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김정은과 청태종을 생각한다
  • 공희준 편집위원
  • 등록 2020-09-28 17:08:23

기사수정
  • 노론의 ‘북벌’과 친문의 ‘한반도 평화 정책’의 목표는

조의에 갈음하여

 

필자의 가족 가운데 한 명이 허리가 좋지 않아 한 달 예정으로 최근 입원을 했다. 식구 하나가 병원 신세를 지게 되니 비록 잠정적일지언정 가정이 해체되는 상황을 맞이했다. 그로 인해 필자 개인의 일상생활마저 뒤죽박죽 엉망진창이 되었다.

 

가족이 아프기만 해도 이토록 힘들고 고통스럽다. 하물며 불의의 사건사고로 말미암아 가족 구성원이 소중한 생명을 갑자기 잃었다면 남은 사람들은 실로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것 같은 참담한 심정일 것이다. 필자가 서해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표류하다가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진 해양수산부 소속의 한 어업지도 담당 공무원의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는 연유이다.

 

당장 사람이 죽었다. 조난인지, 월북인지는 나중에 차분히 따져도 결코 늦지 않다. 지금은 유가족의 슬픔과 함께하는 일이 급선무인 시간이다. 그러한 존중과 배려의 자세야말로 보수세력이 떠드는 자유민주주의의 본령이자, 진보진영이 주장해온 민주공화국의 의무이리라.

 

북한, 의외로 살아 있네


청태종 홍타이지(1592~1643)는 조선 노론의 북벌이 순전히 내수용 선전구호임을 정확히 꿰뚫어 봤다. (구글 이미지)어느 어업지도원이 북한 인민군에게 살해당한 일을 계기로 고질적 남남갈등이 또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와 달리 남북 간의 긴장감은 아직은 크게 고조되지 않고 있다. 북한은 평소대로 제 갈 길을 가고 있으며, 남한은 언제나 그렇듯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상태가 지루하게 계속되고 있다.

 

필자는 한 어업지도원의 사망 사태를 지켜보면서 두 가지 이유에서 놀랐다. 첫째는 북한이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란 점 때문에 놀랐다. 근거가 뭐냐고? 장기간의 극심한 식량난과 경제위기로 국가시스템 전체가 총체적 작동 불능에 빠졌다는 외부세계의 시각이 무색하게 북한이 남한 공무원을 총으로 쏘아 무참하게 살해한 일련의 과정은 저들 나름대로 개발해온 매뉴얼을 충실하게 따라가며 이뤄졌기 때문이다.

 

전면적 붕괴단계에 직면한 국가는 동일한 성질의 문제에 대처할 적에 그 방침과 대책이 그때그때 다르기 마련이다. 그런 나라에는 원칙도 없고 체계도 없으며, 법률적이고 제도적으로 규정된 절차와 수단은 깡그리 무시되기 일쑤다.

 

허나 북한 당국이 남한 정부에 친서 형식으로 통보한 전문에 의거하면 북한의 ‘대남경계태세’는 가히 철통같았고, 현장에서의 대응행동들은 그들이 기존에 준비해놨을 수칙대로 가지런히 일사불란하게 수행되었다. 북한이 가난한 나라일망정 이라크나 소말리아 유형의, 명목상의 중앙정부는 존재하되 실제로는 무정부 상태가 이어지고 있는 ‘실패한 국가(Failed State)’까지는 아니었던 셈이다.

 

원칙도, 체계도 없이 우왕좌왕하면서 정부의 주요한 의사결정 내용이 그때그때 다르다는 측면에서 오히려 실패한 국가는 남한일 게다. 그러므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와 추미애 현 법무장관 소동을 거치며 인구에 널리 회자되어온 ‘내로남불’은 결과이고 현상일 뿐이다. 원인과 본질은 한국이 체계가 사라지고 원칙이 실종된, 영락없는 실패한 국가인 데 있다. 만약에 이러한 상태가 앞으로 10년 정도 더 지속된다면 국제사회의 냉정한 평가에서 이라크와 소말리아 옆에는 북한이 아닌 남한이 자리하게 될지도 모를 노릇이다.

 

필자가 놀란 둘째 이유는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이 정점에 위치한 현재의 남한 집권세력의 의중과 성격을 너무나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상대방의 실체와 깜냥을 엑스레이처럼 속속들이 투시하고 있다는 데에서 김정은은 청태종 홍타이지(皇太極)와 난형난제인 격이다.

