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는 용감하고 진취적인 직업
공희준(이하 공) : 국민들은 이제껏 대한변협을 막강한 권력단체로 간주해왔습니다. 왜냐면 특검을 선임하는 때에도, 요즘 한창 논란이 되는 공수처장을 임명하는 일에서도 대한변호사협회가 후보자를 추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김관기(이하 김) : (약간 심드렁한 표정으로) 실제로는 별다른 발언권이 없습니다. 대법관으로 영전하고 싶거나 헌법재판관으로 출세하길 바라는 인사들이 대한변협 관계자들을 찾아와 자기를 잘 봐달라고 부탁이야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인사결정 과정에서는 변협이 유의미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해왔습니다.
공 : 변협은 허울만 그럴듯하지 알고 보면 종이호랑이란 말씀인가요?
김 : 기자들이 찾아오는 횟수만 살펴봐도 대한변협의 위상이 얼마나 추락했는지 단박에 가늠할 수가 있습니다. 지금은 언론사들이 변협에 좀체 출입하지를 않습니다. 변협이 더는 뉴스메이커가 되지 못함을 그 누구보다도 기자들이 명민하게 눈치 채고 있습니다. 어디가 진짜 권력기관인지를 꿰차고 있는 법조 기자들로서는 변협 사무실에 들를 필요도, 이유도 없습니다.
공 : 그렇다면 변호사님께서는 힘도 없는 변협을 개혁해야만 한다고 왜 목소리를 높이시는지요? 힘센 기관과 조직을 개혁하는 게 진정한 개혁 아닌가요?
김 : 저는 변호사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입니다.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에 적극적으로 찬성합니다.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은 반응하는 개혁입니다. 후행하는 개혁입니다. 결과의 개혁입니다. 반대로 변협개혁은 선행하는 개혁이고, 작용하는 개혁이고, 전방에서 견인하는 원인의 개혁입니다.
제도가 아무리 바뀌어도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이 바뀌지 않으면 종국에는 아무런 실질적 혁신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판사의 행동이, 검사의 생각이, 경찰이 시민들을 대하는 태도가 변화하려면 그 대칭점에 자리한다고 볼 수 있는 변호사들의 생각과 행동과 의뢰인들을 대하는 자세가 먼저 바뀌어야만 합니다.
상대를 바꾸려면 먼저 나를 바꾸라는 김관기 변호사의 논리는 노자와 장자의 철학을 자연스럽게 연상시켰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듯이, 시대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발맞추는 율사들만이 법률가로서의 순수했던 초심을 유지할 터이기 때문이다.
다들 그냥 묵인하고 순응하는 낡은 관행들과 잘못된 기성질서는 남들로부터 튄다고 경원되는, 이상하다고 배척당하는 용기 있는 창조적 소수가 나타나는 순간에야 비로소 도전받게 됩니다. 차가운 바닷물에 제일 먼저 뛰어들어 먹잇감을 사냥하는 첫 번째 펭귄(First Penguin)처럼 그러한 선각자들이 이슈를 앞장서 제기하고,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해나갑니다.
대한변협의 본질적이고 최우선적 과제가 무엇이겠습니까? 야성과 패기에 넘치는 창의적이고 진취적인 젊은 변호사들을 키워내 재판정으로 끊임없이 내보냄으로써 국민들의 인권을 증진‧신장시키고, 법률시장의 소비자들에게 고객감동의 만족을 서비스하는 일입니다.
변호사의 체질과 의식이 변하지 않으면 검사들의 체질과 의식도 변하지 않습니다. 변호사의 생각과 행동이 바뀌면 판사들의 생각과 행동도 뒤따라 바뀝니다. 판사를 상대로 거리낌 없이 재판부 기피신청을 제기하고, 필요할 경우에는 기죽지 않고 검사를 당차게 고소하는 용감한 변호사만이 참다운 법치주의의 창달에 이바지할 수 있습니다.
