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르포] 서울 속 또 다른 세상, ‘영등포 쪽방촌’
  • 서진솔 기자
  • 등록 2020-01-23 10:33:21

기사수정
  • 주민들, 국토부 영등포역 ‘공공주택사업 계획’ 기대와 회의 공존
  • 1평 남짓 공간 월세 20만원··· 한겨울에도 공용화장실 사용해야



영등포 쪽방촌에서 20년 넘게 거주한 김영춘(남·75세)씨의 방 모습이다. 한 평 정도로 성인이 누워 발을 뻗으면 꽉 찬다. (사진=서진솔 기자)[서남투데이=서진솔 기자] “철거 안 하는 게 좋아. 딴 데로 이사 가면 혼자야. 누구하고 얘기할 사람도 없고"


영등포 쪽방촌에서 20년 넘게 거주한 김영춘(남·75세)씨의 방은 한 평 남짓으로, 성인이 누워 발을 뻗으면 꽉 찬다. 화장실도 없다. 공공 화장실을 사용하기 위해선 한겨울에도 한참 걸어 나가야 한다. 그럼에도 그는 이 방을 벗어나는 것이 두렵다.


21일 김 씨의 제의로 들어간 그의 방은 '쪽방' 하면 으레 갖기 마련인 이미지와 달리 깔끔했다. 좁은 공간에 냉장고, TV, 전기밥솥이 한쪽에 차례로 놓여있었고 이불과 기타 잡동사니가 다른 한 쪽에 차곡차곡 정리돼있었다.


벽엔 집주인이 설치해줬다는 선반이 박스를 받치고 있었으며 속옷, 수건, 외투 등이 옷걸이에 가지런히 걸려있었다. 에어컨이 설치돼있었고 벽지 위엔 두꺼운 단열재가 발라져있었다. 새것처럼 깨끗한 에어컨과 단열재가 어디서 났느냐고 묻자 김 씨는 "(단열재를) 내가 직접 사서 붙인 거지 누가 해주겠어. 에어컨도 (재작년에) 너무 더워서 내가 산 거야. 술 안 먹고 (그 돈으로) 산 거지"라고 말했다.


그는 "하루 일과랄 게 뭐 있어. 그냥 밖에 나갔다가 (안팎을) 왔다갔다 하는 거지"라며 평소 일상을 전했다. 


영등포역 왼편, ‘청소년 통행금지 구역’으로 들어가면


영등포역을 나와 왼쪽으로, 롯데 백화점 주차장과 파출소를 지나면 '영등포 쪽방촌'이 나온다. 쪽방촌으로 들어가는 길은 '24시간 청소년 통행 금지'로 지정돼있다. (사진=서진솔 기자)

영등포역은 서울 대표 번화가 중 한 곳이다. 타임스퀘어를 비롯해 신세계, 롯데 백화점이 즐비해 있다. 그러나 역 주변에는 음산한 분위기가 맴돈다. 다른 곳에 비해 노숙인도 많다. ‘쪽방촌’이 있기 때문이다.


역을 나와 왼쪽으로, 롯데 백화점 주차장과 파출소를 지나면 ‘24시간 청소년 통행 금지’를 알리는 표지판이 나온다. 표지판은 경고를 되새기듯 세 번 연달아 방문객을 맞이한다.


쪽방촌으로 들어가는 좁은 길에는 삼삼오오 모여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누추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오전부터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때론 큰 소리를 낸다. 그들은 통행 금지 표지판과 함께 방문객이 대도시 서울 속 또 다른 세상에 들어왔음을 알려준다.


”화장실이 없는 게 가장 힘들어“


쪽방촌은 좁고 긴 골목을 따라 양쪽으로 작은 집들이 따닥따닥 붙어있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대부분은 임시 건물이며, 지붕은 판자로 대충 기워져있다. (사진=서진솔 기자)

쪽방촌은 좁고 긴 골목을 따라 양쪽으로 작은 집들이 따닥따닥 붙어있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집들은 대부분 임시 건물이다. 임시 건물이 아닌 집들의 지붕은 판자로 대충 기워져 있으며, 벽은 오래돼 색이 바래고 금이 간 경우가 많았다. 전선은 얼기설기 엉켜있어 합선 등 화재 사고 위험이 커 보였다.


