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박근혜의 오버, 문재인의 엄살
  • 공희준 편집위원
  • 등록 2020-03-08 19:20:23

기사수정
  • 박근혜와 문재인 (4)

처칠은 왜 성질을 부리지 않았을까


대영제국 수상 처칠과 미합중국 대통령 루스벨트가 대서양 헌장을 공동발표한 장소인 전함 프린스 오브 웨일스호는 불과 넉 달 후 머나먼 이역만리의 바닷물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처칠과 루스벨트는 나라를 이끌며 크고 작은 잘못을 저질렀다. 처칠의 등판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이 겪은 고난의 끝이 아니었다. 본격적인 시련의 시작일 뿐이었다. 영국군은 서유럽의 평원에서, 북아프리카의 사막에서, 동남아시아의 정글에서 쉴 새 없이 참패했다. 이러한 일련의 패퇴에는 처칠이 직접 책임져야만 하는 사태도 있었다. 일본군 항공기들의 손쉬운 사냥감이 될 것이 명백함에도 전함 프린스 오브 웨일스(Prince of Wales)와 중순양함 리펄스(Repulse)를 싱가포르 방어전에 무리하게 투입시킨 원흉은 다름 아닌 대영제국의 총리 윈스턴 처칠이었다.


처칠의 치명적인 고집과 오판으로 인해 영국이 자랑하는 최강의 함선들과 다수의 최정예 수병들은 말레이반도 앞바다에서 불귀의 객이 되었다. 당시의 충격과 공포가 얼마나 혹심했던지 처칠은 아시아로 파견된 Z함대가 무기력하게 궤멸당했다는 급보를 침대머리에서 비서로부터 전해 들었던 바로 그 순간을 2차 대전 최악의 순간으로 자신의 회고록에 기록하였다. 처칠 개인에게는 문자 그대로의 ‘Darkest Hour’였다.


루스벨트의 과오는 처칠의 착오보다 무거웠으면 무거웠지 가볍지는 않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젊은 시절에 해군부에서 차관보로 근무한 적이 있었다. 태평양함대의 기지를 본토의 샌디에이고로부터 태평양 한가운데 자리한 진주만으로 이동시키면 어떤 위험성이 수반될지 모를 리 없었다. 게다가 일본 연합함대의 기습을 허용한 미국 태평양함대 수뇌부의 최종적 인사권자는 당연히 현직 대통령인 루스벨트였다.


진주만 기습을 소재로 다룬 몇몇 미국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일본군이 하와이 섬을 불시에 공격해왔다는 소식을 접한 루스벨트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는 장면이 등장한다. 루스벨트는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하반신이 거의 마비된 상태였다. 그가 일본의 선전포고 없는 전쟁 개시에 느낀 분노와 경악이 그만큼 컸다는 뜻이다.


처칠과 루스벨트가 전무후무한 국가적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해낸 위대한 정치 지도자로 손꼽히는 까닭은 실패와 실수를 범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실수를 만회하고 실패에 대처하는 방법의 세련됨과 태도의 원숙함이 그들을 히틀러와 스탈린 등의 잔인한 독재자들과 차별화되게끔 만들었다.


미합중국과 대영제국은 나치 독일이나 소비에트 러시아와 달리 작전에 실패한 장교들을 통치자 마음대로 응징하고 처단할 수가 없었다. 기본적인 민주적 원칙과 절차를 밟아가며 오류에 상응하는 처벌이 이루어졌다. 대신에 보다 절제된 방식을 통해서 권부의 울분을 야전의 군인들에게 쏟아 부을 수는 있었다. 그럼에도 처칠과 루스벨트는 전선에서 실제 전투를 주도하는 장군들을 공개적으로 질타하지도, 그들을 겨냥해 드러내놓고 격노하지도 않았다.


왜일까? 전투는 군인이 담당하지만, 전쟁은 정치인의 몫인 연유에서이다. 따라서 군인은 전투에서 이길 전략전술을 강구하고, 정치인은 전쟁에서 승리할 국책을 모색해야만 한다.


