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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철희②, “586 정치인들은 큰 그림을 그릴 줄 모른다”
  • 공희준 편집위원
  • 등록 2021-04-16 17: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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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리기만 하고 책임은 지지 않는 자세가 586 세대의 인물난을 불러와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신임 원내대표에 4선의 윤호중 의원이 압도적 표차로 선출되었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최측근으로 불리기도 하는 윤호중 신임 원내대표는 1963년 생으로 전형적인 586 세대 정치인이다. “친문이 586이고 586이 친문”인 구도에서 윤호중 신임 원내대표의 등장은 더불어민주당이 4월 7일 재보궐선거의 참패를 계기로, 혹은 참패에도 불구하고 더욱더 철두철미한 586 정당의 길을 가겠다는 노골적인 대국민 선언인 셈이다.

“586을 위한 586에 의한 586의 정당”으로의 완벽한 진용을 갖춘 더불어민주당이 이후에 어떤 운명으로 치달을지 신철희 여양한강문화연구소 소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 대략적 방향과 진로를 유추해보기로 하자.

586 정치인들, 너무 일찍 선거에만 눈떴다

 

신철희 여양한강문화연구소장은 때 이른 출세는 리더십 부재를 낳는다고 말했다. (사진 김한주 기자)

신철희(이하 신) : 586 세대가 우리나라 정치의 주역으로 부상한 결정적 이유는 그분들이 대학을 다니며 민주화 운동의 주축세력 역할을 했었다는 데 있습니다. 청년 시절에 민주화 투쟁에 선도적으로 참여했다는 사실은 586 세대에게는 자부심의 원천이자 정체성의 뿌리가 돼왔습니다. 국민들은 586 세대의 그러한 공로와 기여를 인정해 해당 세대에 속하는 정치인들에게 선거 때마다 꾸준히 표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민주화 운동을 벌이는 과정에서 권위주의적 사고방식과 위계적 조직문화가 당시의 대학캠퍼스 안에 알게 모르게 퍼져나갔습니다. 전대협 의장으로 웅변되는 학생운동권 지도부를 향한 지나친 경배와 복종심이 자라는 한편에서 여성이나 장애인 같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냉대와 무시가 은연중에 이뤄졌습니다, 그때는 강고한 군부독재 권력과의 비타협적 정면투쟁이 요구되는 시대였습니다. 이런 사실을 감안하면 민주화 세력 내부에서 불합리하고 비민주적인 양상들이 종종 벌어진 데에는 불가피한 측면이 물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부인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습니다. 직업정치인으로 변신한 586 세대 인물들은 아주 이른 나이에 권력투쟁에 눈을 떴다는 부분입니다.

 

공희준(이하 공) : 요즘 젊은 세대가 20대 초반부터 주식 투자와 암호화폐 채굴에 열중하는 것처럼 586 세대는 나이 갓 스물을 넘기자마자 선거판세 분석에 몰두했었습니다. 저도 가끔씩 단과대 학생회실 같은 곳에 가보면 거기 있는 선배들이 허구한 날 하는 짓이 이런저런 학내 선거 앞두고서 학우들 이름에 ○, △, ×표를 치는 일이였거든요.

 

신 : 선거기술을 학습하기에 앞서서 필수적으로 터득해야만 할 진리가 있었습니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성찰입니다. 정치의 한계에 관한 깨달음입니다. 586 세대 정치인들은 그러한 성찰과 깨달음의 과정을 건너뛰고서 곧바로 현실적인 정치공학에 익숙해졌습니다.

 

공 : 1층도 짓지 않은 상태에서 2층부터 올린 셈이네요.

 

신 : 저는 80년대 학번 선배들과도 교류해보고, 그보다 윗세대인 70년대 학번 선배들을 만나보기도 합니다. 두 세대 전부 독재정권과의 치열한 항쟁에 분연히 나섰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양자 간에는 미묘하면서도 의미심장한 차이점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70년대 세대는 문화예술에 관한 조예가 상당히 깊습니다. 다방면으로 관심들이 많고, 이해도가 높습니다. 그러다 보니 포용력도 있고, 인간적인 넉넉함과 따스함도 배어나옵니다. 함께 어울려 철학을 논하고, 문학을 얘기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려는 노력에도 아낌이 없습니다. 마음에 낭만이 넘치고 가슴속에 순수함이 살아 있는 세대입니다.

 

공 : 586 세대는 결이 많이 다를 것 같습니다.

 

신 : 80년대 학번들은 그에 비하면 권력에 대한 욕망과 집착이 굉장히 강합니다. 모든 문제와 사태를 내가 주도할 수 있느냐, 아니면 주도할 수 없느냐의 이분법적 정세분석으로 구분하려는 경향이 짙습니다. 권력의 향방과 주도권의 유무에 매우 예민하다고 하겠습니다.

 

공 : 운동권이 아닌 저조차 학교 다니면서 헤게모니(Hegemony)란 소리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었습니다.

 

신 : 80년대 세대에게 크게 부족한 부분은 또 있습니다. 후배세대를 기르거나 키워야겠다는 생각들입니다. 자신과 다른 견해와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을 이해하려는 노력도 모자라고요.

 

공 : 그 세대가 관용적이지 못하고 유달리 편협하죠. 젊어서 편협했던 사람은 나이 들어서도 역시나 편협하기 쉽더라고요.

