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알키비아데스, 트로츠키처럼 죽다
  • 공희준 편집위원
  • 등록 2020-10-12 17:51:06

기사수정
  • 변신과 적응의 리더십 : 알키비아데스 (15-完)

알키비아데스는 가산을 급히 정리해 서쪽으로 이주했다. 목적지는 검푸른 흑해 바다를 북쪽으로 내려다보는 비티니아 지방이었다. 그리스 세계의 패권을 장악한 스파르타가 눈엣가시인 알키비아데스를 그냥 놔둘 리 없었기 때문이다. 허나 워낙 허겁지겁 짐을 꾸리느라 미처 챙기지 못한 상당량의 귀중품은 그가 떠난 빈집을 털은 트라키아 주민들의 차지가 되었다.

 

알키비아데스는 오래전부터 테미스토클레스를 사표로 삼아온 터였다. 테미스토클레스는 그리스를 구원한 살라미스 해전의 영웅이면서도 나중에 페르시아에 귀순했었다. 알키비아데스는 페르시아 국왕의 힘을 빌려 라케다이몬인들을 혼쭐내기로 결심했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와 접견하려면 파르나바조스에게 다시금 몸을 의탁해야만 했다. 두 사람의 모진 인연이 또다시 시작된 연유였다. 파르나바조소는 둘 사이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알키비아데스를 태연히 받아들였고, 아테네의 한때의 기린아는 조금의 미안한 표정이나 겸연쩍은 기색조차 없이 옛 페르시아인 친구의 두 손을 꽉 부여잡았다.


스탈린이 트로츠키를 끝까지 추격해 살해했듯, 스파르타도 알키비아데스를 늙어죽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사진은 러시아 내전 당시에 적군 지휘관으로서 작전구상에 몰두하는 트로츠키의 모습 (출처 구글) 

아테네를 정복한 스파르타의 장군 리산드로스는 패전국의 정체(政體)를 민주정에서 귀족정으로 뜯어고치는 데 착수했다. 그 결과 등장한 기형적 정치구조가 30인으로 구성된 과두정치 체제였다.

 

중우정 시대의 아테네인들은 똥과 된장을 먹어본 다음 그 맛을 구분할 수 있을 만큼 무지하고 어리석어진 상태였다. 스파르타인들이 턱밑에 들이 밀은 분뇨를 억지로 떠먹은 후에야 그들은 알키비아데스가 젖 반, 꿀 반의 걸출한 인물이었음을 비로소 제대로 인식하고 인정했다. 아테네는 알키비아데스만 돌아온다면 패전의 치욕과 과두정의 굴레로부터 곧바로 벗어날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알키비아데스는 아테네인들에게는 희망의 원천이었지만, 새롭게 아테네의 실권자로 부상한 귀족정의 지도자들과 그들의 배후조종자이자 후견인 격인 스파르타에게는 시름의 근원이자 경계의 대상이었다. 그러자 30인 위원회의 한 명인 크리티아스가 리산드로스에게 이참에 화근을 확실히 뿌리 뽑을 것을 제안한다. 그는 아테네의 귀족정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스파르타의 지배적 지위가 장기적으로 지속되려면 알키비아데스를 제거하는 게 급선무라고 외국인 침략자를 충동질했다. 때마침 스파르타 본국에서도 리산드로스에게 은밀히 특명이 내려왔다. 더 늦기 전에 알키비아데스를 처치하라는 훈령이었다.

 

알키비아데스의 살해를 사주한 크리티아스는 소크라테스의 내로라하는 제자 출신이었다. 알키비아데스 역시 소크라테스의 애제자였음을 감안하면 그는 동문수학한 학우의 등에 비수를 꽂은 셈이었다. 멕시코까지 자객을 보내 기어이 트로츠키를 끝장낸 스탈린이 죽은 희생자와 동갑내기였음을 고려한다면 또래집단이나 동년배들 간에 형성된 증오심은 그 어떤 적개심보다 질기고 강한 듯싶다.


일각에서는 알키비아데스가 젊은 처자를 능욕했다가 그녀의 남자형제들에게 보복살인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알키비아데스는 화간을 일삼는 바람둥이였을지언정 인면수심의 성폭행을 불사하면서까지 육욕을 채우는 비열한 색마는 아니었다.

 

플루타르코스가 묘사한 알키비아데스의 최후는 일본 전국시대를 대표하는 무장인 오다 노부나가의 마지막을 방불하게 했다. 오다는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혀 “적은 혼노지에 있다”는 회한 섞인 절명의 말을 유언처럼 남기고 그를 급습한 아케치 미쓰히데 휘하의 병사들과 분연히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불타 죽었다.

 

알키비아데스는 정부인 티만드라와 함께 프리기아에 소재한 자택에 머물고 있다가 암살자들의 습격을 받았다. 살인을 의뢰한 자는 당연히 리산드로스와 크리티아스였다. 피해자의 목숨을 앗아간 살인청부업자는 파르나바조스의 동생 마가이오스와 숙부인 수사미트라스였다. 두 사람이 이끈 수십 명의 킬러들은 알키비아데스의 저택을 포위하고 건물에 불을 질렀다. 파르나바조스마저 암살 음모에 가담했거나 최소한 용인한 사실을 깨닫고 이에 분노한 알키비아데스는 그를 죽이러 찾아온 무리를 향해 홀로 칼을 뽑고서 달려들었다.