이 지역에서 15년 거주했다는 장순자(여·64) 씨는 ”여기 사는 사람들은 다 수급자에요. 집 크기도 다 비슷하고 월세도 다 20만원이야. 조금 큰 집이야 (월세를) 좀 더 내겠지만. 갈 데 없어서 온 사람들이지“라며 쪽방촌을 소개했다.


주민들이 겪는 고통은 예상과는 달리 추위나 더위가 아니었다. 장 씨는 ”(지자체에서) 연탄을 주니까 괜찮은데 제일 불편한 건 화장실이랑 목욕탕이 없는 거에요. 추워도 더워도 (화장실을 이용하려면) 한참 나가서 사용 해야 해“라고 토로했다.


쪽방촌에서는 사건 사고도 자주 일어난다. 지난 16일에는 아내와 이혼 후 쪽방촌에서 5년 정도 살았던 이정웅(남·74)씨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이에 대해 장씨는 ”(밥 안 먹고) 매일 같이 술만 먹다가 죽기도 하고 방에서 아무도 모르게 혼자 죽기도 하고, 싸우다가 죽기도 하고, 사고 많이나. 그래서 밤에는 문 잠그고 방에 있지“라고 전했다.


옆에서 유심히 듣던 김영춘 씨도 ”밤에도 술 먹고 시끄럽게 하고... 그러려니 하지 뭐. (파출소가) 바로 옆에 있어도 경찰들은 신경도 안 쓰는 걸“이라며 무심히 말을 더했다.


개발 사업추진 예고만 수차례, 기대와 회의 공존해


쪽방촌은 전선이 얼기설기 엉켜있어 합선 등 화재 사고 위험이 커 보였다. 벽은 오래돼 색이 바래고 금이 간 경우가 많았다. (사진=서진솔 기자)

장순자씨와 쪽방촌에서 십 년 넘게 친구로 지낸 박춘숙(여·66)씨가 “(개발) 공사 들어가면 그동안 어디서 지내야 할지가 문제에요”라고 말하자, 장 씨는 “다 (정부가 임시 거주 공간) 만들어서 해준다고 했잖아!” 버럭 언성을 높인다. 박 씨는 장 씨가 하는 말에 꼼짝도 못한다.


국토부의 계획안은 쪽방촌 주민들에게 4.84평의 공공주택을 보증금 161만원, 월세 3만원에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과거 이미 수 차례 정부와 지자체 주도로 영등포 쪽방촌 재개발 사업이 있었고 주민들 대상으로 설명회까지 진행했지만 모두 무산됐다. 이에 대해 주민들의 기대와 회의가 공존했다.


주민들은 국토부 발표가 있었던 20일, 기자들이 찾아와 알려준 덕분에 쪽방촌 개발계획 내용을 알게 됐다고 전했다. 장 씨는 “(월세가) 3만원이면 좋지. 지금은 거의 다 20만원 씩 내요. 돈보다 집 주는 게 좋아. 집도 없고 돈도 없는데 (정부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지. 빚이라도 내서 들어가야지”라고 말했다.


반면 김영춘씨는 ”2000년대부터 철거 한다 그랬어. 세 번이나 개발계획서 날라 오고 주민 센터에 철거 설명회도 참석했어. 하다 말고, 하다 말고... 하지도 않을 거 기대도 안 해. 서울시 무슨 위원회에서 통과됐다면서 마지막으로 (개발한다고) 한 지가 5년 됐어”라고 전했다.


영등포역 인근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공인 중개사 김모 씨는 이번 ‘영등포 쪽방촌 개발’ 사업이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그는 “2018년부터 집값이 오르기 시작하고 작년에는 수 년간 해결되지 않던 인근 노점상 철거 문제도 해결됐다”며 “(과거에) 이렇게 구체적인 방안이 나온 적이 없어 (이번에는 성사될) 가능성이 꽤 높아보인다”고 설명했다.


한강의 기적 성과물, 그리고 여전한 흉터


쪽방촌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마천루가 보인다. 판잣집과 타임스퀘어 빌딩이 대로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다. (사진=서진솔 기자)

영등포 쪽방촌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쪽방촌 판잣집과 타임스퀘어가 겹쳐 한 눈에 보인다. 이른바 ‘한강의 기적’의 성과물과 그에 따른 흉터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셈이다.