공 : 변호사가 검사를 고소하면 굉장히 아찔한 상황 아닌가요?
김 : 위험한 선택이라도 진실 규명과 정의 실현을 위해 요구된다면 불사하지 말아야 합니다. 검사가 만약에 직권을 남용하고, 허위공문서를 작성했다면 재판의 한 축인 변호사가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됩니다. 검사도 잘못하면 벌을 받는다는 판례를 국민의 안녕과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 남겨야 합니다.
검사가 아닌 국민이 기소 여부를 결정해야
김 : 혹시 검찰에 가보신 적이 있나요?
공 : 만으로 29살 무렵에 서울 중앙지검에 정식으로 소환돼 조사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것도 주범으로요.
김 : 그러면 검사실에 근무하는 계장에게 조사를 받으셨겠네요?
공 : 저는 검사가 직접 피의자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그걸 법조계 용어로 ‘직조’라고 한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김 : 당시에도 오피니언 리더셨네요. 형사소송법 꼬박꼬박 준수해가며 조사가 진행된 것을 보니.
공 : 오피니언 리더가 아니라 악플러 1세대였습니다.
김 : 대부분의 경우에는 검찰 수사관이 조사 실무를 책임집니다. 담당 검사는 곁에서 그 광경을 물끄러미 지켜보기만 합니다. 문제는 형사소송법에 의거하자면 그래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점입니다.
공 : 저는 검사가 직접 조사를 담당하며 타자까지 본인이 치는 게 아주 이례적 일로 알았습니다.
김 : 보통의 피의자 신문조서는 검사의 피의자 간의 문답 형식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갑자기 언성을 높이며) 이게 어떤 뜻이겠어요? 대한민국 검사실에서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는 십중팔구 허위공문서라는 뜻입니다.
공 : 그러한 어처구니없는 파행이 어떻게 여태까지 가능했을까요?
김 : 관행적으로 용납해주었기 때문입니다. 검사가 옆에서 조사 내용을 듣고 있었으면 검사 본인이 직접 피의자를 조사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식으로 얼렁뚱땅 퉁 치고 넘어간 탓입니다. 계장이 살아 있는 도구가 되어 검사 대신에 말을 한다고 여겨온 셈입니다.
공 : 대한민국 검찰 수사관은 숨 쉬는 인공지능(AI) 스피커였네요.
김 : 그럼에도 법원은 검찰의 이 말도 안 되는 대단히 잘못된 수사 관행을 여전히 눈감아주는 형편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재판정에서 판사가 검사를 은근히 편들어주며 변호사의 변론활동을 제약하는 사례도 빈번합니다. 더욱이 판사들은 판결문도 여간해서는 공개하지를 않습니다. 이 모두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사태들입니다.
공 : 개인의 사생활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게 아니라면 판결문을 공개해야 마땅하지 않을까요?
김 : 판사들이 판결에 자신감이 없으니 판결문을 공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변호사로서 송사를 진행하다 보면 재판에 외부 입김이 작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잦습니다. 누군가 판사에게 은밀히 청탁을 넣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 지가 벌써 3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재판 결과를 이제는 거의 정확히 예측할 내공과 경험을 축적했다고 감히 자부하는 바입니다. 그런데 제 예상과 완전히 어긋나는 선고가 종종 내려질 때가 있습니다.
공 : 주로 어떠한 종류의 사건들인가요?
김 : 소송 상대방이 사회적으로 이른바 끗발 있는 인물일 경우입니다. 원칙과 상식에 어긋나는 판결과 결정들은 상급 법원으로 올라갈수록 더욱더 많아집니다. 기꺼이 수긍하고 납득할 수 있는 재판은 오히려 하급심에서 이뤄져왔습니다.
공 : 일반인의 통념과는 정반대입니다. 원인이 뭘까요?
