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는 지난 8월 정부가 발동한 업무개시명령의 행정절차법상 근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헌법 소원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당시 정부의 조치에 대해 ‘적절한 결정’이라는 여론이 많아, 일반 국민을 설득하는 작업도 병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는 8일 오후 2시 용산임시회관 7층 대회의실에서 ‘의료관계법상 업무개시명령의 현황과 문제점’ 토론회를 진행했다.
지난 8월 25일 정부는 의료 정책에 반대하며, 집단휴진을 예고한 의협과 사태 해결을 위한 논의를 진행했지만, 최종 불발됐다. 의협은 예정대로 26일부터 3일간 단체 행동에 들어간다고 밝혔고, 정부는 전공의와 전임의들을 대상으로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이에 의협 의료정책연구소는 의료법을 근거로 하는 업무개시명령에 대해 법적 의문을 제기하고자 토론회를 마련한 것이다.
당시 의협은 업무개시명령에 대해 “의사들의 단체행동권을 부정하는 악법”이라며 “강력하게 저항하겠다”고 했지만, 국민 여론은 정부 결정에 동의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리얼미터가 8월 26일 성인 5765명에게 실시한 조사 결과,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에 대해 ‘진료 공백 우려 방지 등을 고려한 적절한 결정’이라는 응답이 51.0%로 나타났다. ‘일방적 결정’은 42.0%였다.
집단휴진에 대한 여론도 마찬가지였다. 리서치뷰가 8월 28일부터 31일까지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선 ‘의료계가 집단휴진을 중단해야 한다’는 응답이 69%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가 의협 요구사항을 전면 수용해야 한다'는 28%에 그쳤다.
이에 김재현 동남권원자력의학원 교수는 “법적 문제 해소와는 별개로 국민 여론을 어떻게 바꾸냐도 관건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자의적으로 법 해석해 처분 내려”, “응급 상황인지 여부 따져봐야”
이날 토론회에서는 의료법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그러나 “코로나19 상황이 응급 상황인지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 “정부가 극단적 사회민주주의 국가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의료법 개정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등의 발언은 국민 여론과 동떨어진 인식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김용범 법무법인 오킴스 변호사는 “의료법 59조에서 국민 보건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할 ‘우려’에 대해선 어떠한 참고할 만한 기준이 없다”며, “보건복지부는 처분서에 의견 제출 방법이나 기한에 대해 제시하지 않았고, 이유 제시도 한 문장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그는 “해당 병원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관계 파악 없이 막연한 우려만 가지고 명령을 했다는 점에서 처분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며 “행정청이 편의를 위해 자의적으로 법을 해석해서 처분을 내렸다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형선 의료정책연구소 법제도 팀장은 “유럽에서의 의사 파업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단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지만, 이를 범죄화하는 법도 없을 뿐만 아니라 형사처벌도 없다”면서 “문재인 정부가 극단적 사회민주주의 국가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의사의 단체 행동을 범죄화하는 의료법 개정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기영 경희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현재 상황이 국가 재난 상황인지에 대한 해석의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독일, 프랑스 등에서 의사의 응급의료의무 등 윤리 규정에서 재난 상황에 대한 협력 의무는 있지만, 국가가 통제 가능한 응급상황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우리나라 현재 상황이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응급 상황인지 여부는 해석의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