 

알키비아데스의 위세에 눌린 암살자들은 멀리서 활과 화살을 쏘아 그를 마침내 쓰러뜨렸고, 불타는 건물더미에 깔린 알키비아데스의 시신은 시커먼 숯덩이가 되고 말았다.


번제당한 인간제물의 죽음을 확인한 암살범들이 모두 사라지자 티만드라는 알키비아데스의 불탄 주검을 수습해 엄숙하고 성대하게 장례식을 치렀다. 그녀는 본디 시칠리아로 이민을 떠났던 그리스인의 후손이었다.

 

고인의 장례를 방해하는 세력이 없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범인들은 알키비아데스에게 특별한 개인적 원한은 없었던 모양이다. 암살자들 나름대로 깔끔한 일처리였다. 열정과 야심으로 똘똘 뭉쳐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던 당대 제일의 유명한 풍운아의 삶은 가는 곳마다 파란과 염문을 불러온 그의 살아생전의 곡절 어린 이력과 어울리지 않게 지극히 실무적으로 마감되었다.


관련기사
TAG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서초구
국민신문고
HOT ISSUE더보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초격차 스타트업, 바이오 코리아 2025에서 세계 무대 도전장” 중소벤처기업부가 지원하는 바이오 초격차 스타트업 24개사가 ‘BIO KOREA 2025’에 참가해 글로벌 기술 협력과 투자 유치에 나서며, 세계 무대에서의 본격적인 경쟁에 시동을 걸었다.중소벤처기업부는 5월 7일부터 9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BIO KOREA 2025 International Convention(이하 바이오 코리아)’에 바이오 분야 초격차 스타.
  2. 윤호중 “이재명 재판은 민주주의에 대한 사법 폭거…5.12 이전 공판 중단해야” 더불어민주당 ‘진짜 대한민국 선거대책위원회’가 6일 첫 총괄본부장단 공개회의를 열고, 대법원의 최근 판결을 ‘사법쿠데타’로 규정하며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대선 전 이재명 후보에 대한 재판 강행은 국민의 참정권을 침해하는 중대 사안이라는 주장이다.윤호중 총괄선대본부장은 6일 오전 중앙당사 회의실에서 열...
  3. 권영세 “대선 단일화 11일까지 반드시 이뤄야…실패시 비대위원장 사퇴”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이 대선 후보 단일화 시한을 5월 11일로 못박으며, 단일화 실패 시 비대위원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6일 열린 의원총회에서 “김문수 후보와 만나 오해를 일부 해소했고, 협의를 계속해 나갈 계획”이라며 “그러나 단일화는 반드시 이뤄져야 하며, 그 시한...
  4. 광복 80주년 맞아…수원 독립운동길 걸으며 항일의 얼 되새긴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수원시가 개발한 4.5km의 근대 인문기행 코스 ‘대한독립의 길’이 일제강점기 수원의 항일정신과 독립운동의 현장을 고스란히 전하며 시민들의 역사 의식을 일깨우고 있다.수원시는 일제강점기 격렬한 저항의 흔적이 남아 있는 구도심을 중심으로 ‘대한독립의 길’ 인문기행 코스를 개발해 시민들이 독립..
  5. 인천시, ‘3.6.9. 걷기 챌린지’로 건강도 챙기고 상품권도 받는다 인천시가 걷기를 통한 시민 건강 증진과 생활 속 운동 실천을 장려하기 위해 5월 7일부터 27일까지 ‘제2차 인천 3.6.9. 걷기 챌린지’를 운영하며, 참여 시민에게는 추첨을 통해 문화상품권을 제공한다.인천광역시는 시민의 건강한 생활습관 형성을 위해 모바일 앱 ‘워크온’을 활용한 ‘인천 3.6.9. 걷기 챌린지’를 진행한.
  6. 인천시의회, ‘인천의정소식’ 시민기자단 모집…의정 참여 확대 인천광역시의회가 의정활동을 시민의 시각으로 생생하게 전달할 ‘인천의정소식’ 시민기자단을 오는 21일까지 모집하며, 시민의 의정 참여 기회를 한층 넓힐 전망이다.인천광역시의회는 의정활동과 지역 소식을 시민들에게 보다 가깝고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인천의정소식’ 시민기자단을 모집한다고 6일 밝혔다. 모집...
  7. 광명시, 시민이 작가 되는 ‘책문화 창작 여정’ 본격 추진 광명시가 글쓰기부터 독립출판, 책 전시와 출판기념회까지 전 과정을 연계한 시민 창작 플랫폼 조성사업을 시행하며, 시민이 주체가 되는 책문화 도시로의 도약에 나섰다.광명시는 5월부터 ‘쓰기부터 출판까지 시민 창작 플랫폼 조성사업’을 본격 운영한다고 밝혔다. 이번 사업은 시민이 단순 수강자가 아닌 창작자로서 글을 쓰고 .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