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아테네의 월남전이 시작되다
  • 공희준 편집위원
  • 등록 2020-09-15 16:52:05

기사수정
  • 변신과 적응의 리더십 : 알키비아데스 (5)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 암살과 더불어 베트남 전쟁이 전면적으로 비화됐듯이, 페리클레스의 사망을 계기로 아테네는 시칠리아 원정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미지는 베트남 전쟁을 다룬 할리우드 전쟁영화 「플래툰」의 포스터)

알키비아데스는 스파르타 대표단의 뒤통수를 쳐서 아테네의 세력권을 신장시키는 쾌거를 이뤘다. 공적 분야에서 그는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해낸 훌륭한 애국자였다.

 

반면에 그는 사생활에서는 타의 모범이 되기가 어려웠다. 사치와 방탕은 기본이었고, 입고 다니는 복장은 영락없는 제비족이었다. 알키비아데스의 문란한 사생활에 질겁한 점잖은 명망가들은 그를 생각하기조차 끔찍한 괴물로 여겼다.


대중의 시선은 달랐다. 그들은 알키비아데스의 행동을 치기 어린 유쾌한 일탈쯤으로 너그럽게 이해하였다. 더욱 본질적으로는 그의 수완과 전략과 용맹함은 강적 스파르타와 장기간의 소모전을 치러온 아테네에게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전력이자 필수불가결한 자원이었다.

 

“사자를 키우지 마라. 허나 이미 키우고 있거든 성미를 건드리지 마라.”

 

아테네의 연극무대를 지배한 유수의 희극작가들 가운데 한 사람인 아리스토파네스(BC 448년~BC 380년)는 위와 같은 재치 있는 문구로 ‘걸어 다니는 필요악’으로 국가권력의 중심부에 진입한 알키비아데스의 위상과 가치를 압축적으로 요약하였다.

 

국가가 알키비아데스를 필요로 하는 순간은 짧지만 굵었다. 대신에 그가 악으로 군림하는 시간은 가늘고 길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는 그가 저지른 갖가지 기행과 악행이 소개돼 있다. 그는 나중에 대가는 후하게 쳐주었지만, 유명 화가인 아가타르코스를 자신의 집에 강제로 가두고 그림을 그리도록 강요했다. 그가 후원한 연극과 경쟁관계에 놓인 작품에 투자한 타루레아스는 알키비아데스로부터 뺨따귀를 얻어맞는 봉변을 당했다.

 

단연 불쌍한 이는 전쟁포로로 사로잡힌 어느 멜로스 여인이었다. 알키비아데스의 첩실이 돼야만 했던 탓이다. 이 불운한 여성에게 유일한 위안거리가 된 사실은 알키비아데스가 그녀와의 사이에서 서출로 태어난 아들을 다른 자식들과 차별 없이 키웠다는 점뿐이었다.

 

키몬은 페르시아군과의 전투에서 연전연승을 거두며 아테네의 판도를 소아시아 반도의 서해안 지역까지 확대시킨 걸출한 전쟁영웅이었다. 그는 아테네를 건국한 테세우스의 유해를 발견해 수습한 공적으로도 명성이 자자한 터였다. 알키비아데스는 그와는 정치적으로 결을 달리하고 있음에도 원로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키몬을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

 

하루는 알키비아데스가 똘마니들을 잔뜩 데리고서 한껏 거들먹거리며 시내를 지나가다가 길거리 한가운데에서 키몬과 마주쳤다. 키몬은 약간은 이죽거리는 말투로 알키비아데스 일행 모두가 들으라는 듯이 큰소리로 혼잣말을 뇌까렸다.

 

“다들 무럭무럭 커야지. 그래야 멋지게 한방에 훅 가지.”

 

플루타르코스는 키몬의 야유 가득한 독백에 사람들마다 각기 다른 백인백색의 반응을 보였다고 서술하였다. 알키비아데스를 대하는 당대의 아테네인들의 심정이 얼마나 착잡하고 심란했는지를 웅변하는 일화이다.

 

시칠리아 섬 정복은 아테네인들의 오랜 숙원이었다. 페리클레스는 이게 얼마나 부질없고 위험한 야망인지를 소상히 알았던 까닭에 아테네인들의 팽창욕구를 그가 누렸던 폭넓은 대중적 신망과 권위에 기대어 힘들지 않게 억누를 수가 있었다. 종래, 아테네인들의 시칠리아 원정이 소규모 탐색전 수준의 제한전에 머무를 수 있었던 까닭이다.

 

페리클레스가 타계함과 동시에 아테네 시민들의 호전성을 제어할 마지막 안전장치가 해제되었다.

 

알키비아데스는 유혹과 선동의 기술에서도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자였으니 이 좋은 먹잇감을 그가 놓칠 리 없었다. 문제는 시칠리아 정도에서 만족하는 대다수 동료시민들과는 다르게 그의 야심은 끝을 몰랐다는 데 있다. 후세의 피로스에게처럼 알키비아데스한테도 시칠리아는 세계정복으로 나아가는 소박한 발판일 뿐이었다.

 

과대망상은 청년의 특권이다. 당장 본인부터가 과대망상에 빠진 알키비아데스는 청년들의 과대망상을 자극하기에 안성맞춤의 인물이었다. 알키비아데스의 평소 행실을 못마땅한 눈초리로 바라봐온 아테네의 나이든 기성세대들도 이번에만은 그의 편을 들어주었다. 청년들이 꿈을 좇아 시칠리아를 동경했다면, 중장년들은 현실적 이익을 구해 이탈리아 반도 남쪽의 커다랗고 부유한 섬지방을 탐했다.

