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테미스토클레스, 김대중과 김영삼을 섞어놓다
  • 공희준 편집위원
  • 등록 2020-10-13 18:45:55

기사수정
  • 전략과 용단의 리더십 : 테미스토클레스 (1)

“내 어머니는 평생 작은댁으로 사셨다.”

 

필자는 「김대중 자서전」의 서두 부분에서 이 구절을 접하고 마치 둔기로 뒷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그 충격은 이내 먹먹함의 감정으로 바뀌었다. 반세기 가까이 우리나라 국민 거의 전부가 알고 있는 유명 정치지도자로 활동해왔으며, 수많은 역경과 시련을 극복하고서 마침내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어 결국에는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마저 자신의 아픈 개인적 과거사를 사후에, 그것도 간접 화법인 문자의 형식을 빌려서야 어렵게 밝힐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 어머니는 야만인이셨다.”

 

테미스토클레스(BC 524~BC 459)가 만약에 회고록을 출판했다면 이와 같이 첫 문장을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그가 인류사에 미친 영향력의 창대함과 비교해 그의 모계가 너무나 한미한 이유에서였다.

테미스토클레스는 DJ의 입지전과 YS의 돌파력을 모두 갖춘 인물이었다. (사진-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테미스토클레스의 아버지는 전형적 흙수저였다. 따라서 테미스토클레스는 고대 희랍 세계를 주름 잡은 대다수 걸출한 인물들과는 달리 본인을 헤라클레스나 아킬레우스 같은 전설상의 영웅의 후손이라고 자처하기가 어려웠다. 그의 아버지가 외국인 아내를 맞이해 다문화 가정을 꾸린 일도 본질적으로는 궁핍한 경제적 사정에서 비롯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을 오랑캐 또는 야만인이라 깔보며 업신여긴 사실에서는 고대의 아테네 민주정과 전제왕조 시대의 중국이 피차일반이었다.

 

출신은 보잘것없었어도 테미스토클레스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될성부른 나무였다. 떡잎부터 다른 테미스토클레스의 잠재적 진가를 알아본 스승은 이렇게 평가하였다.

 

“의인이든 악당이든 간에 분명 난 놈이 될 녀석이다.”

 

소년 테미스토클레스는 두뇌회전이 빠르고 신체동작이 민첩했다. 그의 일평생을 관통할 특질인 적극적 자세와 진취적 기상은 이미 일찌감치 어릴 때부터 체득된 덕목이었다.

 

학교가 파하면 여느 아이들은 친구들과 놀기에 바쁘다. 그런데 테미스토클레스는 광장인 아고라의 연단으로 나선 성인 정치인들처럼 장황하고 격정적인 연설에 열중했다. 게다가 그냥 심심풀이 차원에서 장난삼아 하는 연설이 아니었다. 사전에 정성스럽게 작성해 꼼꼼하게 퇴고한 자필 연설문에 바탕한 웅변이고 사자후였다. 연설 연습은 당시의 아테네 사회에서는 고시 공부에 준하는 위치를 점했고, 그만큼 꾸준한 노력과 지독한 인내력을 필요로 했다.

 

대신에 그는 인격을 도야하고 교양을 함양하는 학업에는 좀처럼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웬만한 공부 잘하는 소년들이라면 능숙하게 연주할 수 있는 현재의 하프 비슷한 악기를 그가 다루지 못하게 된 배경이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교양 없고 무식하다”는 비판을 들어도 쟁쟁한 명문가 태생이거나 혹은 유복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난 기성 엘리트들과는 다르게 부끄러운 기색을 전연 내비치지 않았다. 그는 “나는 악기는 다룰 줄 몰라도 위대한 도시들과 거대한 국가들은 확실히 다룰 줄 안다”고 되레 큰소리를 뻥뻥 쳐댔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입지전을 이뤘다는 측면에선 김대중(DJ)을 닮았지만, 체면과 품격을 중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김영삼(YS)과 유사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성실하고 부지런했으되, 신중하고 절제력 있는 소년은 아니었다. 매우 충동적이고 즉흥적이었다. 한마디로, 욱하는 성격이었다.


그럼에도 테미스토클레스가 비행에 물들지 않고 무탈하게 어른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가슴속 커다란 야망과 남달리 명민한 머리가 큰 역할을 했다.


