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로마군 최악의 날 ‘카르헤 전투’
  • 공희준 편집위원
  • 등록 2020-08-25 14:37:55

기사수정
  • 돈으로 산 황금만능의 리더십 : 크라수스 (14)

미군이 세계최강의 군대로 군림해온 핵심적 비결은 경쟁국 군대들의 추종을 불허하는 압도적인 보급능력에 있다. 게임을 즐기는 네티즌들 사이에서 “Show Me The Money”로 묘사되는 거의 무제한의 풍부한 물량전은 전 세계를 통틀어 오직 미합중국만이 구사할 수 있는 전략이다. 고대의 로마군도 현대의 미군과 마찬가지였다. 로마인들은 전투에 앞서서 원활한 보급을 염두에 두고 먼저 길부터 닦았다.

 

크라수스의 파르티아 원정은 로마군의 장기인 보급전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강행된 무모한 군사작전이었다. 보급의 우위를 누린 쪽은 되레 파르티아였다. 낙타를 이용해 사수(射手)들에게 쉬지 않고 공급되는 파르티아군의 화살은 크라수스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다. 궁지에 몰린 크라수스는 비장의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아들 푸블리우스에게 휘하 기병대의 대부분을 주며 전황을 타개하라고 지시했던 것이다.


서력 기원전 53년에 벌어진 카르헤 전투는 삼두정치의 한 축인 크라수스의 죽음과 더불어 로마 공화정의 몰락을 가져왔다. 그림은 카르헤 전투 상상도 (출처 : 나무위키)

푸블리우스는 파르티아군을 무턱대고 추격했다가 사막 한가운데에서 적의 포위망에 제대로 걸려들었다. 그는 1만 3천 명이라는 적잖은 숫자의 기병을 거느린 상태였다. 문제는 로마의 기병대를 포위한 파르티아 기병대의 규모가 그 몇 배나 되었다는 점이다. 파르티아군은 일부러 요란하게 흙먼지를 일으킴으로써 지리에 어두운 로마군을 한층 더 심각한 혼란에 빠뜨렸다.

 

크라수스의 아들은 그와 비슷한 또래인 두 참모의 보좌를 받고 있었다. 한 명은 메가박코스로 용맹하면서도 무예가 출중한 사나이였다. 또 다른 한 명은 켄소리누스로서 탁월한 웅변솜씨로 명성을 떨쳐온 원로원 의원이었다. 그러나 자욱한 모래먼지로 말미암아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상황에서 두 사람 모두 푸블리우스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혈기만 쓸데없이 왕성했지, 신중함이 결여된 셋이서 기병대를 통솔했으니 파르티아의 포위망에 보기 좋게 걸려든 일은 어쩌면 당연지사였다.

 

파르티아 궁수들은 모래먼지로 눈이 멀고 코와 입이 막힌 채 무질서하게 밀집해 있는 로마군 병사들을 향해 여유 있게 화살세례를 퍼부었다. 시위를 떠난 화살은 로마군의 몸을 인정사정없이 꿰뚫었고, 날카로운 화살촉에 직격당한 로마군은 즉사하거나 혹은 상처에서 흐르는 피로 사막의 모래를 적시며 서서히 죽어갔다.

 

로마군 기병대는 여전히 야만인 티를 벗지 못한 갈리아 출신 병사들로 주로 구성돼 있었다. 푸블리우스는 이판사판의 심정으로 선두에 서서 파르티아 기병대에게 돌격을 감행했고, 곧이어 병사들 역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식으로 파르티아 군사들에게 달려들었다. 로마군의 창은 파르티아군의 질기고 단단한 갑옷을 뚫기에는 너무나 작고 약했다. 투창이 무용함을 깨달은 로마 병사들은 적병을 말에서 끌어내려 동네 불량배들의 개싸움과 다름없는 난투극을 벌였다. 적군의 손에 죽은 자도 많았지만, 주인을 잃고서 사납게 날뛰는 말들의 발굽에 밟혀죽은 자들도 적잖은 끔찍한 살육전이 사막 한복판에서 양군 사이에 펼쳐졌다.

 

시간은 로마군 편이 아니었다. 식수와 식량과 병장기의 보급을 받을 수 없었던 탓이다. 더욱이 오늘날의 북프랑스 지방이 고향인 병사들에게 사막의 더위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들은 부상당한 푸블리우스를 둘러메고는 야트막한 언덕으로 후퇴해 사방을 방패로 둘러싸고 방진을 형성했다. 이는 현명하고 효과적인 방어책이 되지 못했다. 앞줄에 선 병사가 든 방패가 평지에서의 경우와는 판이하게 뒷줄의 병사를 완벽하게 보호해줄 수 없었던 이유에서였다. 그들은 또다시 파르티아군의 화살받이가 되어 고슴도치의 형상을 하고서 줄줄이 무기력하게 죽어나갔다.

 

화살에 맞아 심하게 다친 푸블리우스는 로마의 동맹도시로서 전장과 비교적 가까운 곳에 위치한 이크나이로 더 늦기 전에 피신하라는 부하들의 간곡하고 다급한 요청을 단호하게 뿌리치고서 이미 죽은 부하들을 따라 장렬하게 옥쇄하는 운명을 선택했다. 그는 방패를 운반하는 자신의 수행원에게 옆구리를 보여주며 창으로 찌를 것을 지시했다.

 

젊은 원로원 의원인 켄소리누스는 푸블리우스 크라수스처럼 아군의 손을 빌려 목숨을 끊었다. 메가박코스는 자결을 택했다. 전투가 끝나자 로마군의 생존자는 겨우 5백 명에 불과했고, 이들은 전원이 파르티아 측의 포로가 되었다. 파르티아군은 푸블리우스의 시신을 찾아내 그의 목을 자른 다음 크라수스가 있는 곳으로 신속히 말머리를 돌렸다.

