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크라수스, 상인의 현실감각을 과시하다
  • 공희준 편집위원
  • 등록 2020-06-15 14:58:44

기사수정
  • 돈으로 산 황금만능의 리더십 : 크라수스 (4)

크라수스는 상인적 현실감각에 기초해 주판알을 튕길 줄 알았다. 그의 존재는 공화국 말기 로마에 평형수가 됐다. (이미지출처 : 크라우드픽)

돈 잘 버는 사람들로부터 흔히 발견되는 공통분모가 있다. 시기심이 매우 강하다는 점이다. 폼페이우스는 크라수스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화려한 개선행진을 로마 시내에서 벌였다. 게다가 ‘마그누스’라는 명예로운 이름까지 얻었다. 우리말로 옮기면 ‘위대하다’는 의미였다.

 

“지가 위대하면 얼마나 위대하다고….”

 

폼페이우스의 나날이 치솟는 성가에 대한 크라수스의 냉소적 반응이었다. 폼페이우스와 관련된 얘기만 나오면 크라수스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입을 삐죽거리며 수시로 말꼬리를 붙잡는 투덜이 스머프가 되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크라수스는 뒤에서 불평불만만 늘어놓는 소심하고 수동적인 성격은 아니었다. 그는 진취적 자세로 자신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살려나갔다. 폼페이우스의 강점이 용감무쌍한 대담함에 있다면, 크라수스의 특장은 살가운 붙임성에 존재했다. 그는 특유의 넉살과 친화력을 십분 발휘해 법조계와 비즈니스 분야를 양대 무대로 삼아 인맥을 넓히고 대중적 인기를 키워나갔다.

 

반면에 폼페이우스는 전장에서는 거침없이 포효하는 사자와 같았지만, 전쟁이 끝나고 민간인 신분으로 복귀하면 그 즉시 수줍고 새침한 소녀가 되곤 했다. 그의 고질적인 낯가림 버릇과 구제불능의 은둔 성향은 싸움터에서 어렵게 쌓아올린 명성을 정계에서 야금야금 잠식해나갔다.

 

카이사르는 크라수스와 폼페이우스의 장점을 골고루 갖춘 인물이었다. 따라서 그가 나중에 두 명의 경쟁자 전부를 제치고 로마의 최고존엄으로 등극한 일은 필연적 귀결일지도 몰랐다. 삼두정치 체제의 최종 승리자로 기록된 카이사르는 크라수스 뺨치는 마당발이면서도, 필요할 경우에는 폼페이우스 못잖게 신비주의 마케팅을 구사할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크라수스는 타고난 장사꾼이었다. 장사꾼은 시샘과 질투는 할지언정 무익한 원한과 증오에 사로잡히지는 않는다. 크라수스, 폼페이우스, 카이사르 3인이 로마판 삼김시대 구도를 완성해갈 즈음 치열한 경쟁심에 불탄 쪽은 오히려 카이사르였다. 이를테면 해적들에게 붙잡힌 신세가 되자 카이사르는 자신이 도적떼에게 운 없이 납치당했다는 사실 자체보다는 이 소식이 크라수스를 어부지리로 기쁘게 만들까 봐 더욱 불안하고 초조해했다.

 

상인적 현실감각은 조정과 중재, 조율과 균형 잡기에서 빛나기 마련이다.

 

카이사르는 이베리아 지역을 다스리는 총독으로 임명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임지로 출발할 수가 없었다. 빚쟁이들이 몰려와 빨리 부채를 갚으라고 독촉하며 그의 앞길을 가로막은 탓이었다. 이때 크라수스가 키다리 아저씨로 등장해 채무보증을 서준 덕분에 카이사르는 더 이상의 망신살을 다행히 면할 수가 있었다.

 

크라수스가 단지 돈이 남아도는 이유에서 카이사르를 궁지에서 탈출시켰을까? 크라수스는 민중파의 수장 역할을 맡은 카이사르가 불미스러운 사태로 낙마하면 로마가 보수적 귀족파의 손아귀에 다시금 완전히 놓이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로마 사회가 마리우스의 후예인 카이사르가 이끄는 민중파 세력과, 술라의 후계자 폼페이우스가 영도하는 귀족파 진영으로 갈려 양파가 극단적으로 대치하는 망국적인 정치적 양극화로 치닫지 않은 데에는 중도파를 자임해온 크라수스의 활약과 공로가 컸다. 그는 한쪽으로 지나치게 힘이 쏠린 적마다 약자의 위치로 내몰린 집단을 편드는 평형추 구실을 자청했다.

 

물론, 크라수스의 행동의 근본적 밑바탕을 이루는 심리적 동기는 이타적 애국심이 아닌 타산적 이기심이었다. 그의 셈법은 나라가 또다시 두 쪽으로 나뉘어 유혈 낭자한 내전에 휩싸이면 그 누구에게도 실익이 없을 것이라는 상인의 현실감각에 기반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크라수스는 술에 물 탄 듯한, 물에 술 탄 것 같은 흐리멍덩한 무골호인(無骨好人)으로만 한없이 지내지는 않았다. 그도 알고 보면 성질을 부려야만 할 때는 부릴 줄 아는 뒤끝 있는 남자였다.