일설에는 아들의 과도한 야심에 불안해진 테미스토클레스의 아버지가 그를 바닷가로 데려가 이제는 쓸모없는 폐선이 돼버린 퇴역한 낡은 전함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켜며 권력을 잃은 정치인을 기다리는 비극적 말로를 경고했다고도 한다. 예나 지금이나 자식의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는 모든 평범한 아버지들은 정치인이 되려는 아들딸을 일단은 무조건 완강히 말리는 법이다.


관련기사
TAG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서초구
국민신문고
HOT ISSUE더보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최상목 부총리 “미래인재 투자한 기업이 더 큰 결실 맺는다”… 일자리 창출 우수기업 간담회 개최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월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일자리 창출 우수기업 대표들과 오찬 간담회를 열고, 미래인재에 대한 투자가 기업의 성장과 혁신의 열쇠임을 강조했다.이날 간담회에는 삼성전자, 셀트리온, 신세계아이앤씨, 한국알박, 팜피, 웰파인, 브릴스, 엘루오씨앤씨, 오리엔탈정공 등 9개 기업 대표들이 참석했으며, .
  2. 미추홀구보건소, 발달장애 학생 위한 `학교 구강보건실` 본격 운영 인천 미추홀구보건소(소장 차남희, 이하 보건소)는 발달장애 학생들의 구강건강 증진을 위해 관내 특수학교인 청인학교(교장 최영수) 내 학교 구강보건실을 오는 28일부터 본격 운영한다.현재 청인학교에는 327명의 발달장애 학생이 재학 중이며, 이들은 일반 학생보다 구강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아 체계적인 구강건강 관리가 필요...
  3. 서울 강서구, 주민 건의사항 신속 이행 박차 "구민과 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 행정의 최우선 과제입니다"서울 강서구(구청장 진교훈)가 `2025년 신년 동 업무보고회`에서 나온 주민 건의 사항을 신속하게 이행하기 위해 적극 나섰다.보고회에서 접수된 총 154건의 건의사항 중 황톳길 배수시설 설치 등 10건은 이미 처리 완료됐고, 77건은 신속히 추진 중이다. 장기적인 검토가 필요한...
  4. 평택시, 청년 창업 꿈을 응원한다 평택시(시장 정장선)가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패기로 창업에 도전하는 지역 청년들을 위해 통 큰 지원에 나선다.시는 2025년도 `평택청년 우수 초기 창업자 지원사업`을 통해 최대 1천만 원의 사업화 지원금을 지급하며, 젊은 창업가들의 성공적인 발돋움을 적극적으로 돕는다는 계획이다.이번 사업은 평택시에 거주하거나 평택시를 기반으로 ...
  5. 이민근 안산시장, 안산마음건강센터 개소식 참석…"치유·회복 공간 되길" 안산시(시장 이민근)는 이민근 안산시장이 지난 26일 경기도 주최로 열린 안산마음건강센터(단원구 초지동 747-6) 개소식에 참석했다고 27일 밝혔다.이날 개소식은 이민근 안산시장을 비롯해 박태순 안산시의회 의장, 김동연 경기도지사, 이상원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관 등 정부 관계자와 세월호참사 유가족 단체 및 시민단체 등 150여 명이...
  6. 부평구, `청년도전 지원사업` 참여자 모집 부평구(구청장 차준택)는 27일 구직단념청년을 대상으로 `청년도전 지원사업` 참여자를 오는 11월 2일까지 모집 중이라고 밝혔다.해당 사업은 구직단념 청년들의 사회 참여를 유도하고 노동시장 진입을 지원하기 위한 고용노동부 공모사업으로, 구는 지난 2021년부터 5년 연속 선정됐다.참여 대상은 최근 6개월간 취업 및 교육·직업훈련 ..
  7. GH, 도민주주단 `기회수도파트너스` 제2회 주주총회 개최 경기주택도시공사(GH)는 27일 수원 광교사옥 대강당에서 GH와 도민이 소통하는 최상위기구인 도민주주단 `GH 기회수도파트너스` 제2회 주주총회를 개최했다.`GH 기회수도파트너스`는 경기도민으로 이루어진 명예주주단으로, 도민참여경영 기반을 강화하고 소통을 활성화하기 위해 2023년 11월 창단됐다.이번 주총은 도민주주단 149명과 GH 임직원...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