 

크라수스는 이때까지도 푸블리우스에게 닥친 비극적 사태를 모른 채였다. 그는 아들이 적군을 맹렬하게 추격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잠시나마 한숨을 둘렸지만, 안도의 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지원병력을 빨리 보내주지 않으면 푸블리우스가 지휘하는 부대가 곧 전멸할 것이란 급보가 허겁지겁 도착한 탓이었다. 본대를 보존하기 위해 즉각 퇴각할 것인지, 아니면 아들을 돕고자 부대를 전진시킬 것인지 크라수스는 단안을 내리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그는 이윽고 총사령관의 길이 아닌 아버지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냉철한 총사령관의 길도, 인자한 아버지의 길도 성공적으로 목표지점에 도달하기가 전부 불가능해졌음이 이내 밝혀졌다. 파르티아군이 푸블리우스의 머리를 창끝에 꽂은 채 나타나 로마군을 철통같이 에워쌌기 때문이다.


파르티아 병사들은 푸블리우스 같이 용감한 아들이 크라수스처럼 비겁한 아버지를 둘 리가 없다며 로마군을 잔인하게 능멸했다. 여느 때 같았으면 로마군은 이러한 패륜적 광경에 분노해 적군을 단숨에 어육으로 만들었을 게 분명했다. 허나 이제 로마인들은 젖 먹던 힘까지 다 쥐어짜낸 후였다. 그들은 갑자기 맥이 풀려 일제히 땅바닥에 힘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어찌된 영문인지 크라수스만이 의외로 의연한 태도를 견지했다.

 

그는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슬픔은 로마가 당한 수모에 견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강조하며, 용기와 끈기를 두루 갖춘 로마의 위대한 선조들이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을 빛나는 영광의 시간으로 화려하게 바꿔냈던 것처럼 지금의 일시적 패배에 굴하지 말고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방금 전에 겪은 치욕을 적군에게 지체 없이 앙갚음하자고 병사들을 독려했다.


관련기사
TAG
1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서초구
국민신문고
HOT ISSUE더보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이원욱 의원, “개혁신당 돌풍은 동탄에서” 총선 후보 등록 완료 개혁신당 이원욱 의원(경기 화성정: 동탄1·2·3·5동, 반월동)이 22일(금), 선거관리위원회에 경기 화성(정) 후보자로 등록을 마치고 총선 승리 의지를 다졌다.이원욱 의원은 이번 총선으로 개혁신당이 양극단 혐오정치를 끝내고, 대한민국의 정치개혁을 이뤄낼 것이라고 자신했다. 본후보 등록을 마친 이원욱 의원은 “지난 21.
  2. 서울시, 잠실종합운동장 방문객 대중교통 이용 당부 서울시체육시설관리사업소(사업소)는 3월 23(토)부터 24일(일)까지 잠실종합운동장에서`2024 프로야구 공식 개막전` 및 `2023~2024 프로농구`가 개최되어 많은 관람객들이 운집할 것으로 예상 되므로 잠실종합운동장을 찾는 시민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줄 것을 당부했다.잠실야구장에서는 2023 한국시리즈 우승팀인 LG와 미국 메이저리그 생활을 .
  3. "토요일은 서울 곳곳 누비며 우리 가족 역사 만나러 가는 날" 토요일 주말, 자녀와 함께 교과서 속 역사 현장으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서울역사편찬원은 `엄마아빠와 함께하는 교과서 역사기행(이하 교과서 역사기행)`을 마련하고 참여자를 모집한다.교과서 역사기행은 초·중·고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문화유산을 부모님과 자녀가 함께 직접 걸어보며 체험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각 답사...
  4. 박성중 부천을 후보, 선거사무소 개소식 "‘부천벨트’ 만들 것" 박성중 국민의힘 경기 부천을 후보는 23일, 부천시 중동에서 선거사무소 개소식을 열고 부천의 발전과 4.10 총선 승리를 위한 본격적인 출정에 돌입했다.이날 개소식에는 부천시민과 당원들이 대거 참석해 인산인해를 이뤘고,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인천계양을 후보), 권성동 의원과 박희태 전 국회의장, 이사...
  5. 차지호 선거사무소 개소식, “오산이 이끄는 미래 경기시대 열겠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오산시 선거구의 더불어민주당 차지호 후보가 23일 선거사무소 개소식을 갖고 본격적인 세몰이를 시작했다.`오산 미래가 되다, 따뜻한 미래설계자 차지호’를 슬로건으로 진행된 이날 개소식에는 많은 내·외빈이 참석하며 야당의 촉망받는 후보임을 입증했다.또한 시민사회 각계각층과 지지자들이 ..
  6. 부승찬 용인시병 후보 ‘시민과 함께’ 선거대책위원회 출정식 열려 부승찬 용인시병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후보는 23일 ‘시민과 함께’ 선거대책위원회 출정식을 열고 본격적인 선거체제에 돌입했다. 부 후보는 “나라를 망치고 있는 윤석열 정권 심판에 앞장서고 총선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라며 “그리고 여기 계신 모든 분들과 함께 힘을 합쳐 수지가 발전하고 동네 곳곳에 온기가 스.
  7. 尹 대통령, 제2연평해전 전승비와 천안함 46용사 추모비 참배하고 유가족 만나 위로 윤석열 대통령은 3월 22일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서 개최된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데 이어 해군 제2함대사령부 내에 있는 제2연평해전 전승비와 천안함 추모비를 방문해 서해수호 용사들에 대한 헌화와 참배를 하고 유가족을 만나 위로했다. 윤 대통령은 기념식이 끝난 뒤 해군 제2함대사령부 내 충무 동산으로 이동해 제2.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