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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호④, “입법은 송사가 아니다”
  • 공희준 편집위원
  • 등록 2020-08-05 16:5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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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의 사법화’는 엘리트주의에서 파생된 부산물
파퓰리즘(Populism), 즉 대중영합주의는 세계화 시대의 황혼을 타고서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제4의 물결’이다. 파퓰리즘의 기본 정서는 출세하고 성공한 엘리트들이 주도하는 기성 체제에 대한 인민대중 층위의 전면적 거부감이다. 그러나 파퓰리즘은 민중권력의 등장 대신에 유권자들의 감성을 자극해 그들을 몇몇 정치 엘리트들을 위한 유순하고 순종적인 “표 찍는 기계”로 만들어버리는 '팬덤(Fandom) 정치'를 불러오고 말았다. 문재인 정권 시대의 한국 정치는 이와 같은 왜곡된 경로 이탈의 전형적 사례를 제공하고 있다.

‘팬덤 정치’의 발호는 종전에는 직업 정치인들의 전유물이었던 정치적 반대파를 겨냥한 고소‧고발 전략을 이제는 일반 시민의 수준으로까지 광범위하게 보급(?)시키는 ‘송사정치’로 이어지고 있다. 라이벌 정당과 정치인에 대한 승리를 투표장이 아닌 법정에서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송사정치의 득세는 한국정치의 만성적 기저질환일 ‘정치의 사법화’를 치유불능의 단계로 악화시키는 중이다. 파퓰리즘이 돌고 돌아 결국에는 법조 엘리트들의 국회 진출을 돕는 융단을 깔아준 고약하고 엽기적인 먹이사슬에 대한 정준호 변호사의 진단과 처방을 들어보았다.

엘리트주의가 ‘정치의 사법화’ 불러와


정준호 변호사는 입법과 사법이 동일 영역이 아님을 되풀이해 강조했다. (사진 김대희 사진전문기자)

공희준(이하 공) : 정준호 변호사님께서는 법조인으로서 현실정치에 입문하셨습니다. 그런데 판사와 검사, 그리고 변호사 출신 정치인의 비중이 너무 크다는 의견이 유권자들 사이에 팽배해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 율사 출신 정치인들이 정치적 문제를 갖고서 고소‧고발을 남발하는 ‘정치의 사법화’에 앞장서왔다는 비판적 시각 또한 짙습니다. 법조인 출신 정치인들이 그와 같은 부정적 여론을 불식하려면 그 스스로 어떠한 노력을 경주해야만 할지 알려주십시오.


정준호(이하 정) : 저는 우리나라 국회에서는 법조인 출신 국회의원의 비율이 평균 30퍼센트 안팎의 비율로 일정하게 유지되어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공 : 국민들의 체감으로는 절반을 훌쩍 웃돕니다. 당장에 문재인 대통령부터가 변호사였습니다.

 

정 : 법조인 출신 정치인들이 대한민국의 정치권을 장악하사시피 한 사태는 근본적으로 엘리트주의의 산물입니다. 저희 세대도 어려서부터 공부 잘하는 문과생은 법대를 지망하고, 성적이 우수한 이과생은 의대로 진학하는 걸로 교육을 받아왔습니다. 기성세대들은 법대를 가면 당연히 판검사가 되어야 하고, 판검사 생활을 어느 정도 한 다음에는 자연스럽게 정치인으로 입신양명해야만 맞는 것으로 저희들 뇌리에 끊임없이 각인시켰습니다.

 

공 : 변호사님은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하셨나요? 체면치레상의 겸손함 대신에 솔직담백하게 답변해주십시오.

 

정 : 예, 그렇습니다.

 

공 : 제가 바랐단 바대로 허심탄회하게 시원시원하게 답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정준호 변호사는 2001년에 시행된 대입수학능력시험에서 만점을 받았다. 그가 자기는 공부를 별로 잘하지 못했다고 손사래를 쳤다면 필자 같은 지극히 평범한 두뇌의 소유자로서는 되레 화가 났을 성싶다.

 

정 : 저의 경우에는 그러기 때문에 진로의 선택지가 오히려 좁았습니다. 제가 법대에 입학해 사법시험을 준비하지 않았다면 그게 외려 이상하게 여겨졌을지도 모릅니다.

 

서울법대 다닌 천정배와 서울의대 나온 안철수에게 정준호 변호사가 느끼는 미묘한 인간적 유대감은 학창 시절에 두드러지게 공부 잘했던 사람들 사이에서만 형성 가능한 염화미소의 정서적 공감대의 연장선이었을지도 몰랐다.

 

안철수 대표가 커다란 사회적 명성을 쌓은 이유는 그가 의학을 전공한 의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사업가로서도 엄청난 성공을 거둔 사실에 있었습니다. 더욱이 그는 여느 성공한 유명인사들과는 달리 사회에서의 떼가 거의 묻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참신함과 차별성이 안철수를 유력 대권주자의 반열로 단숨에 올려놓았습니다.

 

저는 현직 변호사입니다. 그럼에도 정치의 사법한 현상을 저 또한 매우 부정석이고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항간에는 판사와 검사와 변호사가 국회에 입성하면 입법 전문가로서 큰 활약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은근하고 적잖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와 같은 인식이 대단히 잘못된 선입관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법을 만드는 입법 작업과 법원에서 진행되는 송사는 본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일이기 때문입니다. 둘은 서로 잘 맞물리지가 않습니다.


