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신속처리안건(일면 패스트트랙) 지정을 둘러싸고 여의도 국회의사당 안에서 전쟁터를 방불하게 하는 거친 육탄전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극단적인 대치와 대결에서 민주평화당과 정의당, 그리고 바른미래당 같은 다른 여러 정당들은 난장판이 된 국회의 정상화를 위한 존재감을 과시하기는커녕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이와 같은 구도와 상황 아래에서 다당제의 틀이 과연 제대로 유지가 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정치의 민주성과 생산성과 대표성을 동시에 높이는 다당제 본래의 기능과 취지를 되살리려면 과연 어떠한 변화와 개선이 필요한지를 제도적 측면과 리더십의 관점에서 말씀해주십시오.
만약에 국민의당이 있었다면
김정현 : 질문하신 순서에 맞춰서 다당제에 대한 저의 생각부터 먼저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2016년 4월 총선 결과로 제20대 국회가 출범하면서 국민의당이 원내 교섭단체로 등장했습니다. 저는 이때 출현한 3당 체제가 다당제로서 가장 적합한 체제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국민의당이 사라지면서 이때 탄생한 다당제 또한 해체되고 말았습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와 유승민 의원 두 분이 바른미래당을 만들었고, 원래 국민의당에 있던 분들이 거기에서 빠져나와 민주평화당을 창당했기 때문입니다. 국민의당이 사라지면서 제3당이 갖고 있던 중도개혁정당으로서의 위상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안철수 전 대표께서 이와 같은 상황전개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재작년인 2017년 12월에 안철수 전 대표를 뵌 적이 있습니다. 안 전 대표께서 만나자는 연락을 먼저 주셨더라고요. 저는 그 자리에서 안철수 전 대표께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안 전 대표 본인이 만든 금지옥엽 같은 당을 왜 깨려고 하느냐고 허심탄회하게 제 의견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게 되면 안 전 대표님의 개인적 문제뿐만 아니라 한국정치의 문제가 되니 깊이 숙고하시라는 것이 요지였습니다. 제가 그와 같은 의견을 안철수 전 대표에게 왜 전달했느냐? 국민의당을 깨게 되면 다당제는 유명무실해질 것이 명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당제가 유명무실해지면 기존의 양당체제로의 복귀가 급속도로 진행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국민의당의 존립 여부는 안철수 전 대표의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정치 전체와 관련된 중차대한 일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저는 안철수 전 대표께 국민의당을 깨려는 결정을 재고해줄 것을 강력하게 요청했었습니다. 하지만 국민들께서 잘 아시다시피 국민의당은 결국 깨졌고, 그 결과로 다당제의 미래는 매우 불투명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저는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께서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한 이후에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독일로 출국한 일은 굉장히 잘하신 결정이라고 봅니다. 현실정치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서 공부와 충전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다당제가 붕괴할지도 모를 지금의 사태에 대해서 안철수 전 대표께서 별다른 성찰의 모습을 여전히 보여주지 않고 있는 부분은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탄핵, 다당제 덕분에 가능했다
우리나라의 정치현실을 보면 다당제보다는 양당제로 흐르는 경향이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그 원인을 역사적 배경에서 찾고 싶습니다.
무엇보다도 남북분단의 현실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남북이 대립개념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한국사회의 이념과 사상이 심각하게 경직되어왔습니다. 이념과 사상이 경직된 사회에서는 다당제가 정착되기가 힘듭니다. 왜냐면 다당제는 상당한 정치적 유연성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치사회적 현실은 ‘군사독재정권 대 민주화세력', ‘친정부 대 반정부’, ‘여당 대 야당’ 식의 구도로 오랫동안 굴러왔습니다. 양당제에 적합한 토양이 끊임없이 만들어져왔습니다.
이는 20대 총선에서 일어난 국민의당 돌풍이 그만큼 크고 깊은 정치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반증일 수 있습니다. 국민의당은 안철수 대표와 호남 출신 정치인들이 결합해 탄생시킨 정당이었습니다. 우리는 새정치를 표방한 안철수 전대표와 한국정치에서 항상 방향타 역할을 해온 호남정치가 만났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정당이 해체되면서 건강한 다당제에 위기가 초래되었습니다.