김 : 하급심에서는 청탁을 넣을 대상을 특정하기가 애매합니다. 누구를 만나 음습한 부탁을 해야만 하는지 불분명합니다. 반면에 대법원을 위시한 상급 법원들은 표적을 선정하기가 비교적 용이합니다.
공 : 누가 구멍인지 훤히 보인다는 의미네요?
김 : 예, 그렇습니다. 사슬에서 가장 약한 고리가 어디인지가 훤히 드러나는 구조에서는 사회적 강자들이, 부유한 계층이 자기네가 원하는 방향으로 재판에 개입하기가 한결 수월해집니다.
공 : 그렇다면 김경수 경남지사는 상급심으로 올라가야 무죄를 받을 확률이 크겠네요?
김 : 그럴 가능성을 배제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저는 부당한 외압과 간섭에 맞서서 재판의 공정성을 지키는 일을 결국에는 본인들 또한 직업관료군의 일원일 수밖에 없는 판사들에게만 맡기는 게 과연 합당한지 의문이 짙게 듭니다.
공 : 재판의 왜곡을 원천봉쇄할 수 있는 특단의 대책과 방도가 있을까요?
김 : 판사와 검사가 엉뚱한 생각을 하지 못하게끔 확실하게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로는 배심원제가 있습니다. 미국은 수사와 기소 단계에서부터 검사가 대배심에 사건과 관련된 사항들을 일일이 보고하도록 규정해놓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검사가 피의자와 증인을 소환하지만, 미국에서는 대배심이 국민의 눈높이에서 소환 및 기소 여부를 결정합니다.
미국과 달리 한국은 모든 게 검사 마음대로입니다. 국민의 감시의 눈초리가 번득여야만 할 공간에는 부장검사, 차장검사, 검사장 등의 상급자의 결재도장이 떡하니 버티고 있을 따름입니다. “죄는 무거우나 기소는 유예한다”는 낯간지러운 궤변이 검찰에서 횡행해온 배경입니다. 그로 인해 검찰청 주변에서는 특혜 의혹과 외압 시비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검사 혼자 좌지우지하는 기소 여부를 30명 정도의 평범한 국민들로 짜인 배심원단이 결정한다고 상정해보세요. 민주적 정당성이 확보됨과 아울러 검찰의 부패와 사법부의 타락이 근본적으로 예방될 것으로 저는 확신합니다.
법원의 한계와 맹점은 검찰조직의 모순과 부조리와 그 뿌리와 성격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국민의 민주적 통제와 관리감독을 받지 않으면 재판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의구심은 깨끗하게 불식될 수가 없습니다. 재판의 객관성과 투명성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다수의 공판전문 변호사(Trial Lawyer), 곧 변론 변호사들의 역할과 활약이 긴요하고 필수적입니다. 변론 변호사는 단시일 내에 공장에서 대량생산으로 찍어내듯 육성되고 배출될 수 있는 인력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과 노력의 결과물로만 탄생하는 보석 같은 소중한 인재들입니다.
변협개혁은 사법개혁의 전제조건이자, 검찰개혁과는 동전의 양면관계입니다. 일반 국민들에게 변호사 사무실의 문턱은 아직도 한없이 높기만 합니다. 서초동 법조타운은 변호사들의 과잉공급으로 말미암아 법률시장 전체가 공멸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심과 위기감에 휩싸여 있습니다. 이 풍요 속의 빈곤 사태를 극복하는 데 대한변협이 지체 없이 나서야 합니다. 저는 공급과 수요가 따로 노는 현재의 불일치 현상을 해소하는 길은 탄탄하고 효과적인 법률보험 제도의 조속한 도입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 : 어려운 전문적 주제를 초심자들도 이해하기 쉽도록 쉽게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 : 지루할 수도 있는 이야기 재미있게 경청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김관기 변호사는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충청남도 천안에서 자랐다.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서울지방법원 판사와 서강대학교 법대 교수를 차례로 지내고 현재는 「김박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로 활동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