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엽은 국민의 부름을 다시 받게 될 것
고상진 : 유성엽 전 의원은 2002년도에 제3기 민선 정읍시장으로 선출됐습니다. 유성엽 의원은 2011년 출간된 「정읍의 길, 나의 길, 대한민국의 길」이라는 제목의 책에서 정읍시장으로 재직하던 시기의 시정 운영방침을 소개해놨습니다. 그는 “예산만 잘 운영하는 공무원은 50점짜리 공무원, 예산에 더해서 민간자본까지 유치해 시의 살림에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공무원은 100점짜리 공무원”이란 취지로 자신의 책에서 역설했습니다.
시장으로서의 유성엽은 민간의 활력과 창의성을 굉장히 중시하는 민관협치의 혁신적인 거버넌스(Governance) 행정에 주력했습니다. 왜냐하면 관료들에게만 의지해서는 정읍시가 직면한 다양하고 복잡하고 중층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시민들의 삶의 질을 끌어올리려면 민간의 힘이 필요하다는 소신을 오래전부터 갖고 있었습니다.
유성엽 전 의원이 강조해온 중요한 국가적 의제가 있습니다. 다름 아닌 ‘공공부문 개혁’입니다. 유성엽 전 의원은 공공부문을 무작정 방만하고 비대하게 팽창시키는 일은 정책의 방향성 자체부터가 잘못됐다고 지적해왔습니다. 유성엽 전 의원은 프랑스의 마크롱 정부가 추진한 것처럼 공공부문을 오히려 축소시켜야 대한민국이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고 봤습니다. 그러자면 경제 분야를 중심으로 활발한 규제개혁이 이뤄질 필요가 있습니다. 유성엽은 기존 정부 정책의 과감한 방향전환이 필요하다고 확신했습니다.
유성엽 전 의원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구분하는 일은 이제는 쓸모없는 낡은 패러다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두 이념을 대립시키는 건 진즉에 청산되어야 마땅할 20세기의 낡은 유산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유성엽은 사회주의 체제의 한계를 극복하고 시장경제 체제의 단점을 보완한,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정치경제 모델이 요구된다고 일관되게 주장해왔습니다.
유성엽 전 의원은 국회의원으로서는 3선을 기록했습니다. 그는 원내에 있으면서 미래지향적 정책의 개발과 채택에 진정성 있게 진력해왔습니다. 공인으로서 그동안 숨 가쁘게 달려온 유성엽이 지금쯤 잠시 숨을 돌리는 것도 괜찮은 일일지 모릅니다. 오랜만에 주어진 소중한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에 생각도 정리하고, 정책들도 더욱더 정교하게 가다듬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유성엽 전 의원이 새로운 도약을 위한 준비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머잖아 국민들의 부름을 다시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유성엽이 국민들께 보여드릴 수 있는 비전과 콘텐츠는 아직도 무궁무진합니다. 제가 유성엽이 현재의 시련과 좌절을 값진 자양분으로 삼아 호남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거듭날 수 있으리라고 자신 있게 단언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이낙연 지면 정세균 뜬다
이낙연 의원이 유력한 대선주자로 부상하는 과정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상의하달(Top-Down)의 성격이 짙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총리로 지명된 것을 효시로 ‘이낙연 대망론’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유성엽의 경우는 이와는 다릅니다. 그는 풀뿌리에서 오롯이 스스로의 힘으로 성장한 사람입니다. 유성엽 전 의원이 큰 꿈을 이룰 수 있을지는 솔직히 저도 장담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유성엽이 아래로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밝아 느리지만 단단하게 커왔다는 점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저는 호남 유권자들께서, 그리고 다른 지역에 살고 계신 국민들께서 유성엽이 자기의 정치철학과 경제정책을 실현해가는 모습을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봐주신다면 그가 국민들의 그러한 기대와 여망에 충분히 부응하고 보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의 초점은 차기 대통령 선거로 자연스럽게 이동해갔다.
1988년에 봄에 실시된 제13대 총선에서 김대중 총재가 창당해 주도한 평화민주당의 황색 돌풍이 거세게 불었습니다. 그때 호남을 대표하는 내로라하는 거문 정치인들 가운데 한 명인 이철승 전 신민당 대표마저 추풍낙엽처럼 떨어졌습니다. 그 이후 전북에서는 이철승의 이름값에 버금가는, 호남 전체 차원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의 명성을 뒤이을 뛰어난 정치 지도자가 출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대를 모았던 정동영 전 의원은 2007년에 치러진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큰 표 차이로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현재 작게는 전북의, 넓게는 호남의 정치적 위상이 적잖이 내려가 있습니다. 정동영과 유성엽을 위시한 전북 출신의 쟁쟁한 인물들조차 낙선의 고배를 마신 사태는 전북인들에게 매우 아쉽고 안타까운 기억으로 각인돼가고 있습니다. 이철승 전 대표가 낙선한 당시처럼 전북에서는 만감이 교차하는 중입니다.
이철승 전 신민당 대표(1922~2016)는 김대중-김영삼과 더불어 1970년대 초에 40대 기수론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했다. 제1야당의 당권을 쥔 그는 박정희 정권을 향해 타협적이고 유화적인 자세를 취했다 ‘사쿠라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만년에 극우적 행보를 보이기는 했으나, 현역 정치인 시절의 이철승의 입지는 DJ와 YS도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할 만큼 탄탄했다.
공희준 : 정세균 현 국무총리도 전라북도 태생입니다. 정 총리에 대한 기대감은 존재하나요?
고상진 : 잠재적인 기대감이 있습니다.
공희준 : 기대감은 기대감인데 잠재적이라….
고상진 : 정세균 국무총리는 거부감을 적게 주는 유형의 정치인입니다. 자기만의 고유한 색깔이 뚜렷하지 않다는 약점도 물론 있습니다만 정세균 총리는 대망, 즉 큰 꿈을 가슴속에 품은 사람입니다. 언젠가는 대중을 상대로 강하게 치고 나올 게 명확합니다. (잠시 뜸을 들였다가) 이낙연 의원과 이재명 경기지사가 딱 버티고서 쌍끌이를 하는 양자 구도를 정세균 총리가 3자 구도로 바꿔나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그러나 만에 하나, 이낙연 의원의 하락세가 멈추지 않고 이어진다면 이낙연의 대타나 대체재로 정세균 카드가 신속하게 떠오를 가능성은 당연히 상존하고 있습니다. (③회에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