1968년의 슬로건을 떠올리다
북악산 북측로가 열렸지만, 폐쇄 구간은 남아있다. 북악산 남측면은 2022년 상반기가 돼서야 개방될 예정이다. 이러한 물리적인 금지와 분리는 우리 현대사를 뒤덮고 있는 이념으로부터 시작된다.
SBS는 9월 24일 예능 방송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 1.21사태를 소개하며 '무장공비'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특정 이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덮어씌우는 그 당시의 관습을 지상파 방송사조차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평화가 없다면, 그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속해있다는 것을 잊었기 때문이다"라는 마더 테레사의 말처럼, 서로를 구분해 두려움과 혐오를 양산하는 이념적 이분법은 평화와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게 한다. 이념으로부터 자유로워져 그 낯섦을 극복했을 때 물리적 장벽들도 무너뜨릴 수 있다.
2020년 11월 개방된 북악산 북측 탐방로에서 1968년 외쳤던 슬로건을 떠올린다. ‘모든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모든 금지를 금지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