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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일자리를 묻다①] ‘취업 실패’ 악순환에 빠진 청년들··· “31살 전엔 일하고 싶어”
  • 안정훈·서진솔 기자
  • 등록 2020-12-04 15:5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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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활비 빚지고, 모임은 회피··· 자신감·의욕 상실에 취업난 스트레스까지
청년 일자리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10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청년층(25~39세) 취업자는 771만3000명으로 1년 전보다 33만2000명 감소했다. 2009년 이후 가장 가파른 감소세다. 체감 실업률은 24.4%에 달했다. 취업에 성공해도 계약직, 발령 대기 등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서남투데이>는 이러한 상황에 놓여 있는 청년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일상과 고충을 전하고,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 정책을 소개한다. 이어 대안 및 해법도 제시한다.

권기준씨가 <서남투데이>와의 인터뷰를 진행한 2일 서울 소재 한 스터디 카페에서 이력서를 작성하고 있다. (사진=서진솔 기자)11월 29일 권기준(30)씨는 전기기사 자격증 실기시험을 치렀다. 10월에 떨어진 시험을 다시본 것이다. 필기시험 다음날인 8월 23일부터 매일 오전 10시에서 나와 밤 10시까지 스터디카페에서 공부를 했다. 고용노동부 국비 지원을 받아 학원에서 수업을 받으며 필기를 준비했고, 실기시험은 독학했다.

 

그는 대학에서 전기·전자공학을 전공했지만 2018년 1월부터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전공과 상관없는 ERP 관련 중소기업에서 근무했다. 전공 수업을 들으면서 적성과 흥미에 맞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ERP(전사적자원관리)란 기업 내 생산, 물류, 재무 등 경영 활동 프로세스들을 통합적으로 연계해 관리해 주는 시스템을 말한다. 

 

권씨는 “대학에서 해당 프로그램 관련 수업을 들었던 적이 있어 (일을) 하게 됐다”며, “진입 장벽이 낮고, 실력만 있으면 취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회사 시스템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워 2019년 5월 퇴직을 선택했다. 

 

2015년 OECD 조사에서 한국 대졸자의 전공과 직업 간 미스매치는 5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조사한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비율이다. 이에 한국개발연구원은 지난 6월 보고서를 통해 그 요인으로 ▲소득 등 노동시장에 관한 불충분한 정보, ▲전공 선택 시기의 획일성 등을 꼽았다.

 

구직 기간은 권씨가 생각한 것보다 길어졌다. 퇴직 직후 한동안 해외여행 등을 다니면서 쉬었지만, 얼마 못 가 생활 자금이 부족해졌다. 중소기업에 이력서를 넣고 면접도 봤지만 연달아 떨어지면서 의욕을 잃었다. 그러던 올해 6월 변전소에서 일하는 친구가 전기기사 자격증을 추천했다.

 

그가 현재 가장 어려움을 겪는 부분은 단연 생활비다. 일할 때 모아놨던 월급과 퇴직금은 이미 모두 소진했고, 결국 가족들에게 돈을 빌렸다. 지난달 16일 구인구직 매칭플랫폼 사람인이 발표한 ‘구직자 1989명 대상 부채 현황 조사 결과’에 따르면, 33.8%가 '빚을 지고 있다'고 답했다. 용도는 '교통비, 식비 등 생활비'가 37.5%(복수응답)로 가장 많았다.

 

또, 같은 달 사람인이 구직자 2321명에게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59.8%가 ‘취업 활동 중 은둔형 외톨이로 지낸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이유(복수 선택)로는 ▲의욕이 없어서(37%) ▲경제적 여건이 어려워서(24%) 등이 꼽혔다. 권씨도 이 같은 결과에 공감했다.

 

그는 ”친구들 모임도 한동안 안 나가니까 (시험이 끝나도) 불러주지 않는다. 시험만 보고 공부했는데 끝나니까 결과가 나올 때까지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며, ”경제적인 부분이 어렵다 보니 모든 부분에서 위축된다. 신세 지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는 편이고 친구들도 별로 신경 안 쓰지만, 또 얻어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어느 순간 만남 자체가 부담”이라고 말했다.

