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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키비아데스, 쿠데타를 무산시키다
  • 공희준 편집위원
  • 등록 2020-09-26 18: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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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신과 적응의 리더십 : 알키비아데스 (9)

알키비아데스의 달변과 수완은 장포스 장태완도 막지 못한 군부 일각의 반란 기도를 성공적으로 진압하였다. 이미지는 전두환 신군부 일당의 1979년 12‧12 군사반란을 다룬 MBC 대하사극 「제5 공화국」의 한 장면프리니코스가 아스티오코스에게 귀띔한 내용은 알키비아데스와 티사페르네스의 귀로 고스란히 흘러들어갔다. 알키비아데스는 사모스의 아테네인들에게 프리니코스의 이적행위를 제보했고, 섬 안은 배신자를 성토하는 목소리로 이내 들끓었다. 아직도 사태 파악이 되지 않은 프리니코스는 왜 자꾸만 비밀이 새어나가느냐고 아스티오코스에게 짜증을 부리며 사모스에 배치된 모든 아테네 군선들과 거기에 승함한 승무원들을 즉각 인도하겠다고 스파르타 해군의 총수에게 은밀하게 통지했다.

 

아군의 함대를 적국에 넘기려는 프리니코스의 모반 계획은 그의 뜻대로 성사되지 못했다. 이번에도 사전에 정보를 입수한 알키비아데스가 사모스의 아테네 사람들에게 음모를 까발렸기 때문이다. 프리니코스는 아스티오코스와 티사페르네스, 그리고 알키비아데스 3인이 이른바 아삼육 관계임을 그제야 눈치 챘다.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격이 돼버린 프리니코스는 전군에 비상경계 태세를 발령하고는 스파르타 함대의 사모스 침공에 대비할 것을 부랴부랴 지시했다.

 

그때까지도 아테네 사람들은 프리니코스가 적군과 내통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를 못했다. 프리니코스의 일거수일투족을 고변해온 알키비아데스는 이미 페르시아에 투항한 터였다. 그들 입장에서는 프리니코스를 제거하려는 목적으로 적들이 합심해 꾸민 음흉한 이간계가 진행 중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가 없었다.

 

하늘의 그물은 성글기는 해도 빠뜨리는 법은 없다고 한다. 세월이 흐른 뒤 프리니코스는 그의 휘하에서 최전방 초병으로 복무했던 헤르몬에게 백주대낮에 칼에 찔려 살해당했고, 아테네의 시민들로 구성된 배심원단은 살인범에게는 무죄를, 피살자에게는 유죄를 각각 내리는 정의로운 판결을 재판에서 선고했다.

 

참주정의 귀결점은 공포와 폭정이고, 중우정의 종착역은 혼란과 무질서이다. 후세의 사가들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명명한 스파르타와의 소모적인 장기전을 치르던 아테네는 중우정의 정점으로 부지런히 치닫는 중이었다. 따라서 아테네의 정치에는 기준도, 일관성도 없었다. 얄팍한 이해관계를 좇아 순식간에 편이 바뀌는 무원칙한 이합집산이 거듭되었다.

 

사모스에는 알키비아데스를 추종하는 패거리가 만만찮은 숫자로 생겨났다. 이들은 페이산드로스를 아테네에 파견해 민주정을 전복시킨 다음 5천 명의 부유한 시민들로 이뤄진 과두정을 수립하도록 했다. 알키비아데스가 실제로는 4백 명 정도의 규모에 지나지 않았던 이 ‘5천인회(五天人會)’를 지지한 이유는 그가 망명해 있는 페르시아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를 편들어주는 대가로 현존하는 민주정체의 타도를 촉구한 데 있었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고, 민주정을 몰아내고 들어선 귀족적 과두정은 알키비아데스와의 바람과 달리 스파르타와의 전쟁에 별로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민주정이 무너지고 귀족정권이 등장한 아테네가 왕정인 스파르타와 굳이 대립각을 세울 필요가 없다고 5천인회의 지도부가 판단한 탓이었다. 알키비아데스로서는 또다시 동포들로부터 뒤통수를 얻어맞은 셈이다.

