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정부보다 유능하다
이동호 : 문재인 정부의 설익은 부동산 정책은 ‘민생의 사법화’라는 역기능과, ‘뒷조사의 산업화’라는 부작용을 낳고 있습니다.
공희준 : 문재인 정권 사람들은 ‘일제잔재 청산’과 ‘토착왜구 척결’을 입에 달고 살다시피 해왔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일본 제국주의의 대표적 망령인 ‘밀정’을 권하는 사회를 만들어놓았네요. 말이 좋아 민간 사설탐정이지, 본질은 밀정 아닌가요?
이 : 계약갱신 청구권이 없었던 시절이 어떠했는지를 이쯤에서 한번쯤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2년의 계약기간이 종료되면 임대인이 전세금을 대폭 인상하는 등의 폐단은 물론 존재했습니다. 제가 결혼한 다음에 10년 정도 전세살이를 했습니다. 마지막 전셋집에서는 5년을 생활했는데, 집주인 되시는 분께서 전세금을 많이 올리지 않아서 큰 경제적 부담 없이 거주할 수가 있었습니다.
제가 이러한 개인적 경험을 털어놓은 까닭은 전세시장을 비롯한 시장에는 나름대로의 자정기능을 수행하는 메커니즘이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부에서 사사건건 시장에 간섭하다가 급기야 계약갱신 청구권 제도마저 도입해 전세시장을 강제적으로 통제하려고 시도하면 거의 모든 임대인들이 임대료를 그야말로 왕창 올릴 게 분명합니다. 정부가 임차인들에게 도움은커녕 오히려 피해만 주는 상황이 확실히 도래했습니다.
지금의 정부여당은 세입자를 보호하겠다는 선한 의도로 전세시장에 손을 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관건은 동기가 아닌 결과입니다. 현실에서는 정부 정책이 발표될 적마다 무주택 서민들이 주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나는 임차인입니다”로 말문을 여는 연설을 통해 국민들 사이에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바 있습니다. 5분 연설 하나로 화제의 인물로 일약 떠오른 윤희숙 의원이 쓴 책들 가운데에는 「정책의 배신」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만약 「정책의 배신」 개정판이 출간된다면 저는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막무가내로 밀어붙인 부동산 임대차 3법이 결과가 의도를 배신한 어리석은 정책의 전형적 표본으로 이 책의 내용에 추가될 것으로 봅니다.
이동호 변호사가 소개한 윤희숙 의원의 「정책의 배신」은 여러 공공도서관에서 사실상의 금서로 분류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소문으로만 떠돌던 ‘문재인판 블랙리스트’의 음습한 실체가 마침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셈이다.
최저임금 정책의 실패를 답습하는 부동산 정책
임대차 계약이 성립하려면 집을 빌리는 임차인도 계약의 당사자로 있어야 하지만, 집을 빌려주는 임대인도 계약 쌍방의 하나로 자리해야 합니다. 임대인들의 대부분은 개인입니다. 그러므로 정부가 임차인의 권리를 보호하겠다고 나서면 나설수록 임대인들은 정부 정책에서 비롯된 자신의 손실을 만회하는 데 필요한 대책을 어떻게든 만들어내기 마련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임차인들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장기적 관점에서는 세입자들에게 지속적으로 피해를 끼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와 같은 기막힌 역설은 문재인 정부의 주요한 국정과제였던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사례로 벌써 확연히 증명되었습니다.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상승하면 노동자에게 잠시는 좋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길게 보면 그 정반대 결과가 초래되고 맙니다. 왜냐면 고용주들이 기계화, 무인화, 자동화를 가속화시켜 인건비 절감을 도모할 게 명확한 탓입니다. 일자리 자체가 빠른 속도로 사라지는 판국에 임금인상이 노동자에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정책의 배신이 현실에서 출현한 경우는 현재부터 이미 30여 년 전에 있었습니다. 노태우 정권 당시에도 전세가격이 폭등해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상했습니다. 그러자 정부가 앞장서서 1989년 12월에 주택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해 종전에는 1년까지 보장해주던 임대차 계약기간을 2년으로 연장시켰습니다.
2년에서 4년이 아니라, 1년에서 2년으로 늘린 조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부 정책이 나오자자마자 전셋값이 되레 무서운 속도로 뛰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치솟은 전세를 감당하지 못한 가장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들이 도처에서 속출했습니다. 너무나 끔찍하고 충격적인 사태였던지라 그때 대학입학시험을 준비하는 고등학생이었던 저에게조차 아직껏 그와 관련된 기억이 잊히지가 않습니다. 저는 동일한 비극이 결코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결론적으로 드리고 싶습니다.
공희준 : 비통한 사회현실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말씀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동호 : 지루할 수도 있는 얘기 진지하게 경청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동호 변호사는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나 당시엔 변두리 동네로 통하던 서울 서남부 지역에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를 다녔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에 현대카드 경영법무실과 영풍그룹 법무실 등에서 일하며 민생현장과 기업실무에 두루 정통한 변호사로 자리매김했다. 현재는 법무법인 미리내의 대표변호사로 활동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