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신도시, 지으려면 라데팡스처럼 지어야
김헌동 : 라데팡스(LA DÉFENSE)는 프랑스 파리에 세워진 신도시입니다. 라데팡스는 베드타운으로 전락한 한국의 신도시들과는 달리 자족도시로 기획되었습니다. 이곳은 자동차들이 지하로 운행하게끔 설계가 됐습니다. 땅위에서는 사람들만 다니도록 건설돼 있습니다. 자동차가 지하로만 통행해도 무리가 없게끔 환기시설이 잘 구비돼 있음은 물론입니다. 차량들이 땅속으로만 다닌다고 해서 교통이 불편한 것도 아닙니다. 기존의 파리 도심과의 연결망이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구축돼 있기 때문입니다.
라데팡스의 또 다른 특징은 주거지로서의 기능은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라데팡스의 중추적 역할은 업무지역으로서의 기능에 있습니다. 라데팡스는 우리에게 ‘신도시=주거지역’이라는 선입관을 벗어날 것을 촉구합니다.
부천의 대장신도시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대장신도시가 업무지구로 건설되어야 서울에서 이곳으로 사람들이 낮에도 일하러 올 것 아닙니까? 대장신도시를 참다운 자족도시로 만들길 바란다면 신도시로의 개발이 예정된 부지의 3분의1을 업무용 지구로 조성해야만 합니다.
주택을 짓고 싶으면 업무용 빌딩의 위에다 소형 주택으로 지은 다음 토지는 국가가 보유한 상태에서 건물만 임대해주면 됩니다. 가령 35층짜리 건물을 신축한다면 15층 정도까지는 사무실로 꾸미고, 그 위에는 주거공간으로 구성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야 명실상부한 자족기능의 구현이 가능합니다. 사무실과 집이 서로 동떨어진 지역에 있을 필요가 없는 겁니다.
이와 같은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대장신도시는 서울에서 집을 얻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잠만 자는 곳이 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저는 역으로 대장신도시에 오피스 타운을 건설하자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서울이 잠만 자는 곳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흘러가는 분위기는 영 딴판입니다. 2시 신도시를 건설할 적에도 자족도시를 만들겠다고 정부에서는 호언장담을 했었습니다. 실제 결과는 어땠습니까? 판교신도시 하나를 예외로 하고는 나머지는 전부 베드타운이 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판교신도시도 엄밀하게 따지만 베드타운 성격이 짙습니다. 2만 9천 호의 주택에 대략 9만 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이유에서입니다. 판교신도시는 그 옆에다 업무용 건물들을 덧붙인 개념과 모양새입니다.
대장신도시는 계획대로라면 김포공항과 가까운 위치에 들어서게 됩니다. 비행기에서 생겨나는 소음에 대한 우려가 클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에는 비행기가 이착륙하면서 발생시키는 소음이 엄청 심각했습니다. 그렇지만 21세기에 와서는 항공기 제작기술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비행기에서 나오는 소음이 대폭 줄어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육중한 쇳덩어리가 머리 위를 낮게 지나갈 때 사람들이 느끼게 되는 본능적 공포감을 완전히 떨쳐내기는 어렵습니다. 저는 비행기 소음 피해보다는 항공기가 주민들에게 안겨줄 이러한 시각적인 본능적 공포감이 대장신도시의 주거여건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훨씬 클 것으로 전망합니다.
신도시 건설은 올바른 정답도, 바람직한 해법도 아니다
문제의 본질과 핵심은 정부가 신도시라는 명목으로 그곳에 꼭 아파트를 지을 필요성이 있느냐는 데 있습니다. 20조 원이 넘는 천문학적 액수의 막대한 사업비를 써가면서까지 대장신도시를 기어이 만들어야만 하는 데에 있습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대장신도시 건설 사업 지역으로 발표한 곳은 환경적으로, 생태적으로 보존해야만 할 가치가 차고도 넘치는 곳입니다.
그린벨트 지역은 수도권의 허파와 다름없는 땅입니다. 참여정부는 2기 신도시 건설을 구실로 수도권 주민들의 소중한 허파를 10군데나 베어냈습니다. 거기에 더해 3기 신도시 건설의 미명 아래 수도권의 허파를 추가로 10개 더 제거한다면 수도권의 자연환경이 멀쩡할 수가 있겠습니까? 2천 5백만 명의 수도권 주민들의 건강이 온전할 수가 있겠습니까?
문재인 정부가 3기 신도시를 짓겠다며 삽질을 하려는 곳은 수도권 지역의 그린벨트들 중에서도 단연 보존가치가 크고 높은 곳들임을 저는 다시 한 번 더 강조하고 싶습니다. 후세와 미래를 위해 어떻게든 반드시 보존해야만 하는 공간입니다. 아파트를 짓겠다면서 이러한 지역을 회복 불능으로 훼손시키겠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짓입니다.
수도권의 허파를 난도질하면서까지 풀어야 할 만큼 주거 문제가 심각한 단계에 이르렀다면 신도시 건설 외에도 다른 해결책들을 진즉에 모색하고 강구했어야만 합니다. 세제 개편과 금융 개혁의 방안도 있습니다. 분양가 상한제와 분양원가공개 제도도 있습니다. 후분양제도 있습니다. 건물만 분양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집값을 안정시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들이 거의 무궁무진하게 존재하는 셈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합리적 대안들은 모조리 외면하고 무시하면서 문재인 정부 또한 신도시 건설에만 막무가내로 집착해왔습니다.
대한민국의 만성적 주거불안 사태의 제일 중요한 원인은 역대 정부들에서 정책을 잘못 편 데 있습니다. 이건 현재의 문재인 정부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집권 2년 동안 서울 집값을 평균 2억 원을 폭등시켜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에 대한 통렬한 자기반성과 진솔한 대국민 사과는커녕 자기들이 올려놓은 집값을 잡겠다면서 소중한 그린벨트를 신도시 건설을 구실로 마구 파헤치려 들고 있습니다.
과연 그래서 문재인 정부가 집값을 잡을 수 있을까요? 저는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 문재인 정부가 참여정부가 과거에 걸어갔던 참담하고 철저한 실패의 길을 고스란히 답습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공희준 : 서늘하지만 울림이 큰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헌동 : 먼 길 오시면서까지 말씀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김헌동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부동산건설개혁본부 본부장은 우리나라 유수의 건설회사에서 장기간 일하면서 ‘토건민국 대한민국’의 부끄럽고 부도덕한 민낯을 일선 현장에서 오랫동안 고통스럽게 지켜보았다. 이후 경실련에서 국책사업감시단 단장과, 아파트값 거품빼기 운동본부 본부장을 차례로 지내며 부동산투기와 짝을 이뤄온 왜곡된 불로소득주도 경제성장 구조의 극복과 혁파에 매진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