 

병자호란을 일으켜 조선의 강토를 유린한 홍타이지가 한겨울의 남한산성에서 농성하던 인조를 결국은 성 밖으로 끌어내 삼전도의 치욕을 강요한 사실은 한반도에서는 삼척동자조차 훤히 알고 있을 지경이다.

 

구글에서 검색해보니 청나라 태종이 태어난 연도는 공교롭게도 임진왜란이 발발한 서기 1592년이었다. 동아시아의 정세가 지각변동을 시작한 시점에 그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청태종은 명나라가 멸망한 바로 전해인 서기 1643년에 죽었다. 급작스러운 암살이 아닌 자연스런 병사인지라 자신의 후계자들에게 확실한 유조를 남기기 충분한 여건이었다.

 

조선의 노론과 남한의 친문은 어떻게 닮았나

 

그런데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청태종이 임종을 맞이하면서 조선의 복수전을 경계하라는 유언을 말했다는 기록을 여태껏 찾지 못했다. 그 꼼꼼하고 치밀하며 용의주도했던 홍타이지가…. 필자는 그 까닭은 청태종이 노론 치하의 조선왕조는 여진족에 보복을 감행할 진정한 의지도, 실질적 능력도 전부 결여했음을 여우같이 간파한 데 있다고 생각한다.

 

병자호란의 치욕 이후 조선은 공공연하게 북벌을 추진했다. 아니, 추진하는 척했다. 따라서 인조의 둘째 아들 효종 임금 대에서 절정에 달한 북벌 운동은 국가기밀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청나라는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에 뒤이은 세 번째 호란을 벌여 저 말 많고 시건방진 까불이 조선을 참교육하지 않았다. 청태종의 후계자들은 조선의 국시인 ‘북벌’이 순전히 대내용 선전의제(Propaganda Agenda)에 불과한 정책임을 영악하고 예리하게 꿰뚫어 보았다.

 

조선의 노론이 실행할 의욕도 역량도 없던 ‘북벌’을 지배 이데올로기로 채택해 자신들이 편안하게 누려온 기득권 체제를 공고히 다져나갔다면, 문재인 정권은 ‘한반도 평화’를 지고지순한 가치로 내세우며 학생운동권 출신 인사들과 그 식솔들만 잘 먹고 잘사는 ‘586 천년왕국’의 건설을 획책하는 중이다.

 

대한민국 육군 준장으로 전역한 한설 순천대학교 초빙교수는 김정은 정권이 남북관계 개선 작업에서 완전히 손을 놔버린 근본적 동기와 본원적 배경은 북한이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국내정치적 목적만을 염두에 둔 내수용 시책 겸 선거용 공약으로 판단한 데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노론의 북벌 추진도, 21세기판 노론일 친문세력의 대북정책도 궁극적 초점은 철두철미하게 국내정치적 권력기반의 확충과 강화에 맞춰졌다고 하겠다.

 

조선이 아무리 소리 높여 북벌을 외쳐도 북벌의 대상인 청나라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청은 오로지 입으로만 북벌을 선동하는 노론이 조선의 집권층으로 군림하는 현실을 은근히 반겼다. 문재인 정권이 수시로 이런저런 대북제안들을 발표해오다 급기야 종전선언까지 밀어붙여도 남북관계의 또 다른 일방이자 당사자인 북측은 여전히 묵묵부답일 따름이다. 문재인 정부가 부지런히 발송하는 모든 대북정책의 최종적 배송지가 평양이 아니라 여의도의 리얼미터 사무실과 종로의 한국갤럽 본사임을 이제는 북한이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 탓이다.

 

지혜로움과 어리석음, 유능함과 무능함은 늘 상대적이다. 노론은 소론과 남인과 북인 등 그들의 정적들과 비교해서는 똑똑했다. 그렇지만 청나라 조정과 견주면 한없이 미련했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의힘으로 대표되는 야권 곁에선 압도적으로 거대하다. 반면에 북한 김정은 정권을 필두로 한 외세 앞에만 서면 가수 김수희의 노래인 「애모」의 가사에서와 같이 자꾸만 작아진다.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비루한 집권세력이 다스리는 나라의 젊은 청년세대가 호연지기와 진취적 기상 대신에 소시민적인 ‘소확행’과 속물적인 ‘영끌 투자’에 열광하는 세태는 작금의 남조선의 당연하고도 필연적인 운명, 아니 팔자이리라.