다당제가 효과적으로 존속하려면 앞서 말씀드린 바대로 굉장한 정치적 유연성이 요구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스스로의 정치적 효용성을 국민들을 위해 꾸준히 증명해내야만 합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언제 탄핵되었습니까? 국민의당이 건재하던 3당 체제 아래에서였습니다. 박근혜 탄핵은 양당 체제에서는 불가능한 성과물이었습니다. 거대 여당과 거대 야당이 마주보고 달리는 기관차처럼 일대일로 대치하는 구도에서 어떻게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탄핵찬성세력 대 탄핵반대세력으로 나라 전체가 절반으로 쫙 갈려졌을 게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거대 양당 이외에도 국민의당이라는 캐스팅 보트를 쥔 정당이 가운데에 자리해 있었습니다. 그 캐스팅 보트를 쥔 국민의당이 있었던 까닭에 박근혜 탄핵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때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당을 엄청나게 비난했었습니다. 그렇지만 당시 우리는 탄핵안의 가결이, 즉 통과가 목적이었습니다. 단지 발의한 데만 만족하는 더불어민주당과는 목적지 자체가 달랐습니다.
국민의당이 탄핵의 발의가 아닌 가결을 목표지점으로 설정하자 새누리당에서 이탈한 세력들이 박근혜 탄핵의 대오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다당제는 중대한 정치적 고비마다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내는 법입니다.
성공적 다당제의 원조는 평화민주당
우리나라에서 다당제가 성공적으로 운영된 사례의 원조는 김대중 대통령께서 창당하신 평화민주당 시절이었습니다. 평화민주당이 다당제를 주도했던 국회는, 3당 합당으로 민자당이 출현하기 전까지의 국회는 역대 어느 국회보다도 생산성이 높았던 국회로 지금까지도 높게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때 국회가 어떤 국회였느냐? 가장 많은 법안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킨 국회였습니다. 민생을 살리고 정치를 발전시키는 가장 많은 개혁법안을! 무능하고 부도덕한 대통령을 탄핵시키는 게 다당제의 힘입니다. 여야 합의로 단연 많은 개혁법안을 통과시키는 게 다당제의 힘입니다.
당시 국회는 원내 의석수대로 열거하자면 민주정의당, 평화민주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으로 구성된 황금분할의 4당 체제였습니다. 국민의당이 3당으로 있던 시기와 견주면 더욱 안정되고 확고한 다당제였습니다.
안정되고 확고한 다당제의 틀에서는 그 누구도 독주를 할 수가 없습니다. 일방적 독식도 원천적으로 가능하지가 않습니다. 대화와 타협을 하지 않으려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날치기가 어떻게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따라서 많은 개혁입법들이 대화와 타협의 기초 위에서 국회에서 통과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당제의 힘이 얼마나 위대하고 위력적인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였습니다.
국민의당은 다당제를 지키는 마지노선이었습니다. 국민의당이라는 마지막 보루가 무너지면서 정치는 물론이고 다른 여러 분야들도 만사를 흑과 백으로만 나누는 이분법적 논리가 횡행하고 있습니다. 당장 언론의 논조들만 살펴보세요. 더불어민주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을 범여권으로 뭉뚱그려서 표현하는 경우가 잦습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범야권으로 묶여서 일컬어지곤 합니다. 언론이 범여권 대 범야권으로 대립구도를 자꾸만 형성시켜놓으면서 양당제로의 재편 흐름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신속처리안건, 즉 패스트트랙 지정동의를 둘러싸고 빚어진 볼썽사나운 물리적 충돌도 양당제로의 개편 흐름과 무관하다고 볼 수만은 없습니다.
저는 국민들에게 차마 보여주지 못할 불미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요 며칠 간의 국회 풍경을 바라보면서 국민의당이 사라진 사실이 더욱더 애통해집니다.
만약에 국민의당이 건재했다면 어떻게 문제가 풀려나갔을까요? 선거법 개정이 오래전에 이뤄졌을 겁니다. 공수처 법안도 진즉에 무리 없이 통과됐을 겁니다. 검경 수사권 조정도 일찌감치 국민들이 여망하는 방향으로 실현됐을 것입니다.
4당 개혁연대의 가동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은 어떻습니까?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로 국회에서 확실한 개혁입법이 순조롭게 통과된 적이 거의 없습니다. 개혁입법 제로가 현실입니다. 저는 국민의당이 여전히 캐스팅 보트를 행사하고 있었다면 상황이 크게 달랐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저는 촛불민심을 반영하는 수많은 개혁입법들이 국회에서 만들어졌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로서는 국민의당이 허물어진 일이 너무나 아쉽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국민들에게는 자기가 지지하고 선호하는 정당을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다. 저는 심지어 태극기부대의 지지를 받는 강경보수 정당도 하나쯤은 필요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합리적 보수를 표방하는 정당도 있어야 합니다. 중도개혁 성향의 정당도 나타나야 합니다. 진보정당도 당연히 있어야만 하겠고요. 농민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농민당이 만들어지는 것도 좋은 일일 수가 있겠죠.