 

586 세대에 강력하고 대중성 있는 대권주자가 없는 이유는

 

신철희 소장은 586 정치인들에게 아직도 독자적 브랜드가 없는 현실을 지적했다. (사진 김한주 기자)

신 : 짧은 대학생활은 586 세대에게 장기간에 걸쳐서 정치를 지배하고 사회를 장악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고 정당성을 마련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충실한 준비 없이 권력을 단기간에 획득한 일은 사회에 진출한 586 세대가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고, 정치적 반대자들을 포용하고, 유능하고 책임감 있는 리더십을 발휘하는 일들 모두에서 오히려 오랫동안 장애요인으로 작용해왔습니다. 586 세대는 아주 이른 나이에 이미 각종 장(長)자 직함을 차지했습니다. 리더십을 학습할 기회가 매우 많았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대단히 역설적이게도 대선주자급의 크고 유력한 지도자는 586들 사이에서 좀처럼 출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대중과 김영삼 두 전직 대통령은 구상유취라는 조롱과 빈정거림에 아랑곳하지 않고 40대의 나이에 대권도전을 선언함으로써 철권통치를 일삼고 있던 박정희 정권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에는 「대중경제론」과 「남북한 3단계 통일론」과 같은 자신만의 확고하고 독자적인 정책대안과 미래비전을 국민들 앞에 자신감 있게 선보였습니다. 그는 시대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는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정치지도자였습니다.

 

586 정치인들은 권력투쟁에는 일찍부터 도통했습니다. 반면에 국가를 위한 웅대하고 진취적인 청사진이 보이지를 않습니다. 국민들의 절박한 민생문제를 해결해줄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해법을 개발하겠다는 뚜렷한 소명의식도 별로 발견되지가 않고요. 국가의 진로에 대한 고민이, 국민들의 삶에 대한 관심이 없으니 대중으로부터 무능하고 무책임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공 : 관심이 있어야 노력도 경주하는데, 한국의 출세하고 성공한 586 정치인들은 평범한 국민들이 일상적으로 느끼는 희로애락에 개의치 않고 그들만의 고립되고 폐쇄적인 세계에서 살더라고요. 이건 조선시대 양반 사대부도 아닙니다. 부르봉 왕조 시대 프랑스의 특권층 귀족들이에요. 귀족들!

 

신 : 제가 문재인 정부에서 줄곧 요직을 섭렵해온 내로라하는 어느 586 정치인과 얼마 전에 잠깐 대화를 나누게 됐습니다. 그 짧은 대화를 통해 저는 너무나 길게 갈지도 모를 절망과 실망감을 뼈저리게 절감하고 말았습니다. 그분은 20년 동안 정치권에 머물러온 인물이십니다. 그래서 저는 586 세대가 후배들의 앞길을 너무 오랜 기간 가로막아오지 않았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습니다. 그분은 그러한 시각과 지적에 관해선 큰 이의가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분께서는 “우리는 여전히 목마르다”는 반응을 서슴없이 표출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공 : 아니, 20년 넘게 꿀물을 빨아왔으면서 어떻게 여전히 목마를 수가 있나요? 그건 인간이 아닙니다. 사람의 얼굴을 한 소양강댐이지.

 

신 : 당대표도 586이 해야 하고, 대선후보도 이제는 586 차례라고 하는 식으로 말씀하시는데, 저로서는 더 이상은 대꾸할 말이 없었습니다. (잠시 한숨을 쉬었다가) 586 세대라고 해서 대통령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명백한 전제조건이 따릅니다. 나라의 미래를 새롭게 설계할 수 있는 담대한 화두와 획기적 비전이, 즉 시대정신을 대권도전에 앞서서 국민들에게 분명히 밝혀야만 한다는 점입니다. 제가 웅대한 시대정신을 준비해놨는지 질문하자 그분께서는 아직 고민 중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공 : 나이 환갑이 되어서 뭘 더 고민합니까? 중국 춘추시대의 강태공도 고민은 젊은 나이에 끝냈습니다. 단지 강가에서 낚시하는 시늉을 하면서 오랫동안 기회를 기다렸을 뿐이죠.

 

신 : 아직도 고민하는 중이라는 말씀이 저에게는 아직도 더 해야겠다는 의미로 해석됐습니다. 왜냐면 마치 갓 정계에 입문한 정치신인들처럼 고민하는 모습들을 유수한 586 정치인들이 보여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정치경력 20년이 넘는 분들이….

 

공 : 그런 분들도 일원인 586 세대는 나이 서른에 회고담을 썼더라고요. 고작 나이 서른에. 데뷔하자마자 자기 등번호 영구결번으로 지정해달라고 구단에 요구하는 격이었습니다.

 

신 : 제도권 정치에 20년이 넘도록 종사했는데도 자기만의 고유한 브랜드가 없다는 것을 어떤 국민들이 통 크게 납득하겠습니까? 브랜드는 없으면서 권력의 냄새를 맡는 데만 뛰어나니 사람들이 586을 기득권의 몸통으로, 구태의 본산으로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문제는 586 세대 정치인들이 지향하는 권력이 최고의 자리에 올라가 결단하고 책임지는 공적인 권력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그분들이 추구하는 권력은 자신들보다 강한 사람에게 몸을 의탁한 다음 거기에서 떨어지는 적당한 크기의 파이를 얻어먹을 수 있는 사적인 권력입니다. 끼리끼리 무리를 지어서 세력을 형성해 서로 밀어주고 끌어줄 수 있는 과두제적 권력입니다. 그렇게 무대 뒤편에 숨어서 책임은 지지 않고 오로지 누리기만 해왔으니 이제 전면에 나서서 당대표가 되고, 대선주자가 되어야 하는 단계에 이르자 국민들 앞에 자부심을 갖고서 거리낌 없이 내세울 수 있는 마땅한 인물이 한 명도 없는 지독한 인물난에 586 그룹이 집단적으로 봉착하고 말았습니다.

 

공 : 사람은 많은데 인물은 없는, 영락없는 풍요 속의 빈곤이네요. (③회에서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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