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차량기지의 실상에 대해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는 이것에 분노한다."
지난 3일 광명시가 주최한 구로차량기지 이전 관련 시민토론회는 광명시와 시민들의 온도차만 확인한 자리였다.
시민들은 구로차량기지의 실상을 알게 되면 찬성할 시민이 없을 거라며 이전 반대 이유를 조목조목 따져 지적했다.
밤일마을 원주민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여성은 구로차량기지에 들어서는 시설 등을 일일이 열거하고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등 전문적인 소견을 밝히기도 했다.
구로차량기지 안에는 차량을 정박시키는 시설물뿐 아니라 전력이 들어가는 변전소, 자동세차장치, 차량기지 실외 환풍기 등 각종 기기가 들어선다. 심지어 쇠로 된 바퀴와 레일의 마모된 부분을 깎는 작업도 이루어지는데 이런 작업 과정에서 진동과 소음뿐 아니라 인체에 해로운 유해물질이 발생할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구로차량기지의 토양 오염에 대한 조사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시민들의 해박한 지식에 토론자로 나선 교수조차 놀라움을 표했을 정도다. 김시곤 대한교통학회장은 “오랫동안 교단에서 교통과 관련된 학문을 가르쳐왔다. 이분을 무료로 청강생으로 모시고 싶을 정도”라고 말했다.
시민들은 광명시가 구로차량기지 이전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고 있다고 분노했다.시민의식은 높아졌는데 행정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시민들은 이런 정보 부재의 원인을 ‘정치 노름’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구로와 광명지역 정치인의 실명이 거론됐고 다음 선거에서 심판해야 한다고 목소리도 나왔다.
박승원 시장은 구로차량기지 이전을 위한 선결조건으로 5가지 요구사항을 여러 차례 국토부에 전달한 바 있다. 구로차량기지 친환경 지하화와 구로~노온사동 구간의 5개역 신설 등이 주요내용이다. 광명시는 요구사항이 관찰되지 않으면 구로차량기지 이전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왔고 이날도 비슷한 맥락의 토론이 이어지는 듯했으나 참석한 시민들의 의견은 달랐다. 시민들은 차량기지 자체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시민의식이 더욱 돋보인 것은 박 시장에 대한 청중의 태도였다. 시민들은 분노했지만, 대응은 냉정했다. 박 시장에게 힘을 실어줘 구로차량기지 이전 백지화를 끌어내자고 호응했다.
광명시가 주최한 토론회의 의도가 무엇이든지 간에 박 시장의 입장만 애매해졌다. 5대 요구사항을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밝혀왔는데 느닷없이 반대 입장을 밝혀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몇몇 시민들은 그렇게 하겠느냐고 박 시장에게 묻기도 했다.
박 시장은 토론회 마무리 발언에서 “찬반이 격돌 돼 시민 갈등이 발생할까 봐 걱정”이라며 “국토부가 원하는 것은 주민 분열이다. 하나로 힘을 모아야 한다”면서 갑자기 찬성하는 시민도 있다는 걸 부각했다.
좌장을 맡은 김시곤 회장이 토론회인 만큼 구로차량기지 이전을 찬성하시는 분의 의견을 듣고 싶다며 방청객의 발언을 유도했지만 나서는 이가 없었다.
박 시장은 지방선거에 나서기 직전인 작년 2월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에 임명됐다. 민주당 정책위원회는 당의 강령과 정책을 입안하고, 선거공약 개발과 법률안 등 국회에 제출하는 각종 안건을 심의하는 중앙당의 집행기구다.
자신의 지역구에 들어오는 구로차량기지가 혐오시설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을 위치다. 박 시장과 광명시는 지금이라도 구로차량기지에 어떤 시설물이 들어오고 어떤 이점과 피해가 발생하는지 시민들에게 설명해야 한다. 성숙한 시민에게 합당한 행정서비스가 제공되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