 

그는 31일 전기기사 자격증 합격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2000년 이후 합격률이 6%부터 47%까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변수는 많다. 합격하면 한국전력공사 협력업체나 변전소, 건물 전기실 등 관련 업체 취업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붙었으면 좋겠죠. 자격증 시험에서 떨어져도 무슨 일이든지 해야할 것 같아요. 알바라도 해야죠. 일하면서 다시 자격증 준비하려고요.”

 

코로나19에 늦어지는 재취업··· “한없이 우울해져, 버티기 힘들다”

 영상편집 업무를 하던 정진우씨는 지난 2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이후 약 10개월여간 일을 구하지 못했고, 결국 해당 분야에서 취업하기를 포기했다. (서남투데이 자료사진)

영상편집 업무를 하던 정진우(가명·30)씨는 지난 2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이후 약 10개월여간 일을 구하지 못했다. 지난 10월 취업에 성공했으나 적응을 하지 못해 한 달 만에 다시 직장을 그만뒀다. 자신의 전공 분야가 아니었던 탓이다.

 

코로나19와 퇴직 시기가 겹치면서 극심한 구직난에 시달렸다. 영상편집 분야는 업무 강도가 고된 만큼 늘 구인 수요가 있었으나, 코로나19 이후 그것도 옛말이 됐다. 그는 “2월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둘 때만 해도 경력이 있어서 금방 이직할 수 있을 줄 알았다”며, “하필 코로나19가 타이밍 안 좋게 터졌다”고 말했다.

 

정씨는 ‘취업이 많이 어려운 상황이냐’는 질문에 홈페이지 게시판 사례를 들었다. 코로나19 확산 전에는 영상편집 전공자 온라인 카페 구인 게시판에 공고가 올라오면 하루 만에 2, 3페이지로 밀려났지만, 지금은 1주일이 지나도 1페이지에 있다는 것이다. 영상편집 분야의 취업문이 얼마나 좁아졌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취업 준비를 하는 동안 그를 가장 괴롭힌 것은 불안감과 우울함이었다. 장기간 이어진 취업실패는 그에게 자신감을 앗아갔다. 자신감이 사라지자 취업에 대한 의욕도 사라졌다. 악순환의 반복인 것이다.

 

지난달 29일 사람인이 구직자 2187명을 대상으로 ‘하반기 체감 구직난’을 조사한 결과, 85.9%가 ‘구직난이 심화됐다’고 답했다. 또, 미취업 청년층 92.9%가 취업에 대한 두려움까지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구직자의 97.1%는 취업난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며 이들 중 85%는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도 겪고 있다.

 

정씨는 “코로나19 이후 도서관도 문을 잘 안 연다. 집에서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한없이 우울해 진다”면서, “배출구가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토로했다.

 

최근 정씨가 가진 유일한 취미는 운동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낮을 때는 헬스장에서, 거리두기가 격상된 후에는 집에서 꾸준히 하고 있다. 건강문제와는 별개로 취업 준비과정에서 상실한 자신감을 회복할 탈출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는 “운동은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어쨌든 직접적인 효과가 드러난다. 내가 뭔가 하고 있고, 이루고 있으며 나아지고 있다는 게 보여야 할 것 같았다. 그게 아니면 버티고 있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정씨는 결국 영상편집 분야에서 취업하기를 포기했다. 고용불안과 취업 실패가 장기간 일어나면서 그 분야에 대한 자신감과 확신을 잃은 것이다.

 

“사실 아르바이트든 어떤 일이든, 한번 시작하면 ‘잘한다’는 칭찬을 받았어요. 영상편집 업무에도 감각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런데 내가 이 길을 선택한 게 옳은가. 늦기 전에 다른 일을 해야 하는가를 많이 고민하게 됐습니다.”