정당의 숫자가 정확히 몇 개가 바람직한지는 제가 특정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의 다양해진 이념 성향에 부응하는 정당체제만은 너무 늦기 전에 출현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5년 주기로 좌우를 크게 오가는 형국으로 정치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유권자들 입장에서는 적응조차 만만치 않은 게 지금의 우리나라 정치의 현주소입니다. 저는 그와 같은 사생결단의 양당구조를 탈피하는 방향으로 정당구조가 합리적으로 재편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면 다당제를 증진하는 쪽으로 선거구제 개편이 추진되어야 합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처럼 다당제의 틀을 보장하는 선거제도의 도입과 실시가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 패스트트랙 사태 정국을 계기로 국민들이 염원하는 개혁입법의 관철을 위한 4당 연대가 더욱더 강화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의원내각제로의 개헌이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내각책임제가 이상적인 정치형태에 보다 접근한 헌정체제라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곳에 닿기까지는 아직 먼 길을 가야겠지만요.
황교안의 자유한국당 이래서 안 된다
다당제가 성공적으로 유지되고 기능하려면 빼어난 정치적 리더십의 존재가 불가결합니다. 리더가 정말 잘해야만 하는 것이 다당제입니다. 다당제는 독식이 불가능한 체제입니다. 독주를 불허하는 체제입니다. 다당제의 본령은 의회민주주의를 제대로 구현하는 데 있습니다. 국회를 폐쇄하지 않는 한 정치의 중심무대는 의회공간일 수밖에 없습니다.
국회의원들의 대부분은 어떤 인물들입니까? 정당의 추천, 즉 공천을 받아서 당선된 사람들입니다. 국민들이 정당을 통해서 국회를 구성함으로써 자신들의 주권을 실현하는 셈입니다. 따라서 정당 지도자들은 국민들의 주권을 받들어야 하는 정말 막중한 책임을 떠안게 됩니다. 다당제 하에서의 정당 리더들에게 고도의 정치력이 요구될 수밖에 없는 까닭입니다. 철학과 유연성을 동시에 갖추면서 대화와 타협을 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양보할 것은 양보하면서 관철시킬 것은 관철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당제는 내공 출중한 정치적 고수들이 있어야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습니다.
훌륭한 정치 지도자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황교안 체제의 자유한국당이 머잖아 뚜렷한 한계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자유한국당은 나라를 일단 반으로 갈라놓은 다음에 뭐든지 시작하잖아요. 국민의 절반만을 자기들 편으로 상정하고서 나머지 절반은 적대시하기 일쑤입니다.
성공하는 정치 지도자는 이래선 안 됩니다. 황교안 대표를 예로 들어 이야기해볼까요? 국민을 한 몸으로 여기며 정치를 해야 황교안 대표처럼 너무 일찍 레드카펫을 밟는 우스운 모양새를 피할 수가 있습니다. 저는 황교안 대표가 광화문 장외집회 연단에 올라가 나경원 원내대표와 함께 마치 패션쇼 런웨이처럼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서 혀를 찼습니다. 훌륭한 정치 지도자는 국민 모두의 지지를 얻으려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금 자유한국당과 황교안 대표는 국민을 딱 반으로 갈라놓고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절반의 지지만을 목표로 정치를 하는 인물은 제대로 된 정치 지도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훌륭한 정치적 리더로 성장하려면 시간에서나 공력에서나 오랜 노력이 필요합니다. 지지자들을 모으는 재능도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지금의 정치인들은 훌륭한 정치 지도자에 대한 국민들의 갈증을 속 시원하게 풀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정치적 과도기에 해당합니다. 저는 과거에 성공을 거뒀던 낡은 기억과 타성을 하루빨리 앞장서서 과감하게 포맷시키는 정당이 국민의 갈증을 풀어주는 정치세력으로 우뚝 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희준 : 좋은 말씀 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정현 : 고맙습니다.
김정현 민주평화당 대변인은 1960년 전남 곡성에 태어나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전남일보 기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얼마 전 별세한 김홍일 전 의원의 보좌관으로 오랫동안 일하기도 했다. 새천년민주당, 민주당,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부대변인을 지낸 다음 더불어민주당 수석부대변인을 역임하였다. 국민의당과 민주평화당에서는 공보실장으로 활동하였다. 때로는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때로는 본인 스스로의 선택으로 당적이 10번이나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김정현은 견결한 ‘평생 DJ’맨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