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부활하고 싶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처음 ‘새정치’의 깃발을 들고 나왔을 때 저는 안 전 대표가 내건 대의명분에 공감해 경기도 내일포럼 대표와 시흥 내일포럼 대표를 모두 맡았습니다. 그때 저의 별명이 ‘시흥의 안철수’였습니다.
임승철 위원장은 회한과 계면쩍음이 동시에 담긴 의미심장한 너털웃음을 잠시 가볍게 터트렸다.
저는 진보정당에 오랫동안 몸을 담아왔었습니다. 민주노동당 활동을 장기간 했었고, 그 다음에는 진보정의당 경기도당위원장을 지냈습니다. 당시 시흥시에서 사람을 만나면 몇몇 짓궂은 인사들이 저를 향해 ‘빨갱이 대표’라고 야유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시흥시장 선거 출마를 준비하면서 제가 솔직히 좀 변색이 됐죠. (웃음) 제가 안철수 진영에 합류해 시흥시장에 도전할 무렵에 지역 내의 민심을 조사해보니까 33퍼센트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나왔습니다. 출마 희망자들 가운데 1등이었습니다.
그러나 안철수 전 대표가 신당 창당의 꿈을 접고 김한길 당대표 체제의 민주당과 사실상의 합당을 감행해 새정치민주연합을 만들면서 저의 상승세가 확 꺾이고 말았습니다. 이를 계기로 정치와 관련된 모든 일들이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안철수와 김한길 두 분의 전격적인 합당 합의 발표 이후 저는 현재의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에서 2년 동안 지역구 공동위원장직에 머물렀습니다. 저로서는 그 2년이 그야말로 잃어버린 2년일 뿐이었습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민주당에 왜 입당했는지에 관해서는 여전히 논의가 분분하다. 확실한 사실은 안철수가 낡고 무능하고 무책임한 기성 정치체제의 중요한 한 축인 거대 정당 민주당에 백기투항함으로써 그는 ‘안철수 현상’의 핵심적 동력을 제공했던 수도권 청년층의 지지를 거의 전부 상실했다는 점이다. 임승철 위원장은 그 직격탄을 모질게 맞은 애꿎은 인물들 중 하나였다.
충청도 출신 유권자, 자유한국당으로 쏠리고 있어
새정치민주연합에 있던 2년간, 앉아서 멀뚱멀뚱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나중에 국민의당으로 출범할 신당 창당 작업에 매진했습니다. 「90프로의 국민을 위한 풀뿌리 국민정당」 운동도 이를 위한 일환이었습니다.
저는 부활하고 싶은 소망이 있습니다. 제가 국민의당 창당 과정에서는 이론을 다듬고 정책을 개발하는 일을 물밑에서 책임진 바 있습니다. 그때의 경험과 기억을 되살리며 요즘에는 ‘리셋 제3의 길’을 이루는 데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제가 중앙정치의 중요성을 말씀드렸지만 지역과의 공조와 협력이 없으면 중앙에서의 쇄신과 재편은 매우 험난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저는 시흥시 차원에서 새로운 정치적 플랫폼을 구축하는 일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저는 고향이 충청도입니다. 진보개혁 진영에서는 호남 출신들이 주류이다 보니 제가 여기에서는 비주류에 속한다고 봐야겠지요. 그런데 제 지역구인 시흥시 갑만 시야에 넣고 본다면 충청도 출신 유권자들이 가장 많습니다. 문제는 충청도 태생 유권자들이 최근 들어 자유한국당 쪽으로 급격하게 쏠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제가 충청도 출신임에도 이곳 호남향우회 회원들과 친분이 두텁습니다. 따라서 자유한국당으로 자꾸만 가려는 충청도 출신 유권자들의 표심을 내년 총선 때까지든 어떻게든 붙잡아야겠지요.
제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충청도 출신 유권자들이 이곳의 재선 지역구 국회의원인 함진규 의원에 대해 느끼는 피로도가 다행히 꽤 큽니다. 3선까지 허용하는 데 대해서는 부정적 기류가 짙습니다. 더욱이 함진규 의원에게 지난번 총선에서 비록 표를 주었지만 지지를 철회한 분들도 상당수일 테고요.
서울대가 빚어낸 시흥의 잃어버린 10년
하지만 이러한 정치공학적 셈법들은 본질적으로 모두 부차적 사항일 뿐입니다. 관건은 시흥시가 작금에 당면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가는지에 있습니다.
제가 예전에 「시흥시민의 힘」의 대표에 있었습니다. 「시흥시민의 힘」은 시흥시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시민단체들이 결성해 만든 연합단체의 성격을 띠는 조직입니다.
시흥시의 시민사회가 당면한 일차적 과제는 배곧신도시에 조성될 것으로 알려진 서울대학교 시흥캠퍼스 건설 문제입니다.