시킨니우스는 악의적 선동과 근거 없는 음해를 수시로 일삼으며 다수의 선량하고 양심적인 로마인들을 곤경에 몰아넣어온 비열한 음모론의 대가였다. 이런 시킨니우스조차 크라수스를 쇠뿔에 지푸라기가 묶인 황소에 비유하며 함부로 건들지 못했다.

 

당시 로마에서는 사람을 무차별적으로 들이받는 난폭한 황소의 뿔에다 지푸라기를 묶어둠으로써 다른 순한 소들과 편리하게 식별하도록 하는 풍습이 있었다. 크라수스가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주특기로 통하는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의 ‘미치광이 전략’의 달인이었음을 교활한 시킨니우스는 눈치 챘던 것이다.


관련기사
TAG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서초구
국민신문고
HOT ISSUE더보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서울국제정원박람회` 개막 앞두고 ‘자치구 정원 페스티벌` 열려 5월에는 서울 곳곳이 매력적인 정원으로 가득해질 전망이다. 오는 16일(목) 개막을 앞둔 ‘2024 서울국제정원박람회(이하 ‘정원박람회’)’와 연계해 자치구가 각 지역에 아름다운 정원을 만드는 경쟁을 벌인다.서울시는 25개 자치구와 협업하여 ‘자치구 정원 페스티벌’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구별로 정원을 조성하고 행.
  2. 5월1일부터 대중교통비 20~53% 환급, K-패스로 교통비 걱정 패스 국토교통부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대광위)는 5월 1일부터 K-패스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행한다.K-패스는월 15회 이상 정기적으로 대중교통(시내·마을버스, 지하철, 광역버스, GTX 대상)을 이용할 경우 지출금액의 일정비율(일반인 20%, 청년층 30%, 저소득층 53.3%)을 다음 달에 돌려받을 수 있는 교통카드이다. K-패스 이용 방법은 ①카드 발.
  3. 3월 주택 매매거래량 작년 12월부터 증가세...악성 미분양 8개월 연속 증가 국토교통부는 30일 ’24년 3월 기준 주택 통계를 발표했다.이날 발표에 따르면, 3월 기준 전국의 주택 인허가, 착공, 준공은 전월 대비 증가했고, 분양은 청약홈 시스템 개편으로 전월 대비 감소했다.3월 기준 주택 매매거래량(신고일 기준)은 총 52,816건으로 전월 대비 21.4% 증가해 작년 12월부터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으며, ’24.3월 기준 ...
  4. 오세훈 시장, 저출생시대에 ‘40만 서울 어린이 행복’ 챙긴다 알파세대 어린이의 행복에 초점을 맞춘 전국 최초의 종합계획으로 지난해 5월 오세훈 시장이 발표한 `서울 어린이행복 프로젝트`가 1주년을 맞았다. 서울시는 심각한 저출생 속에서 어린이를 우선으로 배려하는 사회 분위기가 중요한 만큼, 지난 1년간의 실천 노력과 성과를 토대로 올 한해 480억 원을 투입, 보다 대폭 확대‧강화된 「어린이...
  5. SKT, ‘AI 멀티엔진’ 시동… 韓 ‘텔코LLM’ 6월 출격 예정 통신 서비스를 잘 이해하는 똑똑한 ‘텔코LLM’이 이르면 오는 6월 선보인다.SK텔레콤은 5G 요금제, T멤버십, 공시지원금 등 우리나라의 통신 전문 용어와 AI 윤리가치와 같은 통신사의 내부 지침을 학습한 ‘텔코LLM’을 개발하고 있다고 30일 밝혔다. 오는 6월 중 개발을 완료할 예정이다.‘텔코LLM’은 GPT, 클로드와 같은 범용...
  6. 삼화페인트, 서울시립미술관 지원…문화예술발전 도모 삼화페인트공업은 서울시립미술관후원회 세마인과 `서울시민 문화향유증진을 위한 문화예술발전 지원사업`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이번 협약을 통해 삼화페인트와 서울시립미술관후원회 세마인은 ▲문화예술 활성화 관련 사업 개발 및 공동운영 ▲문화예술 활성화 공동 홍보 ▲전시, 창작지원 등 각종 문화행사 지원 ▲협력모델 ...
  7. 수원 영통구에 `나혼자 사는 시민` 위한 거점공간 조성 수원시와 장애인 표준사업장인 아이에이엠이 영통구에 수원시 1인가구 맞춤형 거점 공간을 마련한다. 두 기관은 지난 4월 29일 조스테이블 광교점에서 협약을 체결하고, 협력을 약속했다.수원시 1인가구 쏘옥 패밀리 회원의 소모임 활동을 지원한다. 조스테이블 광교점에서 2인 이상 예약하면 커피 가격을 10% 할인받고, 공간을 사용할 수 있..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