 

이력서 50개씩 넣어도··· “직장인-취준생 차이에 비참해”

 지난달 29일 사람인이 구직자 2187명을 대상으로 ‘하반기 체감 구직난’을 조사한 결과, 85.9%가 ‘구직난이 심화됐다’고 답했다. (자료=사람인 제공)

”올해는 취업해야죠. 이번 면접 결과가 안 좋더라도 31살이 되기 전에 작은 회사에서라도 일하고 싶어요. 돈 벌기 시작하면 부모님이나 친구들한테 신세 졌던 것도 갚아야죠.”

 

지난달 27일 양상민(가명)씨는 올 하반기 7번째 면접을 봤다. 영업직부터 구매, 경영지원, 인사까지 등 직종, 기업 불문 약 50개의 이력서를 제출했다. 6개월마다 50개 정도의 이력서를 쓰고 있지만, 면접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10% 내외이며, 합격 소식은 묘연하다. 

 

그가 본격적으로 취업에 나선 지는 올해로 3년째다. 고등학교 졸업 후 중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이후 군 복무를 마친 뒤 구직 전선에 뛰어들었다. 대학에선 경제학을 전공했다. 적성에 맞지 않았고, 전공과 무관한 직무에 이력서를 제출하고 있다.

 

현재 양씨가 취업의 걸림돌로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나이’다. 그는 다음 달이면 31살에 접어든다. 올해가 취업할 수 있는 마지막 시기라는 두려움과 절박감으로 면접, 필기시험 등을 준비하고 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자체 조사 결과들을 종합한 결과 2018년 대졸 신입사원 평균 나이는 30.9살로 집계됐다. 여기에는 취업 후 다시 신입으로 입사하는 중고신입이 늘어나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양씨는 주로 스터디그룹에서 입사시험을 준비한다. 인터넷 취업 카페나 취업 포털 사이트를 통해 직군별, 기업별로 5, 6명이 모여 자기소개서를 공유한다. 면접관과 면접자로 역할을 나눠 모의 면접을 진행하고, 기업별 기출 문제를 활용해 필기시험을 준비한다.

 

그 과정에서 다른 구직자들에게 아쉬움을 느끼기도 한다. 적은 TO를 가지고 경쟁하기 때문에 견제가 이뤄지는 것이다. 그는 “목적을 가지고 남들 정보는 열심히 끌어내고 본인은 대충 말하다가 가는 사람도 있다”면서 “다 같이 잘 되자고 만난 취준생들끼리 그래야 하나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같은 회사-다른 직무, 같은 직무-다른 부서 지원자끼리 스터디를 만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지난 7월 취업포털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취준생 112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취업 스터디’ 설문 조사 결과를 보면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스터디 민폐 꼴불견 유형(복수응답)으로는 남의 정보를 공유받고 자기는 입을 꾹 닫는 ▲정보 먹튀형(42.9%), 준비나 기여 없이 참여해서 필요한 정보만 빼가는 ▲무임승차형(37.2%)이 각각 1, 2위로 꼽히기도 했다.

 

연애, 결혼, 가족 등을 주제로 한 대화에선 ‘N포 세대’라고 불리는 청년의 고충을 들을 수 있었다. 양씨는 “결혼이나 앞으로 미래를 꾸려나갈 수 있을까에 부담감이 있다”며, “가족들은 티 내려고 하지 않지만 걱정하는 게 느껴져서 더 눈치가 보이고 미안하다. 가끔은 카페 같은 곳에 나가 있기도 한다”고 말했다.

 

중국집 서빙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최근 코로나19로 식당 손님이 많이 줄어서 일을 쉬는 경우가 잦아졌다. 알바와 취업을 병행하다 보니 일정이 겹쳐서 일을 못 하면 다시 경제적 어려움에 빠지는 악순환에 빠지기도 한다. 현재 그에게는 연애도, 친구와의 만남도 부담스럽다. 

 

“경제적으로 부담되고, 주변의 시선도 신경 쓰이죠. ‘나이가 30살인데 취업은 안 하고 연애나 하냐’고 핀잔을 주는 친구도 있어요. 친구들 회사 얘기에 동조하지 못할 땐 사회생활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죠. 취준생과 회사원의 차이에 비참한 기분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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