수 십 년 동안 쪽방촌은 우리 사회가 숨겨온 일종의 ‘흉터’였다. 최근 영화 ‘기생충’, ‘조커’ 등 문화 작품과 프랑스, 칠레 등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정부 시위가 이같은 ‘흉터’를 드러내고 있다. 이번 쪽방촌 개발 사업이 흉터를 치유하고 우리 사회가 쪽방촌 주민들을 포용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김영춘 씨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철거 안 하는 게 좋아. 없는 사람들끼리 오래 (같이) 있어서 서로 얼굴을 알잖아. 딴 데로 이사 가면 얘기할 사람도 없고, 수준 안 맞아서 같이 못 살아”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TAG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서초구
국민신문고
HOT ISSUE더보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행안부 차관 주재, `전산사고 재발방지 대책 전문가 토론회` 개최 행정안전부는 28일, 고기동 행정안전부 차관 주재로 전산사고 재발방지 대책에 대한 민간전문가 토론회를 개최했다.이번 토론회는 전산사고 재발 방지를 위해 응용프로그램의 안정적 운영·유지관리 방안을 전문가들과 논의하고 우수한 민간의 시스템 관리사례를 공유하기 위해 마련되었다.토론회에는 송상효 숭실대학교 교수를 비롯.
  2. 마포구, 실뿌리복지로 레벨 업(UP)…복지·동행센터·기금 3단 체계 구축 마포구가 올해 마포형 복지전달체계인 `실뿌리복지`의 기반 구축과 운영에 박차를 가한다.`실뿌리복지`는 `아이부터 어른까지, 사회적 약자부터 일반 주민까지 모든 구민의 삶에 스며드는 촘촘한 복지`를 지향하는 마포구 복지 비전으로 `실뿌리복지센터`, `실뿌리복지동행센터`, `실뿌리복지기금`으로 구성된다.실뿌리복지센터는 아동·...
  3. 아기 상괭이의 놀이터, 한려해상 초양도…생태 해설로 관찰 지원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공단은 한려해상국립공원 내 초양도(경남 사천시 소재) 인근에서 국제적 멸종위기종인 상괭이가 새끼를 낳아 키우는 생육활동을 확인했다고 밝혔다.상괭이는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거래에 대한 협약(CITES)에서 보호종으로 등재되어 있으며, 해양보호생물(해양수산부 지정)로 법정보호를 받고 있는 종이다...
  4. 인천시, 사회복지시설 등에 방연마스크 800개 비치 인천광역시는 화재 발생 시 연기 및 유독가스에 의한 질식사 등 인명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공립사회복지시설 등에 화재 대피용 방연마스크를 비치한다.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19년 ∼ `23년) 화재 발생 시 연기 및 유독가스에 의한 사망자는 전체 사망자의 약 66%에 달해, 사망원인 1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노인·장애...
  5. 정부 "전세사기 피해주택 경매차익으로 피해자 임대료 지원" 정부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매입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세사기 피해주택의 경매 차익을 피해자에게 돌려주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전세사기 피해자는 LH가 경매에서 사들인 기존 거주 주택에 최대 10년간 무상으로 거주하거나, 바로 경매 차익을 받고 이사할 수 있도록 했다.정부는 27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전세사기 피해자 주거안정 지원...
  6. 수원시-경기대, `지구로운 캠퍼스` 조성에 앞장선다 수원시가 경기대학교와 `지구로운 캠퍼스` 조성을 위해 지난 27일 대학 관계자와 간담회를 가졌다.경기대학교 제2공학관에서 열린 간담회에는 황인국 수원시 제2부시장, 청년청소년과장, 환경정책과장 등 관계 공무원과 최병정 경기대학교 교학부총장, 사회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진, `지구로운캠퍼스추진단`으로 활동하는 경기대학교 학.
  7. 산업부-KOTRA, 유럽 최대 반려동물용품 전시회서 한국 펫기업 알려 산업통상자원부(장관 안덕근)와 KOTRA(사장 유정열)는 5월 7일부터 10일까지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반려동물용품전시회(INTERZOO 2024)’에서 우리 반려동물용품 기업을 알리기 위해 한국관을 운영했다. 이번 전시회에는 전 세계 68개국에서 2100개가 넘는 기업이 참여했고, 약 4만명의 참관객이 방문해 양적인 면에서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