TAG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서초구
최신뉴스
국민신문고
HOT ISSUE더보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현대차 정몽구 재단, 복합위기 시대 대응할 국내 최고 전문가 육성 현대차 정몽구 재단(이사장 정무성)과 고려대학교 일민국제관계연구원(원장 이재승)은 글로벌 복합위기의 시대 속 국제기구 및 INGO 진출을 통해 국제협력을 이끌 차세대 인재 육성 프로그램인 ‘온드림 글로벌 아카데미(OGA)’ 9기 25명을 선발하여 운영을 시작했다.지난 5월 9일, 명동 온드림 소사이어티에서 OGA 8기 25명, OGA 9기 25명을 ..
  2. 베이프·카시오·프리들…크림, 4월 패션 키워드 ‘S.T.A.G.E.’ 발표 한정판 거래 플랫폼 크림(KREAM)이 4월 한 달간의 사용자 행태 분석을 통해 다섯 가지 패션 트렌드를 묶은 키워드 ‘S.T.A.G.E.’를 선정했다고 9일 밝혔다. 이번 리포트는 소비자 검색, 거래, 저장 데이터를 기반으로 발행되는 월간 ‘크알리포트’의 일환으로, 급변하는 Z세대 및 젊은 세대 중심의 소비 흐름을 반영했다.크림이 선정.
  3. 서울시, 상암 자율주행 시범지구에 3D 정밀도로지도 구축 시동 서울시는 오는 7월 말까지 마포구 상암동 자율주행 시범운행지구 20km 구간에 3차원 디지털 기반의 ‘서울형 자율주행 정밀도로지도’를 시범 구축하고, 이를 민간에 개방하겠다고 13일 밝혔다.정밀도로지도는 서울시가 자체 개발한 디지털트윈 플랫폼 ‘S-Map’을 기반으로 제작되며, 자율주행차의 안전하고 정밀한 운행을 위한 .
  4. LG U+, 국내 최초 콘텐츠 환승 요금제 `프리미엄 환승구독2` 출시 LG유플러스가 국내 최초 콘텐츠 환승 요금제인 `프리미엄 환승구독`에 혜택을 강화한 `프리미엄 환승구독2(이하 환승구독2)`를 12일 출시했다.`환승구독`은 2023년 LG유플러스가 업계 최초로 출시한 콘텐츠 환승 구독 요금제로, 지상파 3사·종편 4사의 원하는 방송 콘텐츠를 VOD 월정액 상품 하나의 이용료로 시청할 수 있는 서비스다.LG유플..
  5. 도심 광장에서 즐기는 생활체육…‘운동하는 서울광장’ 15일부터 시작 서울시는 오는 5월 15일부터 6월 26일까지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서울광장에서 생활체육 프로그램 ‘운동하는 서울광장’을 운영한다고 13일 밝혔다. 올해로 3년 차를 맞은 이 행사는 시민 누구나 도심 속에서 운동을 즐기고 활력을 되찾을 수 있는 대표적인 시민참여형 체육축제로 자리잡고 있다.올해 프로그램은 총 10회에 걸쳐 진행되...
  6. 다음(Daum), 제21대 대통령 선거 특집페이지 개편…유권자 맞춤 정보 강화 포털 다음(Daum)이 제21대 대통령 선거 특집페이지를 업데이트하며, 유권자 중심의 정보 제공과 실시간 선거 대응을 강화했다고 14일 밝혔다.카카오의 콘텐츠CIC가 운영하는 포털 다음(Daum)은 오는 6월 3일 실시되는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특집페이지에 유권자 참여 기능과 후보자 정보를 대폭 강화했다고 밝혔다. 이번 개편은 `다음을 만...
  7. 서울관광재단, 말레이시아를 홀리다…2025 쿠알라룸푸르 서울관광설명회 성료 서울시와 서울관광재단(대표이사 길기연)은 5월 9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서울관광설명회 `SEOUL MY SOUL in Kuala Lumpur`를 성황리에 마쳤다고 밝혔다.이번 행사는 양국의 관광 교류 활성화를 위해 말레이시아의 주요 여행사와 미디어, 서울 관광기업 등 서울관광설명회 역대 최대 규모 220여 명이 모인 가운데 B2B 트래블마트, 서울관광설명회, ...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