“입법은 송사가 아니다!” 이 중차대하고 의미심장한, 가히 천기누설에 가까울 명제를 정준호 변호사는 서슴없이 발설했다. 공안검사로 승승장구했던 보수 정당 국회의원들도, 인권변호사로 명성을 날렸던 진보진영 정치인들도 이러한 얘기를 국민들에게 해준 적이 없다. 이 두텁고 오래된 침묵의 카르텔에 정준호 변호사는 태연하면서도 의연하게 서슴없이 균열을 냈다.


좋은 변호사는 현장에 강한 변호사



공 : 재판과 입법은 완전히 별개의 영역인가요? 법대나 로스쿨에서 입법에 관해 학생들에게 나름 교육을 해주지 않습니까?

 

정 : 입법과 송사는 다릅니다. 입법은 기술적 성격이 강한 일입니다. 그런데 송사를 담당하는 판사와 검사, 그리고 변호사들은 입법과 관계된 경험이 많지도, 전문성이 크지도 않습니다. 입법 관련 부문에서는 행정부에 소속된 관료들이 훨씬 더 풍부한 경험치와 학습량을 축적해왔습니다. 법조인들은 이미 만들어진 법률들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를 놓고서 다투거나 해석하는 사람들일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법령을 제정해본 경험을 가진 인물들이 법조인 가운데에서는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정치의 사법화가 가속화된 배경에는 경제적 요인이 중요한 밑바탕으로 깔려 있습니다. 왜냐면 변호사들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생업의 부담이 덜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정치적 도전을 하기에 비교적 유리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만약 사시 출신이 아닌 행시 출신들에게 정치적 좌절을 맛본 직후에 돈벌이를 위해 곧장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있었다면 정치의 사법화만큼이나 ‘정치의 행정화’가 지금쯤 크나큰 정치사회적 문제로 대두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가 없습니다. 정치의 사법화의 본질은 방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엘리트주의의 부산물입니다. 너무 늦기 전에 극복될 필요가 있습니다.

 

좋은 변호사는 좋은 학교를 나온 변호사가 아닙니다. 사법시험 성적이 좋았던 변호사도 아닙니다. 지금은 법률시장에서도 실무 경험을 중시하는 흐름이 대세로 확고히 정착되었습니다. 이를테면 태양광 발전을 둘러싼 소송에서는 에너지나 환경에 관계된 일을 실제로 해본 경력이 있는 변호사가 능력을 발휘하기 마련입니다.


정치는 사회를 구성하는 각계각층의 다양하고 엇갈리는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반영하는 일입니다. 저는 분쟁의 현장에서, 갈등의 최전선에서 갈등의 해소와 분쟁의 타결에 나섰던 경험이 있는 법조인들이 정치권으로 진출한다면 정치의 사법화가 낳은 여러 가지 폐단들이 상당 부분 시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물론, 정치권에서 차지하는 법조인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현실은 기본적으로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공 : 정준호 변호사님의 주요 활동 분야는 어디인가요?

 

정 : 저는 서울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금융전문 로펌에서 법조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모펀드 전문회사였던 보고 펀드(Vogo Fund)의 법률 자문 역할을 맡은 적도 있고, 대기업들의 하도급을 둘러싼 송사에 관여도 해봤습니다. 민사 영역이 변호사로서의 저의 전공 분야였던 셈입니다.

 

공 : 광주로 가신 다음에는 변화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광주 지역에는 서울과는 다르게 큰 회사들이 별로 많지가 않습니다.

 

정 : 예. 기업이나 금융과 관련된 법률 수요가 서울과 견주면 적습니다. 그렇지만 대기업 협력업체들의 숫자는 광주에도 꽤 됩니다. 저는 단가 후려치기 등과 같은 대기업들의 갑질과 횡포에 시달려온 중소기업들을 위해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하는 등의 활동을 광주에서 해왔습니다.

 

공 : 변호사님께서는 서울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지방에서 서울로 가는 사례는 빈번하지만, 그 역방향은 흔하지가 않습니다.

 

정 : 제 아버님 고향이 전라북도 김제입니다. 어머님께서는 전라남도 장흥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서울에서 만나 결혼하신 두 분은 저를 낳은 지 얼마 안 되어 고향인 호남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아버님께서 원래는 서울에서 영업용 택시를 운전하셨습니다. 그런데 교통사고로 인해 더 이상은 차를 몰기가 곤란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때마침 아버님 지인께서 광주에서 가스레인지 영업을 함께 하자는 제안을 하셨고, 그 제안을 받아들여 부모님께서 광주로 이사하시게 됐습니다. 

 

공 : 대한민국의 구조적 문제점부터, 파란만장한 가정사까지 흥미진진한 말씀 기탄 없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 : 지루할 수 있는 얘기 진지하게 경청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덧붙이는 글

정준호 변호사는 1980년에 서울 은평구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사법연수원을 제39기로 수료하고 변호사로서의 업무를 시작했다. 더불어민주당 광주 북갑 지역구 지역위원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소비자주권시민회의」의 법률센터장과 「법무법인 민」 변호사로 각각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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