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투데이=유주영 기자] 오물과 생선 썩은 물이 하수구로 쏟아져 내렸다. 검고 물컹한 오물에서는 생선 비린내가 진동했다. 구청 직원들이 막힌 도로 하수구를 철근 공구리로 들어내고 오물을 제거했다. 그 주위를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조끼를 입은 수산시장 상인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21일 오전 서울 동작구 노량진역 앞에서는 기존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의 집회가 한창이었다. 새벽 일찌감치 시위를 시작한 옛 노량진 수산시장 상인들은 항의의 뜻으로 팔려던 생선을 역 앞 노점에서 바닥으로 던지며 거칠게 반대 의사를 표한 것.
지난해 가을부터 지속된 구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의 시위는 서울시와 수협 등에서 새로이 지은 건물에 구 시장 상인들이 입점을 거부한 데서 시작됐다.
노량진 수산시장 현대화는 구 수산시장 건물 노후화 등을 배경으로 14년 전인 지난 2005년 시작된 정책 사업이다. 구 시장 일부 상인들이 협소한 공간과 비싼 임대료를 문제 삼아 이전을 거부하면서 2015년부터 수협과의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됐다
동작구청 측은 그 동안 상인들이 노량진 수산시장을 불법점거했으니 이들에 대해 대집행을 실시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이날 아침 일찍 상인들의 시위를 막고 역사 앞에 내걸린 민주노련 측의 현수막을 걷어내려는 경찰이 대치한 가운데 몸싸움이 일어나 4명이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오전 10시 30분경, 거친 시위는 소강상태를 맞고 경찰들도 일부 철수한 가운데 상인들은 노상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했다.
시위장에 나와 있던 한 여성 상인은 “(우리는) 목숨을 걸고 우리 공간을 지킬 것이다. (노량진역에서 시장으로 통하는 저 육교에서) 뛰어내릴 각오”라며 “경찰 2000명이 우리를 주시하고 있는 것은 우리 가운데 누군가 (뛰어내려) 죽을까봐 두려워서다”라고 강하게 말했다.
이어 “코로나고 뭐고 대통령도 시장도 (우리 일에) 귀막고 있지 않느냐”고 토로했다. 그는 “언론은 우리에게 적대적인 기사만 생산하고 있다”고 볼멘 소리를 했다.
정오 경 시위를 이끄는 최영천 민주노련 위원장은 마이크를 잡고 “이 저항은 쌍용자동차 투쟁처럼 몸이 부서질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며 “우리는 돈이 아니라 서울시, 동작구, 수협 등 사회의 잘못된 구조를 때려부수고 우리 상인들의 자존심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라고 외쳤다.
최 위원장은 “우리(상인들)이 여기를 지키며 노점을 하면 하루 2,3만원 벌 때가 허다하다. 이는 돈 벌려는 게 아니라 천막을 치고 노점을 해 이 공간을 뺏기지 않으려는 데 그 이유가 있다”고 덧붙였다.
상인들에 따르면 새로 지은 노량진시장 건물 내 10평 매장의 월세는 350만원에 이른다. 이는 10년 단위로 계약을 해 월세를 올리지 못하는 조건을 내걸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 땅이 아니더라도 생업을 위해 빌려쓸 수 있다는 것을 (동작구청에서) 정치적 이유로 막고 있다고 항변했다. 최 위원장은 “예전 힘들었던 시절에는 자기 땅에서 남들이 장사하는 것을 막지않고 배려해주는 인정이 있었다. 노점상이 들어오면 그 길의 가게들도 따라서 장사가 잘된다”고 주장했다.
어수선한 역 주변에는 상인들과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는 시민들로 혼잡했다. 그러나 역사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는 ‘점검 중’이라는 팻말을 걸고 멈춰 있었다. 이날 서울교통공사 노량진역 관계자는 “(에스컬레이터는) 아침부터 멈춰있었다. 교대시간이 9시인데 9시 이전부터 멈춰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노량진 구 시장으로 들어가는 육교는 저희 직원들도 들어갈 수 없게 된지 한참”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12시 30분경부터 상인들은 노량진역 1호선 지상 출구 앞에 노점을 위해 천막을 치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세를 과시하기 위함이었다. 상인들은 도로에 놓여있던 대형 화분을 밀고 천막을 쳤다.
이때부터 경찰들이 투입돼 노량진역 주위를 둘러쌌다. 상인들은 거친 말로 경찰에 항의했다.
이어 경찰들 뿐 아니라 사복경찰도 맞은 편 동작경찰서에서 대거 나와 상인들을 에워쌌다. 경찰은 민주노련의 차량이 불법주차라며 차를 끌러내려는 제스처를 보이기도 했다.
이어 역 앞을 둘러싼 대열을 상인들 사이를 지나 노량진역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진입하려고 상인들을 밀어냈다. 노량진역사 앞에 가득 걸린 민주노련의 현수막을 걷어내기 위해서다.
이들의 대치와 몸싸움은 오후 내내 계속됐다. 시위하던 한 상인은 “우리는 내일도 모레도 여기서 싸울 것이다. 지켜봐 달라고”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