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고용 유연화 카드 만지작거리기 시작해
이진화 : 주 52시간 근무제도는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이 얼마나 허구적이고 임기응변적인지를 여실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노동과 여가의 바람직한 공존을 제일 먼저 현실정치상의 화두로 꺼낸 당사자는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였습니다. 그가 민주당 대표 시절에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면서 일과 노동 간의 균형은 일반 국민과 여의도 정치권 사람들을 가리지 않고 폭넓게 회자되기 시작했습니다. 일과 가정의 양립을 강조하는 ‘워라밸’ 또한 “저녁이 있는 삶”과 같은 범주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밀어붙인 주 52시간 근무제는 원래의 도입 취지와는 달리 저녁이 있는 삶은커녕 저녁이 없는 데 더해 아침과 점심마저 사라진 삶을 국민들에게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이유는 단순명쾌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직정에서 해고당하는 실업대란 사태가 자칫하다가는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창궐한 상황을 계기로 ‘고용 유연화’ 논의가 지금 도처에서 심심찮게 떠돌고 있습니다. 때마침 오늘 민주노총에서는 고용 안정화가 우선이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럼에도 정부여당에서는 고용 유연화에 자꾸만 불을 지피고 있습니다. 정부가 고용 유연화 문제에 대한 명확한 로드맵을 제시하지 않은 상태에서 주 52시간 근무제를 실시한 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현재의 코로나 시국을 일종의 전시상황으로 규정해놨습니다. 고용을 유연화화는 시책들을 추진하는 데 필요한 사전정지 작업을 이미 충분해 마친 셈입니다.
노동계는 정부여당의 이와 같은 기류와 정서를 충분히 감지했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를 향해 노동자들의 고용의 안정성을 강화해줄 것을 다시금 강력히 촉구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문재인 정부가 노동정책과 관해서는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가 채택했던 방식으로 회귀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를 노동친화적 정부로 단정하는 세간의 분위기는 대단히 잘못된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제가 서두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나라에서 가장 시급하고 본질적인 노동 현안은 산업현장의 안전과 관련된 일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작년 여름에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에 무역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대한민국의 제조업이 난관에 봉착하고, 수출전선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었습니다. 그러자 정부는 반도체 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소재, 부품, 장비를 조속하게 국산화할 필요성이 크다면서 주 52시간 근무제를 소리 없이 무력화시켰습니다. 제도를 거의 빈껍데기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주 52시간 근무제는 근본적으로 산업안전과 연관되는 사항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이 중대하고 원칙적인 주제를 언제든 번복과 철회가 가능한 부수적이고 주변적인 의제 정도로 격하시켰습니다. 산업안전 문제를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간주하는 정권을 어떻게 참다운 노동친화적 정부로 자리매김할 수가 있겠습니까?
문재인 정부가 구사하는 이미지 정치로 인해 착시현상이 빚어지는 일에서는 노동 분야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 실체를 들여다보면 문재인 정부는 친노동 정부가 아닙니다. 친기업 정부도 아닙니다. 그냥 이미지 정치에만 몰두하는 정부일 뿐입니다.
최저임금 인상은 필연이 아닌 우연
이진화 공인노무사는 “문재인 정부는 문재인 정부를 위한 문재의 정부에 의한 문재인 정부의 정부”라는 개념규정을 주저하지 않고 내렸다. 필자는 이진화 노무사의 현 정권에 대한 개념규정에 전폭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문재인 정부는 선거에서 그때그때 표만 많이 받으면 그만이라는 타성적 사고에 젖은 사람들의 정부일 따름입니다. 코로나 사태에 대처하는 정부여당의 태도에서 그러한 면모가 여지없이 노정됐습니다. 대구 현지에서 감염증 환자들을 치료하는 데 헌신하고 전력한 의료진들 또한 본질적으로 노동자들입니다. 저는 문재인 정부가 본질적으로 노동자들인 의료진의 안전과 건강을 진심으로 고려하고 배려했는지 짙은 의구심이 듭니다. 노동자들이 근무하는 산업현장의 안전을 등한시하는 정부가 친노동 정부로 불리는 건 커다란 어폐가 있습니다.
저는 최저인금 인상과 주 52시간 등의 쟁점들에서 문재인 정부가 노동계의 입장을 조금은 인정한 부분까지 굳이 부인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문재인 정부가 진정으로 노동자 친화적인 정치권력인 까닭에 이러한 진전이 이뤄졌다고 여기지는 않습니다. 단지, 문재인 정부가 펼쳐온 특유의 이미지 정치와 노동현장의 뜨거운 이슈가 우연히 맞아떨어진 덕분에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이 가능했다고 평가절하하고 있습니다.
최저임금 문제가 노동정책의 모든 것은 아닙니다. 이를테면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시급 1만 원을 우리나라 전체 사업장에서 의무화하자고 주장했다고 해서 훙준표 씨가 친노동 정치인은 될 수가 없는 노릇입니다.
경영계와 노동계에 들이대는 잣대는 동일해야
저는 노동조합의 성격을 보다 명료하게 규정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조합은 공익을 증진하는 일에 무게중심을 두고서 조직된 공공단체가 기본적으로 아닙니다. 노조는 결국에는 제한된 특정한 집단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는 이익단체입니다.
그러므로 노조가 자신들의 이익을 앞세운다고 해서, 자기네 이해관계를 관철하기 위해 활동한다고 하여 노조 바깥의 사람들이 이를 트집 잡거나 문제시해서는 안 됩니다. 노조와는 대척점에 자리해 있다고 말해질 수 있는 경영계의 경우만 살펴보더라도 기업주들의 이익을 위해서 다방면으로 분주하게 뛰어다닙니다. 누구의 이익 활동은 존중해주고, 누구의 이익 활동을 터부시해서는 부당한 까닭입니다.
저는 잘못을 찾아야 한다면 경제정책과 노동정책 영역 모두를 총괄하는 정부에서 찾는 게 올바르고 합리적이라고 봅니다. 정부의 본원적 사명과 역할은 노사의 이해관계를 유능하고 효과적으로 조율해서 노동자에게도 도움이 되고, 경영계에도 이익이 돌아가는 방향으로 타협점을 모색하는 데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이 조화로운 타협점을 도출하는 일에서 미래지향적이고 지속가능한 성과를 거두지 못해왔습니다.
다시 최저임금 문제를 언급해보겠습니다. 최저임금은 2017년에서 2018년으로 넘어가며 확 뛰었습니다. 2018년에서 2019년으로 바뀌는 과정에서도 크게 올랐습니다. 그러다가 2019년에서 2020년이 될 때에는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했습니다. 시간당 8,350원에서 8,590원으로 겨우 240원이 인상되는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최저임금의 인상폭이 들쭉날쭉하게 널뛰기를 한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다양한 계층을 대표해 위원회에 참여한 공익위윈들 사이에서 권위 있고 신뢰감 있게 제대로 조율을 하지 못한 데 있습니다.
시장에 미칠 영향을 신중하게 감안하고 이해당사자들에게 가해질 충격파를 지혜롭게 최소화하면서 최저임금을 단계적으로 인상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는 이 문제에서조차 이미지 정치에만 고집스럽게 열중했습니다. 그 결과 올해 최저임금은 실제적으로 동결이 돼버렸습니다. 마구 오를 적에는 고용주들이 신음을 토해내고, 주저앉을 때에는 근로자들이 비명을 지르는 식으로 정부 정책이 냉탕과 온탕을 일관성 없이 오락가락하고 말았습니다. (③에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