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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완② “한국의 진보는 국력을 기르려는 마음이 없다”
  • 공희준 편집위원
  • 등록 2020-06-25 16:15:32
  • 수정 2020-06-29 13:5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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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의 목표는 미국을 제치고 세계 제일의 슈퍼파워가 되는 것”
힘이 정의는 아니다. 그렇다고 허약함이 선량함의 증표가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문제는 휴전선 이남의 한국에서는 ‘문약함=정의로움’으로 등식화하는 진짜로 거대한 무지와 착각이 조선시대 이래 변함없이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점이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나라 국민들은 어릴 때부터 “한국은 힘없는 약소국이다”를 세뇌에 가까울 정도로 반복적으로 교육받는다. 약소국의 설움이 뭔지를 구체적으로 열거해보라면 초등학생들조차 입에서 대답이 술술 나올 지경이다.

그런데 약소국에서 벗어날 방법이 무엇인지에 관한 학습은 사실상 전무하다시피 하다. 보수가 정권을 잡았을 때에는 국민들을 향해 무조건적 충성심만을 강요하고, 진보가 집권했을 경우에는 국력을 기르려는 기획과 노력이 마치 크나큰 죄악이나 되는 것처럼 터부시된다. 그러다 보니 패배주의적 식민사관과 과대망상적 국뽕이 양쪽 극단에서 기승을 부리기 일쑤다.

임채완 「21세기경제학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이와 같은 전도되고 착종된 한국적 현실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을 필자와 완전히 공유하고 있었다. 필자가 임채완 연구원의 이야기를 듣고서 10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간 것 같은 후련함과 시원함을 느낀 까닭이었다.

중국의 위안화는 중국 경제의 실상을 반영해


임채완 연구원은 낮은 위안화 가치를 인위적 개입의 산물로만 봐선 안 된다고 말했다. (사진 김대희) 

임채완 : 트럼프는 미국의 전통적 공업지역이 피폐한 러스트 벨트(Rust Belt)로 전락한 중요한 원인이 중국이 위안화의 통화가치를 시장에서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함으로써 세계의 공장으로 떠오른 데 있다고 주장해왔습니다. 중국이 다른 나라들을 가난하게 만들어 자국이 부유해지는 ‘근린궁핍화 정책’을 의도적으로 써왔다는 게 현직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생각입니다. 제조업에 종사하는 미국의 수많은 서민층 노동자들 또한 트럼프의 견해와 똑같은 시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불만은 굴뚝산업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실리콘 밸리로 대표되는 첨단 정보통신기술 분야 관계자들도 중국을 불신과 의심이 가득한 경계의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습니다. 중국의 실리콘 밸리라고 일컬어지는 심천 지역이 인공지능(AI) 기술을 앞세워 미국을 무서운 속도로 따라잡고 있는 이유에서입니다.

 

중국은 14억 명에 가까운 인구 모두의 개인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했다고 공공연하게 자랑하는 국가입니다. 이는 심지어 미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은 감히 상상도 못할 빅 데이터를 중국이 이미 축적해놨다는 의미입니다. 4차 산업혁명의 기반은 다양하고 방대한 데이터에 있습니다.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을 선도적으로 견인하는 데 필요한 토대를 중국은 일찌감치 구축해둔 셈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중국에 대해 지나친 공포감을 느끼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중국은 2014년부터 위안화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평가절하해왔습니다. 저는 중국이 위안화의 가치를 의도적으로 낮게 묶어두는 건 중국의 근본적인 산업경쟁력이 여전히 부실하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간접적 증거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만약에 중국 정부가 공언한 바대로 중국의 산업역량이 꾸준히 업그레이드가 되어왔다면 지금처럼 위원화의 가치가 일관되게 낮아지기는 어렵습니다. 정부의 인위적 개입에도 분명히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환율은 특정 국가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반영하는 주요 지표입니다. 정권 담당자의 의지만으로는 장기간 동안 환율을 마음대로 올리거나 내릴 수가 없습니다. 환율은 그 속성상 생산성과 경쟁력의 높고 낮음에 연동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중국의 환율이 5년 넘게 오르지 못해온 현상은 중국의 산업경쟁력이 열악하다는 뜻으로 해석되어야 마땅합니다.

 

IT 산업이 경제를 이루는 중대한 요소임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IT 산업이 잘 나간다고 해서 국가경제 전체의 기초체력(Fundamental)까지 쌩쌩한 것은 아닙니다. 중국의 기술굴기는 몇몇 분야에 한정해 벌어지고 있습니다. 경제 전반을 망라할 수준과 범위의 도약은 아직은 멀기만 합니다.

 

임채완 「21세기경제학연구소」 책임연구원이 중국에 관해서 얘기한 내용은 한국에 그대로 포개질 수 있는 설명이었다. 한국은 삼정전자가 이끄는 반도체나 휴대전화 등의 일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산업 부문에서는 오랫동안 죽을 쒀왔기 때문이다.