전투에서 이기는 방법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물론 군인이다. 처칠과 루스벨트의 서전에서의 실수는 전투에서 승리할 방법을 가장 잘 하는 군인을 적재적소에 기용하지 못한 데 기인했다. 그러므로 즉자적인 격노와 질타는 지혜롭고 효과적인 대응책이 아니었다. 전투에서 승리할 방법을 가장 잘 아는 군인을 선별해 지휘권을 통 크게 맡기는 게 처칠과 루스벨트의 바람직한 역할이었다. 처칠과 루스벨트는 이후 개별적 전투에 대한 간섭을 멈추고 유능한 장군을 발탁하는 일에 주력했다. 그게 훌륭한 지도자가 나라와 국민에게 책임지는 올바른 길이었다.


박근혜의 격노와 문재인의 질타


박근혜 정권과 문재인 정권을 거치며 대통령의 격노와 질타는 우리나라에서 이발소 벽에 걸린 그림이나 디시인사이드의 게시물에 달리는 ‘짤방’ 같은 요소가 되고 말았다.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존재인 셈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그 많은 격노는 그를 탄핵의 벼랑 끝에서 결국 구해내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부단히 이어지는 질타와는 상관없이 문재인 정권은 김영삼 정부의 경제적 굴욕과 참여정부의 정치적 몰락을 고르게 섞어놓은 역대급 무능정권이 나날이 되어가는 중이다. 원인은 명확하다. 박근혜 정권도, 문재인 정권도 정당한 책임을 정상적으로 지지 않는 오만하고 독선적인 권력이 된 탓이다.


필자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본래 무책임한 성격의 소유자인 탓으로 말미암아 지난 정부와 지금의 정부가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정권이 되었다고는 평가하지 않는다. 핵심적 관건은 책임을 지려는 의지가 있고 없음이 아니라, 책임을 지려는 역량의 유무에 달렸다.


격노와 질타로 전투에서 잠시 이길 수는 있다. 그러나 전쟁에서의 궁극적 승리는 거두지 못한다. 처칠이나 루스벨트라고 해서 왜 시시때때로 성질이 뻗치지 않았겠는가? 허나 그들은 군인의 책임은 군복을 벗는 것으로 마무리되지만, 정치지도자의 책임은 대다수 국민들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는 성과를 창출해냄으로써 완성됨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박근혜의 파국과 문재인은 한계는 국가지도자 본연의 사명은 나라와 국민을 위해 지속가능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일에 있음을 그들이 여전히 뚜렷이 깨닫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그와 같은 기초적 인식이 결여돼 있으면 실무자들 소환해 당장 호통치고 질책하는 게 능사라고 생각하는 지극히 단세포적이고 근시안적 사고의 틀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기 마련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본인이 책임감 있는 지도자임을 과시하려는 목적에서 병적으로 의전에 집착했다. 그는 대통령처럼 보이는 행동에만 지나치게 열중하다가 국민들이 도저히 대통령으로 인정해줄 수 없는 지경까지 역설적으로 추락했다. 박근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대통령으로 보이려다가 정작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대통령이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과는 정반대 경우다. 문 대통령은 대통령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다채로운 이벤트를 부지런히 기획하고 연출했다. 문제는 현재의 청와대가 대통령에게는 아무 힘이 없다는 식으로 여론을 몰아가면 몰아갈수록 민심은 대통령 권력의 위력과 막강함을 오히려 더욱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실감했다는 사실에 있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나 추미애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야당의 반대와 언론의 비판을 사뿐하게 일축하고 법무부 장관에 차례로 앉힐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손에 쥔 거대한 국가권력 덕택에 가능한 일이었다. 도덕성에서도, 능력에서도 함량미달인 수많은 인사들이 단지 친문세력에 속한다는 이유만으로 공영방송사 사장이 되고, 공기업 임원이 되어온 망국적인 인사참사 현상 역시 문재인 대통령이 수중에 장악한 청와대 권력의 무게와 무시무시함을 도드라지게 부각시켰을 따름이다.


할 수 없는데도 할 수 있는 것처럼 부산을 떨면 오버이다. 힘이 있는데도 힘이 없는 것처럼 괜히 약한 척을 하면 엄살이다. 오버하지 않고 엄살 부리지도 않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하지 못할 일은 솔직히 못한다고 고백하는 게 정치인으로서의 책임이고 책임감이다.