 

알키비아데스가 얼얼해진 뒷머리를 처량한 심정으로 어루만지고 있을 즈음 사모스는 불온한 기운으로 흘러넘쳤다. 새로 집권한 과두정이 스파르타에 대해 유화노선을 취하는 데 격분한 수병들이 공공연히 반란을 부르짖으며 항구의 군함들을 전부 긁어모아 본국인 아테네로 쳐들어갈 기세였기 때문이다.

 

서구에서는 수병들이 자유주의적 이념 성향을 전통적으로 띠어왔다. 육군이 보수적이라면, 해군은 상대적으로 진보적이었다. 집채만 한 파도가 수시로 몰아치는 망망대해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자연스럽게 형성된 끈끈한 유대감과 수평적 동지의식이 뱃사람들을 민주주의에 친화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간 덕분이다. 1917년의 러시아 2월 혁명의 발발과, 1918년 11월의 독일 제국의 급작스러운 붕괴에서 수병들이 중요하고 선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된 연유이자 배경이다. 이들의 정신적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페르시아 전쟁과 펠로폰네소스 전쟁 시기에 지중해를 주름 잡은 아테네 해군이 있었다.

 

기성 권력을 뒤엎는 반역이 성공하려면 유능한 지도자의 결단과 조율이 존재해야만 한다. 사모스의 아테네 수병들은 알키비아데스에게 밀사를 보내 자신들을 통솔하는 장군이 되길 부탁하면서 만약 필요하다면 강력한 독재자로서의 전권을 행사해도 좋다고 제안해왔다. 그러므로 아테네는 민주주의의 원산지인 동시에 보나파르티즘(Bonapartism)의 발원지이기도 했다. 보나파르티즘은 우리가 보통은 ‘나폴레옹’이라고 부르는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의 경우에서처럼, 군부의 실력자가 혁명을 보위한다는 구실 아래 군사독재 정권을 세우는 방향으로 혁명의 전개과정이 타락하는 사태를 가리키는 정치학적 용어이다.

 

이 대목에서 플루타르코스는 알키비아데스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극찬했다. 귀국해 “민주주의를 지키는 독재자”가 되어달라는 대중의 요구를 알키비아데스가 일언지하에 거절한 까닭에서였다. 알키비아데스에게 SOS 신호를 황급히 타전한 대중은 평범한 일반대중이 아니었다. 아테네 군사력의 주축인 함대를 실질적으로 통제하는 중무장한 수병들의 집단이었다.

 

알키비아데스는 아테네 군대가 아테네를 공격하면 안 된다고 수병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때로는 간절한 애원조로, 때로는 노골적인 협박조로 설득했다. 목소리 크기로 유명한 웅변가였던 트라시불로스가 그를 수행하면서 인간 확성기 노릇을 자청했다. 아테네가 자중지란의 내전에 휩싸이면 주적인 스파르타가 그 틈을 이용해 에게 해 주변의 주요한 섬들과 핵심 도시들을 손쉽게 어부지리로 차지하고 말 것이라는 우려 섞인 논리와 전망이 병사들의 유혈 쿠데타를 차단하는 데 주효했음은 물론이다.

 

그를 버린 조국의 패망을 막으려는 알키비아데스의 활약상은 종횡무진의 동선을 그려나갔다. 그는 사모스 섬의 아테네 수병들을 진무하는 작업이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기 무섭게 페르시아 땅으로 다시금 부리나케 건너가 티사페르네스를 접견했다. 페르시아 제국이 스파르타에 임대해줄 페니키아 함대의 라케다이몬 진영으로의 출항을 막기 위함이었다.

 

페니키아의 함선들은 페르시아 해군력의 주축이었다. 이 막강한 전력이 라케다이몬 측에 가세하면 유서 깊은 해양강국 아테네의 파멸과 몰락은 시간문제였다. 플루타르코스는 티사페르네스가 알키비아데스의 의견을 전폭적으로 수렴해 페니키아 함대를 모항으로 귀환시켰다고 그의 대표작에 기록하였다.

 

필자는 실상은 달랐다고 생각한다. 티사페르네스는 19세기 전반의 오스트리아의 재상 메테르니히만큼이나, 19세기 후반기의 독일 총리 비스마르크 이상으로 이이제이 전략에 기반한 절묘한 세력균형 외교정책의 달인이었다. 그는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오래오래 서로 피터지게 싸우기를 내심으로는 원했고, 그러자면 양쪽의 힘이 팽팽한 균형상태를 최대한 유지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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