시흥시는 배곧신도시에 입주하는 조건으로 서울대학교에 1조 원을 토지 형태로 무상 지원했습니다. 이게 벌써 2009년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무려 10년이 흘러갔습니다. 그럼에도 확실하게 가시화된 결과물이 여전히 없습니다. 시흥시민들 입장에서는 서울대가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민다”는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서울대학교 시흥캠퍼스 문제는 시흥 지역에서는 선거 때마다 빠짐없이 우려먹는 단골 메뉴입니다. 그때마다 하는 얘기가 똑같았습니다. “이제는 진짜 들어온다”는 식이었습니다. 지역의 유권자들은 선거에 나온 양치기 소년들에게 개발에 따르는 기대심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억지로 표를 주어야만 했습니다. 한마디로, 계속 기만당해온 셈입니다.
칼을 들어야만 강도가 아닙니다. 만약에 시흥 주민들이 서울대에 준 1조 원을 가지고 예컨대 강남에 땅을 샀으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다들 이미 오래전에 돈방석에 올라앉았을 겁니다. 시흥은 서울대의 석연찮은 늑장 부리기 탓으로 정말 엄청난 기회비용을 치러왔습니다. 그로 인해 급기야 시장 소환 운동을 벌여야 한다는 여론마저 일어나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시민단체 활동가로서도, 그리고 제도권 정치인으로서도 시흥시가 뚜렷한 일정표와 청사진 없이 서울대를 시흥에 무턱대고 유치하려는 계획에 대해서 거의 유일무이하게 반대 의견을 표명한 사람이었습니다. 텔레비전 방송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서는 해당 사업의 무모함과 부당성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비판했습니다.
서울대 시흥캠퍼스, 소리 없이 작아져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제가 지역의 풀뿌리 운동과 관련해서는 조금은 소강상태를 거쳐 왔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시흥 지역의 풀뿌리 시민운동을 다시금 복원하는 노력을 기울여야만 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저 자신의 정치사회적 입지 강화만을 위해 복원에 나서겠다는 건 물론 아닙니다. 국회의원 선거가 내년 봄으로 박두했습니다. 그러자 서울대 시흥캠퍼스를 앞세워 또 여기저기서 주민들을 들쑤시고 있습니다. 시흥시와 서울대에서는 배곧신도시에 500병상 이상의 병원을 신축하겠다고 장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앞뒤가 참 맞지 않습니다. 왜냐면 원래는 800~900병상의 병원을 짓겠다고 공언했었기 때문입니다. 소리 소문 없이 슬그머니 병원 규모가 대폭 축소됐습니다.
서울대병원 건립을 목적으로 하는 추진준비위원회를 이제야 부랴부랴 구성한다고 하는데 도대체 어느 세월에 제대로 완공을 하려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습니다. 시흥시 주민들은 여기에서 10년을 또 더 기다려야만 한다는 말인가요? 시흥시도, 서울대도 시흥시민들을 상대로 얄팍한 조삼모사를 수시로 일삼고 있습니다.
본래의 계획과 목표는 시흥시에 서울대학교 기숙형 캠퍼스와 함께 서울대병원을 유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시나브로 기숙형 대학은 사라지고, 그 대신 기숙사와 직원아파트와 서울대병원만으로 바뀌었습니다. 현재까지의 경험을 감안하건대 서울대병원 건립도 손쉬운 과제가 아닙니다. 서울대학교는 국립대학법인입니다. 그 안에서 만만찮은 격론과 내부 진통이 당연히 예상됩니다.
서울대학교가 시흥시와 한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한 가지 유일한 희망이자 가능성이 있기는 합니다. 국민의당의 공천을 받아 비례대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던 오세정 현 서울대총장의 고뇌에 찬 결단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제가 오세정 총장을 직접 만나서 날밤을 지새우며 담판이라도 짓고 싶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특정인 한 명의 고뇌에 찬 결단만으로 사업의 존폐를 결정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닙니다. 크고 작은 조직들 전부가 시스템에 입각해 움직이는 세상입니다.
따라서 서울대가 시흥시에 원안대로 들어오게 하려면 모종의 전제조건 하나가 충족되어야 합니다. 그게 뭐냐? 바로 퍼주기입니다. 어째서 퍼주기이냐? 서울대가 시흥에 온다고 하니까 시흥시가 캠퍼스 건설에 필요한 대지와 건물에 더해서 운영비까지 50프로 이상을 부담하겠다고 말했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시흥시는 가난한 동네다. 지금의 서울대는 부잣집 자식들이 입학하는 대학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천명한 대로 대한민국이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로 탈바꿈하려면 서울대가 시흥시를 지원하는 게 순리이지, 그 반대방향은 분명히 아닐 것이다. (③편에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