박근혜의 오버도 없고 문재인의 엄살도 없는, 반듯하면서도 정정당당한 인물이 영도하는 세력과 정당이 집권할 때에야 남한의 평범한 인민대중은 유능하고 책임감 있는 리더십을 비로소 제대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관련기사
TAG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서초구
국민신문고
HOT ISSUE더보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이원욱 의원, “개혁신당 돌풍은 동탄에서” 총선 후보 등록 완료 개혁신당 이원욱 의원(경기 화성정: 동탄1·2·3·5동, 반월동)이 22일(금), 선거관리위원회에 경기 화성(정) 후보자로 등록을 마치고 총선 승리 의지를 다졌다.이원욱 의원은 이번 총선으로 개혁신당이 양극단 혐오정치를 끝내고, 대한민국의 정치개혁을 이뤄낼 것이라고 자신했다. 본후보 등록을 마친 이원욱 의원은 “지난 21.
  2. 서울시, 잠실종합운동장 방문객 대중교통 이용 당부 서울시체육시설관리사업소(사업소)는 3월 23(토)부터 24일(일)까지 잠실종합운동장에서`2024 프로야구 공식 개막전` 및 `2023~2024 프로농구`가 개최되어 많은 관람객들이 운집할 것으로 예상 되므로 잠실종합운동장을 찾는 시민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줄 것을 당부했다.잠실야구장에서는 2023 한국시리즈 우승팀인 LG와 미국 메이저리그 생활을 .
  3. 김현정 후보, “GTX연계 평택 글로벌대학 캠퍼스 추진” GTX A·C노선 연장으로 서울·평택간 30분대 통근이 가시화한 가운데,  외국 명문대를 유치해 평택 글로벌캠퍼스를 만들겠다는 공약이 나왔다. 21일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평택시병 국회의원 후보는 “국내외 대학 유치는 100만 글로벌 특례시를 지향하는 평택시의 과제로 꼽혀왔다”며 “GTX A·C노선의 평택 구간 연장이 기...
  4. "토요일은 서울 곳곳 누비며 우리 가족 역사 만나러 가는 날" 토요일 주말, 자녀와 함께 교과서 속 역사 현장으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서울역사편찬원은 `엄마아빠와 함께하는 교과서 역사기행(이하 교과서 역사기행)`을 마련하고 참여자를 모집한다.교과서 역사기행은 초·중·고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문화유산을 부모님과 자녀가 함께 직접 걸어보며 체험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각 답사...
  5. 차지호 선거사무소 개소식, “오산이 이끄는 미래 경기시대 열겠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오산시 선거구의 더불어민주당 차지호 후보가 23일 선거사무소 개소식을 갖고 본격적인 세몰이를 시작했다.`오산 미래가 되다, 따뜻한 미래설계자 차지호’를 슬로건으로 진행된 이날 개소식에는 많은 내·외빈이 참석하며 야당의 촉망받는 후보임을 입증했다.또한 시민사회 각계각층과 지지자들이 ..
  6. 박성중 부천을 후보, 선거사무소 개소식 "‘부천벨트’ 만들 것" 박성중 국민의힘 경기 부천을 후보는 23일, 부천시 중동에서 선거사무소 개소식을 열고 부천의 발전과 4.10 총선 승리를 위한 본격적인 출정에 돌입했다.이날 개소식에는 부천시민과 당원들이 대거 참석해 인산인해를 이뤘고,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인천계양을 후보), 권성동 의원과 박희태 전 국회의장, 이사...
  7. 인천시, 산하기관과 소통·협력 강화 나서 인천광역시는 20일 시청 회의실에서 산하기관 협의체 전체 회의를 개최했다. 인천시-산하기관 협의체는 시 산하에 있는 경제자유구역청, 공기업, 출자출연기관 등을 대상으로 산하기관의 관리‧대응 체계를 일원화하고, 대시민 서비스의 최일선에 있는 산하기관과의 소통을 강화해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구성됐다. 이날 회의에서는 공.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