강해지는 길만이 약자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


임채완 연구원은 한국사회에는 진취적인 도전정신이 긴요함을 역설했다. (사진 김대희 사진전문기자)

중국이 명백히 대국이기는 합니다. 그럼에도 미국 앞에서 서면 자꾸만 작아지는 나라가 중국입니다. 중국은 미국에 견주면 모자란 국력을 만회하려는 목적으로 러시아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해왔습니다. 일례로 시진핑 주석은 정권을 잡자마자 푸틴 대통령과 회동했습니다. 양국의 정상회담은 이후에도 필요할 때마다 수시로 열려왔습니다. 현재의 양국 관계는 옛 소련 시절에 흐루쇼프가 스탈린 격하 운동을 벌인 후로 가장 끈끈하다고 평가될 정도입니다.

 

중국이 러시아와 밀착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일본은 미국에 더욱더 경도되고 있습니다. 유럽 대륙의 대다수 국가들은 미국을 편들지, 중국에 붙을지 확실한 입장을 정하지 않은 채 미중 패권경쟁의 추이를 신중하게 관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미소 냉전이 종식된 다음인 21세기에 들어선 세계정세의 대략적 흐름입니다.

 

그러면 우리나라, 즉 대한민국은 어떠한 방향으로 국가의 진로를 모색하고 나라의 운명을 개척해야만 할까요? 우리는 약자입니다. 약자가 계속 전력투구해야만 하는 일은 단 한 가지뿐입니다. 스스로의 힘을 기르는 것입니다. 실력을 키우고 역량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마키아벨리는 “약자일 때는 힘을 기르고, 강자일 때는 겸손해지라”고 조언했습니다. 힘을 기를 때는 천하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서 힘을 기르는 일에 매진해야 합니다. 일단 힘을 길렀으면 그 힘이 순전히 운이 좋아서 얻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겸허함을 지녀야만 합니다. 이러한 중용적 자세를 동양적 표현으로는 “공취천하 수지이겸(攻取天下 守之以謙)”이라고 합니다.

 

임채완 연구원이 역설한 겸허함은 오로지 강자에게만 적용되는 미덕이리라. 왜냐면 약자의 겸양은 백이면 백, 비굴함의 표시로 받아들여지기 십상인 탓이다. 미국을 대신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대약진하려는 야심을 품은 중국인들에게 도광양회는 수단이고, 유소작위는 목적이다.

 

중국은 반중심(反中心)의 전략과 원칙에 기초해 미국과의 대결에 임하는 중입니다. 중국은 기존의 중심인 미국의 허점과 급소를 발견하려고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집요한 시도들 가운데 핵심적 작업이 과거의 역사적 사례들에서 쓸모 있는 시사점을 제공해줄 만한 단서와 지침을 찾아내는 일입니다.

 

반중심은 단지 중심의 존재를 부정하기만 하는 걸로 끝나고 마는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반응이 아닙니다. 자신이 새로운 중심으로 자리하고자 부단히 힘을 키우며 날카롭게 기회를 엿보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행위들의 집합적 총체입니다. 저는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이러한 반중심 노선에 있다고 믿습니다.

 

전통적으로 중국은 패권(Hegemony)의 역할과 의의를 부정하는 나라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중국인들은 천하를 차지하려면 반드시 패권을 장악해야만 한다고 확신했습니다. 패권의 안정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왕도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왕조가 수립될 무렵에는 패도가, 정착된 시기에는 왕도가 요구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육가가 한고조 유방에게 "말 위에서 천하를 얻을 수 있지만, 말 위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는 없다"고 진언한 경우가 그 일례였습니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 진보진영으로 분류되는 정치사회적 세력은 반대에만 익숙해진 나머지 급기야 국력을 기르는 일조차 반대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 영향으로 인해 문재인 정부의 정책은 “공취천하 수지이겸(攻取天下 守之以謙)”의 정신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멉니다.


저는 일국의 집권세력이 나라의 힘을 기르려는 정책에 아주 부정적인 상황에서 과연 한국이 미중 대결이 불러일으킨 거친 격랑과 높은 파고를 과연 효과적으로 헤쳐 나갈 수 있을지 솔직히 매우 걱정이 됩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이 우물 안 개구리 식의 편협하고 단기적인 사고와 습성을 버리고 보다 넓고 장기적인 시야를 갖고서 나라를 꾸리고 사업을 영위해나가길 바랍니다.

 

공희준 :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해박한 가르침 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임채완 : 부족한 이야기 진지하게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덧붙이는 글

임채완 연구원은 1978년 경상남도 함양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거시경제를 공부한 다음 직업능력개발원에서 위촉연구원을 지냈다. 2009년부터는 21세기경제학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대통령들과의 경제토크(경향미디어, 2012년)」의 공저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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