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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청와대 얼라가 대권을 넘보다
  • 공희준 편집위원
  • 등록 2021-05-04 18:2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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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마의 강화도령 갈바 (2)

황제는 갈리아에서 일어난 빈덱스의 반란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히스파니아 총독으로 부임한 갈바마저 반역에 동참했다는 급보가 푸짐한 식사 자리가 한창 진행 중인 황궁에 전해지자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네로는 먹던 밥상을 홧김에 뒤엎었다.

 

그래도 황제는 황제였다. 네로는 원로원에 가서는 갈바의 궐기가 별것 아니란 투로 평가절하하고서 역적의 재산을 즉각 경매에 부칠 것을 명령했다. 갈바는 히스파니아 도처에 산재한 황제의 자산을 압류해 민간에 매각하는 조치로 맞불을 놓았다. 갈바의 재산을 사겠다는 인간들보다는 황제의 자산을 경락받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의 숫자가 훨씬 더 압도적으로 많았다. 대세는 이미 결정되었으니, 폭군 네로의 처지는 영락없이 서산에 지는 해였다.


환관이 중국의 골칫덩어리였다면 근위대는 로마의 근심거리였다. (이미지는 로마 근위대 소재 게임물)

전군의 주요 지휘관들 가운데 아프리카의 클로디우스 마케르와 갈리아의 베르기니우스 루푸스만이 갈바 편에 서지를 않았다. 클로디우스는 평소의 품행이 방정하지 못한 탓에 갈바 측의 환영을 받지 못했고, 베르기니우스는 늙은 갈바에게 줄을 서느니 스스로 대권을 수중에 쥐고 싶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가 지휘하는 군단은 사납고 용맹스런 게르만족 병사들로 편성돼 있었는데, 로마군 내에서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갈리아 지역을 반분한 양대 실력자인 빈덱스와 베르기니우스 두 군웅의 충돌은 필연이었다. 두 사람이 이끄는 군대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고, 패배한 빈덱스는 자결했다. 이 전투에서 빈덱스 휘하의 병사 2만 명도 수장과 나란히 전몰했다. 승리한 베르기니우스의 군사들은 그들의 사령관을 당장에 황제로 추대할 기세였고, 빈덱스의 종용을 받고서 네로에게 반기를 들었던 갈바는 본거지인 히스파니아에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갈바는 이듬해 여름이 되었을 즈음까지도 히스파니아의 한 도시인 클루니아에 머물고 있었다. 그는 정국의 흐름을 신중히 관망하며 언제쯤 본격적인 군사행동에 착수해야만 할지를 주도면밀하게 계산하는 중이었다.

 

여느 때처럼 아무 일 없이 조용히 지나갈 것 같은 분위기였던 어느 날 저녁 무렵, 해방노예 이켈루스가 갈바의 숙소를 급히 찾아왔다. 시종들에게 낯선 불청객의 정체를 물을 틈조차 주지 않고서 갈바의 침실 방문을 요란하게 열어젖힌 이켈루스는 황제가 자살했다는 놀랍고 충격적 급보를 전했다.

 

이켈루스가 소식을 가져온 지 이틀 후에 로마에서 원로원이 보낸 정식 사절인 티투스 비니우스가 도착해 네로가 자진했음을 공식적으로 확인해주었다. 이래저래 기분이 좋아진 갈바는 비니우스에게는 고위 관직을 제수해주는 걸로, 이켈루스에게는 신분상승을 의미하는 금반지를 하사해주는 것으로 각각의 공로를 치하하였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인생역전의 꿈을 극적으로 이룬 이켈루스는 이름도 마르키아누스로 아예 바꾸었다.

 

제국의 수도에서 네로가 남긴 권력의 공백은 근위대에 의해 지체 없이 채워졌다. 근위대장 님피디우스 사비누스는 73세의 노인 갈바가 신속하게 권력을 접수하지 못하리라고 예상하고는 자기가 직접 로마의 실권을 장악할 궁리를 했다. 그는 위로는 갈바에게 자신을 유일하고도 종신직인 근위대장으로 임명해 달라고 정중히 요청하면서, 아래로는 전폭적 급료 인상을 공약하며 근위대 병사들의 환심을 샀다.

 

원로원 의원들은 님피디우스의 일거수일투족을 법률과 결의로 연달아 추인하였다. 뜨는 별인 그에게 섣불리 맞섰다가는 근위대의 칼날이 언제 목덜미로 날아올지 모르는 탓이었다. 님피디우스는 나날이 교만해졌고, 그는 심지어 집정관들이 발송하는 공문서에 근위대장 인장이 찍히지 않았다고 노발대발하기까지 했다. 당황한 집정관들은 그의 분노를 가라앉히려고 싹싹 빌어야만 했다. 일개 청와대 경호실 얼라 앞에서 내각이 설설 기고, 국회가 벌벌 떠는 형국이었다.

 

님피디우스의 위세가 날로 기승을 부리는 것의 한쪽에서는 네로 정권 시절에 잘나갔던 인사들을 겨냥한 혹독한 정치보복에 제동이 걸릴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네로의 총애를 받던 검투사 스피쿨루스는 쓰러진 네로의 조각상 밑으로 끌려가 군중에게 맞아죽었다. 네로의 생전에 황제의 밀정으로 활약하던 아포니우스는 무거운 돌덩이를 가득 실은 마차가 지나가는 도로에 강제로 눕혀져 비참하게 압사했다.

 

네로 사후에 펼쳐진 적폐청산 작업의 과정에서 사망한 황제의 추종자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무고하고 선량한 시민들도 죄 없이 억울한 희생을 당했다. 사회적 신망이 높았던 마우리쿠스는 이와 같은 목불인견의 참상을 목도하고는 이러다가는 백성들이 네로 시절을 도리어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혀를 끌끌 차면서 개탄하였다.

 

님피디우스의 친부가 누구인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님피디우스는 그가 아버지 쪽으로 카이사르 집안의 피를 물려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어머니가 해방된 노예의 딸이란 사실만큼은 차마 부인하지를 못했다. 플루타르코스는 님피디우스의 실제 생부가 스타 검투사였던 마르티아누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님피디우스는 그의 출신 성분을 둘러싼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의혹들을 네로 정권을 무너뜨린 공훈을 앞세워 불식하기를 바랐다. 그는 죽은 황제의 시신을 화장하는 장작불이 채 꺼지기도 전에 네로의 애첩인 스포루스와 잠자리를 같이하는 것으로 미천한 출신 성분에서 비롯된 콤플렉스를 극복하려고 시도했다. 분수 모르는 이 간 큰 근위대장은 스포루스를 나중에 정식 아내로 삼음으로써 로마의 새로운 주인이 바로 님피디우스 자신임을 뽐내려 했다.


님피디우스가 최후의 승자로 확실히 부상했다고 판단한 몇몇 원로원 의원이 근위대장의 측근으로 변신해 호가호위를 서슴지 않았다. 님피디우스는 무늬만 동료 장군일 뿐, 사실상 부하 장수였던 겔리아누스를 이베리아 반도로 파견해 황위계승의 경쟁자인 갈바 진영의 동태를 관찰ㆍ보고하도록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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