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의 신주거단지 항동지구에는 유난히 좁은 보도가 있다. 학생들이 날마다 등하교 시간에 걷는 초등학교 정문 앞의 통학로다.
초등학생이 어머니와 손을 잡고 걸으면 통학로가 꽉 차 보인다. 친구 두 명이서 나란히 걷기에도 벅벅찬 너비다. 삼삼오오 재잘거리며 걷던 학생들은 이 길에 이르면 두 줄로 맞춰 걷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올해 3월 개교한 항동초등학교 정문 앞 등하교 길의 풍경이다.
항동지구는 지난 2010년부터 서울특별시에서 준비한 주택개발지구다. 부천시 옥길동과 인접해 있고, 가까운 거리에 역곡역, 온수역, 천왕역 등이 있어 대중교통 이용도 좋은 편이다. 구로구 역시 지난해부터 버스 노선을 신설하는 등 항동지구의 편의 증진을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올해 3월 입주한 항동 하버라인 아파트 주민들은 이미 상당수가 입주한 상태다. 이에 맞춰 항동초등학교 역시 올해 초 공사를 끝내고 3월 4일부로 개교했다.
야심차게 계획되어 만들어진 곳이니만큼, 학교와 인근 보도의 계획에도 안전과 편의를 면밀하게 검토해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 2m가 채 못 미치는 보도는 '계획'이나 '검토'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있다.
단순히 보도의 너비만 봐도 유모차나 휠체어 한 대가 간신히 지나칠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두 대의 휠체어가 반대쪽 방향에서 다가온다면 한 사람은 정문, 혹은 횡단보도까지 '후진'을 해야 한다.
현재 항동초등학교 학생 수는 193명이다. 구로구청은 설립 계획에서 이 학교 학생 수를 1,246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항동지구 입주가 완료되면 항동초등학교 학생 수는 6~7배가 증가한다.
이 때가 되면 좁은 도로 탓에 학생들은 2열 종대로 줄을 서서 등교하거나 정문 앞 차도를 무단횡단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아예 정문이 아닌 후문만 이용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정문은 군더더기 장식품으로 전락하게 된다.
같은 날 함께 개교한 하늘숲초등학교와 비교해 보면 차이는 극명하다. 넓은 보도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사람들 사이를 자전거가 지나가도 문제없을 정도다. 두 학교의 보도에는 어쩌다 이런 차이가 생긴 것일까.
구로구청에서 배포한 항동초등학교의 조감도를 보면 현 모습과 상이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감도 속의 항동초등학교에서는 이 좁은 보도가 보이지 않는다. 조감도와 실제 모습이 완벽하게 일치할 수 없다고는 해도, 보도의 폭은 지나치게 좁다. 조감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방음벽 때문이다.
이에 대해 구로구청은 “아직 서울주택도시공사에서 기반시설을 조성중이다. 구청으로 관리가 넘어오지 않았으니 공사 쪽에 문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교한 지 한 달이 넘었음에도 아직 통학로 등의 공사가 끝나지 않았다는 얘기다.
서울주택도시공사(이하 SH공사) 측은 학교 전면의 방음벽 탓에 보도가 좁아졌다고 설명했다. SH공사에 따르면 교통환경영향평가에 따른 초기 항동초등학교 앞 보도의 폭은 2.25m였다. 이후 (교육)환경영향평가에서 방음벽을 설치하라는 결정이 있었고, 60cm의 공간이 사라졌다. 그 결과 현재 항동초등학교 앞 보도는 고작 1.65m밖에 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SH공사 측은 “보도의 최소 폭이 부득이할 경우 (보도를 최소)1.5m는 확보를 하게 되어 있다. 그 경우에는 충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해당 보도에 가 직접 줄자를 통해 간격을 재봤다. 공사 측의 말처럼 1.5m 규정에는 15cm라는 아슬아슬한 차이로 충족됨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SH공사 측의 해명에는 맹점이 있다. 바로 보도 안에 설치된 가로등이다. 가로등에서부터 방음벽까지의 거리는 1.5m라는 요건에 미치지 못했다. 1m 내외의 협소한 길이다. 최소한의 규정은 충족했다는 공사측의 해명이 궁색해보이는 대목이다.
공사단계에서 이 문제점을 놓쳤을 리는 없다. SH공사 측은 왜 이런 점을 외면한 채 공사를 진행했을까. 앞서 구로구청 측은 “아직 SH공사에서 기반시설을 조성중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항동초등학교는 벌써 개교를 해서 첫 학기를 보내고 있다.
공사 측은 개교 직전에야 간신히 공사를 끝냈을 만큼 시간에 쫓기고 있었다. 완공이라 부르기 어려운 완공을 한 셈이다. 학생들이 날마다 이용하는 학교 정문 앞의 유일한 인도가 언제까지 이 상태로 있어야 하는 것일까?
SH공사에 따르면 이 불편하고 좁은 보도가 고쳐질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보도를 다시 넓히려면 방음벽을 철거하고 다시 설치하는 대공사를 해야 한다. SH공사 관계자는 이에 대해 “현재로서는 계획에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