 

그럼에도 위대한 세계정복 전쟁의 첫 단추로 시칠리아를 꿰려고 한다고 공공연하게 발설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알키비아데스는 시칠리아 도처에 산재한 아테네의 동맹도시들을 야만스러운 시라쿠사의 침탈로부터 지켜주겠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원정의 구실로 내세웠다. 그는 시칠리아 점령에 성공하면 스파르타를 둘러싸는 거대한 포위망을 마침내 완성시킬 수 있다고 강변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터무니없는 작전구상이었다.

 

니키아스는 시칠리아가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위한 ‘뉴 프런티어’가 결코 될 수 없음을 직감했다. 철학자 소크라테스와 점성가 메톤 또한 시칠리아 원정이 아테네판 월남전으로 귀결될 게 분명함을 명징하게 깨닫고 있었다.

 

니키아스는 지난번 발생한 스파르타 사절단 사태로 말미암아 정치적 영향력이 현저하게 위축된 상태였다. 그 말 많고 시끄럽던 소크라테스는 서방 원정과 관련해서는 어떠한 연유에서인지 발언을 극도로 자제했다. 알키비아데스의 비뚤어진 근본적 성정과 폭주하는 민중의 맹목적인 어리석음을 잘 인식하고 있던 그는 범국가적인 서정(西征)을 만류하기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어쩌면 사실상 체념에 들어갔는지도 모른다.

 

메톤은 영악하게 혼자 살아남는 길을 택했다. 그는 시라쿠사 정벌에 참전했다가는 낯선 이국의 땅이나 바다에서 무의미한 개죽음을 당할 게 틀림없다고 판단하고서 미친 척을 했다. 집에다 스스로 불을 지른 것이다. 정신질환을 겪고 있는 방화범을 징병할 수는 없는 터라 메톤은 크게 욕먹지 않고 병역을 무사히 면제받을 수 있었다.


관련기사
TAG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서초구
국민신문고
HOT ISSUE더보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백원국 국토2차관, “가덕도신공항건설공단 13일부터 본격 가동” 백원국 국토교통부 2차관은 5월 7일(화) 오후 4시 30분, 가덕도신공항건설공단 대회의실(부산 강서구)에서 가덕도신공항건설공단 설립위원회 6차 회의를 주재하였다.설립위원회는 작년 11월 1차 회의를 시작으로 5차례 회의를 통해 건설공단의 조직 체계와 정원, 보수 및 임직원 채용 등 중요한 사항을 결정해왔다. 이번 6차 회의는 설립위원회.
  2. 간협, 총선 및 재·보선 간호사 당선자 축하연 개최 지난 4월 10일 치러진 22대 총선 및 재·보선을 통해 당선의 영예를 안은 간호사들을 축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대한간호협회(회장 탁영란)는 7일 오후 서울 중구 롯데호텔 서울 에메랄드룸에서 ‘2024년 총선 및 재·보선 간호계 당선자 축하연’을 개최했다.이번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이수진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과 ..
  3. 계약시 관리비 세부내역 표기하도록 상가건물임대차표준계약서 양식 개선 법무부와 국토교통부는 상가 관리비 투명화와 임차인의 알 권리 제고를 위해 상가건물임대차표준계약서 양식을 개선했다고 밝혔다.개선된 표준계약서 양식에 따르면 상가건물 임대차계약을 체결할 때 월 10만 원 이상 정액관리비의 주요 비목별 부과 내역을 세분화하여 표시하여야 하며, 정액이 아닌 경우는 관리비 항목과 산정방식을 명..
  4. 동작 미래 이끌 노량진 60층 랜드마크 청사진 마련한다 동작구가 노량진역 일대에 최고 60층 높이 랜드마크를 조성하는 도시 발전의 청사진을 마련하고자 ‘노량진역 일대 지역 활성화 용역’을 이달부터 올해 연말까지 추진한다.노량진 일대는 향후 10년 이내에 노량진뉴타운 완성을 통해 새롭게 탈바꿈되며, 수협 및 수도자재부지 개발, 국가철도 지하화 추진 등 획기적인 공간변화를 앞..
  5. 우리은행, 우리WON뱅킹 실험실에서 AI 서비스 미리 경험한다 우리은행(은행장 조병규)이 우리WON뱅킹 ‘AI 챗봇’에서 새로운 AI 서비스를 미리 경험할 수 있는 ‘실험실’을 도입한다. ‘실험실’은 AI 서비스를 정식 도입하기 전에 사용자가 먼저 경험하고 검증하는 환경이다. 이를 통해 사용자가 원하는 고도화된 AI 서비스를 개발하고 급변하는 기술에 민첩하게 대응하기 위한 목적이다. 우리은행은 ...
  6. 조용익 부천시장, 1일 ‘송내2동장’으로 활약…현장 목소리에 집중 조용익 부천시장은 지난 3일 소사구 송내2동 행정복지센터에서 ‘1일 송내2동장’으로 근무하며 주민과 다양한 활동을 체험하는 특별한 하루를 보냈다. 이날 송내2동장으로 변신한 조 시장은 청사를 방문한 민원인을 반기며 주민편의 원스톱서비스 등 민원 업무를 안내하고 지역 어르신의 주민등록증 사진을 직접 촬영했다. 이어 송내...
  7. 삼성 에어컨, 성수기 맞아 고객 편의성 위한 역량 강화 삼성전자·삼성전자판매·삼성전자로지텍·삼성전자서비스가 여름 에어컨 성수기를 맞아 판매·배송·서비스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고객 편의성을 위한 역량 강화에 나섰다.삼성스토어에서는 시스템(천정형)∙홈멀티(스탠드형/벽걸이형)∙창문형 에어컨 등 다양한 유형의 무풍에어컨을 설명할 수 있는 전문 매니저를 ...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